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지는 4·3의 아픔…‘박성내 집단 학살’ 아시나요?
입력 2018.04.09 (07:34)
수정 2018.04.09 (0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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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제주 4·3 당시 '박성내 집단학살'이란 사건이 있었습니다.
지역 주민 100여 명이 희생된 대규모 집단학살 사건인데요.
도시화되거나 관광지라는 이유로 잊혀져가고 있는 4·3의 흔적을 하선아 기자가 따라가봤습니다.
[리포트]
4·3 당시 조천면에 살던 송태휘 할아버지의 형님은 마을 사람들과 함께 토벌대에 끌려간 뒤 희생됐습니다.
당시 형님의 나이는 18살.
'자수하면 살려준다'는 이른바 자수사건의 희생자였습니다.
[송태휘/4·3희생자 유족 : "잘못한 걸 고백하고, 잘못한 것도 없으니까 너 학교 잘 다니고 공부하고 이런 얘기를 해서 사람이니까 살릴 것 아니냐 해서 갔는데 (희생된 거죠)."]
송태휘 할아버지가 형님의 시신을 수습한 곳은 지금의 제주시 아라동 지역인 '박성내'.
조천면 주민 100여 명이 총살당했고 30여 명은 형무소로 끌려가 행방불명됐습니다.
낭떠러지에서 포승줄에 묶인 주민들을 총살한 뒤 시신에 불까지 질렀다는 당시 학살의 참혹함이 증언으로 전해집니다.
지역민들의 관심이 덜한데다, 도시화로 옛 모습이 많이 사라지면서 잊혀지고 있는 4·3유적입니다.
[조정희/제주4·3평화재단 기념사업팀 차장 : "마을 주민들이나 주변 학생들이나 이쪽에서 가까이 있는 4.3의 역사를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는거죠."]
정방폭포도 4·3당시 서귀포지역 최대 학살터지만 4·3유적이라는 안내문조차 없습니다.
[오순명/정방 4·3유족회장 : "(서귀포) 최대 학살터인데 표지판 하나 없다는 것은 창피스러운 일이고, 도정이나 이런 곳에서도 느껴야하지 않겠나..."]
70년 전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기 위해선 끊임없이 기억되길 바란다고 4·3의 흔적들은 말하고 있습니다.
KBS 뉴스 하선아입니다.
제주 4·3 당시 '박성내 집단학살'이란 사건이 있었습니다.
지역 주민 100여 명이 희생된 대규모 집단학살 사건인데요.
도시화되거나 관광지라는 이유로 잊혀져가고 있는 4·3의 흔적을 하선아 기자가 따라가봤습니다.
[리포트]
4·3 당시 조천면에 살던 송태휘 할아버지의 형님은 마을 사람들과 함께 토벌대에 끌려간 뒤 희생됐습니다.
당시 형님의 나이는 18살.
'자수하면 살려준다'는 이른바 자수사건의 희생자였습니다.
[송태휘/4·3희생자 유족 : "잘못한 걸 고백하고, 잘못한 것도 없으니까 너 학교 잘 다니고 공부하고 이런 얘기를 해서 사람이니까 살릴 것 아니냐 해서 갔는데 (희생된 거죠)."]
송태휘 할아버지가 형님의 시신을 수습한 곳은 지금의 제주시 아라동 지역인 '박성내'.
조천면 주민 100여 명이 총살당했고 30여 명은 형무소로 끌려가 행방불명됐습니다.
낭떠러지에서 포승줄에 묶인 주민들을 총살한 뒤 시신에 불까지 질렀다는 당시 학살의 참혹함이 증언으로 전해집니다.
지역민들의 관심이 덜한데다, 도시화로 옛 모습이 많이 사라지면서 잊혀지고 있는 4·3유적입니다.
[조정희/제주4·3평화재단 기념사업팀 차장 : "마을 주민들이나 주변 학생들이나 이쪽에서 가까이 있는 4.3의 역사를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는거죠."]
정방폭포도 4·3당시 서귀포지역 최대 학살터지만 4·3유적이라는 안내문조차 없습니다.
[오순명/정방 4·3유족회장 : "(서귀포) 최대 학살터인데 표지판 하나 없다는 것은 창피스러운 일이고, 도정이나 이런 곳에서도 느껴야하지 않겠나..."]
