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책방] ‘간다, 봐라’ 법정 스님이 남긴 자취

입력 2018.06.03 (07:03) 수정 2018.06.03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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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은 가셨다. 평소 하시던 말처럼, 아무 것도 남기지 말라 하셨다. 책마저도 더 이상 내지 말라 하셨다. 하지만 우리는 욕심이 남았다. 스님이 못다 펴낸 글을 찾았다. 그 글을 책으로 엮었다.

법정 스님법정 스님

"스님, 임종게를 남기시지요."

"분별하지 말라.
내가 살아온 것이 그것이다.
간다, 봐라."

답변 아닌 답변이 임종게로 소개됐다. 임종을 앞두고 따로 할 말이 무어 있는가. 죽음의 앞과 뒤가 따로 있겠는가. 그저 행적을 보면 될 뿐! 책은 스님의 삶을 가지런히 드러낸다. 글과 서화, 편지를 고스란히 담았다.


"아무것도 없이 방석 한 장 깔다.
빈방. 보기에 좋다!"

"아침 햇살 받으면서 개울가에 나가 흐르는 물을 한 바가지 떠 마시니
온몸에 산천의 정기가 스며드는 것 같다.
산하대지山河大地여, 고맙고 고맙습니다!
이 오두막이여, 감사하고 감사합니다!
이토록 신선한 아침이여,
지극한 마음으로 귀의하나이다!"

"흙방에서 촛불 켜놓고 앉다.
앞창문 열어 발 드리우니 초록이 방안에까지 넘친다.
이곳이 어디인가.
잔잔한 기쁨이 움트는 땅. 정토淨土."


기쁨이다. 지금 그대로 평안하다. 무엇이 있어서, 가져서 좋은 게 아니라, 없으니 더 좋다. 무소유(無小有)의 삶, 스님의 일기 곳곳에서 드러난다. 온갖 욕심에 물든 우리의 마음을 청량하게 씻어낸다.

"간소하고 간소하게 살라는 것.
자신의 인생을 단순하게 살면 살수록
우주의 법칙은 더욱 명료해진다."

"단순소박하게, 천진난만하게 세상을 바라보니,
이 세상이 아름답게 보였다."

단순함을 추구한 스님의 삶. 하지만 스님의 성정마저 단순한 건 아니다. 생명에 대한 배려는 지극히 섬세하다. 아무리 작은 생명이라도 스님은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심지어 무생물조차 소중한 존재이다. 일체 만물이 소중하게 다가올 때, 그 마음은 어떠할까?

"나는 사과나 무를 먹을 때 그것에 사과를 해요.
내가 누구기에 이 아름다운 생명을 베어 먹는 건가?"

"사랑과 이해와 자비가 넘치는 사람은 채식가가 될 수밖에 없다.
(중략) 그대가 살아 있는 생명체를 죽이는 순간,
그대가 죽인 것이 무엇인가는 중요하지 않다.
언제나 생명이 파괴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사람의 형태이든 동물의 형태이든 아무런 차이가 없다."

"나무를 자를 때는 단지 성장에 방해가 되는 가지만을 자르라.
나무의 모양새를 아름답게 한다는 그대의 생각만으로
가지를 자르지 말라.
나무를 그냥 내버려 두라. 나무에게 자유를 주라."

"세상에는 잡초라는 것이 없다.
모든 풀은 존중되어야 할 목적을 갖고 있고,
쓸모없는 풀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이런 마음이 어떻게 왔을까? 스님의 삶은 수행의 길이다. 끊임없는 명상과 정진은 스님의 마음을 비우고 투명하게 밝혔다. 텅빈 마음에 세상의 아름다움이, 생명의 소중함이 들어왔다. 사랑과 자비가 가득 찼다. 어떻게 수행할 것인가. 스님의 수행 경구를 보자.

"혼자서 조용히 명상하는 습관을 들이라.
명상은 현재를 최대한으로 사는 방법 중의 하나다.
명상은 삶과 떨어진 것이 아니라 가장 알찬 삶이다.
모든 것으로 놓아버려라."

"규칙적으로 명상을 하라.
수행에 가장 좋은 시간은 하늘이 대지와 가장 가깝게 마주하고 있는 시간,
새벽이다."

"세상살이의 모든 욕망을 버리고 명상에 전념하도록 하라.
사람들과 모여앉아 잡담이나 하는 것으로
소중한 시간을 낭비하지 않도록 하라."

"비우는 것, 이것이 명상의 전부다. (쉬라, 내려놓으라)
모든 것을 비우라.
아무 것도 남아 있지 않도록 그대 자신마저 비우라.
모든 것을 비웠을 때 내려오는 완전한 침묵,
이것이 진정한 자유다."

"분노는 욕망의 좌절에서 나온다.
나는 다른 사람한테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다.
그래서 남의 행동 때문에 내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 것이다."

"사랑은 명상의 결실이다.
명상은 많은 보물을 가져다준다.
아마도 사랑이 명상의 덤불에서 피어나는 가장 아름다운 꽃이리라."

