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리포트] 함께 차려주는 밥상…日,‘어린이 식당’

입력 2018.06.30 (0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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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도모 식당'(こども 食堂)이라는 곳이 있다. 우리 말로 하면 '어린이 식당'.

어린이 메뉴를 파는 식당? 어린이 전용 식당? 어린이가 운영하는 식당? 어떤 곳일까? 이 짧은 신조어 속에 녹아 있는 일본 사회의 깊은 속을 들여다본다.

■"바나나로 하나로 밥을 해결해? 내가 차려 주겠어!"

"바나나 하나로 끼니를 때우는 애가 있다는 거예요. 충격이었죠. 21세기 일본에 결식아동이라니…."

2010년 일본 최초의 '어린이 식당'을 연 곤도 씨의 말이었다. 채소 가게를 운영하던 곤도 씨. 주변 학교의 선생님에게서 들은 말은 내가 뭔가 할 수 있는 게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이어졌다.

"그래 밥 한 끼는 해먹일 수 있지 않을까?"


채소 가게에서 남은 부식을 이용해 내가 할 수 있는 한 밥을 해 먹여보자.

고도모 식당이 문을 여는 것은 목요일 1차례다. 음식을 만들어 중고생까지 100엔(우리돈 1,000원 남짓)이면 밥을 사 먹을 수 있게 했다. 공짜보다는 대가를 정당하게 지불하게 내게 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어른에게는 500엔을 받는다.

메뉴는 그날그날 어떤 재료가 있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모두 같이 따뜻하고 맛있는 밥을 즐길 수 있도록 하는 게 목표다.

여기서 드는 자연스러운 생각. "보통의 결식아동 대책이라면 일주일에 한 번으로 부족하지 않을까?" 이다. 하지만 개인의 힘으로 조그만 채소 가게 사장이 자기가 할 수 있는 최대치는 그 정도였다.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범위'라는 마음 가짐은 이후 '어린이 식당'의 중요한 기조가 된다.


모두가 즐겁게…주눅이 든 아이는 없다.

목요일 오후 5시 반. 곤도 씨의 어린이 식당이 문을 여는 시간이지만 이미 식당은 그전부터 어린이들, 또 아이를 데리고 같이 밥을 먹으러 온 엄마들로 북적거렸다.

"재밌어요.", "친구랑 같이 밥을 먹을 수 있으니까 좋아요."

가게 뒤쪽은 골방은 이미 초등학생 어린이들로 가득 찼고, 카드놀이를 하더니 시간이 되자 식판도 서로 챙겨주며 떠들썩하게 밥을 먹기 시작한다.

우리나라에서 시행되고 있는 많은 결식아동 대책의 가장 큰 맹점은 혜택을 받는 누군가를 특징짓게 한다는 것. 쿠폰을 발행해도 이를 들고 식당에 가 밥을 사 먹기에 눈치가 보이고, 결식아동인 것을 주변에 알리는 것 같은 마음에 주눅이 들 수밖에 없다.

하지만 '어린이 식당'에서는 달랐다. 누가 결식아동인지, 누가 밥을 잘 못 먹고 다니는지 구별은 없었다. 그냥 우르르 몰려와 떠들며 즐겁게 밥을 먹는다.

아빠가 네팔 사람들이라는 어린이 2명도 당당히 한자리를 차지하고 밥을 먹으며, 본인들 사진도 찍어달라고 웃으며 말했다.


"편모가 많아요. 엄마가 아픈 경우도 있고…. 또 엄마 아빠가 귀가가 늦어서 식사 해결하기 어려운 애들도 있고…."

곤도 씨는 이곳에 오는 아이들이 각각 다른 환경의 아이들이라고 설명해 줬다. 하지만 공통점은 있었다. 여기서 밥을 먹는 걸 부끄러워하는 아이도, 주눅이 든 아이도 없다는 점. 당당히 돈을 내고 친구들과 밥을 먹는 장소다. 누구든.

매일 저녁 상 차리기 버거운 주부가 가벼운 마음으로 아이를 데리고 와 같이 식사를 해도 마음 편한 곳이 어린이 식당이다. 그리고 밥을 먹고는 또 다른 끼니, 혹은 집에서 식사를 못하고 있는 사람을 위해 도시락을 사간다.


함께 차려주는 밥상…모두 같이 키우는 우리 아이들

현재 일본 전국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어린이 식당은 모두 2,300여 곳. 모두 순수 민간차원에서 운영되고 있는 것을 생각할 때 놀라운 숫자가 아닐 수 없다.

시민단체 '어린이 식당 네트워크'의 가마이게 씨는 어린이 식당의 성공 이유에 대해 앞서 밝힌 '내가 할 수 있는 것'에서라는 말에서 이유를 찾았다.

일본 전국의 어린이 식당은 대게 일주일에 한두 번, 이 주일에 한 번 정도 문을 연다. 그리고 운영은 모두 자원봉사와 기부로 이뤄진다.

