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리포트] 참을 수 없는 언어의 가벼움…日관료, 일단 내뱉고 본다?

입력 2018.04.07 (15:02) 수정 2018.04.07 (16:13)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특파원리포트] 참을 수 없는 언어의 가벼움…日관료, 일단 내뱉고 본다?

[특파원리포트] 참을 수 없는 언어의 가벼움…日관료, 일단 내뱉고 본다?

최근 일본 정치인과 각료, 고위 관료들 사이에서 설화가 끊이지 않고 있다. 막소리에 가까운 실언을 내뱉었다가 사과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도쿄 노동국장 "뭣하면, 언론사에 시정권고"

지난 3월 30일 도쿄 노동국 가쓰다 토모아키 국장의 기자회견이 열렸다. 지난해 '과로 자살'사건으로 물의를 빚은 대기업 '노무라 부동산'의 사장에 대해 특별지도를 실시한 것과 관련해, 기자들의 질문이 이어졌다.

이틀 전인 3월 28일 공개된 '특별지도 관련 장관 보고 자료'에서 상당 부분이 검게 칠해져 있었고, '시정권고' 문구도 없었던 점이 논란이 됐다.

가쓰다 국장은 '시정권고를 한 사실 자체는 특별지도 공표 당시에 밝힌 것이냐'는 질문이 거듭되자, 뜬금없이 "뭣하면, 여러분의 장소(회사)에 가서 시정권고를 해도 좋겠지만" 이라고 내뱉었다. 막강한 조사·단속 권한을 지닌 행정기관장이 언론기관을 감정적으로 '협박'한 모양새가 된 셈이다.

도쿄 노동청을 항의 방문하는 야당의원들도쿄 노동청을 항의 방문하는 야당의원들

4월 2일 입헌민주당 등 야당 5당의 의원들이 도교 노동국을 항의 방문했다. 가쓰다 국장은 "매우 부적절한 발언으로 죄송하게 생각한다"고 사죄했다. "위압하는 모양새로 전달된 것은 본의가 아니며, 여러 곳에 시정권고가 이뤄지는 것을 쉽게 설명하려다가 말이 잘못됐다"고 해명했다.

발언은 철회됐고, 후생노동성의 사무차관으로부터 구두로 엄중주의(조치)가 내려졌다.

아베 정부 '일하는 방식 개혁'에도 불똥

지난해 노무라 부동산은 '과로 자살' 문제로 여론의 질타를 받고 있었다. 지난해 12월 26일 도쿄 노동국은 노무라 부동산의 사장에 대해 재량노동제 불법 적용을 문제 삼아 특별지도를 실시했다고 발표했다.

지난해 도쿄 노동국으로부터 특별지도를 받은 노무라 부동산지난해 도쿄 노동국으로부터 특별지도를 받은 노무라 부동산

노무라 측은 기업 중추 부문 격인 경영 기획과 정책 입안 담당자 등에 한정해야 할 '기획업무형 재량노동제'를 영업활동 등 일반직 직원에도 적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의 '재량노동제'는 노동시간 총량을 미리 정한 뒤, 이에 따른 임금만 지급한다. 시간외 수당은 없다. 성과와 노동시간이 연동되는 분야에 도입되면 노동자들의 피해가 불가피하다. 일본 정부와 재계는 재량노동제 확대를 벼르고 있다.

야당인 '희망의당' 야마이 의원은 문제의 발언이 언론에 대한 압력과 다름없으며, 일본 노동행정의 신용은 땅에 떨어졌다고 비난했다. "(재량노동제 관련) 가짜 데이터 문제에 이어, 언론에 대한 압박성 발언까지 나온 상황에서, (아베 정부가 원하는) '일하는 방식 개혁' 법안 심의의 전제가 무너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공산당'의 고이케 서기국장은 "보도기관에 대해 행정권한으로 호통치는 것은 용서하기 어렵고 언어도단이다. 물고기는 머리부터 썩는다고 하는데, (총리가) 모리토모(사학스캔들) 문제에 대해 전혀 책임을 지지 않는 정부 아래에서 독이 전체로 확산돼, 정부 전체가 이상해졌다"고 비난했다.