스님은 가지 않았다. 글을 통해 우리 마음에 여전히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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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의도 책방] ‘간다, 봐라’ 법정 스님이 남긴 자취
    • 입력 2018-06-03 07:03:10
    • 수정2018-06-03 14:06:33
    여의도책방
스님은 가셨다. 평소 하시던 말처럼, 아무 것도 남기지 말라 하셨다. 책마저도 더 이상 내지 말라 하셨다. 하지만 우리는 욕심이 남았다. 스님이 못다 펴낸 글을 찾았다. 그 글을 책으로 엮었다.

법정 스님
"스님, 임종게를 남기시지요."

"분별하지 말라.
내가 살아온 것이 그것이다.
간다, 봐라."

답변 아닌 답변이 임종게로 소개됐다. 임종을 앞두고 따로 할 말이 무어 있는가. 죽음의 앞과 뒤가 따로 있겠는가. 그저 행적을 보면 될 뿐! 책은 스님의 삶을 가지런히 드러낸다. 글과 서화, 편지를 고스란히 담았다.


"아무것도 없이 방석 한 장 깔다.
빈방. 보기에 좋다!"

"아침 햇살 받으면서 개울가에 나가 흐르는 물을 한 바가지 떠 마시니
온몸에 산천의 정기가 스며드는 것 같다.
산하대지山河大地여, 고맙고 고맙습니다!
이 오두막이여, 감사하고 감사합니다!
이토록 신선한 아침이여,
지극한 마음으로 귀의하나이다!"

"흙방에서 촛불 켜놓고 앉다.
앞창문 열어 발 드리우니 초록이 방안에까지 넘친다.
이곳이 어디인가.
잔잔한 기쁨이 움트는 땅. 정토淨土."


기쁨이다. 지금 그대로 평안하다. 무엇이 있어서, 가져서 좋은 게 아니라, 없으니 더 좋다. 무소유(無小有)의 삶, 스님의 일기 곳곳에서 드러난다. 온갖 욕심에 물든 우리의 마음을 청량하게 씻어낸다.

"간소하고 간소하게 살라는 것.
자신의 인생을 단순하게 살면 살수록
우주의 법칙은 더욱 명료해진다."

"단순소박하게, 천진난만하게 세상을 바라보니,
이 세상이 아름답게 보였다."

단순함을 추구한 스님의 삶. 하지만 스님의 성정마저 단순한 건 아니다. 생명에 대한 배려는 지극히 섬세하다. 아무리 작은 생명이라도 스님은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심지어 무생물조차 소중한 존재이다. 일체 만물이 소중하게 다가올 때, 그 마음은 어떠할까?

"나는 사과나 무를 먹을 때 그것에 사과를 해요.
내가 누구기에 이 아름다운 생명을 베어 먹는 건가?"

"사랑과 이해와 자비가 넘치는 사람은 채식가가 될 수밖에 없다.
(중략) 그대가 살아 있는 생명체를 죽이는 순간,
그대가 죽인 것이 무엇인가는 중요하지 않다.
언제나 생명이 파괴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사람의 형태이든 동물의 형태이든 아무런 차이가 없다."

"나무를 자를 때는 단지 성장에 방해가 되는 가지만을 자르라.
나무의 모양새를 아름답게 한다는 그대의 생각만으로
가지를 자르지 말라.
나무를 그냥 내버려 두라. 나무에게 자유를 주라."

"세상에는 잡초라는 것이 없다.
모든 풀은 존중되어야 할 목적을 갖고 있고,
쓸모없는 풀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이런 마음이 어떻게 왔을까? 스님의 삶은 수행의 길이다. 끊임없는 명상과 정진은 스님의 마음을 비우고 투명하게 밝혔다. 텅빈 마음에 세상의 아름다움이, 생명의 소중함이 들어왔다. 사랑과 자비가 가득 찼다. 어떻게 수행할 것인가. 스님의 수행 경구를 보자.

"혼자서 조용히 명상하는 습관을 들이라.
명상은 현재를 최대한으로 사는 방법 중의 하나다.
명상은 삶과 떨어진 것이 아니라 가장 알찬 삶이다.
모든 것으로 놓아버려라."

"규칙적으로 명상을 하라.
수행에 가장 좋은 시간은 하늘이 대지와 가장 가깝게 마주하고 있는 시간,
새벽이다."

"세상살이의 모든 욕망을 버리고 명상에 전념하도록 하라.
사람들과 모여앉아 잡담이나 하는 것으로
소중한 시간을 낭비하지 않도록 하라."

"비우는 것, 이것이 명상의 전부다. (쉬라, 내려놓으라)
모든 것을 비우라.
아무 것도 남아 있지 않도록 그대 자신마저 비우라.
모든 것을 비웠을 때 내려오는 완전한 침묵,
이것이 진정한 자유다."

"분노는 욕망의 좌절에서 나온다.
나는 다른 사람한테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다.
그래서 남의 행동 때문에 내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 것이다."

"사랑은 명상의 결실이다.
명상은 많은 보물을 가져다준다.
아마도 사랑이 명상의 덤불에서 피어나는 가장 아름다운 꽃이리라."

스님은 가지 않았다. 글을 통해 우리 마음에 여전히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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