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재 1등’ 국가 불명예…산재 입증은 노동자 몫?

입력 2018.05.01 (21:31) 수정 2018.05.02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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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세계 11번째 경제 대국 대한민국, 하지만 노동현장은 이에 어울리지 않는 게 현실입니다.

노동계는 일 년 전 오늘 크레인 사고로, 6명이 숨지고, 25명이 다친 삼성중공업 등 8곳을 최악의 산업재해 기업으로 선정했는데요.

지난해 이들 업체서 숨진 노동자만 33명입니다.

그런데 모두 원청이 아닌 하청노동자들입니다.

이를 두고 '위험의 외주화'라는 말까지 생겼습니다.

질병으로 숨지는 노동자도 계속 늘어나 993명으로, 전년보다 23% 증가했습니다.

이런 탓에 우리나라 산재 사망 노동자는 유럽연합 평균의 5배로, OECD 국가 중 단연 1위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습니다.

노동절을 맞아 2018년 대한민국 노동현실을 이승철, 조혜진 기자가 차례로 짚어 봤습니다.

[리포트]

박철희 씨도 이날 팔과 다리를 다쳤습니다.

그러나 더 큰 슬픔은 같은 곳에서 떠나 보낸 동생입니다.

[박철희/삼성중공업 사고 피해자 : "해 줄 수 있는 게 없어서 그냥 참아라 병원만 가면 살 수 있다라는 말만 해 주고 (병원으로) 갔는데..."]

숨진 동생도, 박철희 씨도 삼성중공업 하청 노동자였습니다.

지난해 산업재해로 숨진 노동자 중 41%가 하청 노동자들입니다.

특히 산재 위험이 큰 대형 건설현장과 조선업종은 산재 사망자 중 열에 아홉이 하청 노동자들입니다.

[이상윤/노동건강연대 대표 : "위험하고 더럽고 힘든 일은 대부분 기업에서 외주화해서 흔히 얘기하는 '위험의 외주화'가 IMF이후 이뤄졌기 때문이죠."]

많은 기업들이 작업환경을 개선하는 방법으로 경쟁력을 갖추기 보다, 위험을 비정규직 하청 노동자들에게 돌린 겁니다.

[최명선/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실장 : "하청 노동자 산재 사망은 기업이 조직적인책임을 져야 하는데 지금은 현행법으로는 기업 법인이나 최고 경영자를 처벌할 수 없습니다."]

손쉬운 비용 절감 방안으로 선택한 '위험의 외주화'.

대한민국이 여전히 산재 1등 국가인 이유입니다.

KBS 뉴스 이승철입니다.

▼ 일하다 든 병, 내가 왜 증명?

[리포트]

희귀질환 '다발성경화증'을 앓고 있는 이 모 씨.

손과 발이 굳어가고 오른쪽 눈도 보이지 않습니다.

삼성전자에서 화학물질로 패널을 닦는 일을 한지 1년 반 만에 첫 증상이 나타났습니다.

산재 신청을 했지만 허사였습니다.

[이○○/삼성전자 산재 노동자 : "무조건 아니라고만 하면 계속 피해자들만 늘어날 뿐이잖아요. 일을 하러 간 거지, 아프러 간 건 아니거든요."]

현행법은 산재 인정을 받으려면 노동자가 관련성을 입증해야 합니다.

그런데 삼성전자처럼 영업비밀이라는 이유로 정보 공개를 거부할 경우 사실상 증명이 어렵습니다.

[조지훈/변호사 : "노동자 입장에서 법률상 재판부를 설득할 만한 정도의 자료를 확보해서 제출한다는 게 사실상 불가능한 거죠."]

실제로 지난 4년 동안 산재 신청을 하고도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받지 못한 경우가 전체의 절반이 넘습니다.

매년 5천여 명입니다.

다행히 이 씨는 소송 9년 만에 대법원에서 업무상 재해로 인정받았지만, 대부분의 노동자들은 이 문턱을 넘지 못합니다.

