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트맨’과 양자역학, 과학과 상상 ‘사이’

입력 2018.07.06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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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앤트맨과 와스프', 전편에 이어 양자역학의 기본 원리를 가져와 상상을 이끌어간다.

인류의 탄생과 함께 이야기가 있었다. 동굴에 모인 우리 선조들의 귀는 생존이나 번식과 관련된 이야기 앞에서 쫑긋해졌다. 사냥이나 전투, 짝짓기를 경험한 사람 주변에는 정보에 목마른 이들이 우물 찾듯 모여들었다. 사실을 경험하고 살아남아 이야기를 전한 자에게는 권력이 생겼다. 이야기는 그럴듯한 것, 실감 나는 것, 개연성 갖춘 것을 양분 삼아 진화해왔다.

20세기 들어 인류는 과학의 비약적 발전을 경험했다. 수십만 명의 생명을 한 번에 앗아갈 수 있는 기술도 눈으로 보았다. 상상력은 과학이라는 날개를 달았고 SF 서사가 발전했다. 영화는 SF를 구현하는 최적의 매체였다. 최근 개봉한 '어벤져스:인피니티 워'의 세계 매출은 현재까지 2조 3천억 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이야기꾼 마블스튜디오의 선봉장인 '아이언맨'도 현존 과학기술을 근거로 나아가고 있다. '아이언맨3'에서는 주인공 스타크의 생각만으로 아이언맨 수트가 날아와 장착되면서 기동성을 확보한다. 현실에서도 사람의 뇌파로 로봇을 작동하는 초기 기술이 가능한 단계다. 머리에 송신기를 쓴 조종자가 '오른쪽'을 생각하면 우측 방향과 관련된 뇌 속 뉴런이 활성화하고, 여기서 나온 신호를 변환해 내보내면 무선 로봇은 사람이 떠올린 방향으로 움직이는 방식이다.


■ '아이언맨3'의 위기상황에서 스타크의 연인 페퍼에게 수트가 날아가 입혀진 장면.

'아이언맨3'의 인상적인 장면(위 사진). 헬기를 탄 악당들이 저택을 무차별 공습해 연인 페퍼(기네스 펠트로)가 위험하다. '수트를 페퍼에게 입혀야 해.' 자신보다 애인이 먼저라는 스타크의 생각만으로 수트가 페퍼에게 날아가 입혀지며 목숨을 구한다. 현존 기술, 사실에서 출발한 상상이 감동을 낳는다.

'어벤져스:인피니티 워'에서 아이언맨은 나노테크놀로지를 활용한 신형 수트를 선보인다. 운동복이 아이언맨 수트로 변신한다(영화 초반에 등장하는 페퍼도 같은 운동복을 입고 있다. 스타크는 연인에게 수십억 원쯤 되는 옷을 한땀 한땀 짜 입혀준 셈이다). 현재 세계 곳곳의 연구실에서는 나노기술과 섬유공학을 결합시켜 강철보다 5~6배 강한 섬유 개발을 서두르고 있다.

'아이언맨'이 최신 테크놀로지를 먹고 자란다면 '앤트맨'의 상상은 양자역학에서 싹을 틔운다. 앤트맨은 개미처럼 작아지기도 하고 20m 크기의 거인이 되기도 한다. 극 중 행크 박사는 "원자 사이의 거리를 조정해" 이 기술을 개발했다. 이제 원자의 운동을 기술하는 학문, 양자역학에 대해 알아볼 차례다.


■ '앤트맨'은 몸을 구성하는 원자 사이의 거리를 조정해 신체 크기를 바꾼다는 설정이다.

세상 만물은 원자로 이뤄져 있다. 원자는 원자핵과 그 주변을 도는 전자로 구성된다. 달이 지구를,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도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 사이는 우주 공간처럼 비어있다. 그 거리가 얼마나 먼지 아는 게 출발이다(천체물리학에서도 이게 출발이다). 원자 속의 원자핵은 원자 반지름의 1천분의 1 ~ 10만분의 1 정도로 작다.

