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장비 기업에 떠넘긴 이상득…알면서 받아낸 외교부

입력 2018.05.20 (21:00) 수정 2018.05.20 (2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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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원의 공무상 해외 출장은 원칙적으로 국회 자체 예산 혹은 관련 정부 부처의 예산으로 법적 근거에 따라 이뤄져야 합니다. 만일 특정 기관의 돈으로 출장을 다녀올 경우 아무리 취지가 좋다고 한들 부적절한 청탁 논란에 휩싸일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이같은 문제의식에서 KBS는 국회의원들이 피감기관의 돈으로 해외 출장을 남용하는 실태를 계속해서 보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국회의원이 해외 출장비를 공공기관도 아닌 대기업에 떠넘긴 사례가 있다면 어떨까요?

'개인 자격' 출장비 기업에 떠넘긴 이상득

지금으로부터 6년 전인 2012년 3월, 당시 이명박 대통령의 형인 이상득 의원은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볼리비아와 페루를 방문하기로 합니다. 출장 목적은 우리 측 포스코-광물자원공사 컨소시엄과 볼리비아의 국영광업회사인 코미볼(COMIBOL) 간의 리튬 2차전지 소재(양극재) 생산을 위한 합작법인 설립 기본 협약식 참석이었습니다. 당시 출장단에는 포스코 권오준 사장과 김신종 광물자원공사 사장, 외교통상부 관계자들이 동행했습니다.

그런데 출발 이틀 전인 3월 23일, 정부는 이 전 의원에게 특사 자격의 출장을 허가할 수 없다고 통보했습니다. 당시 이 전 의원이 국무총리실의 민간인 사찰 의혹과 관련해 '몸통'으로 지목받은 데다 저축은행 금품수수 혐의로 검찰의 수사를 받고 있던 상황이 영향을 미쳤던 겁니다.

이 전 의원의 특사 자격 취소가 명시된 외교부 공문이 전 의원의 특사 자격 취소가 명시된 외교부 공문

원칙적으로 대통령 특사의 항공료와 숙박비 등 해외 출장 비용은 외교부가 정부 예산으로 부담합니다. 이 전 의원 역시 앞선 4차례의 볼리비아 특사 방문과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정부 예산으로 출장을 다녀올 예정이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특사 자격이 취소되면서 문제가 불거졌습니다. 외교부는 이미 이 전 의원과 보좌관의 항공료와 숙박비를 결제해놓은 상황이었는데, 이 전 의원의 특사 자격이 취소되고 개인 자격으로 해외를 방문하게 되면서 수천만 원의 출장비를 반납해야했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이 전 의원 측은 볼리비아 현지에서부터 포스코와 광물자원공사 등에 출장비 문제를 거론하며 대신 내줄 것을 요구합니다. 한국으로 돌아온 뒤에도 이 전 의원과 외교통상부, 포스코와 광물자원공사 간에 경비 처리 문제는 계속 이어졌습니다.

이 전 의원 측은 출장의 목적이 국내 기업을 지원하기 위해서였으니 혜택을 보는 기업이 출장비를 지원하는 것이 맞다는 주장을 펼쳤습니다.

KBS가 확보한 이 의원 측이 포스코에 보낸 메일을 보면 당시 이상득 의원의 보좌관은 출장 한 달 뒤부터 "다소 시일이 경과했으니 신속히 마무리 해달라"며 포스코에 경비 대납을 독촉합니다.

포스코는 결국 몇 달 간의 내부 논의 끝에 이 의원의 출장비 가운데 항공료 3천4백만 원을 부담하기로 했습니다.

이 전 의원 보좌관이 포스코에 보낸 메일이 전 의원 보좌관이 포스코에 보낸 메일

그렇다면 국내 기업의 해외 활동을 돕기 위해 출장을 갔으니 기업이 출장비를 지불하는 것이 정당하다는 주장은 사실일까요? KBS가 자문변호사에 문의한 결과 이는 정치자금법 위반에 해당한다는 답변을 들었습니다.

