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봄, 섬을 깨우다” 강화 교동도 72시간

입력 2018.05.20 (09:45) 수정 2018.05.20 (09:48)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20일 <다큐 3일>은 북녘과 겨우 2.6km 떨어진 교동도의 72시간을 담은 ‘늦봄, 섬을 깨우다’가 방송된다. 이곳은 민간인통제구역이라 발길을 쉽게 허락하지 않는, 분단의 아픔을 간직한 섬마을이다.

교동도는 강화군 북서쪽에 위치한 섬으로 북한 황해도 연백군과는 불과 2.6km 떨어져 있다.

한국 전쟁 당시 연백군의 주민들이 교동도로 잠시 피란을 왔다가 휴전선이 그어지면서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한 실향민들이 대거 정착했다. 이후 섬이라는 지리적 특성과 민간인 통제구역이라는 점 때문에 외부와 오랜 시간 단절됐고 ‘시간이 멈춘 섬’으로 불린다. 민통선 지역이라 교동도로 들어가는 방법도 쉽지 않다. 검문소를 통과해야 하고 임시 출입증을 받아야 한다.

교동도는 과거에 인구 약 2만 명에 이를 정도로 사람이 많이 살던 섬이었으나 현재는 3천여 명이 거주하고 있다. 2014년 교동대교 개통 이후 외지인의 방문이 늘면서 새롭게 관광지로 떠오르고 있다. 남북 분단의 상징에서 평화의 바람이 불어오고 있는 교동도를 ‘다큐멘터리 3일’이 찾아가 봤다.

■ 실향민들을 품은 섬, 희망을 꿈꾸다!

교동도를 흔히 ‘실향민들의 섬’이라고 부른다. 지금도 실향민 100여 명이 살고 있고 대부분 실향민 2, 3세대가 부모님의 고향을 지척에 두고 생계를 꾸려가고 있다. 대룡시장 터줏대감 교동이발관 지광식 씨는 유일한 실향민 1세대로서 아직도 고향을 그리워하며 시장을 지키고 있다.

지난 4월 27일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남북관계에 평화 분위기가 조성되자 교동도 실향민들은 희망을 품게 됐다. 어릴 적 이북을 떠나왔지만 헤어진 가족들, 살았던 동네까지 다 기억하며 가슴속에 고향을 묻고 살았던 실향민들의 소원은 죽기 전 고향 땅을 밟아 보는 것이 됐다.

교동도의 17개 마을 중 북한과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마을이 ‘인사리’다. 인사리 마을 해안가 쪽에는 철책선이 쳐져 있어 어업 활동을 전혀 할 수가 없다. 그런데 1년에 딱 한 번 ‘숭어’를 잡을 수 있는 날이 있다. 바로 ‘어버이날’ 이다. 인사리에서는 매년 ‘어버이날’을 맞아 마을 잔치를 연다. 어르신들을 대접하는 잔칫상에 ‘숭어’가 올라가기 때문에 마을 청년회에서 군부대의 허락을 맡고 숭어를 잡고 있다. 북한과 인접해 있는 인사리 주민들의 삶은 어떤 모습일까? 오늘 ‘다큐 3일’에서 만날 수 있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늦봄, 섬을 깨우다” 강화 교동도 72시간
    • 입력 2018-05-20 09:45:53
    • 수정2018-05-20 09:48:51
    TV특종
20일 <다큐 3일>은 북녘과 겨우 2.6km 떨어진 교동도의 72시간을 담은 ‘늦봄, 섬을 깨우다’가 방송된다. 이곳은 민간인통제구역이라 발길을 쉽게 허락하지 않는, 분단의 아픔을 간직한 섬마을이다.

교동도는 강화군 북서쪽에 위치한 섬으로 북한 황해도 연백군과는 불과 2.6km 떨어져 있다.

한국 전쟁 당시 연백군의 주민들이 교동도로 잠시 피란을 왔다가 휴전선이 그어지면서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한 실향민들이 대거 정착했다. 이후 섬이라는 지리적 특성과 민간인 통제구역이라는 점 때문에 외부와 오랜 시간 단절됐고 ‘시간이 멈춘 섬’으로 불린다. 민통선 지역이라 교동도로 들어가는 방법도 쉽지 않다. 검문소를 통과해야 하고 임시 출입증을 받아야 한다.

교동도는 과거에 인구 약 2만 명에 이를 정도로 사람이 많이 살던 섬이었으나 현재는 3천여 명이 거주하고 있다. 2014년 교동대교 개통 이후 외지인의 방문이 늘면서 새롭게 관광지로 떠오르고 있다. 남북 분단의 상징에서 평화의 바람이 불어오고 있는 교동도를 ‘다큐멘터리 3일’이 찾아가 봤다.

■ 실향민들을 품은 섬, 희망을 꿈꾸다!

교동도를 흔히 ‘실향민들의 섬’이라고 부른다. 지금도 실향민 100여 명이 살고 있고 대부분 실향민 2, 3세대가 부모님의 고향을 지척에 두고 생계를 꾸려가고 있다. 대룡시장 터줏대감 교동이발관 지광식 씨는 유일한 실향민 1세대로서 아직도 고향을 그리워하며 시장을 지키고 있다.

지난 4월 27일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남북관계에 평화 분위기가 조성되자 교동도 실향민들은 희망을 품게 됐다. 어릴 적 이북을 떠나왔지만 헤어진 가족들, 살았던 동네까지 다 기억하며 가슴속에 고향을 묻고 살았던 실향민들의 소원은 죽기 전 고향 땅을 밟아 보는 것이 됐다.

교동도의 17개 마을 중 북한과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마을이 ‘인사리’다. 인사리 마을 해안가 쪽에는 철책선이 쳐져 있어 어업 활동을 전혀 할 수가 없다. 그런데 1년에 딱 한 번 ‘숭어’를 잡을 수 있는 날이 있다. 바로 ‘어버이날’ 이다. 인사리에서는 매년 ‘어버이날’을 맞아 마을 잔치를 연다. 어르신들을 대접하는 잔칫상에 ‘숭어’가 올라가기 때문에 마을 청년회에서 군부대의 허락을 맡고 숭어를 잡고 있다. 북한과 인접해 있는 인사리 주민들의 삶은 어떤 모습일까? 오늘 ‘다큐 3일’에서 만날 수 있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