"처음에는 자녀를 다 키운 50~60대 어머니들이 '일본에 굶은 아이가 있다고?' 라는 마음으로 시작들 하셨죠." 하지만 어디까지나 자원봉사. 내가 약간의 노력으로도 할 수 있는 것부터 찾았다.

와서 식사를 만들어 줄 수 있으면 손을 빌려주고, 부식을 줄 수 있으면 음식 재료를, 자기 회사의 사무실을 내주는 장소 기부자도 생겼다. 부담스럽지 않게,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꾸준하게 그렇게 어린이 식당은 스스로 참여할 수 있는 자발적 기부자들의 힘으로 폭을 넓히며 일본 사회 곳곳으로 퍼져나갔다.


어린이 식당에서 만난 마나베 군은 고 3. 초등학교 시절 이곳에 들러 밥을 먹곤 했는데, 이제는 도울 만큼의 나이가 돼 식당이 열리는 날이면 와서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은혜를 갚는다는 생각도 있었고, 지금은 사회 복지사가 꿈이거든요. 그래서 빈곤 문제라든지 하는 것들에 관심이 있으니까…." 덤덤하면서 씩씩하게 말하는 마나베 군은 어린이 식당이 이 근처 지역 사회에 가져온 긍정적 변화를 느끼게 해줬다.

지역 사회의 중심지로 커가는 어린이 식당

'어린이 식당 네트워크'에서 이 작은 공간을 통해 찾는 의미는 2가지다.

하나는 '어린이 빈곤 대책' 그리고 또 하나는 '지역교류의 거점'이다. 아이들을 위해 밥상을 차려주다 보니, 어린이 식당은 단순히 배고픔만을 해결하는 장소를 뛰어넘고 있다는 설명이다.

지역의 어른들이 모이고, 또 지역의 어린이들이 모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우리 동네 아이들이 누군지 알고 또 서로들 관심을 두는 장소가 돼가고 있다는 것.


곳에 따라서는 식당이 열리지 않는 날은 공부방 등 또 다른 형태로 운영되면서 어린이들에게 개방되는 곳도 있다는 설명이다. 그야말로 우리 아이들을 우리가 키우는 형태로 발전해 가는 것이다.
전국적으로 어린이 식당이 들어서기 시작하면서 지자체 등의 후원도 이어져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아주 작은 울림 하나가 일본 전체로 퍼져 나가, 주변의 아이들에게 관심을 갖게 하는 '착한 메아리'를 만들어가고 있는 어린이 식당. 새로운 차원의 민간 복지 운동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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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파원리포트] 함께 차려주는 밥상…日,‘어린이 식당’
    • 입력 2018-06-30 07:34:56
    특파원 리포트
'고도모 식당'(こども 食堂)이라는 곳이 있다. 우리 말로 하면 '어린이 식당'.

어린이 메뉴를 파는 식당? 어린이 전용 식당? 어린이가 운영하는 식당? 어떤 곳일까? 이 짧은 신조어 속에 녹아 있는 일본 사회의 깊은 속을 들여다본다.

■"바나나로 하나로 밥을 해결해? 내가 차려 주겠어!"

"바나나 하나로 끼니를 때우는 애가 있다는 거예요. 충격이었죠. 21세기 일본에 결식아동이라니…."

2010년 일본 최초의 '어린이 식당'을 연 곤도 씨의 말이었다. 채소 가게를 운영하던 곤도 씨. 주변 학교의 선생님에게서 들은 말은 내가 뭔가 할 수 있는 게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이어졌다.

"그래 밥 한 끼는 해먹일 수 있지 않을까?"


채소 가게에서 남은 부식을 이용해 내가 할 수 있는 한 밥을 해 먹여보자.

고도모 식당이 문을 여는 것은 목요일 1차례다. 음식을 만들어 중고생까지 100엔(우리돈 1,000원 남짓)이면 밥을 사 먹을 수 있게 했다. 공짜보다는 대가를 정당하게 지불하게 내게 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어른에게는 500엔을 받는다.

메뉴는 그날그날 어떤 재료가 있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모두 같이 따뜻하고 맛있는 밥을 즐길 수 있도록 하는 게 목표다.

여기서 드는 자연스러운 생각. "보통의 결식아동 대책이라면 일주일에 한 번으로 부족하지 않을까?" 이다. 하지만 개인의 힘으로 조그만 채소 가게 사장이 자기가 할 수 있는 최대치는 그 정도였다.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범위'라는 마음 가짐은 이후 '어린이 식당'의 중요한 기조가 된다.


모두가 즐겁게…주눅이 든 아이는 없다.

목요일 오후 5시 반. 곤도 씨의 어린이 식당이 문을 여는 시간이지만 이미 식당은 그전부터 어린이들, 또 아이를 데리고 같이 밥을 먹으러 온 엄마들로 북적거렸다.

"재밌어요.", "친구랑 같이 밥을 먹을 수 있으니까 좋아요."

가게 뒤쪽은 골방은 이미 초등학생 어린이들로 가득 찼고, 카드놀이를 하더니 시간이 되자 식판도 서로 챙겨주며 떠들썩하게 밥을 먹기 시작한다.