정치자금법 제31조 1항이 "외국인, 국내·외의 법인 또는 단체는 정치자금을 기부할 수 없다"라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이 전 의원이 공식적으로 개인 자격으로 볼리비아를 방문한 만큼 이 전 의원이 외교부에 반납해야 할 출장비는 '개인 채무'에 해당합니다. 이에 대해 정치자금법 제2조 3항은 "개인적인 채무의 변제 또는 대여"를 위해 정치자금을 사용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종합하자면 설령 이 전 의원이 합법적으로 받은 정치자금을 출장비 변제에 썼다고 하더라도 법 위반에 해당할텐데, 이번 경우에는 아예 받아서는 안 되는 정치자금을 기업으로부터 받은 셈입니다.

이 전 의원 측 역시 이 같은 점을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볼리비아를 다녀온 뒤 이 전 의원은 국회 공식 예산으로 출장비를 결제해줄 것을 여러 번에 걸쳐 요청했지만 최종적으로 국회의 허가를 받지 못했습니다.

공식적인 정부 예산으로 출장비를 변제받을 길이 막히자, 이 전 의원이 포스코를 압박해 돈을 받아냈을 정황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정치자금법 위반' 정황에도 묵인한 외교부

이 전 의원 측은 외교부에 돈을 직접 반납하는 대신 관련 비용 처리를 포스코로 떠넘겼습니다. 그런데 이 전 의원으로부터 돈을 돌려받아야 할 외교부는 이같은 점을 문제삼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이 전 의원과 함께 포스코를 독촉한 정황이 나옵니다.

당시 출장에 동행했던 외교부 중남미국의 서기관은 "이 전 의원의 출장비 처리가 빨리 진행됐으면 좋겠다"며 포스코 측의 리튬 사업 담당자에게 항공료 지불을 요청합니다. 정치자금법 상 위반소지가 분명히 있었지만, 정작 외교부는 이에 아랑곳없이 출장비 회수에만 급급했던 겁니다.

당시 외교부의 중남미국의 국장은 취재진과의 통화에서 "예산 회수에만 급급했던 것 같다며" 사실상 잘못을 인정했습니다. 그러면서 "외교부가 사정기관도 아닌데 의원과 기업 사이에서 일어난 일에 개입할 수 있겠느냐"며 말꼬리를 흐렸습니다.

그런데 외교부 역시 일련의 과정이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알았을 것으로 보입니다. 외교부는 당초 출장비 계좌로 이 전 의원의 출장비를 선결제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외교부 중남미국은 포스코로부터 부서 자체 계좌로 먼저 출장비를 돌려 받은 뒤 이를 다시 출장비 계좌로 송금했습니다. 이렇게 되면 외교부 출장비 계좌에는 '이상득 의원의 출장비를 선결제한 내역'과 같은 금액이 들어왔다는 기록만 남을 뿐, '포스코'의 이름은 사라지게 됩니다. 포스코로부터 송금받은 내역을 지우기 위한 조치였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대목입니다. 취재진은 이같은 의혹에 대해 외교부에 공식 답변을 요청했지만 외교부는 끝내 답변을 내놓지 않았습니다.

물론 이 전 의원 측은 공적 목적을 위해 출장을 다녀온 것인 만큼 선의에서 포스코 측에 비용 부담을 요청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포스코 역시 업무에 도움을 주는 외부인에게는 내부 규정상 비용을 지원할 수 있는 근거가 있다며 문제가 없다는 입장입니다.

