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의 집 한 채가 박물관으로…‘호모소금사피엔스’ 展

입력 2018.05.31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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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구자라트 주의 란 오브 커치 지역. 5만㎢, 우리나라 면적 절반인 이 넓은 사막 곳곳에 염전이 있습니다. 우기가 끝나고 건기가 시작되면 소금을 만드는 염부, '아가리야' 들이 자리를 잡고 1년 '농사'를 시작합니다. 땅을 다지고, 물을 끌어들여 대는 일이 처음입니다. 타는 듯한 햇빛이 물을 말리기 시작하면 검은 땅 위로 하얀 소금 카펫이 깔리기 시작합니다.


여기는 뉴기니 섬입니다. 절반은 파푸아뉴기니, 절반은 인도네시아로 국경이 갈린 곳이죠. 하지만 국적과 관계없이 이 섬 사람들이 먹고사는 방법이 있습니다. 소금입니다. 전 세계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회염, 재소금 생산 지역이라는 점에서 특히 의미가 있죠. 섬 중앙에 있는 소금 연못에 나무토막이나 옥수수 줄기를 담가 절인 뒤 말려 태우면 그 재가 소금이 됩니다. 겉으로 보기엔 흙 한 줌이지만, 여기엔 부족의 생명과 전통이 담겼습니다.

세계의 소금 생산, 그 힘들고 오랜 작업에 대해..
전 세계 사람들이 소금을 만드는 과정을 지켜보는 건 흥미로우면서도 고통스럽습니다. 오래 걸리고 힘들고 때때로 위험한 일이라서 그렇습니다. 소금 광산에서 바위 소금을 캐내는 일도, 햇빛에 말려 천일염을 만들어 내는 일도, 소금물을 끓이거나 태워 소금을 얻어내는 일도 엄청난 노동력이 들어가는 건 마찬가집니다. 살펴보다 보면 인간이 왜 소금 생산에 집착할 수밖에 없었는지, 또 이렇게 힘들게 만든 소금이 과연 어떻게 소비됐는지 자연스럽게 의문을 가지게 됩니다.


'호모소금사피엔스' 展…집 한 채가 고스란히 전시장으로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호모소금사피엔스' 전시는 저 의문을 함께 풀어보자고 손짓합니다. 접근법은 신선합니다.

전시장에 들어가면 집 한 채가 눈길을 끕니다. 인도의 소금 노동자, 아가리야의 집을 고스란히 옮겨 놓은 거죠. 아가리야 삼 대가 사는 집에서 건물과 가구, TV는 물론이고 식구들 밥그릇에 아이들 신발까지 모조리 전시장으로 가져왔습니다. 170cm가 채 안 되는 제 머리가 닿을 만큼 낮은 천막집 안에 서 보면 그 어떤 글이나 설명보다 소금 노동자의 삶이 피부로 느껴집니다.


박물관은 소금 지게, 소금 도끼, 소금가마를 전 세계에서 사 왔습니다. 자연에서 소금을 얻는 경우라면 수백 년 전 도구나 지금 쓰는 도구나 큰 차이가 없습니다.


'14세기 소금 광산·세계 염부 인터뷰' 영상으로
멀티미디어의 활용도 눈에 띕니다. 14세기 폴란드 소금 광산을 그린 삽화를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해 보여주고, 소금의 쓰임을 터치스크린 방식으로 전달하기도 합니다. 세계 곳곳에서 따온 염부들의 인터뷰도 볼 수 있습니다. 자막이 완벽하지 않은 건 아쉽지만, 표정과 어투로도 정서는 충분히 전달됩니다.

2013년까지 중국엔 소금 전매제도가 있었다는 점, 우리에겐 '천일염'만 익숙하지만 사실은 이 방식이 한국에 전해진 게 20세기 이후(1907년)이라는 점 등 몰랐던 사실이 전시 곳곳에 숨어 있습니다.

집 한 채 값이 고작.. 소금의 값어치는?
앞서 말씀드렸던 인도의 소금 노동자 집. 한 채를 통째로 옮겨오는 데 얼마나 들었을까요? 정답은 150만 원입니다. 삼대의 삶의 터전을 모두 사들이는 데 그 정도면 충분했습니다.

인류의 역사 전체를 조명하는 이 전시 예산이 6억 원 정도로, 다른 기획 전시보다 훨씬 '싸게' 먹혔다는 점은 소금의 역설적인 값어치를 한 번 더 생각하게 해 줍니다.