우리나라에서 시행되고 있는 많은 결식아동 대책의 가장 큰 맹점은 혜택을 받는 누군가를 특징짓게 한다는 것. 쿠폰을 발행해도 이를 들고 식당에 가 밥을 사 먹기에 눈치가 보이고, 결식아동인 것을 주변에 알리는 것 같은 마음에 주눅이 들 수밖에 없다.

하지만 '어린이 식당'에서는 달랐다. 누가 결식아동인지, 누가 밥을 잘 못 먹고 다니는지 구별은 없었다. 그냥 우르르 몰려와 떠들며 즐겁게 밥을 먹는다.

아빠가 네팔 사람들이라는 어린이 2명도 당당히 한자리를 차지하고 밥을 먹으며, 본인들 사진도 찍어달라고 웃으며 말했다.


"편모가 많아요. 엄마가 아픈 경우도 있고…. 또 엄마 아빠가 귀가가 늦어서 식사 해결하기 어려운 애들도 있고…."

곤도 씨는 이곳에 오는 아이들이 각각 다른 환경의 아이들이라고 설명해 줬다. 하지만 공통점은 있었다. 여기서 밥을 먹는 걸 부끄러워하는 아이도, 주눅이 든 아이도 없다는 점. 당당히 돈을 내고 친구들과 밥을 먹는 장소다. 누구든.

매일 저녁 상 차리기 버거운 주부가 가벼운 마음으로 아이를 데리고 와 같이 식사를 해도 마음 편한 곳이 어린이 식당이다. 그리고 밥을 먹고는 또 다른 끼니, 혹은 집에서 식사를 못하고 있는 사람을 위해 도시락을 사간다.


함께 차려주는 밥상…모두 같이 키우는 우리 아이들

현재 일본 전국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어린이 식당은 모두 2,300여 곳. 모두 순수 민간차원에서 운영되고 있는 것을 생각할 때 놀라운 숫자가 아닐 수 없다.

시민단체 '어린이 식당 네트워크'의 가마이게 씨는 어린이 식당의 성공 이유에 대해 앞서 밝힌 '내가 할 수 있는 것'에서라는 말에서 이유를 찾았다.

일본 전국의 어린이 식당은 대게 일주일에 한두 번, 이 주일에 한 번 정도 문을 연다. 그리고 운영은 모두 자원봉사와 기부로 이뤄진다.

"처음에는 자녀를 다 키운 50~60대 어머니들이 '일본에 굶은 아이가 있다고?' 라는 마음으로 시작들 하셨죠." 하지만 어디까지나 자원봉사. 내가 약간의 노력으로도 할 수 있는 것부터 찾았다.

와서 식사를 만들어 줄 수 있으면 손을 빌려주고, 부식을 줄 수 있으면 음식 재료를, 자기 회사의 사무실을 내주는 장소 기부자도 생겼다. 부담스럽지 않게,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꾸준하게 그렇게 어린이 식당은 스스로 참여할 수 있는 자발적 기부자들의 힘으로 폭을 넓히며 일본 사회 곳곳으로 퍼져나갔다.


어린이 식당에서 만난 마나베 군은 고 3. 초등학교 시절 이곳에 들러 밥을 먹곤 했는데, 이제는 도울 만큼의 나이가 돼 식당이 열리는 날이면 와서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은혜를 갚는다는 생각도 있었고, 지금은 사회 복지사가 꿈이거든요. 그래서 빈곤 문제라든지 하는 것들에 관심이 있으니까…." 덤덤하면서 씩씩하게 말하는 마나베 군은 어린이 식당이 이 근처 지역 사회에 가져온 긍정적 변화를 느끼게 해줬다.

지역 사회의 중심지로 커가는 어린이 식당

'어린이 식당 네트워크'에서 이 작은 공간을 통해 찾는 의미는 2가지다.

하나는 '어린이 빈곤 대책' 그리고 또 하나는 '지역교류의 거점'이다. 아이들을 위해 밥상을 차려주다 보니, 어린이 식당은 단순히 배고픔만을 해결하는 장소를 뛰어넘고 있다는 설명이다.

지역의 어른들이 모이고, 또 지역의 어린이들이 모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우리 동네 아이들이 누군지 알고 또 서로들 관심을 두는 장소가 돼가고 있다는 것.


곳에 따라서는 식당이 열리지 않는 날은 공부방 등 또 다른 형태로 운영되면서 어린이들에게 개방되는 곳도 있다는 설명이다. 그야말로 우리 아이들을 우리가 키우는 형태로 발전해 가는 것이다.
전국적으로 어린이 식당이 들어서기 시작하면서 지자체 등의 후원도 이어져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아주 작은 울림 하나가 일본 전체로 퍼져 나가, 주변의 아이들에게 관심을 갖게 하는 '착한 메아리'를 만들어가고 있는 어린이 식당. 새로운 차원의 민간 복지 운동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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