그러나 취재진이 자문변호사에게 문의한 결과 "출장의 목적이 공적이고, 선의로 이뤄졌다는 것을 인정하더라도 기업이 국회의원의 출장 비용을 부담하는 건 전혀 별개의 문제이며 정치자금법 위반에 해당한다"는 명확한 답변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 변호사는 그러면서 "만약 그런 명분을 인정하게 되면 국회의원이 기업의 돈으로 해외를 다녀오는 건 항상 면죄부를 받게 될 것"이라고 꼬집었습니다. 포스코가 외교부에 항공료를 송금한 건 출장을 다녀온지 4달 뒤인 2012년 7월, 아이러니하게도 이 전 의원이 저축은행 비리로 구속된 지 정확히 나흘 뒤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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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출장비 기업에 떠넘긴 이상득…알면서 받아낸 외교부
    • 입력 2018-05-20 21:00:07
    • 수정2018-05-20 22:03:48
    탐사K
-국회의원의 공무상 해외 출장은 원칙적으로 국회 자체 예산 혹은 관련 정부 부처의 예산으로 법적 근거에 따라 이뤄져야 합니다. 만일 특정 기관의 돈으로 출장을 다녀올 경우 아무리 취지가 좋다고 한들 부적절한 청탁 논란에 휩싸일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이같은 문제의식에서 KBS는 국회의원들이 피감기관의 돈으로 해외 출장을 남용하는 실태를 계속해서 보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국회의원이 해외 출장비를 공공기관도 아닌 대기업에 떠넘긴 사례가 있다면 어떨까요?

'개인 자격' 출장비 기업에 떠넘긴 이상득

지금으로부터 6년 전인 2012년 3월, 당시 이명박 대통령의 형인 이상득 의원은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볼리비아와 페루를 방문하기로 합니다. 출장 목적은 우리 측 포스코-광물자원공사 컨소시엄과 볼리비아의 국영광업회사인 코미볼(COMIBOL) 간의 리튬 2차전지 소재(양극재) 생산을 위한 합작법인 설립 기본 협약식 참석이었습니다. 당시 출장단에는 포스코 권오준 사장과 김신종 광물자원공사 사장, 외교통상부 관계자들이 동행했습니다.

그런데 출발 이틀 전인 3월 23일, 정부는 이 전 의원에게 특사 자격의 출장을 허가할 수 없다고 통보했습니다. 당시 이 전 의원이 국무총리실의 민간인 사찰 의혹과 관련해 '몸통'으로 지목받은 데다 저축은행 금품수수 혐의로 검찰의 수사를 받고 있던 상황이 영향을 미쳤던 겁니다.

이 전 의원의 특사 자격 취소가 명시된 외교부 공문
원칙적으로 대통령 특사의 항공료와 숙박비 등 해외 출장 비용은 외교부가 정부 예산으로 부담합니다. 이 전 의원 역시 앞선 4차례의 볼리비아 특사 방문과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정부 예산으로 출장을 다녀올 예정이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특사 자격이 취소되면서 문제가 불거졌습니다. 외교부는 이미 이 전 의원과 보좌관의 항공료와 숙박비를 결제해놓은 상황이었는데, 이 전 의원의 특사 자격이 취소되고 개인 자격으로 해외를 방문하게 되면서 수천만 원의 출장비를 반납해야했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이 전 의원 측은 볼리비아 현지에서부터 포스코와 광물자원공사 등에 출장비 문제를 거론하며 대신 내줄 것을 요구합니다. 한국으로 돌아온 뒤에도 이 전 의원과 외교통상부, 포스코와 광물자원공사 간에 경비 처리 문제는 계속 이어졌습니다.

이 전 의원 측은 출장의 목적이 국내 기업을 지원하기 위해서였으니 혜택을 보는 기업이 출장비를 지원하는 것이 맞다는 주장을 펼쳤습니다.

KBS가 확보한 이 의원 측이 포스코에 보낸 메일을 보면 당시 이상득 의원의 보좌관은 출장 한 달 뒤부터 "다소 시일이 경과했으니 신속히 마무리 해달라"며 포스코에 경비 대납을 독촉합니다.

포스코는 결국 몇 달 간의 내부 논의 끝에 이 의원의 출장비 가운데 항공료 3천4백만 원을 부담하기로 했습니다.

이 전 의원 보좌관이 포스코에 보낸 메일
그렇다면 국내 기업의 해외 활동을 돕기 위해 출장을 갔으니 기업이 출장비를 지불하는 것이 정당하다는 주장은 사실일까요? KBS가 자문변호사에 문의한 결과 이는 정치자금법 위반에 해당한다는 답변을 들었습니다.

