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년 만에 다시 전달된 광복군 훈장
입력 2018.06.25 (06:48)
수정 2018.06.25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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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일제 강점기 시절 우리 광복군에는 한국인이 아닌 중국인으로서 우리 독립운동을 헌신적으로 도왔던 한 대원이 있었습니다.
그 공로로 이청천 광복군 총사령관으로부터 포상장도 받았는데, 이후 이를 잃어버려 애를 태워왔었습니다.
우리 정부가 이를 복원해서 다시 전달하는 뜻깊은 행사를 가졌습니다.
김도엽 특파원의 보도입니다.
[리포트]
1940년 창설된 대한광복군, 가장 시급했던 건 병력 모집이었습니다.
하지만, 일제의 감시망 속에서 각지에 흩어져 있는 광복군 지원자를 시안의 총사령부까지 데려오는 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목숨을 건 학도병 인솔책, 바로 이 임무를 맡았던 대원이 올해 100세를 맞은 쑤징허 선생입니다.
쑤 선생은 난징에서 독립운동가 '조일문'을 만나 감화돼, 광복군을 돕게 됩니다.
모집한 학도병을 인솔해 난징에서 시안까지 7개월 동안 걸어서 이동했습니다.
[쑤시링/쑤징허 선생아들 : "그때 부친은 일본군 점령지와 게릴라전 지대를 지나야 했지요. 3번을 왕복하면서도 한 명의 낙오자도 없이 임무를 수행하셨어요."]
그 공로를 인정받아 해방직후인 1946년, 이청천 광복군 사령관으로부터 포상장을 받았습니다.
[쑤징허/100살/독립유공자 : "그 후에는 건국훈장도 주셨어요. 정말 감사하지요. 제 공훈은 보잘 것 없거든요."]
하지만 이후 포상장을 분실해 쑤 선생은 그간 애를 태워왔습니다.
상하이 총영사관은 이를 복원해 이청천 사령관의 외손자의 손을 통해 다시 전달했습니다.
[이준식/이청천 장군 외손자/독립기념관장 : "72년 만에 다시 전달을 하는 겁니다. 외할아버지와 같이 한국의 독립이라는 목표를 향해 활동을 하셨던 중국분을 만나서 너무 기쁩니다."]
72년만에 다시 찾아준 광복군 포상장.
외국인일지라도 독립 유공자의 공적은 잊지 않겠다는 대한민국의 다짐이기도 합니다.
상하이에서 KBS 뉴스 김도엽입니다.
일제 강점기 시절 우리 광복군에는 한국인이 아닌 중국인으로서 우리 독립운동을 헌신적으로 도왔던 한 대원이 있었습니다.
그 공로로 이청천 광복군 총사령관으로부터 포상장도 받았는데, 이후 이를 잃어버려 애를 태워왔었습니다.
우리 정부가 이를 복원해서 다시 전달하는 뜻깊은 행사를 가졌습니다.
김도엽 특파원의 보도입니다.
[리포트]
1940년 창설된 대한광복군, 가장 시급했던 건 병력 모집이었습니다.
하지만, 일제의 감시망 속에서 각지에 흩어져 있는 광복군 지원자를 시안의 총사령부까지 데려오는 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목숨을 건 학도병 인솔책, 바로 이 임무를 맡았던 대원이 올해 100세를 맞은 쑤징허 선생입니다.
쑤 선생은 난징에서 독립운동가 '조일문'을 만나 감화돼, 광복군을 돕게 됩니다.
모집한 학도병을 인솔해 난징에서 시안까지 7개월 동안 걸어서 이동했습니다.
[쑤시링/쑤징허 선생아들 : "그때 부친은 일본군 점령지와 게릴라전 지대를 지나야 했지요. 3번을 왕복하면서도 한 명의 낙오자도 없이 임무를 수행하셨어요."]
그 공로를 인정받아 해방직후인 1946년, 이청천 광복군 사령관으로부터 포상장을 받았습니다.
[쑤징허/100살/독립유공자 : "그 후에는 건국훈장도 주셨어요. 정말 감사하지요. 제 공훈은 보잘 것 없거든요."]
하지만 이후 포상장을 분실해 쑤 선생은 그간 애를 태워왔습니다.
상하이 총영사관은 이를 복원해 이청천 사령관의 외손자의 손을 통해 다시 전달했습니다.
[이준식/이청천 장군 외손자/독립기념관장 : "72년 만에 다시 전달을 하는 겁니다. 외할아버지와 같이 한국의 독립이라는 목표를 향해 활동을 하셨던 중국분을 만나서 너무 기쁩니다."]
72년만에 다시 찾아준 광복군 포상장.
외국인일지라도 독립 유공자의 공적은 잊지 않겠다는 대한민국의 다짐이기도 합니다.
