“졸업 못 시킨다” 경희대 교수 제자 성추행…과학계도 ‘미투’

입력 2018.03.13 (19:58) 수정 2018.03.14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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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 못 시킨다” 경희대 교수 제자 성추행…과학계도 ‘미투’

“졸업 못 시킨다” 경희대 교수 제자 성추행…과학계도 ‘미투’


[연관기사][뉴스9] “졸업 못 시킨다” 제자 성추행…영상에 잡힌 과학계 ‘미투’

사회 전반으로 번지고 있는 '미투' 운동이 과학계에서도 터져나올 조짐이 보이고 있다. 과학계 성폭력에 대한 제보를 받고 있던 기자에게 경희대 자연대 대학원생 A씨가 이메일을 보냈다.

"교수의 갑질에 의한 정신적인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었으며 이런 사안을 다뤄 주셨으면 하는 바람에 이렇게 제보드립니다. 연구계가 무척이나 좁기 때문에 반드시 익명 처리를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지도교수는 1주일에 많으면 서너번은 술자리에 불렀고 단둘이 술을 마시는 일도 잦았다. 일방적인 통보 형식의 술자리를 거부하면 차별이 있었다고 제보자는 말했다. 평소 교수는 술자리에서 손금을 봐준다는 식으로 여자 대학원생들의 손을 스스럼 없이 잡기도 했는데 A씨가 제보까지 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졸업 문제 때문이었다.

졸업 시켜줄 수 없다는 지도교수...유흥주점으로 제자 데려가

"졸업을 앞두고 여기저기 면접을 보고 있는데 교수님이 졸업을 시켜줄 수 없다는 거예요. 차일피일 확답을 미루기에 절박한 마음에 애원하다시피했고 그날 밤 술자리는 3차로 이어졌어요. 교수님은 여자 접대부가 나오는 학교 근처의 유흥주점의 룸으로 저를 데려갔습니다."

여자 종업원의 접대를 받던 교수는 "네 옆에는 남자를 앉혀야 하는 게 아니냐"며 농담을 했고 종업원을 내보낸 뒤에 사건이 벌어졌다. 좀 더 공부를 해서 좋은 논문을 쓰라는 등 졸업을 시켜줄 수 없다는 얘기가 계속되자 A씨는 서럽기도 하고 폐쇄적인 공간에 둘만 있다는 사실이 두렵기도 해서 눈물을 터뜨렸다.

"무섭고 졸업도 안 시켜준다니까 눈물이 나는 거예요 엉엉 울었는데 눈물을 닦아주겠다고 슬금슬금 옆으로 오셔가지고 손을 잡으셨어요. 그리고 울긴 왜 울어 울지마 이러면서 뽀뽀 뽀뽀 이러는데 너무 소름이 돋아서..."

때마침 룸에 들어온 종업원 덕분에 그 순간을 넘길 수 있었지만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다고 했다. 애원하다시피해서 졸업을 할 수 있었지만 지금도 지도교수를 생각하면 분노가 치밀고 학회 등지에서 또 다시 마주칠까봐 두렵기도 하다.

지도교수가 여자 제자를 유흥주점으로 데려가 성추행했다. (사진=제보영상 캡쳐)지도교수가 여자 제자를 유흥주점으로 데려가 성추행했다. (사진=제보영상 캡쳐)

선배에게 말했더니 "사회 생활이 다 그렇지"

연구실 내에서 교수의 이런 행동을 알리고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은 없었을까? 사실 A씨도 선배에게 교수와의 일을 말하고 당시 찍은 영상까지 보여줬지만 사회 생활하려면 이 정도는 뭐 어떻냐는 반응이 돌아왔다. 학교 내 성폭력 상담소를 찾기도 했지만 대부분 좋게 좋게 합의하도록 조정하는 역할만을 한다는 얘기에 발길을 돌려야 했다.

A씨도 제보를 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뭐 하나 밉보이면 인건비를 나도 모르게 깎는다거나... 논문 실적도 중요하거든요. 저는 열심히 했는데 이름을 다 빼버린다거나 할 수도 있어요. 맘에 들면 넣어주고 맘에 안 들면 빼고..."

이공계 대학에서 지도교수가 지닌 전권은 신에 가깝다. 한번 눈밖에 나면 논문은 커녕 졸업도, 학계에 자리잡기도 힘들어진다. 특히 지도교수가 저명한 과학자라면 영향력은 막강하기 때문에 성폭력 피해자는 더욱 침묵하기 쉽다. 연구실에서 길게는 하루 종일 붙어있는 데다가 남성이 대다수이고 특히 절대 권력을 가진 교수로부터 성폭력을 당하기 쉬운 환경이지만 이에 대한 폭로는 사실상 어렵다. 학계를 떠날 각오를 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과학계 성폭력...가해자는 고위직, 피해자는 계약직

과학계 성추행을 제보하는 이메일 과학계 성추행을 제보하는 이메일

그래서 과학계 성폭력을 제보하는 메일들은 대부분 익명 요구를 했고,인터뷰는 절대 할 수 없다는 답변이 많았다. 어차피 자신은 힘이 약하고 성폭력 교수는 처벌을 받기는 커녕 자신을 매장시킬 것이라는 우려도 컸다. 연구실에서 늘상 있는 가벼운 성희롱은 물론 학회 끝나고 강제로 호텔로 데려가거나 집요한 스토킹에도 수면 위로 드러나는 성폭력 징계 건수는 미미하기만 하다.

