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초점] 정명훈 그는 외롭지 않다

입력 1994.09.06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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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수웅 특파원 :

프랑스가 세계무대에 자랑스럽게 내세웠던 오페라 지휘자 정명훈씨. 태양빛을 닮은 그의 피부처럼 프랑스에서 빛나는 인물이 되었다고 치하는 받았으나, 그는 올여름 무더위 속에 갑작스럽게 닥쳐온 시련으로 요즘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문화의 나라 프랑스, 예술의 도시 파쇠에 음악을 바로세워보고자 했던 그의 큰 야망은 5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 정치와 제도 법이 한데 어우러진 프랑스 사회에 또 하나의 장벽에 막혀서 출구를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1989년 프랑스 정부가, 혁명 2백주년을 기념해서 혁명의 발상지인 바스티유 광장에 오페라 극장을 완성했을 때 세계의 이목은 바스티유 오페라 상임 지휘자 선정 문제에 쏠려 있었습니다. 파리 오페라의 상임지휘자 바렌보임이 이미 해임된 뒤였기 때문입니다. 당시 부시 미국대통령을 비롯한 각국 정상들이 참석한 가운데 개관 행사를 치렀던 바스티유 오페라는 새로운 상임지휘자로 피부색깔도 다르고 더구나 나이도 젊은 정명훈을 많은 반대 여론 속에 선택했습니다. 그것은 프랑스 오페라의 재건에 골몰해온 프랑스 정부가 그의 뛰어난 음악적 재질과 능력을 높이 샀기 때문입니다.


89년5월25일


배르재 (파리 오페라 회장) :

내가 정명훈씨를 선택한 것은 새로 설립된 오페라 바스티유에 젊고 기량있는 신중한 인물을 연결해 주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정명훈 (바스티유 음악감독) :

한국 지휘자 음악가로서는 이런 포지션을 갖게 된 거는 처음이고, 제가 뭐를 제일 원하냐면은, 항상 그렇지만, 지휘 공부 시작한 후서부터 제일 제가 원하는 거는 한국, 우리 나라도 언제 우리 오케스트라도 훌륭한 오케스트라들, 이렇게 될 수 있을까! 그러니깐 제가 조금이라도 example로 도움이 될 수 있게 된, 그게 너무도 기쁘죠.


고수웅 특파원 :

정명훈씨는, 취임직후부터 전임 지휘자와 자신을 비교하는 주위의 따가운 눈총을 받아야했고 오직 실력으로 이를 무마해야 했기 때문에 온 정성을 지휘에 쏟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노력의 결과는 오래지 않아 나왔습니다. 정명훈씨는 주위로 부터 자신의 야망을 추구하는 독재자형 지휘자가 아니라, 단원들을 사랑과 존경으로 대하면서 오직 오페라의 발전만을 위해서 음악활동에 전념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아왔습니다. 바스티유의 이름에 결코 손색이 없는 훌륭한 지휘자라는 평판으로 정명훈씨는 확고한 위치를 차지했지만 시련은 음악계 내부가 아니라 외부에서 찾아들었습니다.


정명훈 (바스티유 옵악감독) :

나를 슬프게 하는 것은 세계가 보는 가운데 우스운 일을 바스티유가 계속 고집하는 것입니다. 오페라를 생각할 때 유감스런 일입니다.


고수웅 특파원 :

지난달 30일 아침 10시15분. 법원의 승소 판결 다음날 첫 출근길에 나선 음악감독 정명훈씨는 프랑스 언론 앞에 울분을 토했습니다.


94년6월 재계약 압력 시작


작년 3월, 좌파에서 우파로 정권이 교체된 이후에 부임한 자크뜨봉 문화장관은 국립 파리오페라의 경영계획에 관심을 표명했고 결국 사회당 정부에서 임명한 파리 오페라회장 삐에르 베르제씨를 경질하는 사태로 발전했습니다. 이런 과정에서 스위스에서 활동 중인 위그 깔씨가 새로운 회장으로 내정되고 예술인이 아닌 행정가 출신의 쟝콜 쿠르젤씨가 회장직무대행을 맞게 됐습니다. 쿠르젤은 지난 92년, 정명훈씨와의 연장 계약을 주도한 장본인이지만 회장 직무대행이 된 뒤에 정명훈씨에게 연봉을 삭감하고 계약기간도 단축하며 음악감독 권한을 축소하는 등의 재계약을 맺자고 요구하고 재계약에 대한 확답을 7월13일까지 알려달라고 일방적으로 통보했습니다. 7월12일 마침 리스에서 만난 정명훈씨는 음악가에게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고 분개했습니다.