상하이에서 KBS 뉴스 김도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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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18-06-25 06:51:03
- 수정2018-06-25 08:32:37
[앵커]
일제 강점기 시절 우리 광복군에는 한국인이 아닌 중국인으로서 우리 독립운동을 헌신적으로 도왔던 한 대원이 있었습니다.
그 공로로 이청천 광복군 총사령관으로부터 포상장도 받았는데, 이후 이를 잃어버려 애를 태워왔었습니다.
우리 정부가 이를 복원해서 다시 전달하는 뜻깊은 행사를 가졌습니다.
김도엽 특파원의 보도입니다.
[리포트]
1940년 창설된 대한광복군, 가장 시급했던 건 병력 모집이었습니다.
하지만, 일제의 감시망 속에서 각지에 흩어져 있는 광복군 지원자를 시안의 총사령부까지 데려오는 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목숨을 건 학도병 인솔책, 바로 이 임무를 맡았던 대원이 올해 100세를 맞은 쑤징허 선생입니다.
쑤 선생은 난징에서 독립운동가 '조일문'을 만나 감화돼, 광복군을 돕게 됩니다.
모집한 학도병을 인솔해 난징에서 시안까지 7개월 동안 걸어서 이동했습니다.
[쑤시링/쑤징허 선생아들 : "그때 부친은 일본군 점령지와 게릴라전 지대를 지나야 했지요. 3번을 왕복하면서도 한 명의 낙오자도 없이 임무를 수행하셨어요."]
그 공로를 인정받아 해방직후인 1946년, 이청천 광복군 사령관으로부터 포상장을 받았습니다.
[쑤징허/100살/독립유공자 : "그 후에는 건국훈장도 주셨어요. 정말 감사하지요. 제 공훈은 보잘 것 없거든요."]
하지만 이후 포상장을 분실해 쑤 선생은 그간 애를 태워왔습니다.
상하이 총영사관은 이를 복원해 이청천 사령관의 외손자의 손을 통해 다시 전달했습니다.
[이준식/이청천 장군 외손자/독립기념관장 : "72년 만에 다시 전달을 하는 겁니다. 외할아버지와 같이 한국의 독립이라는 목표를 향해 활동을 하셨던 중국분을 만나서 너무 기쁩니다."]
72년만에 다시 찾아준 광복군 포상장.
외국인일지라도 독립 유공자의 공적은 잊지 않겠다는 대한민국의 다짐이기도 합니다.
상하이에서 KBS 뉴스 김도엽입니다.
일제 강점기 시절 우리 광복군에는 한국인이 아닌 중국인으로서 우리 독립운동을 헌신적으로 도왔던 한 대원이 있었습니다.
그 공로로 이청천 광복군 총사령관으로부터 포상장도 받았는데, 이후 이를 잃어버려 애를 태워왔었습니다.
우리 정부가 이를 복원해서 다시 전달하는 뜻깊은 행사를 가졌습니다.
김도엽 특파원의 보도입니다.
[리포트]
1940년 창설된 대한광복군, 가장 시급했던 건 병력 모집이었습니다.
하지만, 일제의 감시망 속에서 각지에 흩어져 있는 광복군 지원자를 시안의 총사령부까지 데려오는 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목숨을 건 학도병 인솔책, 바로 이 임무를 맡았던 대원이 올해 100세를 맞은 쑤징허 선생입니다.
쑤 선생은 난징에서 독립운동가 '조일문'을 만나 감화돼, 광복군을 돕게 됩니다.
모집한 학도병을 인솔해 난징에서 시안까지 7개월 동안 걸어서 이동했습니다.
[쑤시링/쑤징허 선생아들 : "그때 부친은 일본군 점령지와 게릴라전 지대를 지나야 했지요. 3번을 왕복하면서도 한 명의 낙오자도 없이 임무를 수행하셨어요."]
그 공로를 인정받아 해방직후인 1946년, 이청천 광복군 사령관으로부터 포상장을 받았습니다.
[쑤징허/100살/독립유공자 : "그 후에는 건국훈장도 주셨어요. 정말 감사하지요. 제 공훈은 보잘 것 없거든요."]
하지만 이후 포상장을 분실해 쑤 선생은 그간 애를 태워왔습니다.
상하이 총영사관은 이를 복원해 이청천 사령관의 외손자의 손을 통해 다시 전달했습니다.
[이준식/이청천 장군 외손자/독립기념관장 : "72년 만에 다시 전달을 하는 겁니다. 외할아버지와 같이 한국의 독립이라는 목표를 향해 활동을 하셨던 중국분을 만나서 너무 기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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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일지라도 독립 유공자의 공적은 잊지 않겠다는 대한민국의 다짐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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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엽 기자 yop21@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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