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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따라잡기] 조각상을 세우는 까닭은…강제징용 노동자상
입력 2018.05.02 (08:31) 수정 2018.05.02 (09:42) 아침뉴스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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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어제 노동절을 맞아 조금 특별한 노동자들을 잊지 말자는 행사가 부산과 창원에서 있었습니다.

바로 이런 조각상들이 거리에 설치된 건데요.

일제 강점기 강제징용을 당했던 노동자들을 형상화한 겁니다.

시민단체들은 잊혀진 과거를 기억하자며 조각상을 만들어 설치에 나섰고,

지자체, 경찰 등은 왜 하필 일본총영사관 앞이냐며 외교적 마찰을 우려해 막고 나서 큰 충돌을 빚기도 했습니다.

평화의 소녀상에 이어 강제징용 노동자상까지.

거리의 조각상은 왜 만들어지고, 확산되고 있는지 뉴스 따라잡기에서 얘기를 들어봤습니다.

[리포트]

시민 단체 회원들과 경찰이 도로를 꽉 메우고 대치하고 있습니다.

언제 충돌할지 모르는 일촉즉발의 상황.

결국 팽팽한 긴장감이 깨지고 격렬한 몸싸움이 벌어집니다.

20여 개 시민단체 회원들이 이렇게 모인 이유는 뭘까.

["비켜라. 비켜라."]

사람들 사이에 보이는 2m가 훌쩍 넘는 이 동상 때문입니다.

갈비뼈가 드러나도록 깡마른 몸에 곡괭이와 촛불을 든 청년의 모습.

일제 강점기 강제 징용을 당한 노동자를 기리는 추모상입니다.

[김병준/강제징용 노동자상 건립특위 위원장 : 한 번도 사과하지 않는 일본의 강제징용 문제에 대해서 해결을 촉구하기 위해서 우리 민심을 모아서 (노동자상을) 설립하고자 합니다."]

전날 밤 지게차에 노동자상을 실어 기습 설치하려다 경찰과 구청 공무원들에게 제지를 당하자, 노동자상을 지키며 밤샘 농성이 시작된 겁니다. 조형물 설치가 도로법에 위반돼 허가를 내줄 수 없다는 것이 관할구청의 입장.

하지만, 경찰까지 나서게 된 건 이런 이윱니다.

[부산시청 관계자/음성변조 : "경찰병력이 배치가 된 이유는 일본 총영사관 인근이거든요 거기가. 일본 총영사관 인근으로 행진해서 (노동자상을) 설치하려 하는 시도 중이거든요. 그러다 보니깐 경찰이 대치 중에 있습니다."]

설치 장소는 일본 총영사관 앞.

이미 한차례 일본군 위안부 피해를 상징하는 소녀상 설치로 진통을 겪은 곳입니다.

[부산시청 관계자/음성변조 : "외교부에서도 공문이 왔거든요. 한일관계를 우려해서 일본 총영사관 앞에는 설치하지 말라는 식으로..."]

경찰은 외교 공관 100m 이내에선 행진을 할 수 없다며 노동자상의 진입을 막았습니다.

6천 5백여 명의 시민이 1억 원을 모아 제작한 노동자상.

현장의 시민들은 자리를 지키며 노동자상이 세워지길 기다렸습니다.

[김효찬/부산시 부산진구 : "여기서 경찰들이 막고 있다는 거 듣고 바로 오게 되었습니다."]

[백종혁/부산시 해운대구 :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도 있듯이 역사를 알고 기억해야지 앞으로 올바른 역사를 만들어 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10대의 나이에 일본으로 강제 징용을 가야했던 아버지를 떠올린 아들의 마음은 착잡합니다.

[리화수/강제징용 노동자 유족 : "(아버지가) 돌아가신지 30년이 되고, 함께 돌아오셨던 어르신들이 다 돌아가셔서 그 아픔을 함께 하기 위해서 강제징용 노동자상 건립에 함께 하고 있습니다."]

일본의 제대로 된 사과 한마디를 기다렸다는 아버지.

[리화수/강제징용 노동자 유족 : "너무나 배가 고파서 일제 노무 주임의 밥을 훔쳐 먹었답니다. 그러고 나서는 들켜서 정말 죽지 않을 만큼 두들겨 맞았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런데 맞을 때도 그렇게 행복했답니다. 몇 달의 배고픔을 (견디다) 처음으로 배부르게 먹었으니까요."]