94년7월12일


정명훈 (바스티유 음악감독) :

저는 그 오늘 당장 거기서 그만두더라도 일단 제일 살림에 중요한 게 지금 음악가로서도 그렇지만 개인적으로도 그렇지만 오페라 아니에요.

94년7월 재계약 앎력 부당 회신


고수웅 특파원 :

정명훈씨는, 바스티유 극장의 일방적인 재계약 통보가 2천년까지 이미 돼있는 계약을 무효로 하는 부당한 요구이기 때문에 재계약에 응할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극장측에 알렸습니다. 이때는 이미 정명훈 자신은 이태리 공연으로 바쁜 일정에 있었고, 오페라 단원들은 7월 초부터 시작되는 여름 바캉스로 거의 여행을 떠난 상태였습니다.


94년8월12일 사실상 감독 해임통보


극장 측은 8월12일, 돌연 발표문을 통해서 오페라는 지난 3월부터 정명훈씨와 지난 92년12월20일 체결한 계약 내용을 조정하기 위해서 협상을 진행해 왔으나 정명훈씨가 이를 거부해, 협상이 결렬됐으며 따라서 정명훈씨와 더 일을 계속 할 수 없게 됐다고 사실상 해임통보를 했습니다.


94년8월16일


정명훈 (바스티유 움악감독) :

제가 없을 때, 그 프레스 커무니케를 어떻게 나왔냐 하면은, 제가 그만뒀다! 제가 인제 더 하고도 싶고 그래갔고 제가 일을 그만하겠다, 그런 식으로 나와갔고 할 수 없이 오늘, 제가 여기 온 거죠.


고수웅 특파원 :

정명훈씨가 극장 측으로부터 해고 통보를 받은 다음날, 파리에서 발행되는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드는 파리 오페라에서 과거의 불쾌한 일이 되풀이 되고 있다고 일면 주요 기사로 보도했습니다. 이 신문은 을 시즌 개막 공연 연습을 목전에 두고 파리 오페라가 한국출신 음악감독 정명훈씨를 해임시켰으며, 이번 일은 국립 오페라 운영에 대한 정치권의 영향력이 강화되는 기간에 일어난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프랑스 언론들은 정명훈 감독 해임 배경에 대해서 젊은 나이에 정명훈 감독이 몇 년 내에 세계 최고의 대가가 되리라는 가정으로 지나치게 많은 보수를 준다, 파리 오페라에서 정명훈의 처우가 해마다 높아지므로 다른 유수한 지휘자를 초빙하기가 어렵게 됐다. 음악감독이 프로그램 선택 프로그램 보급 배급권 지휘자 초청 등의 너무 많은 권한을 가지고 있다는 등등이 극장 측이 내세우는 이유라고 보도했습니다.


94년8월23일 해임 무효화소송 제기


정명훈씨는 음악감독 권한을 축소하고 계약기간을 2천년에서 97년까지 3년 줄이고 연봉도 현 수준에서 동결하며 특히 프로그램 선택 객원지휘자 연출가 성악 솔리스트 선정에 관여할 수 없게 했던 본인에게 아주 불리한 조건들을 제시한 재계약에 응하지 않았다고 일방적으로 해임통보를 한 극장 측을 상대로 해서 파리 민사지방법원에 해고조처 무효소송을 내고 급

속 심의를 요구했습니다.


정명훈 (바스티유 음악감독) :

이 컨츄렉트가 이렇게 써있더래도 갑자기 5년 후에 우리가 인제 다시 보니까 컨츄렉트가 뭐가 잘못됐다는 거예요. 그런 식으로 나와요. 그러니까 저는 순전히 커어트에 가서 싸우기 전에는 어떻게 할 수가 없어요.


94년8월29일 계약 유효소송 승리.


고수웅 특파원 :

파리 지방법원 프랑스와즈 라모프 판사는 지난달 29일 정명훈씨가 지난 92년에 바스티유 측과 맺은 계약은 완전하게 이행돼야 한다고 판결하고 바스티유측은 정씨의 허락없이 오페라의 연습과 공연을 지휘할 감독을 임명해서는 안된다! 계약을 무효화한 극장측은 정명훈씨에게 만프랑, 우리 돈으로 15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습니다.