고이케 서기국장은 특히 아베 정부의 경제 정책을 겨냥해, "이런 발언을 하는 후생노동성에서는 일하는 방식 개혁을 말할 자격이 없다"고 비판 수위를 높였다.

노동 문제를 바라보는 노동 관료의 왜곡된 시선...

4월 3일 가토 후생노동 장관은 기자회견을 통해 "사업소의 감독과 지도의 책임이 있는 노동국장의 발언으로는 심히 부적절했다"며 유감의 뜻을 밝혔다. 또 "권한 행사에 관한 잘못된 발언에 대해 지금까지 사례에 근거해 엄정히 대처하겠다"고 말했다.

일본 후생노동성의 가토 장관일본 후생노동성의 가토 장관

파문은 커졌다. 여야를 막론하고 비난이 잇따랐다. 경질론이 커졌다. 에다노 입헌민주당 대표는 "아베 정권 5년 동안 정치와 행정이 너덜너덜해졌다(누더기가 됐다)"고 비난했다.

가쓰다 노동국장의 과거 부적절한 발언도 재부각됐다. 가쓰다 국장은 지난해 12월 노무라 부동산 사장에 대한 특별지도 사실을 발표하기 3주 전에, 기자회견장에서 "다음번에는 선물이 있다"고 발언했다.

'전국 과로사를 생각하는 가족 모임'측은 "농담 같은 표현을 사용해 생명의 문제를 가볍게 다루고 있는 것 같아 분노를 느낀다"고 밝혔다.

4월 6일 열린 중의원 후생노동위원회에 가쓰다 국장이 출석했다. '언론사 특별지도 발언'에 대해 "국장의 권한을 쓸데없이 행사할 것 같은 발언으로, 부적절했다. 국민에게 노동행정의 공정성에 의심을 품게 해서 깊이 사죄드린다"며 거듭 사과했다.

또, 이른바 '선물 발언'에 대해서도 오해의 소지가 있었다며 사과했다. "그 당시 특정 사안을 염두에 둔 것이 아니"라고 해명했다.

아소 부총리 겸 재무상...막말의 전설?

일본 각료와 고위 관료들 사이에서 막말 또는 부적절한 발언으로 물의를 일으키는 사례가 관행처럼 반복되고 있다. 정권의 2인자 격인 아소 다로 부총리 겸 재무상은 잦은 막소리로 유명하다.

아소 부총리 겸 재무상아소 부총리 겸 재무상

아소 부총리는 3월 29일 참의원 재정금융위원회에서 "모리토모 학원 쪽이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보다 중대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일본의 신문 수준"이라고 맹비난했다. 모리토모 학원 문제는 아베 정권을 궁지로 몰고 있는 '사학 특혜 스캔들'과 '문서 조작 사건'을 아울러 이른다.

일본이 주도하는 TPP에 대해 언론의 관심이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는 불만을 드러낼 수는 있는데, 표현 방식이 너무 저렴했다. 야당은 문서조작 부서의 책임자로서 문제의 심각성을 망각했다며 거급 사퇴를 촉구했다.

아소 부총리는 여느 때처럼 곧바로 사과하는 모양새를 취했다. 3월 30일 참의원 재정금융위원회에서 "오해를 부를만한 발언이 있었다면 사죄한다"고 말했다. 또 사학스캔들 문서조작 사건의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했다는 인상을 줬다면 '정정한다'고 밝혔다.

아소 부총리는 2017년 8월, 나치의 독재자 아돌프 히틀러에 대해 "결과를 남긴 첫 명정치가로 일컬어진다"면서 "사람이 좋은 것만 가능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여러분도 잘 알고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비난이 커지자 사과했다.

또 2017년 1월에는 "통화스와프 체결에 따라 한국에 돈을 빌려줬다가 돌려받지 못할 수도 있다"고 주장해 물의를 빚었다.

