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교과서 국정화, 제2의 국정 농단”…박근혜·김기춘 등 수사의뢰

입력 2018.03.28 (11:14) 수정 2018.03.28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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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가 추진했던 역사교과서 국정화 추진 과정에서 숱한 불법 행위들이 벌어졌던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박 전 대통령 본인을 비롯해 이병기 전 청와대 비서실장, 김상률 전 교육문화수석이 직접 교육부 등에 지시를 내리는 등 청와대가 전방위적으로 개입한 정황도 드러났다.

역사교과서 국정화 진상조사위원회(위원장 고석규)는 28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지난 7개월여 기간 벌인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조사위는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박근혜 정부가 개입한 반헌법적이고 불법적인 또 하나의 국정농단 사건"이라고 규정했다.

조사위는 "박근혜 정부 청와대가 역사교과서 국정화 전 과정을 기획·결정했고, 여당과 교육부, 관변단체 등을 동원해 구체적인 절차를 추진했으며, 이 과정에서 교육부는 청와대 지시에 적극 동조해 실무적인 뒷받침을 했다고 밝혔다.

조사위는 교육부 장관에게 불법, 부당한 행위에 직접 가담한 관련자들을 직권남용, 교육공무원법위반, 배임·횡령 혐의 등으로 검찰에 수사 의뢰를 요청하고, 교육부 직원 10여 명은 별도 징계나 인사조처 하라고 건의했다. 수사 의뢰 대상에는 박 전 대통령과 김기춘·이병기 전 비서실장, 서남수·황우여 전 교육부 장관, 김상률 전 교육문화수석, 김정배 전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 김재춘 전 교육부 차관, 전·현직 교육부 공무원, 민간인 등 25명 안팎이 포함됐다.

먼저, 역사교과서 국정화 작업은 2013년 10월 18일 박근혜 전 대통령이 '교과서 검인정 체제 강화를 위한 조직 설치'를 지시하면서 본격적인 준비가 시작됐다는 게 조사위 판단이다. 2014년 7월에는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실 김한글 행정관이 교육부 역사교육지원팀장에게 국정화 결정을 종용했고, 2014년 9월부터 교육부가 역사교과서 국정화 논리를 작성, 배포하는 등 국정화 작업이 윤곽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2015년 초 김정배 국사편찬위원장이 임명된 뒤, 2015년 7월에는 교육부 역사교육지원팀에서 국정화 강행을 위한 세부 실행계획을 수립, 2015년 10월 12일 교육부가 역사교과서 국정화 행정예고를 실시하기에 이른다.

이 과정에서 다양한 불법 행위들이 벌어진 사실도 확인됐다. 조사위는 청와대의 지시로 교육부가 여론 조작에 나섰다고 밝혔다. 국정화에 비판적인 여론은 짓누르고, 우호적인 여론을 인위적으로 확대·과장하는 방식이다. 조사 결과를 보면, 2015년 10월 예정된 전국역사학대회에서 국정화 반대 성명 발표가 예상되자, 청와대 비서실이 사전 대응을 지시했고, 교육부는 보수 학부모단체를 동원해 집단행동을 벌이게 했다. 교육부는 직접 국정화 지지 기고문을 써서 민간 기고자를 섭외하는가 하면, '올바른 역사교과서를 지지하는 교수 모임' 교수 102명의 국정화 지지 선언에도 적극 관여했다. 또한 국정화에 반대한 학자는 한국연구재단 학술연구지원에서 배제된 반면 국정화 지지 학자는 대부분 지원 대상에 선정됐다.

또, 교육부는 이병기 전 비서실장과 김상률 전 교육문화수석의 지시로 '국정화 비밀 TF'를 구성해 운영했다. 한시적인 조직 설치 절차를 거치지 않았고, TF 근무인원을 배치하면서 기관장 결재도 받지 않았다. 비밀 TF는 고위공무원인 오석환을 단장으로 총 3개 팀, 21명 규모로 운영됐는데, 국정화 로드맵을 작성하고 홍보 업무를 담당했다.

국정화 행정예고 단계에는 의견서를 조작한 정황도 드러났다. 2015년 10월 12일 행정예고 이후, 같은 해 11월 2일까지 찬반 의견을 수렴했는데, 동일한 주소지로 1,600여 장의 의견서가 제출되거나, 동일인이 100장 이상의 의견서를 제출, 이완용이나 조선총독부 같은 가짜 내용으로 작성된 의견서가 적발되기도 했다. 조사위는 이 사안에 대해 이미 검찰에 수사 의뢰한 상태다.

