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본문 영역

상세페이지

[취재후] ‘갑질’ 폭로 그후…3인의 피해자들
입력 2018.05.02 (07:06) 수정 2018.05.02 (10:39) 취재후
‘갑질’ 폭로 그 후…사과받지 못한 피해자들

'음료 투척' 사건으로 조현민 대한항공 전 전무가 어제(1일) 경찰서에 출석했습니다. 고급 세단을 타고, 변호인들과 함께 나타나 포토라인 앞에 섰습니다. '땅콩 회항' 사건의 피해자 박창진 대한항공 전 사무장도 그 시간 강서경찰서 앞에 섰습니다. '사과는 당사자에게, 범죄자는 감옥으로!'라는 손팻말을 들었습니다. 스트레스 때문에 3년 동안 머리에 자란 종양을 지난달, 수술했습니다. '땅콩 회항' 사건은 4년이 지났지만 그는 여전히 투쟁 중입니다.


2014년 12월. '땅콩 회항' 당사자인 대한항공 조현아 전 부사장이 국토교통부 조사에 출석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합니다.

"진심으로 사과드리겠습니다. 직접 만나서"

하지만 박 전 사무장은 진정한 사과를 받지 못했다고 말합니다. 예기치 않게 사건에 휘말린 뒤로, 처절하게 '잃는 삶'을 겪었다고 말합니다. 산업재해를 인정받아 1년 반 동안 휴직하고 복직했지만, 인사·업무상 불이익을 당했다며 소송을 제기한 상태입니다. 노골적이진 않지만 주변의 불편한 눈초리, '그만하고 퇴사하는 게 낫지 않냐'라는 조언도 수없이 들었습니다.

그는 제일 감당할 수 없는 말이 '잊으라'는 주변의 조언이라고 털어놨습니다. 엄연히 존재하는 사건이고, 상처를 받아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피해자의 입장에서 무관심하고 무책임한 위로로 느껴진다는 겁니다.


2016년 4월, 서대문구의 건물 경비원으로 일하던 황 모 씨에게 머리가 희끗한 남성이 삿대질을 합니다. 외부인 출입을 막기 위해 밤 10시, 정문을 걸어 잠그던 황 씨는 식당 안으로 끌려 들어가 폭행을 당했습니다.

"내가 아직 안 나갔는데 감히 문을 닫아?" 때린 남성은 M P그룹 미스터피자 회장 정우현 회장이었습니다. 미스터 피자의 직원도 아니었던 황 씨는 건물 안에서 술을 마셨던 정 회장을 몰라봤다는 이유로 황당하게 사건에 휘말렸습니다.

정우현 사장은 공개 사과를 하며 "거듭거듭 제 잘못으로 인하여 상처받으신 모든 분께 사과를 드립니다"고 말했습니다. 고개를 3번이나 숙이며 기자회견을 마무리했습니다. 사건 X일 뒤, 황 씨가 속했던 경비업체는 재계약을 며칠 남겨두고, 황 씨를 불렀습니다. "나이가 많아서 이달까지만 하고, 관두시겠냐"고 조심스레 이야기를 꺼냈다고 합니다.


정규직 직원이 아닌 용역계약을 맺고 업체와 일하던 그는 '누가 잘못했든 잘했든 문제를 일으킨 사람은 관둬야 하나' 생각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일을 그만뒀습니다. 2년이 지났지만, 황 씨는 여전히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불미스러운 사건에 휘말렸던 그를 선뜻 채용하겠다는 업체도 없었고,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도 쉽지 않았다고 합니다.

"시간이 좀 흐르고, 다시 일하다 보면 잊을거라고 생각이 들어요. 하지만 영원히 잊진 못하죠. 어떻게 잊습니까. 그 일을..." (황 모 씨, 피해 경비원)

“진심어린 ‘갑’의 사과”…일상을 되찾아가는 수행 기사

"XX 같은 XX. 너는 생긴 것부터가 뚱해 가지고. 자식아. 살쪄 가지고 미쳐 가지고 다니면서." (종근당 이장한 회장이 수행기사에게 건넨 폭언中)

지난해 7월, 제약회사 종근당 이장한 회장의 수행기사들을 향한 폭언이 공개됩니다. 이 회장은 기사들에게 교통 법규를 어기는 난폭 운전을 수차례 지시한 혐의까지 더해 경찰 조사를 받았습니다.