말에는 인격이 담기게 마련이다. 막소리가 반복되면 '어쩌다 실수'가 아닐 수 있다. '참을 수 없는 품격의 가벼움'을 보여줄 뿐이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특파원리포트] 참을 수 없는 언어의 가벼움…日관료, 일단 내뱉고 본다?
    • 입력 2018-04-07 15:02:04
    • 수정2018-04-07 16:13:09
    특파원 리포트
최근 일본 정치인과 각료, 고위 관료들 사이에서 설화가 끊이지 않고 있다. 막소리에 가까운 실언을 내뱉었다가 사과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도쿄 노동국장 "뭣하면, 언론사에 시정권고"

지난 3월 30일 도쿄 노동국 가쓰다 토모아키 국장의 기자회견이 열렸다. 지난해 '과로 자살'사건으로 물의를 빚은 대기업 '노무라 부동산'의 사장에 대해 특별지도를 실시한 것과 관련해, 기자들의 질문이 이어졌다.

이틀 전인 3월 28일 공개된 '특별지도 관련 장관 보고 자료'에서 상당 부분이 검게 칠해져 있었고, '시정권고' 문구도 없었던 점이 논란이 됐다.

가쓰다 국장은 '시정권고를 한 사실 자체는 특별지도 공표 당시에 밝힌 것이냐'는 질문이 거듭되자, 뜬금없이 "뭣하면, 여러분의 장소(회사)에 가서 시정권고를 해도 좋겠지만" 이라고 내뱉었다. 막강한 조사·단속 권한을 지닌 행정기관장이 언론기관을 감정적으로 '협박'한 모양새가 된 셈이다.

도쿄 노동청을 항의 방문하는 야당의원들
4월 2일 입헌민주당 등 야당 5당의 의원들이 도교 노동국을 항의 방문했다. 가쓰다 국장은 "매우 부적절한 발언으로 죄송하게 생각한다"고 사죄했다. "위압하는 모양새로 전달된 것은 본의가 아니며, 여러 곳에 시정권고가 이뤄지는 것을 쉽게 설명하려다가 말이 잘못됐다"고 해명했다.

발언은 철회됐고, 후생노동성의 사무차관으로부터 구두로 엄중주의(조치)가 내려졌다.

아베 정부 '일하는 방식 개혁'에도 불똥

지난해 노무라 부동산은 '과로 자살' 문제로 여론의 질타를 받고 있었다. 지난해 12월 26일 도쿄 노동국은 노무라 부동산의 사장에 대해 재량노동제 불법 적용을 문제 삼아 특별지도를 실시했다고 발표했다.

지난해 도쿄 노동국으로부터 특별지도를 받은 노무라 부동산
노무라 측은 기업 중추 부문 격인 경영 기획과 정책 입안 담당자 등에 한정해야 할 '기획업무형 재량노동제'를 영업활동 등 일반직 직원에도 적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의 '재량노동제'는 노동시간 총량을 미리 정한 뒤, 이에 따른 임금만 지급한다. 시간외 수당은 없다. 성과와 노동시간이 연동되는 분야에 도입되면 노동자들의 피해가 불가피하다. 일본 정부와 재계는 재량노동제 확대를 벼르고 있다.

야당인 '희망의당' 야마이 의원은 문제의 발언이 언론에 대한 압력과 다름없으며, 일본 노동행정의 신용은 땅에 떨어졌다고 비난했다. "(재량노동제 관련) 가짜 데이터 문제에 이어, 언론에 대한 압박성 발언까지 나온 상황에서, (아베 정부가 원하는) '일하는 방식 개혁' 법안 심의의 전제가 무너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공산당'의 고이케 서기국장은 "보도기관에 대해 행정권한으로 호통치는 것은 용서하기 어렵고 언어도단이다. 물고기는 머리부터 썩는다고 하는데, (총리가) 모리토모(사학스캔들) 문제에 대해 전혀 책임을 지지 않는 정부 아래에서 독이 전체로 확산돼, 정부 전체가 이상해졌다"고 비난했다.