홍보비도 부적절하게 사용된 정황이 드러났다. 조사위는 청와대가 김상률 수석 주재로 개최된 회의에서 홍보비의 위법·부당한 집행을 결정하고, 이를 교육부에 강제했다고 밝혔다. 그 결과 교육부가 홍보비로 편성된 예산 24억 8천만 원 가운데 12억 8천만 원을 부적절하게 사용했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홍보용역업체 '수미디어'가 1억 7천만 원 상당의 부당 이익을 얻었다고, 조사위는 밝혔다.

교과서 편찬·집필 과정은 그야말로 '엉터리'였다. 청와대가 교육부에 편찬기준 21건을 수정하라고 요구하고, 그중 18건이 반영됐다. 또, 청와대는 편찬심의위원 16명 가운데 13명을 추천순위와 무관하게 낙점했고, 집필진 선정과정에도 개입했다. 특히, 안종범 정책조정수석의 업무수첩을 보면, 박근혜 대통령은 15가지 항목에 걸쳐 국정화 관련 내용을 지시한 것으로 나타났다. '편찬과정 관리 부실 점검', '연구진 43명 개인 입장 관철 위해 중요 자료 유출 가능성 차단', '교과서 임시정부 법통 계승-광복 이후 수립과정, 6·25 전쟁, 이·박 대통령 평가, 북한 정권' 등 집필 과정 관리부터 내용까지 구체적인 주문을 한 것으로 보인다.

조사위는 이 같은 조사 결과를 토대로 교육부 장관에게 철저한 사법적, 행정적 조처를 취할 것을 요구했다. 법적 책임을 묻기 어렵더라도 국정 교과서 추진에 적극적 역할을 한 교육부 관계자를 관련 업무에서 배제하고 인사상 조처를 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또, 교육부 장관에게는 대국민 사과와 함께 재발 방지 의지를 분명히 밝힐 것을 요구했다. 이와 함께 조사위는 초등 국정교과서 폐지를 포함해 교과서 발행 제도 개선 조치가 시급하다면서, 학교 역사교육이 토론과 논쟁 중심으로 개혁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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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3-28 11:14:53
    • 수정2018-03-28 16:57:54
    사회
박근혜 정부가 추진했던 역사교과서 국정화 추진 과정에서 숱한 불법 행위들이 벌어졌던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박 전 대통령 본인을 비롯해 이병기 전 청와대 비서실장, 김상률 전 교육문화수석이 직접 교육부 등에 지시를 내리는 등 청와대가 전방위적으로 개입한 정황도 드러났다.

역사교과서 국정화 진상조사위원회(위원장 고석규)는 28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지난 7개월여 기간 벌인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조사위는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박근혜 정부가 개입한 반헌법적이고 불법적인 또 하나의 국정농단 사건"이라고 규정했다.

조사위는 "박근혜 정부 청와대가 역사교과서 국정화 전 과정을 기획·결정했고, 여당과 교육부, 관변단체 등을 동원해 구체적인 절차를 추진했으며, 이 과정에서 교육부는 청와대 지시에 적극 동조해 실무적인 뒷받침을 했다고 밝혔다.

조사위는 교육부 장관에게 불법, 부당한 행위에 직접 가담한 관련자들을 직권남용, 교육공무원법위반, 배임·횡령 혐의 등으로 검찰에 수사 의뢰를 요청하고, 교육부 직원 10여 명은 별도 징계나 인사조처 하라고 건의했다. 수사 의뢰 대상에는 박 전 대통령과 김기춘·이병기 전 비서실장, 서남수·황우여 전 교육부 장관, 김상률 전 교육문화수석, 김정배 전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 김재춘 전 교육부 차관, 전·현직 교육부 공무원, 민간인 등 25명 안팎이 포함됐다.

먼저, 역사교과서 국정화 작업은 2013년 10월 18일 박근혜 전 대통령이 '교과서 검인정 체제 강화를 위한 조직 설치'를 지시하면서 본격적인 준비가 시작됐다는 게 조사위 판단이다. 2014년 7월에는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실 김한글 행정관이 교육부 역사교육지원팀장에게 국정화 결정을 종용했고, 2014년 9월부터 교육부가 역사교과서 국정화 논리를 작성, 배포하는 등 국정화 작업이 윤곽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2015년 초 김정배 국사편찬위원장이 임명된 뒤, 2015년 7월에는 교육부 역사교육지원팀에서 국정화 강행을 위한 세부 실행계획을 수립, 2015년 10월 12일 교육부가 역사교과서 국정화 행정예고를 실시하기에 이른다.