전시는 10월 31일까지, 경복궁 안에 있는 국립민속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열립니다. 입장료가 없고, 아침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관람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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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도의 집 한 채가 박물관으로…‘호모소금사피엔스’ 展
    • 입력 2018-05-31 16:59:47
    취재K
인도 구자라트 주의 란 오브 커치 지역. 5만㎢, 우리나라 면적 절반인 이 넓은 사막 곳곳에 염전이 있습니다. 우기가 끝나고 건기가 시작되면 소금을 만드는 염부, '아가리야' 들이 자리를 잡고 1년 '농사'를 시작합니다. 땅을 다지고, 물을 끌어들여 대는 일이 처음입니다. 타는 듯한 햇빛이 물을 말리기 시작하면 검은 땅 위로 하얀 소금 카펫이 깔리기 시작합니다.


여기는 뉴기니 섬입니다. 절반은 파푸아뉴기니, 절반은 인도네시아로 국경이 갈린 곳이죠. 하지만 국적과 관계없이 이 섬 사람들이 먹고사는 방법이 있습니다. 소금입니다. 전 세계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회염, 재소금 생산 지역이라는 점에서 특히 의미가 있죠. 섬 중앙에 있는 소금 연못에 나무토막이나 옥수수 줄기를 담가 절인 뒤 말려 태우면 그 재가 소금이 됩니다. 겉으로 보기엔 흙 한 줌이지만, 여기엔 부족의 생명과 전통이 담겼습니다.

세계의 소금 생산, 그 힘들고 오랜 작업에 대해..
전 세계 사람들이 소금을 만드는 과정을 지켜보는 건 흥미로우면서도 고통스럽습니다. 오래 걸리고 힘들고 때때로 위험한 일이라서 그렇습니다. 소금 광산에서 바위 소금을 캐내는 일도, 햇빛에 말려 천일염을 만들어 내는 일도, 소금물을 끓이거나 태워 소금을 얻어내는 일도 엄청난 노동력이 들어가는 건 마찬가집니다. 살펴보다 보면 인간이 왜 소금 생산에 집착할 수밖에 없었는지, 또 이렇게 힘들게 만든 소금이 과연 어떻게 소비됐는지 자연스럽게 의문을 가지게 됩니다.


'호모소금사피엔스' 展…집 한 채가 고스란히 전시장으로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호모소금사피엔스' 전시는 저 의문을 함께 풀어보자고 손짓합니다. 접근법은 신선합니다.

전시장에 들어가면 집 한 채가 눈길을 끕니다. 인도의 소금 노동자, 아가리야의 집을 고스란히 옮겨 놓은 거죠. 아가리야 삼 대가 사는 집에서 건물과 가구, TV는 물론이고 식구들 밥그릇에 아이들 신발까지 모조리 전시장으로 가져왔습니다. 170cm가 채 안 되는 제 머리가 닿을 만큼 낮은 천막집 안에 서 보면 그 어떤 글이나 설명보다 소금 노동자의 삶이 피부로 느껴집니다.


박물관은 소금 지게, 소금 도끼, 소금가마를 전 세계에서 사 왔습니다. 자연에서 소금을 얻는 경우라면 수백 년 전 도구나 지금 쓰는 도구나 큰 차이가 없습니다.


'14세기 소금 광산·세계 염부 인터뷰' 영상으로
멀티미디어의 활용도 눈에 띕니다. 14세기 폴란드 소금 광산을 그린 삽화를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해 보여주고, 소금의 쓰임을 터치스크린 방식으로 전달하기도 합니다. 세계 곳곳에서 따온 염부들의 인터뷰도 볼 수 있습니다. 자막이 완벽하지 않은 건 아쉽지만, 표정과 어투로도 정서는 충분히 전달됩니다.

2013년까지 중국엔 소금 전매제도가 있었다는 점, 우리에겐 '천일염'만 익숙하지만 사실은 이 방식이 한국에 전해진 게 20세기 이후(1907년)이라는 점 등 몰랐던 사실이 전시 곳곳에 숨어 있습니다.

집 한 채 값이 고작.. 소금의 값어치는?
앞서 말씀드렸던 인도의 소금 노동자 집. 한 채를 통째로 옮겨오는 데 얼마나 들었을까요? 정답은 150만 원입니다. 삼대의 삶의 터전을 모두 사들이는 데 그 정도면 충분했습니다.

인류의 역사 전체를 조명하는 이 전시 예산이 6억 원 정도로, 다른 기획 전시보다 훨씬 '싸게' 먹혔다는 점은 소금의 역설적인 값어치를 한 번 더 생각하게 해 줍니다.


전시는 10월 31일까지, 경복궁 안에 있는 국립민속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열립니다. 입장료가 없고, 아침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관람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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