고이케 서기국장은 특히 아베 정부의 경제 정책을 겨냥해, "이런 발언을 하는 후생노동성에서는 일하는 방식 개혁을 말할 자격이 없다"고 비판 수위를 높였다.

노동 문제를 바라보는 노동 관료의 왜곡된 시선...

4월 3일 가토 후생노동 장관은 기자회견을 통해 "사업소의 감독과 지도의 책임이 있는 노동국장의 발언으로는 심히 부적절했다"며 유감의 뜻을 밝혔다. 또 "권한 행사에 관한 잘못된 발언에 대해 지금까지 사례에 근거해 엄정히 대처하겠다"고 말했다.

일본 후생노동성의 가토 장관
파문은 커졌다. 여야를 막론하고 비난이 잇따랐다. 경질론이 커졌다. 에다노 입헌민주당 대표는 "아베 정권 5년 동안 정치와 행정이 너덜너덜해졌다(누더기가 됐다)"고 비난했다.

가쓰다 노동국장의 과거 부적절한 발언도 재부각됐다. 가쓰다 국장은 지난해 12월 노무라 부동산 사장에 대한 특별지도 사실을 발표하기 3주 전에, 기자회견장에서 "다음번에는 선물이 있다"고 발언했다.

'전국 과로사를 생각하는 가족 모임'측은 "농담 같은 표현을 사용해 생명의 문제를 가볍게 다루고 있는 것 같아 분노를 느낀다"고 밝혔다.

4월 6일 열린 중의원 후생노동위원회에 가쓰다 국장이 출석했다. '언론사 특별지도 발언'에 대해 "국장의 권한을 쓸데없이 행사할 것 같은 발언으로, 부적절했다. 국민에게 노동행정의 공정성에 의심을 품게 해서 깊이 사죄드린다"며 거듭 사과했다.

또, 이른바 '선물 발언'에 대해서도 오해의 소지가 있었다며 사과했다. "그 당시 특정 사안을 염두에 둔 것이 아니"라고 해명했다.

아소 부총리 겸 재무상...막말의 전설?

일본 각료와 고위 관료들 사이에서 막말 또는 부적절한 발언으로 물의를 일으키는 사례가 관행처럼 반복되고 있다. 정권의 2인자 격인 아소 다로 부총리 겸 재무상은 잦은 막소리로 유명하다.

아소 부총리 겸 재무상
아소 부총리는 3월 29일 참의원 재정금융위원회에서 "모리토모 학원 쪽이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보다 중대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일본의 신문 수준"이라고 맹비난했다. 모리토모 학원 문제는 아베 정권을 궁지로 몰고 있는 '사학 특혜 스캔들'과 '문서 조작 사건'을 아울러 이른다.

일본이 주도하는 TPP에 대해 언론의 관심이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는 불만을 드러낼 수는 있는데, 표현 방식이 너무 저렴했다. 야당은 문서조작 부서의 책임자로서 문제의 심각성을 망각했다며 거급 사퇴를 촉구했다.

아소 부총리는 여느 때처럼 곧바로 사과하는 모양새를 취했다. 3월 30일 참의원 재정금융위원회에서 "오해를 부를만한 발언이 있었다면 사죄한다"고 말했다. 또 사학스캔들 문서조작 사건의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했다는 인상을 줬다면 '정정한다'고 밝혔다.

아소 부총리는 2017년 8월, 나치의 독재자 아돌프 히틀러에 대해 "결과를 남긴 첫 명정치가로 일컬어진다"면서 "사람이 좋은 것만 가능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여러분도 잘 알고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비난이 커지자 사과했다.

또 2017년 1월에는 "통화스와프 체결에 따라 한국에 돈을 빌려줬다가 돌려받지 못할 수도 있다"고 주장해 물의를 빚었다.

말에는 인격이 담기게 마련이다. 막소리가 반복되면 '어쩌다 실수'가 아닐 수 있다. '참을 수 없는 품격의 가벼움'을 보여줄 뿐이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