벨리띠에 (정명훈의 변호사) :

우리는 바스티유 측에 법원 결정 사항이 유효하다고 통보했으며 내일 아침부터 정명훈씨가 직접 지휘하도록 요청했습니다.


고수웅 특파원 :

당연한 것이 왔음에도, 당사자 정명훈씨는 앞으로의 일을 더 걱정했습니다.


정명훈 (바스티유 음악감독) :

제가 알기로는 이 요번 법정에서 디시전이 나왔다고 거기서 끝나는 거는 아니에요. 왜나 하면 저쪽편이 워낙 이렇게 무슨 일이 있어도 자기네들이 마음대로 행동하고 싶은 그런 사람들이기 때문에 두고 봐야죠. 어떻게 될 건지.


94년8월30일 승소 후 첫 출근 저지당해.


고수웅 특파원 :

정명훈씨가 계약유효 확인소송에서 이겼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프랑스 언론도 민감한 반응을 보였습니다.

법원의 승소 판결이 나오자 정명훈씨는 이미 임박한 금년 시즌 개막 공연연습도 급하거니와 또 법원이 내린 결정이 어떻게 지켜질지를 확인하기 위해서 판결 다음날 출근을 시도했습니다. 변호사 벨리띠에 여사와 함께 입구만을 들어선 정명훈씨는 이내 극장 측 저지로 본인의 사무실로 올라가지를 못했습니다. 프랑스 주요 텔레비전 방송 등에서 아침 일찍부터 정명훈씨의 출근길을 취재하기 위해 장사진을 이루었고 법원의 결정을 두둔하는 방향이었습니다.


뿌이스 까르쥬 (프랑스2방송기자) :

이것은 말도 안 되는 일입니다. 이번일은 사람을 교체하는 것으로 음악의 질과는 아무 상관없고 그동안 정씨가 지휘자로 있으면서 구태의연함을 추방했었는데 다시 불안한 상태로 가는 듯합니다.


94년8월31일 바스티유 사법권 투시.


고수웅 특파원 :

파리 지방법원은 지난달 31일. 바스티유 극장측과 정명훈씨 측의 변호인단을 참석시킨 가운데 대질 청문회자리를 마련했는데, 정명훈씨 측이 제안했던 음악감독 권한 행사를 저지하고 있는 극장측에 대한 사법권 집행 요청에 대해서는 바스티유가 국립인 공공기관이기 때문에 불가능하다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정명훈 (바스티유 음악감독) :

정부에서, 그 국립 오페라기 때문에 힘이 거기까지 밖에 없다는, 그 결정하고 니네들이 틀렸고 벌금내야 되고 그런데도 니네들이 억지로 말을 안 들으면 경찰까지 데려갔고 문을 깨지 못한다는 그것뿐이에요. 지금.


벨리띠에 (정명훈의 변호사) :

프랑스 헌법은 일반인에게는 공권력을 행사할 수 있지만 국가 즉, 공공기관을 상대로는 공권력을 행사할 수 없습니다.


94년9월2일 연습중지 손해배상 판결.


고수웅 특파원 :

파리 지방법원은 지난 2일. 정명훈씨가 오페라 공연 연습을 할 수 없어 입게 되는 경제적 손해를 인정하고 바스티유 극장 측은 정명훈씨에게 연습이 지체되는 기간동안 하루 5만프랑, 우리 돈으로 740만원씩을 지급하라고 판결했습니다. 이로써 정명훈씨는 프랑스 사법부로부터는 법률적 지위나 권한 인정은 모두 받아낸 셈입니다. 또 프랑스의 양식 있는 언론들도 정씨의 정당성을 충분히 인정하고 있으며 심지어 350명의 회원을 가지고 있는 오페라 동호인들까지도 프랑스 공공기관이 사법부의 권한 인정을 이행하지 않았다고 비난하고 야비하게 법을 우롱했다고 지적했습니다.


고수웅 특파원 :

어떤 때 가장 힘들었고 어떤 때 가장 보람이 있었어요?