결국 노동자상은 소녀상과 30여 미터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김병준/강제징용 노동자상 건립특위 위원장 : "시민들이 그리고 노동자들이 자발적으로 나섰던 일입니다.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이것을 막고 방해한 외교부를 비롯한 관계 당국에 각성을 촉구합니다."]

어제 노동자상이 설치된 곳은 또 있습니다.

곡괭이를 든 시름에 잠긴 표정의 탄광노동자와 성 노예로 강제 징용된 10대 소녀.

가족을 잃고 눈물을 흘리는 남자 아이까지.

국내에 세워진 4번째 추모상입니다.

노동자상이 처음 세워진 건 2016년 8월, 일본입니다.

강제노동 현장이었던 쿄토 단바 지역이었습니다.

그 후 서울 용산역과 인천 부평공원, 제주 제주항에 이어 이번에 창원과 부산이 뒤를 이은 겁니다.

장소에 따라 모양도 조금씩 다른데요.

강제징용을 떠나야 했던 노동자들의 집합소였던 서울 용산역.

일본, 사할린, 쿠릴열도 등의 광산과 농장, 토목 공사현장으로 끌려갔던 그 고달픈 삶을 보여주듯 깡마른 청년이 서 있고요.

군수공장이 있던 인천 부평공원엔 부녀상이 있습니다.

강제 노역으로 심하게 마른 아버지와 불안한 눈빛을 한 딸의 모습인데요.

여기엔 실제 모델이 있습니다.

[이원석/강제징용 노동자상 조각가 : "조병창(군수공장) 거기서 실제로 근무했던 여자분, 15세 소녀. 그다음에 또 조병창 내에서 노동쟁의도 일으키고 또 무기를 빼돌려서 독립활동도 하고 이런 활동을 하신 분이 있더라고요. 두 분을 이제 나름대로 캐릭터로 만들어서 부녀지간으로 제가 엮어봤죠."]

위안부로 끌려가는 걸 피하려다 군수공장에 동원된 지영례 할머니와 2009년 고인이 된 이영현 할아버지가 그 주인공입니다.

고통과 고난의 역사를 온몸으로 감내했던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의 모습을 담고 있는 노동자상.

전국 곳곳으로 확산되고 있는 평화의 소녀상과 함께 잊혀져가는 과거를 잊지 않고 기억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는 게 조각상을 만들고, 또 설치하는 사람들의 바람입니다.
  • [뉴스 따라잡기] 조각상을 세우는 까닭은…강제징용 노동자상
    • 입력 2018-05-02 08:38:05
    • 수정2018-05-02 09:42:47
    아침뉴스타임
[기자]

어제 노동절을 맞아 조금 특별한 노동자들을 잊지 말자는 행사가 부산과 창원에서 있었습니다.

바로 이런 조각상들이 거리에 설치된 건데요.

일제 강점기 강제징용을 당했던 노동자들을 형상화한 겁니다.

시민단체들은 잊혀진 과거를 기억하자며 조각상을 만들어 설치에 나섰고,

지자체, 경찰 등은 왜 하필 일본총영사관 앞이냐며 외교적 마찰을 우려해 막고 나서 큰 충돌을 빚기도 했습니다.

평화의 소녀상에 이어 강제징용 노동자상까지.

거리의 조각상은 왜 만들어지고, 확산되고 있는지 뉴스 따라잡기에서 얘기를 들어봤습니다.

[리포트]

시민 단체 회원들과 경찰이 도로를 꽉 메우고 대치하고 있습니다.

언제 충돌할지 모르는 일촉즉발의 상황.

결국 팽팽한 긴장감이 깨지고 격렬한 몸싸움이 벌어집니다.

20여 개 시민단체 회원들이 이렇게 모인 이유는 뭘까.

["비켜라. 비켜라."]

사람들 사이에 보이는 2m가 훌쩍 넘는 이 동상 때문입니다.

갈비뼈가 드러나도록 깡마른 몸에 곡괭이와 촛불을 든 청년의 모습.

일제 강점기 강제 징용을 당한 노동자를 기리는 추모상입니다.

[김병준/강제징용 노동자상 건립특위 위원장 : 한 번도 사과하지 않는 일본의 강제징용 문제에 대해서 해결을 촉구하기 위해서 우리 민심을 모아서 (노동자상을) 설립하고자 합니다."]

전날 밤 지게차에 노동자상을 실어 기습 설치하려다 경찰과 구청 공무원들에게 제지를 당하자, 노동자상을 지키며 밤샘 농성이 시작된 겁니다. 조형물 설치가 도로법에 위반돼 허가를 내줄 수 없다는 것이 관할구청의 입장.