종근당의 해결 방식은 다른 기업들과는 조금 달랐습니다. 이 회장의 폭언 피해를 본 수행기사 3명은 현재 종근당의 정규직 기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이 회장이 공개적인 사과를 한 건 7월 14일, 열흘 뒤, 이 회장은 피해 수행 기사 가운데 한 명인 A씨와 단 둘이 식사를 합니다. 그 자리에서 다시 사과를 건넵니다.

A씨는 비로소 그 자리에서 진심으로 사과를 받았다고 말합니다. 열흘 전, 공개적인 사과를 지켜볼 때, 일방적인 사과문 발표가 와 닿지 않았지만 식사 자리에서 이 회장과 대화를 나누고, 다시 회사에서 일하고 싶다, 일해도 되겠다는 맘이 생겼다고 합니다. 회유나 가식적인 사과를 위한 자리라 생각하고, 여러 차례 거절해오다 회장을 만난 자리였습니다.

당시, A씨는 한 달여 간 10kg 정도 살이 빠졌습니다. 언론에 피해 사실을 알리기 전, 일도 그만뒀습니다. 피해 수행기사 동료 6명 가운데 3명도 재취업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습니다. 7월 말, 종근당은 3명을 모두 회사 직원으로 채용하고, 다음 달, 정규직원으로 전환시켰습니다. A 씨는 회장이나 임원들의 수행 기사가 아닌 출장근무자나 외국바이어들을 이동을 지원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이전 비정규직 파견자로 일했던 그는 "고용 불안에 대한 생각 없이 일하고 있다는 게 가장 큰 변화"라고 말했습니다.

피해 사실을 가족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A씨가 폭로를 결심한건 동료들 때문이었습니다. 퇴사하기로 결심한 그는 "나 역시도 이렇게 그만두고 나면, 내 후임이나 동료가 그 자리에 갔을 때 또 똑같은 상황이 벌어지겠구나 생각했다"고 털어놨습니다."

‘피해 폭로’를 결심한 乙들의 조언

언제 끝날지 모르는 투쟁을 하는 박창진 전 사무장, 그리고 다시 일하며 일상을 회복하고 있는 종근당 기사 A 씨는 수많은 '을'들에게 '용기'를 권합니다.

"침묵하고 있으면 세상은 절대 변하는 게 없겠구나. 흐지부지 끝나게 된다면 그런 문제는 계속 일어날 것으로 생각합니다. 조용히 퇴사하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지냈다면 변화는 없겠죠. 변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큰 용기가 필요합니다." (종근당 회장 전 수행기사 A씨 )

박 전 사무장은 "피해자들도 당당하게 살아남고 있다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말합니다. 옷도 더 말쑥하게 차려입고, 스스로 건강도 돌보는데도 신경 씁니다. "당신이 용기를 가져야 한다, 당신의 잘못이 없다는걸 보여주고 싶고, 그런 힘이 돼주고 싶어요." 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KBS와의 인터뷰에 응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당신의 삶만 삶이 아니다. 타인의 삶도 삶이다. 그 가치를 좀 알아라.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어요. 가해자는 지금 자기에게 어떤 형벌이 주어질까 이것만 염려하는 상황이고, 미디어조차도 피해자의 입장에 대해서는 도외시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피해자도 살아남아야 하는 존재이고 한 인간으로 존엄성이 있다 그걸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갑은 을보다 대개 더 많은 것을 누려온 이들입니다. 부당한 일에 대한 폭로가 나오면 가해자는 죗값과 평판을 걱정하고, 상대적으로 경제적으로 넉넉지 않은 피해자는 생존권까지 고민합니다.