정명훈 (바스티유 움악감독) :

뭐, 아무래도 지금이 제일 힘든 것 같아요. 왜냐하면 한 가지 이유인데, 여태까지 그래도 힘든 일이 있었더래도 음악은 계속할 수 있었기 때문에, 그래서 단원들하고 계속 일은 할 수 있었기 때문에 그런데 문을 막아놨으니까, 계속 법정에 가서 싸우든지 뭐, 그것밖에 없기 때문에 그것같이 힘든 게 없어요. 그건 뭐, 골치 아프고 우리 음악가들은 우리 음악을 해야 되는 사람들한테 그게 제일 힘들었었고, 제일 기뻤을 때는 보람을 느꼈을 때는 5월달에 한국에 가서 연주 같이 했을 때.


고수웅 특파원 :

금년 5월 창단 이래 처음으로 대식구를 거느리고 모국인 한국에서 공연을 가졌던 정명훈씨는 고국에서의 공연 성과가 너무나 만족스러웠고 단원들도 한국에 대한 좋은 인상과 만족감으로 사기가 크게 오른 상태였습니다. 지휘자와 단원들의 호홉이 일체감을 이루고 보다 좋은 연주를 위한 발판이 다져졌다고 흐뭇해하고 있었는데 그의 앞길에 장애물이 나타난 것입니다.

올해 나이 마흔한살. 30대의 정열과 패기에서 벗어나 기량과 지혜가 한결 원숙해질 그런 나이에 정명훈은 어쩌면 인생 최대의 고비를 맞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정경화 정명화 자매와 함께 3남매가 모두 세계적인 음악가로 성장한 가정적 배경에 8살 적 미국에서 본격적으로 음악공부를 시작해 일찍부터 탁월한 재능을 인정받았던 정명훈의 미래 정점은 어디쯤일까? 시련이 위대한 인물을 만든다는 격언처럼 그가 지금 맞고 있는 이 시련은 세계적인 대가가 되기 위한한때의 과정인가? 아니면 그의 음악생명을 단축시킬지도 모를 악운인가? 프랑스오페라를 바로 세우기 위해서 먼저 프랑스의 언어장벽을 극복했던 그는 훌륭한 음악가로 앞으로 무엇을 극복해야 할 것인가? 정명훈을 아끼고 사랑하는 우리 국민의 마음은 그가 지난 5년 동안 가꿔온 바스티유가 아니라 그의 발길이 지향하는 곳으로 옮겨가고 있습니다. 한국이 배출한 훌륭한 음악가의 무대는 파리가 전부는 아니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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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뉴스초점] 정명훈 그는 외롭지 않다
    • 입력 1994-09-06 21:00:00
    뉴스 9

고수웅 특파원 :

프랑스가 세계무대에 자랑스럽게 내세웠던 오페라 지휘자 정명훈씨. 태양빛을 닮은 그의 피부처럼 프랑스에서 빛나는 인물이 되었다고 치하는 받았으나, 그는 올여름 무더위 속에 갑작스럽게 닥쳐온 시련으로 요즘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문화의 나라 프랑스, 예술의 도시 파쇠에 음악을 바로세워보고자 했던 그의 큰 야망은 5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 정치와 제도 법이 한데 어우러진 프랑스 사회에 또 하나의 장벽에 막혀서 출구를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1989년 프랑스 정부가, 혁명 2백주년을 기념해서 혁명의 발상지인 바스티유 광장에 오페라 극장을 완성했을 때 세계의 이목은 바스티유 오페라 상임 지휘자 선정 문제에 쏠려 있었습니다. 파리 오페라의 상임지휘자 바렌보임이 이미 해임된 뒤였기 때문입니다. 당시 부시 미국대통령을 비롯한 각국 정상들이 참석한 가운데 개관 행사를 치렀던 바스티유 오페라는 새로운 상임지휘자로 피부색깔도 다르고 더구나 나이도 젊은 정명훈을 많은 반대 여론 속에 선택했습니다. 그것은 프랑스 오페라의 재건에 골몰해온 프랑스 정부가 그의 뛰어난 음악적 재질과 능력을 높이 샀기 때문입니다.


89년5월25일


배르재 (파리 오페라 회장) :

내가 정명훈씨를 선택한 것은 새로 설립된 오페라 바스티유에 젊고 기량있는 신중한 인물을 연결해 주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정명훈 (바스티유 음악감독) :

한국 지휘자 음악가로서는 이런 포지션을 갖게 된 거는 처음이고, 제가 뭐를 제일 원하냐면은, 항상 그렇지만, 지휘 공부 시작한 후서부터 제일 제가 원하는 거는 한국, 우리 나라도 언제 우리 오케스트라도 훌륭한 오케스트라들, 이렇게 될 수 있을까! 그러니깐 제가 조금이라도 example로 도움이 될 수 있게 된, 그게 너무도 기쁘죠.


