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하의 분부로” 전국에 세워진 전두환 비석들 어쩌나

입력 2018.05.18 (07:00) 수정 2018.05.18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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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대통령 각하의 분부로

경기도 의정부와 포천을 연결하는 국도 43호선(호국로) 축석고개 입구에 5m 높이의 비석이 서 있습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친필이 새겨진 호국로 기념비입니다.

1987년 12월 10일 세워진 이 비석 아래에는 왜 이 비석을 세웠는지 안내문이 붙어있습니다.


"개국 이래 수많은 외침으로부터 굳건히 나라를 지켜온 선열들의 거룩한 얼이 깃든 이 길은 전두환 대통령 각하의 분부로 건설부와 국방부가 시행한 공사로써 '호국로'라 명명하시고 글씨를 써주셨으므로 이 뜻을 후세에 길이 전한다"

권위주의 시절의 경직성이 확 와 닿습니다.

5·18민주화운동 38주년을 앞두고 포천지역 시민단체가 이 비석의 철거를 요구하고 나섰습니다.

포천진보시민네트워크는 "전두환은 군사반란과 내란의 죄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범죄자이고, 재임 시절 저지른 범죄만 하더라도 헤아릴 수가 없다"고 꼬집었습니다. 상황이 이런데도 호국로에 설치된 공덕비에는 전두환을 찬양하는 내용이 적혀 있다며“민주 시민의 수치"라고 주장합니다.

전국 곳곳에 흩어진 '각하의 말씀'


비단 포천에서만 문제가 되는 건 아닙니다.

6·25전쟁 당시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을 기념하기 위해 지난 1984년 문을 연 인천상륙작전기념관. 자유수호의 탑으로 향하는 계단 머릿돌에서 '대통령 전두환'을 먼저 맞닥뜨립니다.

"어떤 이유로든 전쟁은 막아야하며 이런 비극이 이 땅에 또다시 되풀이 되어서는 결코 안된다. 그길은 국력을 신장시켜서 평화적 통일을 성취하는 길 뿐이다."

인천지역 시민단체 등은 수년 전부터 이 머릿돌을 철거하자고 주장했습니다. 자신의 권력욕으로 수많은 목숨을 앗아간 사람의 문구가 인천상륙작전기념관에 있는 건 국군과 우방국의 희생에 대한 모욕이라는 겁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고향 경남 합천에서는 전 전 대통령의 아호를 딴 '일해공원' 표지석이 해마다 철거 시비에 휘말리고 있습니다.

충주댐 준공기념비에 새겨진 '전두환' 이름은 훼손되기도 했습니다.

전두환 흔적 없애자...청와대 청원까지

민간인들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에도 전 전 대통령의 흔적은 많습니다.


여전히 군부대 등에는 위와 같은 비석이 많다며 철거해야 한다는 주장이 인터넷을 중심으로 나오고 있습니다.

군대를 동원해 12·12 쿠데타를 일으킨 전 전 대통령의 기념비를 남겨둔다면 군사반란을 옹호한다는 인상을 줄 수도 있다는 겁니다.


청와대 국민청원에도 관련 내용이 올라오기도 했습니다.

청원 인원이 적어 조용히 종료되기는 했지만 "민주주의 국가로써 군을 재정립하고 역사를 바로 세우기 위해서라도 군부대와 군 시설 내의 군사반란 주모자들과 참가자들의 기념비를 지금이라도 철거해야 한다"는 주장은 곱씹어 볼 만합니다.

철거냐 보존이냐...엄정한 책임추궁이 먼저

2016년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표였던 문재인 현 대통령이 5.18민주묘지 구묘역 앞 ‘전두환 비석’을 밟고 있다2016년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표였던 문재인 현 대통령이 5.18민주묘지 구묘역 앞 ‘전두환 비석’을 밟고 있다

천재지변이 없는 한 비석은 수백, 수천 년을 견뎌냅니다. 비석에 새겨진 문구도 함께 세월을 견딥니다. 그래서인지 세계의 권력자들은 너나없이 비석을 세워 본인의 공덕을 새겨넣습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최근 회고록을 펴내며 또다시 본인만의 비석을 세우려 했습니다. 5·18을 '폭동'으로 규정하고 자신을 '광주사태 치유 위한 씻김굿의 제물'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법원은 전 전 대통령이 허위사실을 적시해 5·18 관련자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2차례에 걸쳐 회고록의 출판과 배포를 막았습니다.

