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진땅 수단

입력 1993.01.03 (21:00)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잊혀진땅 수단 케냐 로키초키오 국제적십자병원에 내전으로 부상당한 소년과 수단 와트의 노인난민촌 고아및 무장한 수단반군 수단인민군



김광일 앵커 :

전 세계의 관심이 소말리아의 비극에 쏠려있는 가운데 아프리카 동부지역의 또 다른 나라 수단에서도 죽음의 행진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소말리아보다도 결코 낫지 않으면서도 철저하게 관심권 밖으로 밀려나있는 나라 수단의 비극을 계속해서 박선규 특파원이 보도해드리겠습니다.


박선규 특파원 :

수단을 취재하기로 한 취재팀은 우선 내전으로 다친 부상병들이 모여 있는 병원을 찾기로 했습니다. 수단 국경 근처 케냐의 로키초키오.

이곳의 국제적십자사에서 운영하고 있는 병원이 있었습니다. 안내를 받아 둘러본 병실. 흉한모양의 환자들이 가득 누워있습니다. 특히 다리가 잘린 사람들이 많이 눈에 띄었습니다.

이제 나이가 11살이라는 레트라는 이 소년도 총을 들고 싸우다 이 처지가 됐습니다.


질 :

어떻게 하다 다쳤느냐?


레트레스 (11세) :

정부군과 전투를 하던 중에 지뢰가 터져 다쳤습니다.


박선규 특파원 :

레트와 같은 부상 소년병들이 이 병원에만 40여명이나 됩니다.

현재 이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환자의 수는 180명 하지만 이 숫자는 치료를 받아야 하는 환자의 극히 일부분일 뿐입니다. 부상병들의 수단의 와트에서 왔다는 말에 취재팀은 와트의 상황을 살피기 위해 구호식량을 싣고 떠나는 유엔의 비행기를 얻어 탔습니다. 하늘에서 내려다본 수단 땅. 한눈에 건조하고 거친 메마른 땅임이 확인됩니다. 지난 1953년 오랫동안의 이집트와 영국의 지배로부터 해방된 수단.

그러나 북구의 아랍민족과 남부의 아프리카민족을 억지로 한데 묶어놓은 영국의 식민지 정책 탓에 이질적인 두 민족은 해방이후 줄곧 치열한 싸움을 계속해 오고 있습니다. 서로 상대방을 말살시켜야 할 적으로 규정하고 있는 두 민족의 40년간에 걸친 내전으로 도시는 폐허로 변했고 여기에 가뭄까지 겹쳐 농사는 지을 수도 없게 됐습니다. 나이 어린 소년들은 이런 분위기 속에서 총을 들게 된 것입니다.

구호식량을 싣고 취재팀을 태운 비행기는 1시간 반의 비행 끝에 수단의 남부지역 와트라는 작은 도시에 도착했습니다. 현지 주민의 안내를 받아 들어가는 길목. 주민들이 모여듭니다.

취재팀을 먼발치에서 바라다보는 한 어린이, 운막집 앞에 선 형제의 모습, 두툼한 엉덩이 살 대신 두꺼운 주름 앙상한 뼈만이 남아있습니다. 큰 나무 밑 노인들을 위한 급식소입니다.

뼈만 남은 앙상한 몰골의 깊은 시름. 40년 내전의 절망감이 배어 있습니다.

몸을 지탱하기조차 힘들어 보이는 노부부도 먹을 것을 찾아 나섰습니다.

앙상한 몸매에 걸음걸이조차 쉬워 보이지 않습니다. 마을 한쪽 편에 줄지어 늘어앉아 있는 사람들 이들은 다른 지역에서 먹을 것을 찾아 오늘 도착한 난민들입니다.

난민의 대열에는 남녀노소의 구분이 없습니다.

수단의 남부에 있는 한 작은 도시 와트라는 지역.

이 지역에는 하루에도 수십 명씩 내전과 배고픔을 피해 난민들의 모여듦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지금 제 뒤로 앉아있는 이러한 어린이들은 배고픔을 못이긴 난민들 가운데서도 내전 중에 부모를 잃은 고아들입니다. 이들 어린이들은 교회에서 돌보고 있었습니다.

점심시간 배식을 기다리는 아이들의 표정에 어두운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습니다.

모든 상황이 소말리아보다 전혀 나아보이지 않습니다.

마을 중심부에 유엔 구호본부를 찾았습니다.


콜버트 (세계 식량기구 지역책임자) :

오는 길에 대피소들을 많이 봤을 것입니다.

이곳 상황은 운동경기가 아닙니다. 여기는 전쟁지역입니다. 수단에서 수십 년간 내전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세계 언론이 전혀 관심을 갖지 않는 이유에 대해 이해할 수 없습니다.


박선규 특파원 :

앙상한 몰골, 남루한 차림. 이런 모습은 이곳 와트에서는 너무나 흔한 것들입니다.

