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리포트] 성희롱은 죄가 아니라는 日정부…‘보수 기득권’의 민낯

입력 2018.05.19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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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부총리 "성희롱 죄라는 죄는 없다" 

"성희롱 죄라는 죄는 없다" 아소 부총리의 주장이 일본 정부의 공식 입장으로 결정됐다. 남성 중심 보수 기득권 집단이 국민을, 유권자를, 여성을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는가를 이처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말이 또 있을까?

앞서, 후쿠다 전 재무성 사무차관이 여성기자 성희롱 의혹으로 물러난 뒤에도, 아소 부총리 겸 재무상은 '성희롱은 죄가 아니다'라는 취지의 발언을 반복했다.

아소 부총리아소 부총리

지난 4일 "성희롱 죄는 없다. 살인이나 강제추행과는 다르다."라고 주장해, 논란을 일으켰다. 나흘 뒤에는 "성추행은 친고죄이다. 아직 고소했다는 말이 없다. 사실을 말한 것이다"라며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일본 정부 "성희롱 죄라는 죄는 존재하지 않는다"

야당인 입헌민주당의 오사카 세이지 중의원 의원이 정부의 공식 견해를 물었다.

오사카 세이지 의원오사카 세이지 의원

일본 정부는 18일 각의(국무회의)를 열고 "성희롱 죄라는 죄는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내용의 답변서를 결정했다.

NHK가 공개한 답변서 주요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 ▶ 성희롱 죄라는 죄는 존재하지 않는다. ▶ 성희롱은 다른 사람을 불편하게 만드는 성적 언동 등이다. ▶ 성희롱에 해당할 수 있는 행위는 다양한 것이 있다. ▶ 이러한 행위들을 성희롱으로 처벌하자는 취지의 규정을 담은 형벌법령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음과 같은 설명도 이어졌다. ▶ 성희롱이 형법 등의 형벌 법령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범죄가 성립될 수 있다. ▶ 이 경우에 성립하는 범죄는 해당 형벌 법령에 규정된 강제 추행 등의 죄이며, '성희롱 죄'가 아니다.

 '성희롱 처벌 불가론'… 내놓고 제식구 감싸기? 

재무성은 후쿠다 전 차관의 성희롱 논란 피해자에게 사과했지만, 재무성의 수장이기도 한 아소 부총리는 입장 표명을 미루다가 마지 못해 사과했다. '개인으로서 인정할 수 없다'고 주장하다가 '가해자 두둔' 논란이 커지자 '개인으로서도 인정한다'고 마지못해 동의했다.

재무성재무성

이제는 '성희롱이 있었느냐'의 논란에서 '성희롱은 죄가 아닌것 아니냐'의 의제 비틀기가 이뤄졌다. 수사당국이 아니라 정권 차원에서 먼저 성희롱 처벌 불가론을 띄은 셈이다. 형사 처벌 논란에서 의제를 선점함으로써, 공무원직 사퇴 수준에서 이 문제를 봉합하려는 의심이 나오는 이유이다.

일본 정부가 아소 부총리의 '무죄 논리'를 더욱 정교한 언어 조합으로서 뒷받침하고 나서면서, 성희롱 사건의 사법 처리 전망은 더욱 불투명해졌다.

여성 각료의 고군분투, 그러나 끄덕없는 남성 각료들

앞서, 노다 여성활약상은 공무원 간부들에 대한 성희롱 방지 교육을 늘리겠다며 고군분투하고 있다. 후쿠다 전 차관에 대한 온정적 분위기에 제동을 걸기도 했다. 그러나 남성 중심의 보수적 각료 집단에서 한계가 엿보이고 있다.

고위 관료의 성희롱 의혹 사건에 대처하는 정권 2인자와 내각의 태도는 남성 중심 기득권 집단에서 성희롱 문제를 제기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보여준다.

일본의 언론과 여성문제 관련 단체들은 이른바 파워엘리트 집단 혹은 지식인 집단에서조차도 성희롱 가해 행위가 만연하고 있지만, 피해자들이 좀처럼 문제제기 하지 어려운 현실을 비판하고 있다. 문제 제기도 어렵고, 문제 제기를 하더라도 재무성의 첫대응 때처럼 2차 피해로 이어지기 쉽다고 지적하고 있다.

 여성기자에게 '강간하고 싶다'고 말했다는 일본 관료

언론계 여성 노동자들을 대하는 정치인, 각료, 관료 등 기득권 권력 집단의 태도를 상징적을 보여주는 사례가 있다.

도쿄신문(4월24일자)도쿄신문(4월24일자)

지난달(4월) 하순 도쿄신문은 자사의 여성기자들의 언어적·물리적 성희롱 피해 사례들을 공개했다.

예를 들면, ▶ 옷속으로 손을 들이대는 기업 홍보담당자 ▶ 함께 목욕가자고 들이대는 경찰관 ▶ 엉덩이를 만지는 지자체 간부 ▶ 갑자기 입술을 들이댄 경찰 간부, 심지어 ▶ 손목을 잡고 강간하고 싶다고 말하는 지자체 간부 ▶ 정보 제공 대가로 성관계를 요구하는 관료와 정치인 비서 등. 게다가, 성희롱 피해를 선배에게 호소했더니 "이래서 여자는 사용할 수 없어"라며 오히려 꾸지람을 들었다는 사례까지.

