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역 살인 사건’ 2년…커지는 ‘여혐’ 논란

입력 2018.05.17 (21:26) 수정 2018.05.17 (2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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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2년 전 오늘(17일), 서울 강남역 인근 화장실에서 20대 여성이 흉기에 찔려 목숨을 잃었습니다.

범행을 저지른 남성은 여성들로부터 무시를 당했다며 일면식도 없는 사람에게 칼을 휘둘렀고, 사건 이후 여성 혐오 논란이 일었습니다.

2년이 지난 지금, 여성들이 마주한 우리 사회는 어떤 모습일까요?

윤봄이 기자와 김채린 기자가 이어서 보도합니다.

[리포트]

그날 이후 정확히 2년, 강남역 일대에는 계속 비가 내렸습니다.

비옷 차림으로 수백 명이, 이곳을 다시 찾았습니다.

[정대망/서울시 양천구 : "저는 남성으로서 할 수 있는 게 뭘까 생각하면서 그때(2년 전) 집회에도 나갔고요."]

"여성들로 인한 스트레스와 분노를 해소하기 위해 살인했다"

가해자 진술입니다.

조현병 환자의 망상 범죄란 판결이 있었지만, 숨진 건 결국 여성이란 이유입니다.

[이정/경기도 고양시 : "여자라는 이유로 죽거나 희생되지 않는 세상을 물려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강남역 10번 출구엔 쪽지 3만 5천 장이 붙었습니다.

아픔과 다짐은 고스란히 옮겨 뒀지만 아직도 갈 길은 멉니다.

[양현희/경기도 시흥시 : "세상이 굉장히 바뀔 거라고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아직도 세상은 바뀌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요."]

대학생 김지영 씨도 처음엔 그럴거라 생각했습니다.

[김지영(가명)/고려대학교 여학생위원회 : "페미니즘이나 여성 인권에 대해 거의 관심이 없다가 이제 강남역 살인사건을 보고 제가 가지고 있던 그런 두려움들이 많이 언어로 설명할 수 있게 되었어요."]

여학생위원회에서 학교 내 혐오발언을 모아보려 오픈 채팅방을 열었습니다.

하지만 얼마 안 가 방을 닫아야 했습니다.

"한국여자 병균"

"페미들 뚱뚱"

오히려 혐오발언이 쏟아진 겁니다.

[김지영(가명)/고려대학교 여학생위원회 : "페미니스트들 그리고 여성들이 좌절감이나 무력감을 느끼는 것도 변하지 않은 부분이라고 생각을 해요."]

한 아이돌 가수는 '82년생 김지영'을 읽었다는 게 알려져 사진이 찢기고 불태워졌고, 페미니즘 지지 문구를 소셜 미디어에 올렸다 대학 동아리에서 쫓겨나기도 했습니다.

한 여성단체가 이런 사례를 모았더니 1주일 동안 182건이었습니다.

오늘도 집회 참가자들에게 염산 테러를 가하겠다는 협박이 있었습니다.

KBS 윤봄이입니다.

[기자]

강남역 살인사건 희생자를 기리는 3만 5천 장의 쪽지.

그 내용을 보면 여성 혐오 범죄를 비판하는 내용이 전체의 20% 정도로 단순 추모 다음으로 많았습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여성을 상대로 한 혐오, 폭력에 대한 의식이 그만큼 높아진 건데요.

그럼에도 앞서 보신 것처럼 여성 혐오 문제는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걸까요?

우선 페미니즘을 '남성 혐오', '여성 우월주의'와 같은 개념으로 오해하는 것이 문제로 지적됩니다.

또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과거보다는 높아졌다는 인식에서 나오는 반작용이라는 해석도 있습니다.

[이나영/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 "지금 중간에 끼어 있는 20대 남성들 혹은 30대 초, 중반의 남성들은 자기는 아직 사회적으로 특권을 누려보지 못했어요. 근데 여자들은 남자들이 문제라고 해요. 이걸 받아들이기가 어려운 거죠. 사회적 약자한테 자기의 불안정한 감정을 투사하는 방식으로 가는 거죠."]

사실 페미니즘이 비판하는 것은 남성이 아닙니다.

강자가 약자를 지배하고 착취하는, 다양한 권력 관계 속의 '폭력성'을 비판하는 건데요.

그런데도 최근 인터넷에 '남성 혐오'를 표방하는 커뮤니티까지 생겨나면서 성 대결 구도가 부각되는 데 대한 우려도 나옵니다.

다시 2년 전, 강남역으로 돌아가 볼까요?

"남녀의 문제로만 강조되지 않고 다양한 약자가 보호 받는 세상이 되길 바란다"

"모든 이가 편견 없이 평화로운 세상이 되길 바란다"

추모 쪽지들은 변화의 방향을 말하고 있습니다.

여성을 비롯한 모든 소수자에 대한 우리 안의 차별과 폭력을 돌아보자고.