정치자금법 제31조 1항이 "외국인, 국내·외의 법인 또는 단체는 정치자금을 기부할 수 없다"라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이 전 의원이 공식적으로 개인 자격으로 볼리비아를 방문한 만큼 이 전 의원이 외교부에 반납해야 할 출장비는 '개인 채무'에 해당합니다. 이에 대해 정치자금법 제2조 3항은 "개인적인 채무의 변제 또는 대여"를 위해 정치자금을 사용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종합하자면 설령 이 전 의원이 합법적으로 받은 정치자금을 출장비 변제에 썼다고 하더라도 법 위반에 해당할텐데, 이번 경우에는 아예 받아서는 안 되는 정치자금을 기업으로부터 받은 셈입니다.

이 전 의원 측 역시 이 같은 점을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볼리비아를 다녀온 뒤 이 전 의원은 국회 공식 예산으로 출장비를 결제해줄 것을 여러 번에 걸쳐 요청했지만 최종적으로 국회의 허가를 받지 못했습니다.

공식적인 정부 예산으로 출장비를 변제받을 길이 막히자, 이 전 의원이 포스코를 압박해 돈을 받아냈을 정황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정치자금법 위반' 정황에도 묵인한 외교부

이 전 의원 측은 외교부에 돈을 직접 반납하는 대신 관련 비용 처리를 포스코로 떠넘겼습니다. 그런데 이 전 의원으로부터 돈을 돌려받아야 할 외교부는 이같은 점을 문제삼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이 전 의원과 함께 포스코를 독촉한 정황이 나옵니다.

당시 출장에 동행했던 외교부 중남미국의 서기관은 "이 전 의원의 출장비 처리가 빨리 진행됐으면 좋겠다"며 포스코 측의 리튬 사업 담당자에게 항공료 지불을 요청합니다. 정치자금법 상 위반소지가 분명히 있었지만, 정작 외교부는 이에 아랑곳없이 출장비 회수에만 급급했던 겁니다.

당시 외교부의 중남미국의 국장은 취재진과의 통화에서 "예산 회수에만 급급했던 것 같다며" 사실상 잘못을 인정했습니다. 그러면서 "외교부가 사정기관도 아닌데 의원과 기업 사이에서 일어난 일에 개입할 수 있겠느냐"며 말꼬리를 흐렸습니다.

그런데 외교부 역시 일련의 과정이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알았을 것으로 보입니다. 외교부는 당초 출장비 계좌로 이 전 의원의 출장비를 선결제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외교부 중남미국은 포스코로부터 부서 자체 계좌로 먼저 출장비를 돌려 받은 뒤 이를 다시 출장비 계좌로 송금했습니다. 이렇게 되면 외교부 출장비 계좌에는 '이상득 의원의 출장비를 선결제한 내역'과 같은 금액이 들어왔다는 기록만 남을 뿐, '포스코'의 이름은 사라지게 됩니다. 포스코로부터 송금받은 내역을 지우기 위한 조치였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대목입니다. 취재진은 이같은 의혹에 대해 외교부에 공식 답변을 요청했지만 외교부는 끝내 답변을 내놓지 않았습니다.

물론 이 전 의원 측은 공적 목적을 위해 출장을 다녀온 것인 만큼 선의에서 포스코 측에 비용 부담을 요청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포스코 역시 업무에 도움을 주는 외부인에게는 내부 규정상 비용을 지원할 수 있는 근거가 있다며 문제가 없다는 입장입니다.

그러나 취재진이 자문변호사에게 문의한 결과 "출장의 목적이 공적이고, 선의로 이뤄졌다는 것을 인정하더라도 기업이 국회의원의 출장 비용을 부담하는 건 전혀 별개의 문제이며 정치자금법 위반에 해당한다"는 명확한 답변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 변호사는 그러면서 "만약 그런 명분을 인정하게 되면 국회의원이 기업의 돈으로 해외를 다녀오는 건 항상 면죄부를 받게 될 것"이라고 꼬집었습니다. 포스코가 외교부에 항공료를 송금한 건 출장을 다녀온지 4달 뒤인 2012년 7월, 아이러니하게도 이 전 의원이 저축은행 비리로 구속된 지 정확히 나흘 뒤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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