마을에는 군데군데 총을 든 병사들이 경계를 서고 있었습니다. 반군 3개 파 가운데 한 개 파가 이곳에 본부를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병사들은 각양각색의 복장을 한 채 무기를 들고 있었지만 자체 계급질서는 엄격한 듯해 보였습니다. 안내를 받아 건장한 병사들이 지키고 서있는 본부건물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마침 참모회의를 주재하던 사령관은 한국에서 온 첫 번째 손님이라며 취재팀을 반갑게 맞아줍니다.


리 엌 (인민해방군 사령관) :

수단은 북부의 아랍인과 남부의 아프리카인 두 민족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두 민족은 가치관과 목표가 서로 다릅니다. 남부가 북부의 식민지 상태에 있다는 생각입니다.

남과 북의 평화적인 공존방법은 남부가 독립하는 길밖에 없지요.


박선규 특파원 :

급수시설 앞에 물통을 들고 길게 늘어앉아있는 주민들. 언제일지 모르는 물 배급시간을

기다리다 못해 지친 소년은 고여 있는 흙탕물을 정성스럽게 퍼 담고 있습니다.

저렇게 더러운 물을 어디에 쓰려는 것인지 곳곳에 죽음이 가까이 다가와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스튜더 (자원봉사 의사) :

병으로 죽든지, 굶어 죽든지 매장하지 않고 외곽지역, 덤불속에 버리는 풍습이 있습니다. 하루에 3명 정도가 죽는 것 같지만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는 우리도 잘 모르고, 그것이 큰 문제입니다.


박선규 특파원 :

작열하는 적도의 태양아래서 땅에 떨어진 옥수수 알갱이를 주어 담고 있는 소년.

이런 일은 이곳 어린이들에겐 일상적인 일이 되고 있습니다.

40년 동안이나 계속되고 있는 내전 그러나 지금도 해결의 기미를 전혀 보이지 않는 가운데 잊혀지고 있는 비극의 땅 수단.

한쪽에선 전쟁으로 다치고 죽고 또 다른 한쪽에선 굶주림으로 병들어 죽는 이런 비극이 언제까지 계속될런지 와트상공을 맴도는 독수리 떼의 모습에서 수단지역에 여전히 짙게 드리워져 있는 죽음의 그림자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수단의 와트에서 KBS뉴스 박선규입니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잊혀진땅 수단
    • 입력 1993-01-03 21:00:00
    뉴스 9

잊혀진땅 수단 케냐 로키초키오 국제적십자병원에 내전으로 부상당한 소년과 수단 와트의 노인난민촌 고아및 무장한 수단반군 수단인민군



김광일 앵커 :

전 세계의 관심이 소말리아의 비극에 쏠려있는 가운데 아프리카 동부지역의 또 다른 나라 수단에서도 죽음의 행진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소말리아보다도 결코 낫지 않으면서도 철저하게 관심권 밖으로 밀려나있는 나라 수단의 비극을 계속해서 박선규 특파원이 보도해드리겠습니다.


박선규 특파원 :

수단을 취재하기로 한 취재팀은 우선 내전으로 다친 부상병들이 모여 있는 병원을 찾기로 했습니다. 수단 국경 근처 케냐의 로키초키오.

이곳의 국제적십자사에서 운영하고 있는 병원이 있었습니다. 안내를 받아 둘러본 병실. 흉한모양의 환자들이 가득 누워있습니다. 특히 다리가 잘린 사람들이 많이 눈에 띄었습니다.

이제 나이가 11살이라는 레트라는 이 소년도 총을 들고 싸우다 이 처지가 됐습니다.


질 :

어떻게 하다 다쳤느냐?


레트레스 (11세) :

정부군과 전투를 하던 중에 지뢰가 터져 다쳤습니다.


박선규 특파원 :

레트와 같은 부상 소년병들이 이 병원에만 40여명이나 됩니다.

현재 이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환자의 수는 180명 하지만 이 숫자는 치료를 받아야 하는 환자의 극히 일부분일 뿐입니다. 부상병들의 수단의 와트에서 왔다는 말에 취재팀은 와트의 상황을 살피기 위해 구호식량을 싣고 떠나는 유엔의 비행기를 얻어 탔습니다. 하늘에서 내려다본 수단 땅. 한눈에 건조하고 거친 메마른 땅임이 확인됩니다. 지난 1953년 오랫동안의 이집트와 영국의 지배로부터 해방된 수단.

그러나 북구의 아랍민족과 남부의 아프리카민족을 억지로 한데 묶어놓은 영국의 식민지 정책 탓에 이질적인 두 민족은 해방이후 줄곧 치열한 싸움을 계속해 오고 있습니다. 서로 상대방을 말살시켜야 할 적으로 규정하고 있는 두 민족의 40년간에 걸친 내전으로 도시는 폐허로 변했고 여기에 가뭄까지 겹쳐 농사는 지을 수도 없게 됐습니다. 나이 어린 소년들은 이런 분위기 속에서 총을 들게 된 것입니다.