때문에 노동자의 질병이 업무상 관련이 없음을 오히려 사용자가 증명하도록 하는 법안이 국회에 제출돼 있지만 3년 째 상임위 조차 통과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KBS 뉴스 조혜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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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산재 1등’ 국가 불명예…산재 입증은 노동자 몫?
    • 입력 2018-05-01 21:36:26
    • 수정2018-05-02 09:29:23
    뉴스 9
[앵커] 세계 11번째 경제 대국 대한민국, 하지만 노동현장은 이에 어울리지 않는 게 현실입니다. 노동계는 일 년 전 오늘 크레인 사고로, 6명이 숨지고, 25명이 다친 삼성중공업 등 8곳을 최악의 산업재해 기업으로 선정했는데요. 지난해 이들 업체서 숨진 노동자만 33명입니다. 그런데 모두 원청이 아닌 하청노동자들입니다. 이를 두고 '위험의 외주화'라는 말까지 생겼습니다. 질병으로 숨지는 노동자도 계속 늘어나 993명으로, 전년보다 23% 증가했습니다. 이런 탓에 우리나라 산재 사망 노동자는 유럽연합 평균의 5배로, OECD 국가 중 단연 1위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습니다. 노동절을 맞아 2018년 대한민국 노동현실을 이승철, 조혜진 기자가 차례로 짚어 봤습니다. [리포트] 박철희 씨도 이날 팔과 다리를 다쳤습니다. 그러나 더 큰 슬픔은 같은 곳에서 떠나 보낸 동생입니다. [박철희/삼성중공업 사고 피해자 : "해 줄 수 있는 게 없어서 그냥 참아라 병원만 가면 살 수 있다라는 말만 해 주고 (병원으로) 갔는데..."] 숨진 동생도, 박철희 씨도 삼성중공업 하청 노동자였습니다. 지난해 산업재해로 숨진 노동자 중 41%가 하청 노동자들입니다. 특히 산재 위험이 큰 대형 건설현장과 조선업종은 산재 사망자 중 열에 아홉이 하청 노동자들입니다. [이상윤/노동건강연대 대표 : "위험하고 더럽고 힘든 일은 대부분 기업에서 외주화해서 흔히 얘기하는 '위험의 외주화'가 IMF이후 이뤄졌기 때문이죠."] 많은 기업들이 작업환경을 개선하는 방법으로 경쟁력을 갖추기 보다, 위험을 비정규직 하청 노동자들에게 돌린 겁니다. [최명선/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실장 : "하청 노동자 산재 사망은 기업이 조직적인책임을 져야 하는데 지금은 현행법으로는 기업 법인이나 최고 경영자를 처벌할 수 없습니다."] 손쉬운 비용 절감 방안으로 선택한 '위험의 외주화'. 대한민국이 여전히 산재 1등 국가인 이유입니다. KBS 뉴스 이승철입니다. ▼ 일하다 든 병, 내가 왜 증명? [리포트] 희귀질환 '다발성경화증'을 앓고 있는 이 모 씨. 손과 발이 굳어가고 오른쪽 눈도 보이지 않습니다. 삼성전자에서 화학물질로 패널을 닦는 일을 한지 1년 반 만에 첫 증상이 나타났습니다. 산재 신청을 했지만 허사였습니다. [이○○/삼성전자 산재 노동자 : "무조건 아니라고만 하면 계속 피해자들만 늘어날 뿐이잖아요. 일을 하러 간 거지, 아프러 간 건 아니거든요."] 현행법은 산재 인정을 받으려면 노동자가 관련성을 입증해야 합니다. 그런데 삼성전자처럼 영업비밀이라는 이유로 정보 공개를 거부할 경우 사실상 증명이 어렵습니다. [조지훈/변호사 : "노동자 입장에서 법률상 재판부를 설득할 만한 정도의 자료를 확보해서 제출한다는 게 사실상 불가능한 거죠."] 실제로 지난 4년 동안 산재 신청을 하고도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받지 못한 경우가 전체의 절반이 넘습니다. 매년 5천여 명입니다. 다행히 이 씨는 소송 9년 만에 대법원에서 업무상 재해로 인정받았지만, 대부분의 노동자들은 이 문턱을 넘지 못합니다. 때문에 노동자의 질병이 업무상 관련이 없음을 오히려 사용자가 증명하도록 하는 법안이 국회에 제출돼 있지만 3년 째 상임위 조차 통과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KBS 뉴스 조혜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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