성희롱 피해자 96%, "피해 반복" 호소 

최근 미디어 분야 종사자 중 성희롱 피해자의 96%가 여러 차례 피해를 당했으며, 피해자의65%는 제대로 상담을 하지 못했다는 조사결과가 나왔다.

성적 괴롭힘 피해조사 보고서성적 괴롭힘 피해조사 보고서

성폭력 피해자와 보도관계자로 구성된 민간단체 '성폭력과 보도 대화 모임'이 지난달(4월) 24일부터 이번달 7일까지 방송사와 신문사 등 언론매체 종사자 107명을 대상으로 인터넷 여론 조사를 실시했다.

성적 괴롭힘을 받은 적이 있다고 응답한 사람의 비율이 102명, 95%로 나타났다. 피해자는 모두 여성이었다. 특히 이 가운데 절반에 해당하는 51명이 10번 이상 피해를 입었다고 답했다. 또 2회부터 9회가 47명으로 나타났다. 피해자의 96%가 반복해서 피해를 입은 셈이다.

성희롱 가해자 절대다수는 '남성 기득권 집단'

복수 응답으로 성희롱 가해자의 신분을 물었다. 사회적 관계와 지위가 위쪽에 있는 사람이 95%로 가장 많았다. 그 밖에 취재원이나 거래처가 40%, 상사가 24%, 선배가 19% 순이었다.

피해 상황을 복수 응답으로 질문한 결과, '성적인 농담과 놀림'이 61명으로 가장 많았고, '성적인 관계를 억지로 갖게 됐다'는 답변도 8명이나 됐다.

또한, 피해 발생 뒤에 '상담을 했다'는 비율이 35%에 그친 반면, '상담을 생각했다' 55%, '하지 않았다'는 10%로 나타났다. 65%가 상담의 도움을 받지 못한 것이다.

이번 조사는 엄격한 기준을 적용한 무작위 추출이 아니기 때문에 결과 분석에 일정한 한계가 있다. 그러나 미디어 분야 여성노동자들이 어떤 상황에 놓여 있는지는 분명히 알 수 있다.

모임 측은 "조사에 한계가 있지만, 피해자들의 답변 하나하나가 영혼의 외침이라고 느꼈다. 분명히 이런 상태가 존재하게 된 이상 적절한 조치가 필요하다"가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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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파원리포트] 성희롱은 죄가 아니라는 日정부…‘보수 기득권’의 민낯
    • 입력 2018-05-19 17:19:44
    특파원 리포트
 일본 부총리 "성희롱 죄라는 죄는 없다" 

"성희롱 죄라는 죄는 없다" 아소 부총리의 주장이 일본 정부의 공식 입장으로 결정됐다. 남성 중심 보수 기득권 집단이 국민을, 유권자를, 여성을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는가를 이처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말이 또 있을까?

앞서, 후쿠다 전 재무성 사무차관이 여성기자 성희롱 의혹으로 물러난 뒤에도, 아소 부총리 겸 재무상은 '성희롱은 죄가 아니다'라는 취지의 발언을 반복했다.

아소 부총리
지난 4일 "성희롱 죄는 없다. 살인이나 강제추행과는 다르다."라고 주장해, 논란을 일으켰다. 나흘 뒤에는 "성추행은 친고죄이다. 아직 고소했다는 말이 없다. 사실을 말한 것이다"라며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일본 정부 "성희롱 죄라는 죄는 존재하지 않는다"

야당인 입헌민주당의 오사카 세이지 중의원 의원이 정부의 공식 견해를 물었다.

오사카 세이지 의원
일본 정부는 18일 각의(국무회의)를 열고 "성희롱 죄라는 죄는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내용의 답변서를 결정했다.

NHK가 공개한 답변서 주요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 ▶ 성희롱 죄라는 죄는 존재하지 않는다. ▶ 성희롱은 다른 사람을 불편하게 만드는 성적 언동 등이다. ▶ 성희롱에 해당할 수 있는 행위는 다양한 것이 있다. ▶ 이러한 행위들을 성희롱으로 처벌하자는 취지의 규정을 담은 형벌법령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음과 같은 설명도 이어졌다. ▶ 성희롱이 형법 등의 형벌 법령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범죄가 성립될 수 있다. ▶ 이 경우에 성립하는 범죄는 해당 형벌 법령에 규정된 강제 추행 등의 죄이며, '성희롱 죄'가 아니다.

 '성희롱 처벌 불가론'… 내놓고 제식구 감싸기? 

재무성은 후쿠다 전 차관의 성희롱 논란 피해자에게 사과했지만, 재무성의 수장이기도 한 아소 부총리는 입장 표명을 미루다가 마지 못해 사과했다. '개인으로서 인정할 수 없다'고 주장하다가 '가해자 두둔' 논란이 커지자 '개인으로서도 인정한다'고 마지못해 동의했다.