구호식량을 싣고 취재팀을 태운 비행기는 1시간 반의 비행 끝에 수단의 남부지역 와트라는 작은 도시에 도착했습니다. 현지 주민의 안내를 받아 들어가는 길목. 주민들이 모여듭니다.

취재팀을 먼발치에서 바라다보는 한 어린이, 운막집 앞에 선 형제의 모습, 두툼한 엉덩이 살 대신 두꺼운 주름 앙상한 뼈만이 남아있습니다. 큰 나무 밑 노인들을 위한 급식소입니다.

뼈만 남은 앙상한 몰골의 깊은 시름. 40년 내전의 절망감이 배어 있습니다.

몸을 지탱하기조차 힘들어 보이는 노부부도 먹을 것을 찾아 나섰습니다.

앙상한 몸매에 걸음걸이조차 쉬워 보이지 않습니다. 마을 한쪽 편에 줄지어 늘어앉아 있는 사람들 이들은 다른 지역에서 먹을 것을 찾아 오늘 도착한 난민들입니다.

난민의 대열에는 남녀노소의 구분이 없습니다.

수단의 남부에 있는 한 작은 도시 와트라는 지역.

이 지역에는 하루에도 수십 명씩 내전과 배고픔을 피해 난민들의 모여듦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지금 제 뒤로 앉아있는 이러한 어린이들은 배고픔을 못이긴 난민들 가운데서도 내전 중에 부모를 잃은 고아들입니다. 이들 어린이들은 교회에서 돌보고 있었습니다.

점심시간 배식을 기다리는 아이들의 표정에 어두운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습니다.

모든 상황이 소말리아보다 전혀 나아보이지 않습니다.

마을 중심부에 유엔 구호본부를 찾았습니다.


콜버트 (세계 식량기구 지역책임자) :

오는 길에 대피소들을 많이 봤을 것입니다.

이곳 상황은 운동경기가 아닙니다. 여기는 전쟁지역입니다. 수단에서 수십 년간 내전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세계 언론이 전혀 관심을 갖지 않는 이유에 대해 이해할 수 없습니다.


박선규 특파원 :

앙상한 몰골, 남루한 차림. 이런 모습은 이곳 와트에서는 너무나 흔한 것들입니다.

마을에는 군데군데 총을 든 병사들이 경계를 서고 있었습니다. 반군 3개 파 가운데 한 개 파가 이곳에 본부를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병사들은 각양각색의 복장을 한 채 무기를 들고 있었지만 자체 계급질서는 엄격한 듯해 보였습니다. 안내를 받아 건장한 병사들이 지키고 서있는 본부건물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마침 참모회의를 주재하던 사령관은 한국에서 온 첫 번째 손님이라며 취재팀을 반갑게 맞아줍니다.


리 엌 (인민해방군 사령관) :

수단은 북부의 아랍인과 남부의 아프리카인 두 민족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두 민족은 가치관과 목표가 서로 다릅니다. 남부가 북부의 식민지 상태에 있다는 생각입니다.

남과 북의 평화적인 공존방법은 남부가 독립하는 길밖에 없지요.


박선규 특파원 :

급수시설 앞에 물통을 들고 길게 늘어앉아있는 주민들. 언제일지 모르는 물 배급시간을

기다리다 못해 지친 소년은 고여 있는 흙탕물을 정성스럽게 퍼 담고 있습니다.

저렇게 더러운 물을 어디에 쓰려는 것인지 곳곳에 죽음이 가까이 다가와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스튜더 (자원봉사 의사) :

병으로 죽든지, 굶어 죽든지 매장하지 않고 외곽지역, 덤불속에 버리는 풍습이 있습니다. 하루에 3명 정도가 죽는 것 같지만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는 우리도 잘 모르고, 그것이 큰 문제입니다.


박선규 특파원 :

작열하는 적도의 태양아래서 땅에 떨어진 옥수수 알갱이를 주어 담고 있는 소년.

이런 일은 이곳 어린이들에겐 일상적인 일이 되고 있습니다.

40년 동안이나 계속되고 있는 내전 그러나 지금도 해결의 기미를 전혀 보이지 않는 가운데 잊혀지고 있는 비극의 땅 수단.

한쪽에선 전쟁으로 다치고 죽고 또 다른 한쪽에선 굶주림으로 병들어 죽는 이런 비극이 언제까지 계속될런지 와트상공을 맴도는 독수리 떼의 모습에서 수단지역에 여전히 짙게 드리워져 있는 죽음의 그림자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수단의 와트에서 KBS뉴스 박선규입니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