지난해 국감에서 지적된 과학기술계 연구기관의 성폭력 징계 현황을 봤더니 7건에 불과했다. 적다고 넘어갈 수 있지만 가해자와 피해자를 분석해본 순간 답이 나왔다. 부원장에서 센터장, 적어도 선임급 이상의 남자 직원들이 크고 작은 징계를 받았고 반대로 피해자는 1명만 정규직이었다. 나머지 6명은 미리 짠 것처럼 계약직이나 위촉직, 파견직 여직원들이었다. 이들은 성폭력 발생 이후 계약 해고나 자발적 의사 등을 이유로 대부분 퇴사했고 그렇게 범죄 현장에서 사라져버렸다.

과학계에서 성폭력 징계를 받은 가해자들은 대부분 고위직이었지만 피해자는 약자의 신분이었다. 과학계에서 성폭력 징계를 받은 가해자들은 대부분 고위직이었지만 피해자는 약자의 신분이었다.

저명한 학술지인 '네이처'와 '사이언스'도 세계적인 미투 운동과 함께 대학을 비롯한 과학계의 성폭력에 대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지난해 네이처는 '2017년 과학계 화제의 인물 10'을 뽑았는데, 명단에는 앤 올리바리우스 변호사가 포함돼있었다.

미국 예일대에서 대학원을 보낸 그녀는 교내에서 벌어지는 남자 교수들의 성추행과 강간을 목격하며 분노하게 됐고 대학 성폭력 사건에 대한 법적 분쟁을 전문적으로 맡게 됐다. 또 지난해 12월 8일자 사이언스지는 두 여성 과학자가 대학에서 일어나는 성희롱에 대해 비판하는 칼럼을 싣기도 했다. 성폭력 혐의가 입증된 교수는 학계에 발을 붙이지 못하게 해야 한다는 경고도 나왔다.

'네이처'와 '사이언스'에 실린 과학계 성폭력과 관련된 인물과 칼럼 '네이처'와 '사이언스'에 실린 과학계 성폭력과 관련된 인물과 칼럼

이공계 학생은 논문 통과와 졸업을 위해, 계약직 연구원은 재계약 문제가 걸려있기 때문에 성폭력 피해자임에도 절대 약자가 될 수밖에 없다. 절대 교수의 이름과 학교를 절대로 밝힐 수 없다는 피해자들의 메일에 스며있는 간절함이 마음을 먹먹하게 만든다.

과학계 성폭력 피해 제보: weezer@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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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3-13 19:58:24
    • 수정2018-03-14 10:5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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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관기사][뉴스9] “졸업 못 시킨다” 제자 성추행…영상에 잡힌 과학계 ‘미투’

사회 전반으로 번지고 있는 '미투' 운동이 과학계에서도 터져나올 조짐이 보이고 있다. 과학계 성폭력에 대한 제보를 받고 있던 기자에게 경희대 자연대 대학원생 A씨가 이메일을 보냈다.

"교수의 갑질에 의한 정신적인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었으며 이런 사안을 다뤄 주셨으면 하는 바람에 이렇게 제보드립니다. 연구계가 무척이나 좁기 때문에 반드시 익명 처리를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지도교수는 1주일에 많으면 서너번은 술자리에 불렀고 단둘이 술을 마시는 일도 잦았다. 일방적인 통보 형식의 술자리를 거부하면 차별이 있었다고 제보자는 말했다. 평소 교수는 술자리에서 손금을 봐준다는 식으로 여자 대학원생들의 손을 스스럼 없이 잡기도 했는데 A씨가 제보까지 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졸업 문제 때문이었다.

졸업 시켜줄 수 없다는 지도교수...유흥주점으로 제자 데려가

"졸업을 앞두고 여기저기 면접을 보고 있는데 교수님이 졸업을 시켜줄 수 없다는 거예요. 차일피일 확답을 미루기에 절박한 마음에 애원하다시피했고 그날 밤 술자리는 3차로 이어졌어요. 교수님은 여자 접대부가 나오는 학교 근처의 유흥주점의 룸으로 저를 데려갔습니다."

여자 종업원의 접대를 받던 교수는 "네 옆에는 남자를 앉혀야 하는 게 아니냐"며 농담을 했고 종업원을 내보낸 뒤에 사건이 벌어졌다. 좀 더 공부를 해서 좋은 논문을 쓰라는 등 졸업을 시켜줄 수 없다는 얘기가 계속되자 A씨는 서럽기도 하고 폐쇄적인 공간에 둘만 있다는 사실이 두렵기도 해서 눈물을 터뜨렸다.