고수웅 특파원 :

정명훈씨는, 취임직후부터 전임 지휘자와 자신을 비교하는 주위의 따가운 눈총을 받아야했고 오직 실력으로 이를 무마해야 했기 때문에 온 정성을 지휘에 쏟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노력의 결과는 오래지 않아 나왔습니다. 정명훈씨는 주위로 부터 자신의 야망을 추구하는 독재자형 지휘자가 아니라, 단원들을 사랑과 존경으로 대하면서 오직 오페라의 발전만을 위해서 음악활동에 전념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아왔습니다. 바스티유의 이름에 결코 손색이 없는 훌륭한 지휘자라는 평판으로 정명훈씨는 확고한 위치를 차지했지만 시련은 음악계 내부가 아니라 외부에서 찾아들었습니다.


정명훈 (바스티유 옵악감독) :

나를 슬프게 하는 것은 세계가 보는 가운데 우스운 일을 바스티유가 계속 고집하는 것입니다. 오페라를 생각할 때 유감스런 일입니다.


고수웅 특파원 :

지난달 30일 아침 10시15분. 법원의 승소 판결 다음날 첫 출근길에 나선 음악감독 정명훈씨는 프랑스 언론 앞에 울분을 토했습니다.


94년6월 재계약 압력 시작


작년 3월, 좌파에서 우파로 정권이 교체된 이후에 부임한 자크뜨봉 문화장관은 국립 파리오페라의 경영계획에 관심을 표명했고 결국 사회당 정부에서 임명한 파리 오페라회장 삐에르 베르제씨를 경질하는 사태로 발전했습니다. 이런 과정에서 스위스에서 활동 중인 위그 깔씨가 새로운 회장으로 내정되고 예술인이 아닌 행정가 출신의 쟝콜 쿠르젤씨가 회장직무대행을 맞게 됐습니다. 쿠르젤은 지난 92년, 정명훈씨와의 연장 계약을 주도한 장본인이지만 회장 직무대행이 된 뒤에 정명훈씨에게 연봉을 삭감하고 계약기간도 단축하며 음악감독 권한을 축소하는 등의 재계약을 맺자고 요구하고 재계약에 대한 확답을 7월13일까지 알려달라고 일방적으로 통보했습니다. 7월12일 마침 리스에서 만난 정명훈씨는 음악가에게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고 분개했습니다.


94년7월12일


정명훈 (바스티유 음악감독) :

저는 그 오늘 당장 거기서 그만두더라도 일단 제일 살림에 중요한 게 지금 음악가로서도 그렇지만 개인적으로도 그렇지만 오페라 아니에요.

94년7월 재계약 앎력 부당 회신


고수웅 특파원 :

정명훈씨는, 바스티유 극장의 일방적인 재계약 통보가 2천년까지 이미 돼있는 계약을 무효로 하는 부당한 요구이기 때문에 재계약에 응할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극장측에 알렸습니다. 이때는 이미 정명훈 자신은 이태리 공연으로 바쁜 일정에 있었고, 오페라 단원들은 7월 초부터 시작되는 여름 바캉스로 거의 여행을 떠난 상태였습니다.


94년8월12일 사실상 감독 해임통보


극장 측은 8월12일, 돌연 발표문을 통해서 오페라는 지난 3월부터 정명훈씨와 지난 92년12월20일 체결한 계약 내용을 조정하기 위해서 협상을 진행해 왔으나 정명훈씨가 이를 거부해, 협상이 결렬됐으며 따라서 정명훈씨와 더 일을 계속 할 수 없게 됐다고 사실상 해임통보를 했습니다.


94년8월16일


정명훈 (바스티유 움악감독) :

제가 없을 때, 그 프레스 커무니케를 어떻게 나왔냐 하면은, 제가 그만뒀다! 제가 인제 더 하고도 싶고 그래갔고 제가 일을 그만하겠다, 그런 식으로 나와갔고 할 수 없이 오늘, 제가 여기 온 거죠.


