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만 명 살린 6.25 흥남 철수 작전…“아직도 생생해요”

입력 2018.04.06 (19:26) 수정 2018.04.06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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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흥남 철수 작전은 6·25전쟁 당시 10만 명의 피난민을 대피시킨 기적 같은 일이었는데요.

당시 마지막까지 남아 피난민 만여 명을 태운 승무원과 6.25 참전용사가 한국을 찾아 피난민들과 만났습니다.

차주하 기자의 보도입니다.

[리포트]

6·25전쟁 당시 10만여 명을 극적으로 대피시킨 흥남 철수 작전.

메러디스 빅토리호는 마지막까지 남아 피난민 만 4천여 명을 거제로 대피시켰고, 피난 길에 5명이 태어나 '기적의 배'로도 불렸습니다.

당시 메러디스호 승선원과 배에서 태어난 갓난 아기가 흰머리가 성성한 노년이 되어 다시 만났습니다.

서로를 알아본 이들은 당시 붙여준 별명을 부르며 얼싸안습니다.

["당신이 첫 번째로 태어났던 '김치'군요!"]

["네, 제가 첫째예요!"]

당시 피난민에 한국 대통령의 부모가 있었다는 것을 안 스미스 씨가 편지를 보낸 것을 계기로 이들에 대한 환영 행사가 열린 겁니다.

추도식에서 헌화하고 68년 전 그 날을 기린 조형물을 둘러보며 남다른 소회를 나타냈습니다.

[벌리 스미스/메러디스 빅토리호 승선원 : "북한 피난민이 이곳으로 대피한 뒤 68년 동안 남한은 많은 것을 이뤘습니다. 한국은 훌륭하고 아름답습니다."]

10만 명을 살린 그 날의 기적, 68년이 지나도 승선원과 피난민의 가슴에 생생하게 남아 이어지고 있습니다.

KBS 뉴스 차주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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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만 명 살린 6.25 흥남 철수 작전…“아직도 생생해요”
    • 입력 2018-04-06 19:29:45
    • 수정2018-04-06 20: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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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흥남 철수 작전은 6·25전쟁 당시 10만 명의 피난민을 대피시킨 기적 같은 일이었는데요.

당시 마지막까지 남아 피난민 만여 명을 태운 승무원과 6.25 참전용사가 한국을 찾아 피난민들과 만났습니다.

차주하 기자의 보도입니다.

[리포트]

6·25전쟁 당시 10만여 명을 극적으로 대피시킨 흥남 철수 작전.

메러디스 빅토리호는 마지막까지 남아 피난민 만 4천여 명을 거제로 대피시켰고, 피난 길에 5명이 태어나 '기적의 배'로도 불렸습니다.

당시 메러디스호 승선원과 배에서 태어난 갓난 아기가 흰머리가 성성한 노년이 되어 다시 만났습니다.

서로를 알아본 이들은 당시 붙여준 별명을 부르며 얼싸안습니다.

["당신이 첫 번째로 태어났던 '김치'군요!"]

["네, 제가 첫째예요!"]

당시 피난민에 한국 대통령의 부모가 있었다는 것을 안 스미스 씨가 편지를 보낸 것을 계기로 이들에 대한 환영 행사가 열린 겁니다.

추도식에서 헌화하고 68년 전 그 날을 기린 조형물을 둘러보며 남다른 소회를 나타냈습니다.

[벌리 스미스/메러디스 빅토리호 승선원 : "북한 피난민이 이곳으로 대피한 뒤 68년 동안 남한은 많은 것을 이뤘습니다. 한국은 훌륭하고 아름답습니다."]

10만 명을 살린 그 날의 기적, 68년이 지나도 승선원과 피난민의 가슴에 생생하게 남아 이어지고 있습니다.

KBS 뉴스 차주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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