KBS 뉴스 김채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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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남역 살인 사건’ 2년…커지는 ‘여혐’ 논란
    • 입력 2018-05-17 21:31:54
    • 수정2018-05-17 22: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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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2년 전 오늘(17일), 서울 강남역 인근 화장실에서 20대 여성이 흉기에 찔려 목숨을 잃었습니다.

범행을 저지른 남성은 여성들로부터 무시를 당했다며 일면식도 없는 사람에게 칼을 휘둘렀고, 사건 이후 여성 혐오 논란이 일었습니다.

2년이 지난 지금, 여성들이 마주한 우리 사회는 어떤 모습일까요?

윤봄이 기자와 김채린 기자가 이어서 보도합니다.

[리포트]

그날 이후 정확히 2년, 강남역 일대에는 계속 비가 내렸습니다.

비옷 차림으로 수백 명이, 이곳을 다시 찾았습니다.

[정대망/서울시 양천구 : "저는 남성으로서 할 수 있는 게 뭘까 생각하면서 그때(2년 전) 집회에도 나갔고요."]

"여성들로 인한 스트레스와 분노를 해소하기 위해 살인했다"

가해자 진술입니다.

조현병 환자의 망상 범죄란 판결이 있었지만, 숨진 건 결국 여성이란 이유입니다.

[이정/경기도 고양시 : "여자라는 이유로 죽거나 희생되지 않는 세상을 물려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강남역 10번 출구엔 쪽지 3만 5천 장이 붙었습니다.

아픔과 다짐은 고스란히 옮겨 뒀지만 아직도 갈 길은 멉니다.

[양현희/경기도 시흥시 : "세상이 굉장히 바뀔 거라고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아직도 세상은 바뀌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요."]

대학생 김지영 씨도 처음엔 그럴거라 생각했습니다.

[김지영(가명)/고려대학교 여학생위원회 : "페미니즘이나 여성 인권에 대해 거의 관심이 없다가 이제 강남역 살인사건을 보고 제가 가지고 있던 그런 두려움들이 많이 언어로 설명할 수 있게 되었어요."]

여학생위원회에서 학교 내 혐오발언을 모아보려 오픈 채팅방을 열었습니다.

하지만 얼마 안 가 방을 닫아야 했습니다.

"한국여자 병균"

"페미들 뚱뚱"

오히려 혐오발언이 쏟아진 겁니다.

[김지영(가명)/고려대학교 여학생위원회 : "페미니스트들 그리고 여성들이 좌절감이나 무력감을 느끼는 것도 변하지 않은 부분이라고 생각을 해요."]

한 아이돌 가수는 '82년생 김지영'을 읽었다는 게 알려져 사진이 찢기고 불태워졌고, 페미니즘 지지 문구를 소셜 미디어에 올렸다 대학 동아리에서 쫓겨나기도 했습니다.

한 여성단체가 이런 사례를 모았더니 1주일 동안 182건이었습니다.

오늘도 집회 참가자들에게 염산 테러를 가하겠다는 협박이 있었습니다.

KBS 윤봄이입니다.

[기자]

강남역 살인사건 희생자를 기리는 3만 5천 장의 쪽지.

그 내용을 보면 여성 혐오 범죄를 비판하는 내용이 전체의 20% 정도로 단순 추모 다음으로 많았습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여성을 상대로 한 혐오, 폭력에 대한 의식이 그만큼 높아진 건데요.

그럼에도 앞서 보신 것처럼 여성 혐오 문제는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걸까요?

우선 페미니즘을 '남성 혐오', '여성 우월주의'와 같은 개념으로 오해하는 것이 문제로 지적됩니다.

또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과거보다는 높아졌다는 인식에서 나오는 반작용이라는 해석도 있습니다.

[이나영/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 "지금 중간에 끼어 있는 20대 남성들 혹은 30대 초, 중반의 남성들은 자기는 아직 사회적으로 특권을 누려보지 못했어요. 근데 여자들은 남자들이 문제라고 해요. 이걸 받아들이기가 어려운 거죠. 사회적 약자한테 자기의 불안정한 감정을 투사하는 방식으로 가는 거죠."]

사실 페미니즘이 비판하는 것은 남성이 아닙니다.

강자가 약자를 지배하고 착취하는, 다양한 권력 관계 속의 '폭력성'을 비판하는 건데요.

그런데도 최근 인터넷에 '남성 혐오'를 표방하는 커뮤니티까지 생겨나면서 성 대결 구도가 부각되는 데 대한 우려도 나옵니다.

다시 2년 전, 강남역으로 돌아가 볼까요?

"남녀의 문제로만 강조되지 않고 다양한 약자가 보호 받는 세상이 되길 바란다"

"모든 이가 편견 없이 평화로운 세상이 되길 바란다"

추모 쪽지들은 변화의 방향을 말하고 있습니다.

여성을 비롯한 모든 소수자에 대한 우리 안의 차별과 폭력을 돌아보자고.

KBS 뉴스 김채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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