하지만, 경찰까지 나서게 된 건 이런 이윱니다.

[부산시청 관계자/음성변조 : "경찰병력이 배치가 된 이유는 일본 총영사관 인근이거든요 거기가. 일본 총영사관 인근으로 행진해서 (노동자상을) 설치하려 하는 시도 중이거든요. 그러다 보니깐 경찰이 대치 중에 있습니다."]

설치 장소는 일본 총영사관 앞.

이미 한차례 일본군 위안부 피해를 상징하는 소녀상 설치로 진통을 겪은 곳입니다.

[부산시청 관계자/음성변조 : "외교부에서도 공문이 왔거든요. 한일관계를 우려해서 일본 총영사관 앞에는 설치하지 말라는 식으로..."]

경찰은 외교 공관 100m 이내에선 행진을 할 수 없다며 노동자상의 진입을 막았습니다.

6천 5백여 명의 시민이 1억 원을 모아 제작한 노동자상.

현장의 시민들은 자리를 지키며 노동자상이 세워지길 기다렸습니다.

[김효찬/부산시 부산진구 : "여기서 경찰들이 막고 있다는 거 듣고 바로 오게 되었습니다."]

[백종혁/부산시 해운대구 :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도 있듯이 역사를 알고 기억해야지 앞으로 올바른 역사를 만들어 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10대의 나이에 일본으로 강제 징용을 가야했던 아버지를 떠올린 아들의 마음은 착잡합니다.

[리화수/강제징용 노동자 유족 : "(아버지가) 돌아가신지 30년이 되고, 함께 돌아오셨던 어르신들이 다 돌아가셔서 그 아픔을 함께 하기 위해서 강제징용 노동자상 건립에 함께 하고 있습니다."]

일본의 제대로 된 사과 한마디를 기다렸다는 아버지.

[리화수/강제징용 노동자 유족 : "너무나 배가 고파서 일제 노무 주임의 밥을 훔쳐 먹었답니다. 그러고 나서는 들켜서 정말 죽지 않을 만큼 두들겨 맞았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런데 맞을 때도 그렇게 행복했답니다. 몇 달의 배고픔을 (견디다) 처음으로 배부르게 먹었으니까요."]

결국 노동자상은 소녀상과 30여 미터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김병준/강제징용 노동자상 건립특위 위원장 : "시민들이 그리고 노동자들이 자발적으로 나섰던 일입니다.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이것을 막고 방해한 외교부를 비롯한 관계 당국에 각성을 촉구합니다."]

어제 노동자상이 설치된 곳은 또 있습니다.

곡괭이를 든 시름에 잠긴 표정의 탄광노동자와 성 노예로 강제 징용된 10대 소녀.

가족을 잃고 눈물을 흘리는 남자 아이까지.

국내에 세워진 4번째 추모상입니다.

노동자상이 처음 세워진 건 2016년 8월, 일본입니다.

강제노동 현장이었던 쿄토 단바 지역이었습니다.

그 후 서울 용산역과 인천 부평공원, 제주 제주항에 이어 이번에 창원과 부산이 뒤를 이은 겁니다.

장소에 따라 모양도 조금씩 다른데요.

강제징용을 떠나야 했던 노동자들의 집합소였던 서울 용산역.

일본, 사할린, 쿠릴열도 등의 광산과 농장, 토목 공사현장으로 끌려갔던 그 고달픈 삶을 보여주듯 깡마른 청년이 서 있고요.

군수공장이 있던 인천 부평공원엔 부녀상이 있습니다.

강제 노역으로 심하게 마른 아버지와 불안한 눈빛을 한 딸의 모습인데요.

여기엔 실제 모델이 있습니다.

[이원석/강제징용 노동자상 조각가 : "조병창(군수공장) 거기서 실제로 근무했던 여자분, 15세 소녀. 그다음에 또 조병창 내에서 노동쟁의도 일으키고 또 무기를 빼돌려서 독립활동도 하고 이런 활동을 하신 분이 있더라고요. 두 분을 이제 나름대로 캐릭터로 만들어서 부녀지간으로 제가 엮어봤죠."]

위안부로 끌려가는 걸 피하려다 군수공장에 동원된 지영례 할머니와 2009년 고인이 된 이영현 할아버지가 그 주인공입니다.

고통과 고난의 역사를 온몸으로 감내했던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의 모습을 담고 있는 노동자상.

전국 곳곳으로 확산되고 있는 평화의 소녀상과 함께 잊혀져가는 과거를 잊지 않고 기억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는 게 조각상을 만들고, 또 설치하는 사람들의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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