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의 지도자들

입력 1991.08.19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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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범 앵커 :

소련 사회주의의 역사는 경제적 실험과 실행착오의 연속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스탈린에서 고르바초프에 이르기까지 소련 정치지도자들의 부침의 역사는 표면상 정책노선을 둘러싼 갈등의 양상을 띄어 나타났지만 사실상은 권력투쟁의 산물이었습니다.

따라서 고르비의 시각은 그가 추구해온 개방과 개혁정책의 폐기라고보다는 정책노선의 변화를 의미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김영관 기자가 보도합니다.


김영관 기자 :

1953년 스탈린의 사후 후루시초프는 수상 말레코프의 농업정책 실패에 대한 공개적인 비판으로 반대파를 몰아내고 집권했습니다.

후루시초프는 제22회 당 대회를 주관해 이른바 신노선과 신강령을 채택하고 동서 긴장완화에 공전외교를 폈으나 1964년 10월 반대파에 의해 축출됐습니다.

후루시초프 실각이후 수상 푸시킨은 시장경제의 요소를 강조한 경제정책을 실시해 효과를 보았지만 개방에 반대한 브레지네프와의 권력투쟁으로 몰려났습니다.

집권당시 사회주의의 경제적 우월성을 강조했던 브레지네프는 코시킨의 정책노선을 되풀이했습니다.

1982년 브레지네프 사망후 앙드로포프와 체르냉코 집권시대를 맞았으나 각각 돌연한 죽음으로 1985년 고르바초프 시대를 맞게 됩니다.

이같은 소련의 정치사는 정치경제적 개혁노선을 표면에 앞세운 사실상의 권력투쟁양상을 띠고 있습니다.

고르바초프의 실각은 특히 진보적 개혁노선의 좌절이라는 점 그리고 보수파에 의한 물리적 추출이라는 점에서 후루시초프의 실각과 유사한 점이 많습니다.

그러나 소련의 정치사는 고르바초프의 실각이 개혁과 개방정책의 폐기라기보다는 정책노선의 변화를 의미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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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련의 지도자들
    • 입력 1991-08-19 21:00:00
    뉴스 9

박성범 앵커 :

소련 사회주의의 역사는 경제적 실험과 실행착오의 연속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스탈린에서 고르바초프에 이르기까지 소련 정치지도자들의 부침의 역사는 표면상 정책노선을 둘러싼 갈등의 양상을 띄어 나타났지만 사실상은 권력투쟁의 산물이었습니다.

따라서 고르비의 시각은 그가 추구해온 개방과 개혁정책의 폐기라고보다는 정책노선의 변화를 의미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김영관 기자가 보도합니다.


김영관 기자 :

1953년 스탈린의 사후 후루시초프는 수상 말레코프의 농업정책 실패에 대한 공개적인 비판으로 반대파를 몰아내고 집권했습니다.

후루시초프는 제22회 당 대회를 주관해 이른바 신노선과 신강령을 채택하고 동서 긴장완화에 공전외교를 폈으나 1964년 10월 반대파에 의해 축출됐습니다.

후루시초프 실각이후 수상 푸시킨은 시장경제의 요소를 강조한 경제정책을 실시해 효과를 보았지만 개방에 반대한 브레지네프와의 권력투쟁으로 몰려났습니다.

집권당시 사회주의의 경제적 우월성을 강조했던 브레지네프는 코시킨의 정책노선을 되풀이했습니다.

1982년 브레지네프 사망후 앙드로포프와 체르냉코 집권시대를 맞았으나 각각 돌연한 죽음으로 1985년 고르바초프 시대를 맞게 됩니다.

이같은 소련의 정치사는 정치경제적 개혁노선을 표면에 앞세운 사실상의 권력투쟁양상을 띠고 있습니다.

고르바초프의 실각은 특히 진보적 개혁노선의 좌절이라는 점 그리고 보수파에 의한 물리적 추출이라는 점에서 후루시초프의 실각과 유사한 점이 많습니다.

그러나 소련의 정치사는 고르바초프의 실각이 개혁과 개방정책의 폐기라기보다는 정책노선의 변화를 의미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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