고수웅 특파원 :

정명훈씨가 극장 측으로부터 해고 통보를 받은 다음날, 파리에서 발행되는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드는 파리 오페라에서 과거의 불쾌한 일이 되풀이 되고 있다고 일면 주요 기사로 보도했습니다. 이 신문은 을 시즌 개막 공연 연습을 목전에 두고 파리 오페라가 한국출신 음악감독 정명훈씨를 해임시켰으며, 이번 일은 국립 오페라 운영에 대한 정치권의 영향력이 강화되는 기간에 일어난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프랑스 언론들은 정명훈 감독 해임 배경에 대해서 젊은 나이에 정명훈 감독이 몇 년 내에 세계 최고의 대가가 되리라는 가정으로 지나치게 많은 보수를 준다, 파리 오페라에서 정명훈의 처우가 해마다 높아지므로 다른 유수한 지휘자를 초빙하기가 어렵게 됐다. 음악감독이 프로그램 선택 프로그램 보급 배급권 지휘자 초청 등의 너무 많은 권한을 가지고 있다는 등등이 극장 측이 내세우는 이유라고 보도했습니다.


94년8월23일 해임 무효화소송 제기


정명훈씨는 음악감독 권한을 축소하고 계약기간을 2천년에서 97년까지 3년 줄이고 연봉도 현 수준에서 동결하며 특히 프로그램 선택 객원지휘자 연출가 성악 솔리스트 선정에 관여할 수 없게 했던 본인에게 아주 불리한 조건들을 제시한 재계약에 응하지 않았다고 일방적으로 해임통보를 한 극장 측을 상대로 해서 파리 민사지방법원에 해고조처 무효소송을 내고 급

속 심의를 요구했습니다.


정명훈 (바스티유 음악감독) :

이 컨츄렉트가 이렇게 써있더래도 갑자기 5년 후에 우리가 인제 다시 보니까 컨츄렉트가 뭐가 잘못됐다는 거예요. 그런 식으로 나와요. 그러니까 저는 순전히 커어트에 가서 싸우기 전에는 어떻게 할 수가 없어요.


94년8월29일 계약 유효소송 승리.


고수웅 특파원 :

파리 지방법원 프랑스와즈 라모프 판사는 지난달 29일 정명훈씨가 지난 92년에 바스티유 측과 맺은 계약은 완전하게 이행돼야 한다고 판결하고 바스티유측은 정씨의 허락없이 오페라의 연습과 공연을 지휘할 감독을 임명해서는 안된다! 계약을 무효화한 극장측은 정명훈씨에게 만프랑, 우리 돈으로 15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습니다.


벨리띠에 (정명훈의 변호사) :

우리는 바스티유 측에 법원 결정 사항이 유효하다고 통보했으며 내일 아침부터 정명훈씨가 직접 지휘하도록 요청했습니다.


고수웅 특파원 :

당연한 것이 왔음에도, 당사자 정명훈씨는 앞으로의 일을 더 걱정했습니다.


정명훈 (바스티유 음악감독) :

제가 알기로는 이 요번 법정에서 디시전이 나왔다고 거기서 끝나는 거는 아니에요. 왜나 하면 저쪽편이 워낙 이렇게 무슨 일이 있어도 자기네들이 마음대로 행동하고 싶은 그런 사람들이기 때문에 두고 봐야죠. 어떻게 될 건지.


94년8월30일 승소 후 첫 출근 저지당해.


고수웅 특파원 :

정명훈씨가 계약유효 확인소송에서 이겼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프랑스 언론도 민감한 반응을 보였습니다.

법원의 승소 판결이 나오자 정명훈씨는 이미 임박한 금년 시즌 개막 공연연습도 급하거니와 또 법원이 내린 결정이 어떻게 지켜질지를 확인하기 위해서 판결 다음날 출근을 시도했습니다. 변호사 벨리띠에 여사와 함께 입구만을 들어선 정명훈씨는 이내 극장 측 저지로 본인의 사무실로 올라가지를 못했습니다. 프랑스 주요 텔레비전 방송 등에서 아침 일찍부터 정명훈씨의 출근길을 취재하기 위해 장사진을 이루었고 법원의 결정을 두둔하는 방향이었습니다.


뿌이스 까르쥬 (프랑스2방송기자) :

이것은 말도 안 되는 일입니다. 이번일은 사람을 교체하는 것으로 음악의 질과는 아무 상관없고 그동안 정씨가 지휘자로 있으면서 구태의연함을 추방했었는데 다시 불안한 상태로 가는 듯합니다.


94년8월31일 바스티유 사법권 투시.