피해자 세 분 모두 "세상이 을들의 시각에는 관심이 덜한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사건이 잠잠해지면 가해자는 물론 피해자들의 고통까지 쉽게 잊힌다는 겁니다. 이번 리포트를 기획하며 '사건 후, 피해자들이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겨우 떠올려본 기자에게도 따끔한 말이었습니다.
  • [취재후] ‘갑질’ 폭로 그후…3인의 피해자들
    • 입력 2018-05-02 07:06:20
    • 수정2018-05-02 10:39:25
    취재후
‘갑질’ 폭로 그 후…사과받지 못한 피해자들

'음료 투척' 사건으로 조현민 대한항공 전 전무가 어제(1일) 경찰서에 출석했습니다. 고급 세단을 타고, 변호인들과 함께 나타나 포토라인 앞에 섰습니다. '땅콩 회항' 사건의 피해자 박창진 대한항공 전 사무장도 그 시간 강서경찰서 앞에 섰습니다. '사과는 당사자에게, 범죄자는 감옥으로!'라는 손팻말을 들었습니다. 스트레스 때문에 3년 동안 머리에 자란 종양을 지난달, 수술했습니다. '땅콩 회항' 사건은 4년이 지났지만 그는 여전히 투쟁 중입니다.


2014년 12월. '땅콩 회항' 당사자인 대한항공 조현아 전 부사장이 국토교통부 조사에 출석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합니다.

"진심으로 사과드리겠습니다. 직접 만나서"

하지만 박 전 사무장은 진정한 사과를 받지 못했다고 말합니다. 예기치 않게 사건에 휘말린 뒤로, 처절하게 '잃는 삶'을 겪었다고 말합니다. 산업재해를 인정받아 1년 반 동안 휴직하고 복직했지만, 인사·업무상 불이익을 당했다며 소송을 제기한 상태입니다. 노골적이진 않지만 주변의 불편한 눈초리, '그만하고 퇴사하는 게 낫지 않냐'라는 조언도 수없이 들었습니다.

그는 제일 감당할 수 없는 말이 '잊으라'는 주변의 조언이라고 털어놨습니다. 엄연히 존재하는 사건이고, 상처를 받아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피해자의 입장에서 무관심하고 무책임한 위로로 느껴진다는 겁니다.


2016년 4월, 서대문구의 건물 경비원으로 일하던 황 모 씨에게 머리가 희끗한 남성이 삿대질을 합니다. 외부인 출입을 막기 위해 밤 10시, 정문을 걸어 잠그던 황 씨는 식당 안으로 끌려 들어가 폭행을 당했습니다.

"내가 아직 안 나갔는데 감히 문을 닫아?" 때린 남성은 M P그룹 미스터피자 회장 정우현 회장이었습니다. 미스터 피자의 직원도 아니었던 황 씨는 건물 안에서 술을 마셨던 정 회장을 몰라봤다는 이유로 황당하게 사건에 휘말렸습니다.

정우현 사장은 공개 사과를 하며 "거듭거듭 제 잘못으로 인하여 상처받으신 모든 분께 사과를 드립니다"고 말했습니다. 고개를 3번이나 숙이며 기자회견을 마무리했습니다. 사건 X일 뒤, 황 씨가 속했던 경비업체는 재계약을 며칠 남겨두고, 황 씨를 불렀습니다. "나이가 많아서 이달까지만 하고, 관두시겠냐"고 조심스레 이야기를 꺼냈다고 합니다.


정규직 직원이 아닌 용역계약을 맺고 업체와 일하던 그는 '누가 잘못했든 잘했든 문제를 일으킨 사람은 관둬야 하나' 생각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일을 그만뒀습니다. 2년이 지났지만, 황 씨는 여전히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불미스러운 사건에 휘말렸던 그를 선뜻 채용하겠다는 업체도 없었고,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도 쉽지 않았다고 합니다.

"시간이 좀 흐르고, 다시 일하다 보면 잊을거라고 생각이 들어요. 하지만 영원히 잊진 못하죠. 어떻게 잊습니까. 그 일을..." (황 모 씨, 피해 경비원)

“진심어린 ‘갑’의 사과”…일상을 되찾아가는 수행 기사

"XX 같은 XX. 너는 생긴 것부터가 뚱해 가지고. 자식아. 살쪄 가지고 미쳐 가지고 다니면서." (종근당 이장한 회장이 수행기사에게 건넨 폭언中)

지난해 7월, 제약회사 종근당 이장한 회장의 수행기사들을 향한 폭언이 공개됩니다. 이 회장은 기사들에게 교통 법규를 어기는 난폭 운전을 수차례 지시한 혐의까지 더해 경찰 조사를 받았습니다.