"무섭고 졸업도 안 시켜준다니까 눈물이 나는 거예요 엉엉 울었는데 눈물을 닦아주겠다고 슬금슬금 옆으로 오셔가지고 손을 잡으셨어요. 그리고 울긴 왜 울어 울지마 이러면서 뽀뽀 뽀뽀 이러는데 너무 소름이 돋아서..."

때마침 룸에 들어온 종업원 덕분에 그 순간을 넘길 수 있었지만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다고 했다. 애원하다시피해서 졸업을 할 수 있었지만 지금도 지도교수를 생각하면 분노가 치밀고 학회 등지에서 또 다시 마주칠까봐 두렵기도 하다.

지도교수가 여자 제자를 유흥주점으로 데려가 성추행했다. (사진=제보영상 캡쳐)
선배에게 말했더니 "사회 생활이 다 그렇지"

연구실 내에서 교수의 이런 행동을 알리고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은 없었을까? 사실 A씨도 선배에게 교수와의 일을 말하고 당시 찍은 영상까지 보여줬지만 사회 생활하려면 이 정도는 뭐 어떻냐는 반응이 돌아왔다. 학교 내 성폭력 상담소를 찾기도 했지만 대부분 좋게 좋게 합의하도록 조정하는 역할만을 한다는 얘기에 발길을 돌려야 했다.

A씨도 제보를 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뭐 하나 밉보이면 인건비를 나도 모르게 깎는다거나... 논문 실적도 중요하거든요. 저는 열심히 했는데 이름을 다 빼버린다거나 할 수도 있어요. 맘에 들면 넣어주고 맘에 안 들면 빼고..."

이공계 대학에서 지도교수가 지닌 전권은 신에 가깝다. 한번 눈밖에 나면 논문은 커녕 졸업도, 학계에 자리잡기도 힘들어진다. 특히 지도교수가 저명한 과학자라면 영향력은 막강하기 때문에 성폭력 피해자는 더욱 침묵하기 쉽다. 연구실에서 길게는 하루 종일 붙어있는 데다가 남성이 대다수이고 특히 절대 권력을 가진 교수로부터 성폭력을 당하기 쉬운 환경이지만 이에 대한 폭로는 사실상 어렵다. 학계를 떠날 각오를 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과학계 성폭력...가해자는 고위직, 피해자는 계약직

과학계 성추행을 제보하는 이메일
그래서 과학계 성폭력을 제보하는 메일들은 대부분 익명 요구를 했고,인터뷰는 절대 할 수 없다는 답변이 많았다. 어차피 자신은 힘이 약하고 성폭력 교수는 처벌을 받기는 커녕 자신을 매장시킬 것이라는 우려도 컸다. 연구실에서 늘상 있는 가벼운 성희롱은 물론 학회 끝나고 강제로 호텔로 데려가거나 집요한 스토킹에도 수면 위로 드러나는 성폭력 징계 건수는 미미하기만 하다.

지난해 국감에서 지적된 과학기술계 연구기관의 성폭력 징계 현황을 봤더니 7건에 불과했다. 적다고 넘어갈 수 있지만 가해자와 피해자를 분석해본 순간 답이 나왔다. 부원장에서 센터장, 적어도 선임급 이상의 남자 직원들이 크고 작은 징계를 받았고 반대로 피해자는 1명만 정규직이었다. 나머지 6명은 미리 짠 것처럼 계약직이나 위촉직, 파견직 여직원들이었다. 이들은 성폭력 발생 이후 계약 해고나 자발적 의사 등을 이유로 대부분 퇴사했고 그렇게 범죄 현장에서 사라져버렸다.

과학계에서 성폭력 징계를 받은 가해자들은 대부분 고위직이었지만 피해자는 약자의 신분이었다.
저명한 학술지인 '네이처'와 '사이언스'도 세계적인 미투 운동과 함께 대학을 비롯한 과학계의 성폭력에 대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지난해 네이처는 '2017년 과학계 화제의 인물 10'을 뽑았는데, 명단에는 앤 올리바리우스 변호사가 포함돼있었다.

미국 예일대에서 대학원을 보낸 그녀는 교내에서 벌어지는 남자 교수들의 성추행과 강간을 목격하며 분노하게 됐고 대학 성폭력 사건에 대한 법적 분쟁을 전문적으로 맡게 됐다. 또 지난해 12월 8일자 사이언스지는 두 여성 과학자가 대학에서 일어나는 성희롱에 대해 비판하는 칼럼을 싣기도 했다. 성폭력 혐의가 입증된 교수는 학계에 발을 붙이지 못하게 해야 한다는 경고도 나왔다.

'네이처'와 '사이언스'에 실린 과학계 성폭력과 관련된 인물과 칼럼
이공계 학생은 논문 통과와 졸업을 위해, 계약직 연구원은 재계약 문제가 걸려있기 때문에 성폭력 피해자임에도 절대 약자가 될 수밖에 없다. 절대 교수의 이름과 학교를 절대로 밝힐 수 없다는 피해자들의 메일에 스며있는 간절함이 마음을 먹먹하게 만든다.

과학계 성폭력 피해 제보: weezer@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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