고수웅 특파원 :

파리 지방법원은 지난달 31일. 바스티유 극장측과 정명훈씨 측의 변호인단을 참석시킨 가운데 대질 청문회자리를 마련했는데, 정명훈씨 측이 제안했던 음악감독 권한 행사를 저지하고 있는 극장측에 대한 사법권 집행 요청에 대해서는 바스티유가 국립인 공공기관이기 때문에 불가능하다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정명훈 (바스티유 음악감독) :

정부에서, 그 국립 오페라기 때문에 힘이 거기까지 밖에 없다는, 그 결정하고 니네들이 틀렸고 벌금내야 되고 그런데도 니네들이 억지로 말을 안 들으면 경찰까지 데려갔고 문을 깨지 못한다는 그것뿐이에요. 지금.


벨리띠에 (정명훈의 변호사) :

프랑스 헌법은 일반인에게는 공권력을 행사할 수 있지만 국가 즉, 공공기관을 상대로는 공권력을 행사할 수 없습니다.


94년9월2일 연습중지 손해배상 판결.


고수웅 특파원 :

파리 지방법원은 지난 2일. 정명훈씨가 오페라 공연 연습을 할 수 없어 입게 되는 경제적 손해를 인정하고 바스티유 극장 측은 정명훈씨에게 연습이 지체되는 기간동안 하루 5만프랑, 우리 돈으로 740만원씩을 지급하라고 판결했습니다. 이로써 정명훈씨는 프랑스 사법부로부터는 법률적 지위나 권한 인정은 모두 받아낸 셈입니다. 또 프랑스의 양식 있는 언론들도 정씨의 정당성을 충분히 인정하고 있으며 심지어 350명의 회원을 가지고 있는 오페라 동호인들까지도 프랑스 공공기관이 사법부의 권한 인정을 이행하지 않았다고 비난하고 야비하게 법을 우롱했다고 지적했습니다.


고수웅 특파원 :

어떤 때 가장 힘들었고 어떤 때 가장 보람이 있었어요?


정명훈 (바스티유 움악감독) :

뭐, 아무래도 지금이 제일 힘든 것 같아요. 왜냐하면 한 가지 이유인데, 여태까지 그래도 힘든 일이 있었더래도 음악은 계속할 수 있었기 때문에, 그래서 단원들하고 계속 일은 할 수 있었기 때문에 그런데 문을 막아놨으니까, 계속 법정에 가서 싸우든지 뭐, 그것밖에 없기 때문에 그것같이 힘든 게 없어요. 그건 뭐, 골치 아프고 우리 음악가들은 우리 음악을 해야 되는 사람들한테 그게 제일 힘들었었고, 제일 기뻤을 때는 보람을 느꼈을 때는 5월달에 한국에 가서 연주 같이 했을 때.


고수웅 특파원 :

금년 5월 창단 이래 처음으로 대식구를 거느리고 모국인 한국에서 공연을 가졌던 정명훈씨는 고국에서의 공연 성과가 너무나 만족스러웠고 단원들도 한국에 대한 좋은 인상과 만족감으로 사기가 크게 오른 상태였습니다. 지휘자와 단원들의 호홉이 일체감을 이루고 보다 좋은 연주를 위한 발판이 다져졌다고 흐뭇해하고 있었는데 그의 앞길에 장애물이 나타난 것입니다.

올해 나이 마흔한살. 30대의 정열과 패기에서 벗어나 기량과 지혜가 한결 원숙해질 그런 나이에 정명훈은 어쩌면 인생 최대의 고비를 맞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정경화 정명화 자매와 함께 3남매가 모두 세계적인 음악가로 성장한 가정적 배경에 8살 적 미국에서 본격적으로 음악공부를 시작해 일찍부터 탁월한 재능을 인정받았던 정명훈의 미래 정점은 어디쯤일까? 시련이 위대한 인물을 만든다는 격언처럼 그가 지금 맞고 있는 이 시련은 세계적인 대가가 되기 위한한때의 과정인가? 아니면 그의 음악생명을 단축시킬지도 모를 악운인가? 프랑스오페라를 바로 세우기 위해서 먼저 프랑스의 언어장벽을 극복했던 그는 훌륭한 음악가로 앞으로 무엇을 극복해야 할 것인가? 정명훈을 아끼고 사랑하는 우리 국민의 마음은 그가 지난 5년 동안 가꿔온 바스티유가 아니라 그의 발길이 지향하는 곳으로 옮겨가고 있습니다. 한국이 배출한 훌륭한 음악가의 무대는 파리가 전부는 아니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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