종근당의 해결 방식은 다른 기업들과는 조금 달랐습니다. 이 회장의 폭언 피해를 본 수행기사 3명은 현재 종근당의 정규직 기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이 회장이 공개적인 사과를 한 건 7월 14일, 열흘 뒤, 이 회장은 피해 수행 기사 가운데 한 명인 A씨와 단 둘이 식사를 합니다. 그 자리에서 다시 사과를 건넵니다.

A씨는 비로소 그 자리에서 진심으로 사과를 받았다고 말합니다. 열흘 전, 공개적인 사과를 지켜볼 때, 일방적인 사과문 발표가 와 닿지 않았지만 식사 자리에서 이 회장과 대화를 나누고, 다시 회사에서 일하고 싶다, 일해도 되겠다는 맘이 생겼다고 합니다. 회유나 가식적인 사과를 위한 자리라 생각하고, 여러 차례 거절해오다 회장을 만난 자리였습니다.

당시, A씨는 한 달여 간 10kg 정도 살이 빠졌습니다. 언론에 피해 사실을 알리기 전, 일도 그만뒀습니다. 피해 수행기사 동료 6명 가운데 3명도 재취업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습니다. 7월 말, 종근당은 3명을 모두 회사 직원으로 채용하고, 다음 달, 정규직원으로 전환시켰습니다. A 씨는 회장이나 임원들의 수행 기사가 아닌 출장근무자나 외국바이어들을 이동을 지원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이전 비정규직 파견자로 일했던 그는 "고용 불안에 대한 생각 없이 일하고 있다는 게 가장 큰 변화"라고 말했습니다.

피해 사실을 가족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A씨가 폭로를 결심한건 동료들 때문이었습니다. 퇴사하기로 결심한 그는 "나 역시도 이렇게 그만두고 나면, 내 후임이나 동료가 그 자리에 갔을 때 또 똑같은 상황이 벌어지겠구나 생각했다"고 털어놨습니다."

‘피해 폭로’를 결심한 乙들의 조언

언제 끝날지 모르는 투쟁을 하는 박창진 전 사무장, 그리고 다시 일하며 일상을 회복하고 있는 종근당 기사 A 씨는 수많은 '을'들에게 '용기'를 권합니다.

"침묵하고 있으면 세상은 절대 변하는 게 없겠구나. 흐지부지 끝나게 된다면 그런 문제는 계속 일어날 것으로 생각합니다. 조용히 퇴사하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지냈다면 변화는 없겠죠. 변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큰 용기가 필요합니다." (종근당 회장 전 수행기사 A씨 )

박 전 사무장은 "피해자들도 당당하게 살아남고 있다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말합니다. 옷도 더 말쑥하게 차려입고, 스스로 건강도 돌보는데도 신경 씁니다. "당신이 용기를 가져야 한다, 당신의 잘못이 없다는걸 보여주고 싶고, 그런 힘이 돼주고 싶어요." 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KBS와의 인터뷰에 응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당신의 삶만 삶이 아니다. 타인의 삶도 삶이다. 그 가치를 좀 알아라.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어요. 가해자는 지금 자기에게 어떤 형벌이 주어질까 이것만 염려하는 상황이고, 미디어조차도 피해자의 입장에 대해서는 도외시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피해자도 살아남아야 하는 존재이고 한 인간으로 존엄성이 있다 그걸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갑은 을보다 대개 더 많은 것을 누려온 이들입니다. 부당한 일에 대한 폭로가 나오면 가해자는 죗값과 평판을 걱정하고, 상대적으로 경제적으로 넉넉지 않은 피해자는 생존권까지 고민합니다.

피해자 세 분 모두 "세상이 을들의 시각에는 관심이 덜한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사건이 잠잠해지면 가해자는 물론 피해자들의 고통까지 쉽게 잊힌다는 겁니다. 이번 리포트를 기획하며 '사건 후, 피해자들이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겨우 떠올려본 기자에게도 따끔한 말이었습니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 전화 : 02-781-123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뉴스홈페이지 : https://goo.gl/4bWbkG
kbs가 손수 골랐습니다. 네이버에서도 보세요.
기자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