1980년 그 날의 진실이 아직도 명쾌히 가려지지 않은 상황. 어쩌면 비석에 새겨 남길 것은 그날 최초 발포를 명령한 사람이 누구였는지, 전두환 전 대통령의 책임은 무엇인지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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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하의 분부로” 전국에 세워진 전두환 비석들 어쩌나
    • 입력 2018-05-18 07:00:37
    • 수정2018-05-18 09:20:17
    취재K
전두환 대통령 각하의 분부로

경기도 의정부와 포천을 연결하는 국도 43호선(호국로) 축석고개 입구에 5m 높이의 비석이 서 있습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친필이 새겨진 호국로 기념비입니다.

1987년 12월 10일 세워진 이 비석 아래에는 왜 이 비석을 세웠는지 안내문이 붙어있습니다.


"개국 이래 수많은 외침으로부터 굳건히 나라를 지켜온 선열들의 거룩한 얼이 깃든 이 길은 전두환 대통령 각하의 분부로 건설부와 국방부가 시행한 공사로써 '호국로'라 명명하시고 글씨를 써주셨으므로 이 뜻을 후세에 길이 전한다"

권위주의 시절의 경직성이 확 와 닿습니다.

5·18민주화운동 38주년을 앞두고 포천지역 시민단체가 이 비석의 철거를 요구하고 나섰습니다.

포천진보시민네트워크는 "전두환은 군사반란과 내란의 죄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범죄자이고, 재임 시절 저지른 범죄만 하더라도 헤아릴 수가 없다"고 꼬집었습니다. 상황이 이런데도 호국로에 설치된 공덕비에는 전두환을 찬양하는 내용이 적혀 있다며“민주 시민의 수치"라고 주장합니다.

전국 곳곳에 흩어진 '각하의 말씀'


비단 포천에서만 문제가 되는 건 아닙니다.

6·25전쟁 당시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을 기념하기 위해 지난 1984년 문을 연 인천상륙작전기념관. 자유수호의 탑으로 향하는 계단 머릿돌에서 '대통령 전두환'을 먼저 맞닥뜨립니다.

"어떤 이유로든 전쟁은 막아야하며 이런 비극이 이 땅에 또다시 되풀이 되어서는 결코 안된다. 그길은 국력을 신장시켜서 평화적 통일을 성취하는 길 뿐이다."

인천지역 시민단체 등은 수년 전부터 이 머릿돌을 철거하자고 주장했습니다. 자신의 권력욕으로 수많은 목숨을 앗아간 사람의 문구가 인천상륙작전기념관에 있는 건 국군과 우방국의 희생에 대한 모욕이라는 겁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고향 경남 합천에서는 전 전 대통령의 아호를 딴 '일해공원' 표지석이 해마다 철거 시비에 휘말리고 있습니다.

충주댐 준공기념비에 새겨진 '전두환' 이름은 훼손되기도 했습니다.

전두환 흔적 없애자...청와대 청원까지

민간인들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에도 전 전 대통령의 흔적은 많습니다.


여전히 군부대 등에는 위와 같은 비석이 많다며 철거해야 한다는 주장이 인터넷을 중심으로 나오고 있습니다.

군대를 동원해 12·12 쿠데타를 일으킨 전 전 대통령의 기념비를 남겨둔다면 군사반란을 옹호한다는 인상을 줄 수도 있다는 겁니다.


청와대 국민청원에도 관련 내용이 올라오기도 했습니다.

청원 인원이 적어 조용히 종료되기는 했지만 "민주주의 국가로써 군을 재정립하고 역사를 바로 세우기 위해서라도 군부대와 군 시설 내의 군사반란 주모자들과 참가자들의 기념비를 지금이라도 철거해야 한다"는 주장은 곱씹어 볼 만합니다.

철거냐 보존이냐...엄정한 책임추궁이 먼저

2016년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표였던 문재인 현 대통령이 5.18민주묘지 구묘역 앞 ‘전두환 비석’을 밟고 있다
천재지변이 없는 한 비석은 수백, 수천 년을 견뎌냅니다. 비석에 새겨진 문구도 함께 세월을 견딥니다. 그래서인지 세계의 권력자들은 너나없이 비석을 세워 본인의 공덕을 새겨넣습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최근 회고록을 펴내며 또다시 본인만의 비석을 세우려 했습니다. 5·18을 '폭동'으로 규정하고 자신을 '광주사태 치유 위한 씻김굿의 제물'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법원은 전 전 대통령이 허위사실을 적시해 5·18 관련자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2차례에 걸쳐 회고록의 출판과 배포를 막았습니다.

1980년 그 날의 진실이 아직도 명쾌히 가려지지 않은 상황. 어쩌면 비석에 새겨 남길 것은 그날 최초 발포를 명령한 사람이 누구였는지, 전두환 전 대통령의 책임은 무엇인지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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