재무성
이제는 '성희롱이 있었느냐'의 논란에서 '성희롱은 죄가 아닌것 아니냐'의 의제 비틀기가 이뤄졌다. 수사당국이 아니라 정권 차원에서 먼저 성희롱 처벌 불가론을 띄은 셈이다. 형사 처벌 논란에서 의제를 선점함으로써, 공무원직 사퇴 수준에서 이 문제를 봉합하려는 의심이 나오는 이유이다.

일본 정부가 아소 부총리의 '무죄 논리'를 더욱 정교한 언어 조합으로서 뒷받침하고 나서면서, 성희롱 사건의 사법 처리 전망은 더욱 불투명해졌다.

여성 각료의 고군분투, 그러나 끄덕없는 남성 각료들

앞서, 노다 여성활약상은 공무원 간부들에 대한 성희롱 방지 교육을 늘리겠다며 고군분투하고 있다. 후쿠다 전 차관에 대한 온정적 분위기에 제동을 걸기도 했다. 그러나 남성 중심의 보수적 각료 집단에서 한계가 엿보이고 있다.

고위 관료의 성희롱 의혹 사건에 대처하는 정권 2인자와 내각의 태도는 남성 중심 기득권 집단에서 성희롱 문제를 제기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보여준다.

일본의 언론과 여성문제 관련 단체들은 이른바 파워엘리트 집단 혹은 지식인 집단에서조차도 성희롱 가해 행위가 만연하고 있지만, 피해자들이 좀처럼 문제제기 하지 어려운 현실을 비판하고 있다. 문제 제기도 어렵고, 문제 제기를 하더라도 재무성의 첫대응 때처럼 2차 피해로 이어지기 쉽다고 지적하고 있다.

 여성기자에게 '강간하고 싶다'고 말했다는 일본 관료

언론계 여성 노동자들을 대하는 정치인, 각료, 관료 등 기득권 권력 집단의 태도를 상징적을 보여주는 사례가 있다.

도쿄신문(4월24일자)
지난달(4월) 하순 도쿄신문은 자사의 여성기자들의 언어적·물리적 성희롱 피해 사례들을 공개했다.

예를 들면, ▶ 옷속으로 손을 들이대는 기업 홍보담당자 ▶ 함께 목욕가자고 들이대는 경찰관 ▶ 엉덩이를 만지는 지자체 간부 ▶ 갑자기 입술을 들이댄 경찰 간부, 심지어 ▶ 손목을 잡고 강간하고 싶다고 말하는 지자체 간부 ▶ 정보 제공 대가로 성관계를 요구하는 관료와 정치인 비서 등. 게다가, 성희롱 피해를 선배에게 호소했더니 "이래서 여자는 사용할 수 없어"라며 오히려 꾸지람을 들었다는 사례까지.

성희롱 피해자 96%, "피해 반복" 호소 

최근 미디어 분야 종사자 중 성희롱 피해자의 96%가 여러 차례 피해를 당했으며, 피해자의65%는 제대로 상담을 하지 못했다는 조사결과가 나왔다.

성적 괴롭힘 피해조사 보고서
성폭력 피해자와 보도관계자로 구성된 민간단체 '성폭력과 보도 대화 모임'이 지난달(4월) 24일부터 이번달 7일까지 방송사와 신문사 등 언론매체 종사자 107명을 대상으로 인터넷 여론 조사를 실시했다.

성적 괴롭힘을 받은 적이 있다고 응답한 사람의 비율이 102명, 95%로 나타났다. 피해자는 모두 여성이었다. 특히 이 가운데 절반에 해당하는 51명이 10번 이상 피해를 입었다고 답했다. 또 2회부터 9회가 47명으로 나타났다. 피해자의 96%가 반복해서 피해를 입은 셈이다.

성희롱 가해자 절대다수는 '남성 기득권 집단'

복수 응답으로 성희롱 가해자의 신분을 물었다. 사회적 관계와 지위가 위쪽에 있는 사람이 95%로 가장 많았다. 그 밖에 취재원이나 거래처가 40%, 상사가 24%, 선배가 19% 순이었다.

피해 상황을 복수 응답으로 질문한 결과, '성적인 농담과 놀림'이 61명으로 가장 많았고, '성적인 관계를 억지로 갖게 됐다'는 답변도 8명이나 됐다.

또한, 피해 발생 뒤에 '상담을 했다'는 비율이 35%에 그친 반면, '상담을 생각했다' 55%, '하지 않았다'는 10%로 나타났다. 65%가 상담의 도움을 받지 못한 것이다.

이번 조사는 엄격한 기준을 적용한 무작위 추출이 아니기 때문에 결과 분석에 일정한 한계가 있다. 그러나 미디어 분야 여성노동자들이 어떤 상황에 놓여 있는지는 분명히 알 수 있다.

모임 측은 "조사에 한계가 있지만, 피해자들의 답변 하나하나가 영혼의 외침이라고 느꼈다. 분명히 이런 상태가 존재하게 된 이상 적절한 조치가 필요하다"가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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