이 과정에서 다양한 불법 행위들이 벌어진 사실도 확인됐다. 조사위는 청와대의 지시로 교육부가 여론 조작에 나섰다고 밝혔다. 국정화에 비판적인 여론은 짓누르고, 우호적인 여론을 인위적으로 확대·과장하는 방식이다. 조사 결과를 보면, 2015년 10월 예정된 전국역사학대회에서 국정화 반대 성명 발표가 예상되자, 청와대 비서실이 사전 대응을 지시했고, 교육부는 보수 학부모단체를 동원해 집단행동을 벌이게 했다. 교육부는 직접 국정화 지지 기고문을 써서 민간 기고자를 섭외하는가 하면, '올바른 역사교과서를 지지하는 교수 모임' 교수 102명의 국정화 지지 선언에도 적극 관여했다. 또한 국정화에 반대한 학자는 한국연구재단 학술연구지원에서 배제된 반면 국정화 지지 학자는 대부분 지원 대상에 선정됐다.

또, 교육부는 이병기 전 비서실장과 김상률 전 교육문화수석의 지시로 '국정화 비밀 TF'를 구성해 운영했다. 한시적인 조직 설치 절차를 거치지 않았고, TF 근무인원을 배치하면서 기관장 결재도 받지 않았다. 비밀 TF는 고위공무원인 오석환을 단장으로 총 3개 팀, 21명 규모로 운영됐는데, 국정화 로드맵을 작성하고 홍보 업무를 담당했다.

국정화 행정예고 단계에는 의견서를 조작한 정황도 드러났다. 2015년 10월 12일 행정예고 이후, 같은 해 11월 2일까지 찬반 의견을 수렴했는데, 동일한 주소지로 1,600여 장의 의견서가 제출되거나, 동일인이 100장 이상의 의견서를 제출, 이완용이나 조선총독부 같은 가짜 내용으로 작성된 의견서가 적발되기도 했다. 조사위는 이 사안에 대해 이미 검찰에 수사 의뢰한 상태다.

홍보비도 부적절하게 사용된 정황이 드러났다. 조사위는 청와대가 김상률 수석 주재로 개최된 회의에서 홍보비의 위법·부당한 집행을 결정하고, 이를 교육부에 강제했다고 밝혔다. 그 결과 교육부가 홍보비로 편성된 예산 24억 8천만 원 가운데 12억 8천만 원을 부적절하게 사용했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홍보용역업체 '수미디어'가 1억 7천만 원 상당의 부당 이익을 얻었다고, 조사위는 밝혔다.

교과서 편찬·집필 과정은 그야말로 '엉터리'였다. 청와대가 교육부에 편찬기준 21건을 수정하라고 요구하고, 그중 18건이 반영됐다. 또, 청와대는 편찬심의위원 16명 가운데 13명을 추천순위와 무관하게 낙점했고, 집필진 선정과정에도 개입했다. 특히, 안종범 정책조정수석의 업무수첩을 보면, 박근혜 대통령은 15가지 항목에 걸쳐 국정화 관련 내용을 지시한 것으로 나타났다. '편찬과정 관리 부실 점검', '연구진 43명 개인 입장 관철 위해 중요 자료 유출 가능성 차단', '교과서 임시정부 법통 계승-광복 이후 수립과정, 6·25 전쟁, 이·박 대통령 평가, 북한 정권' 등 집필 과정 관리부터 내용까지 구체적인 주문을 한 것으로 보인다.

조사위는 이 같은 조사 결과를 토대로 교육부 장관에게 철저한 사법적, 행정적 조처를 취할 것을 요구했다. 법적 책임을 묻기 어렵더라도 국정 교과서 추진에 적극적 역할을 한 교육부 관계자를 관련 업무에서 배제하고 인사상 조처를 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또, 교육부 장관에게는 대국민 사과와 함께 재발 방지 의지를 분명히 밝힐 것을 요구했다. 이와 함께 조사위는 초등 국정교과서 폐지를 포함해 교과서 발행 제도 개선 조치가 시급하다면서, 학교 역사교육이 토론과 논쟁 중심으로 개혁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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