70년 전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기 위해선 끊임없이 기억되길 바란다고 4·3의 흔적들은 말하고 있습니다.
KBS 뉴스 하선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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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18-04-09 07:37:23
- 수정2018-04-09 07:4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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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4·3 당시 '박성내 집단학살'이란 사건이 있었습니다.
지역 주민 100여 명이 희생된 대규모 집단학살 사건인데요.
도시화되거나 관광지라는 이유로 잊혀져가고 있는 4·3의 흔적을 하선아 기자가 따라가봤습니다.
[리포트]
4·3 당시 조천면에 살던 송태휘 할아버지의 형님은 마을 사람들과 함께 토벌대에 끌려간 뒤 희생됐습니다.
당시 형님의 나이는 18살.
'자수하면 살려준다'는 이른바 자수사건의 희생자였습니다.
[송태휘/4·3희생자 유족 : "잘못한 걸 고백하고, 잘못한 것도 없으니까 너 학교 잘 다니고 공부하고 이런 얘기를 해서 사람이니까 살릴 것 아니냐 해서 갔는데 (희생된 거죠)."]
송태휘 할아버지가 형님의 시신을 수습한 곳은 지금의 제주시 아라동 지역인 '박성내'.
조천면 주민 100여 명이 총살당했고 30여 명은 형무소로 끌려가 행방불명됐습니다.
낭떠러지에서 포승줄에 묶인 주민들을 총살한 뒤 시신에 불까지 질렀다는 당시 학살의 참혹함이 증언으로 전해집니다.
지역민들의 관심이 덜한데다, 도시화로 옛 모습이 많이 사라지면서 잊혀지고 있는 4·3유적입니다.
[조정희/제주4·3평화재단 기념사업팀 차장 : "마을 주민들이나 주변 학생들이나 이쪽에서 가까이 있는 4.3의 역사를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는거죠."]
정방폭포도 4·3당시 서귀포지역 최대 학살터지만 4·3유적이라는 안내문조차 없습니다.
[오순명/정방 4·3유족회장 : "(서귀포) 최대 학살터인데 표지판 하나 없다는 것은 창피스러운 일이고, 도정이나 이런 곳에서도 느껴야하지 않겠나..."]
70년 전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기 위해선 끊임없이 기억되길 바란다고 4·3의 흔적들은 말하고 있습니다.
KBS 뉴스 하선아입니다.
제주 4·3 당시 '박성내 집단학살'이란 사건이 있었습니다.
지역 주민 100여 명이 희생된 대규모 집단학살 사건인데요.
도시화되거나 관광지라는 이유로 잊혀져가고 있는 4·3의 흔적을 하선아 기자가 따라가봤습니다.
[리포트]
4·3 당시 조천면에 살던 송태휘 할아버지의 형님은 마을 사람들과 함께 토벌대에 끌려간 뒤 희생됐습니다.
당시 형님의 나이는 18살.
'자수하면 살려준다'는 이른바 자수사건의 희생자였습니다.
[송태휘/4·3희생자 유족 : "잘못한 걸 고백하고, 잘못한 것도 없으니까 너 학교 잘 다니고 공부하고 이런 얘기를 해서 사람이니까 살릴 것 아니냐 해서 갔는데 (희생된 거죠)."]
송태휘 할아버지가 형님의 시신을 수습한 곳은 지금의 제주시 아라동 지역인 '박성내'.
조천면 주민 100여 명이 총살당했고 30여 명은 형무소로 끌려가 행방불명됐습니다.
낭떠러지에서 포승줄에 묶인 주민들을 총살한 뒤 시신에 불까지 질렀다는 당시 학살의 참혹함이 증언으로 전해집니다.
지역민들의 관심이 덜한데다, 도시화로 옛 모습이 많이 사라지면서 잊혀지고 있는 4·3유적입니다.
[조정희/제주4·3평화재단 기념사업팀 차장 : "마을 주민들이나 주변 학생들이나 이쪽에서 가까이 있는 4.3의 역사를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는거죠."]
정방폭포도 4·3당시 서귀포지역 최대 학살터지만 4·3유적이라는 안내문조차 없습니다.
[오순명/정방 4·3유족회장 : "(서귀포) 최대 학살터인데 표지판 하나 없다는 것은 창피스러운 일이고, 도정이나 이런 곳에서도 느껴야하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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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선아 기자 saha@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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