"수소 원자핵이 농구공만하다면 전자는 대략 10km 밖에서 움직이고 있다고 보면 된다. 전자는 크기가 거의 없을 만큼 작아서, 서울시만한 공간 안에 농구공 말고는 아무것도 없이 텅 비어 있다는 말이다. 우리의 몸도 원자로 되어 있다. 따라서 우리 몸은 사실상 텅 비어 있다." (「김상욱의 양자공부」中)

이런 원자들의 '사이'를 조정하면 된다는 게 '앤트맨'의 발상이다. 김상욱 경희대 물리학과 교수는 "물리학적으로 불가능하지만, 원자가 비어있다는 원리를 아는 사람의 상상"이라고 설명했다. 물론 "(움직이는) 전자는 '파동'을 가지며 파동의 정해진 크기는 바뀔 수 없어 현실에선 불가능하다"고 덧붙였다. 고전 물리학자는 질량보존의 법칙을, 생물학자는 신진대사를 들어 불가능하다고 말하겠지만, 중요한 건 상상의 출발이 사실이었다는 점이다.

궁금증은 남는다. 원자가 그렇게 비어있는 거라면 원자로 이뤄진 사람을 주먹으로 쳐도 뚫고 들어가게? 원자핵과 전자 사이에는 전자기력이 작용해 단단한 구조를 이룬다. 위에 설명한 전자의 파동이 '원자의 안정성'을 만들어 만물은 형체를 유지하는 것이다. 여기에 4일 개봉한 속편 '앤트맨과 와스프'의 발상이 있다.


■ '앤트맨과 와스프'에 등장하는 새로운 악역 '고스트'.

'앤트맨과 와스프'에는 악역 '고스트'가 등장한다. 주먹으로 쳐도 허공인 것처럼 소용이 없다. 어릴 적 물리학자 아버지의 실험 도중 사고로 신체에 "원자의 불안정화가 일어났다"는 설정이다. 물론 이렇게 되면 생명은커녕 형체를 유지한다는 것조차 불가능한 일이지만, 전자의 파동과 전자기력의 작용에 대해 아는 사람의 상상이다.

영화에는 '양자 얽힘' 개념도 나온다. 전편에서 원자보다 더 작아져 이 세상에서 사라진 줄 알았던 행크 박사의 부인이 주인공에게 신호를 보낸다. 앤트맨은 그녀에게 빙의된 것처럼 행동한다(웃자고 만든 이 영화의 객석에서 가장 큰 폭소가 터지는 대목은 죽자고 양자역학을 공부한 결과다). 김상욱 교수는 "(물론 말도 안되지만) 양자들의 관계에 얽힘이 일어나면 먼 거리에서도 정보를 즉각 전달할 수 있다는 원리에서 착안한 것"이라고 풀이했다. 양자 컴퓨터의 원리이기도 하다. 사실(양자 얽힘)이 감동(폭소)을 만든다.

무슨 말인지 이해 못 해도 괜찮다. 3차원 세상을 살아가는 인간의 머리로는 그릴 수 없는 영역을, 천재 물리학자들이 직관으로 가설을 세워 수학으로 증명해나가는 과정이 양자역학이다. 앤트맨은 이번 영화 곳곳에서 카드 마술을 펼쳐 보이며 '보이는 것이 실재가 아님'을 역설한다. 극 초반 그가 읽는 책 제목은 「잘못은 인간에게 있다」이다. 인식에 한계가 있는 인간에게 문제가 있을 뿐이라는 점을 인정하고 넘어가면 된다.

물리학자는 원자 사이의 관계를 연구해 진리에 다가선다. 화가는 셀 수 없이 많으면서도 미세한 차이를 가진 입자들 사이에 혼을 불어넣어 우주를 그렸다(김환기). 음악가는 건반악기의 띄엄띄엄한 음과 음 사이에서 파동하는 현악기에 집중하며 우주를 노래했다(윤이상). 현재 지구에서 가장 비싼 이야기꾼도 자신만의 방식으로 우주(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arvel Cinematic Universe)를 구현하고 있다.

■ 참고도서

김상욱, 김상욱의 양자공부, 사이언스북스
데이비드 브룩스, 소셜 애니멀, 흐름출판
스티븐 호킹, 그림으로 보는 시간의 역사, 까치
카를로 로벨리, 보이는 세상은 실재가 아니다, 쌤앤파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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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앤트맨’과 양자역학, 과학과 상상 ‘사이’
    • 입력 2018-07-06 11:36:08
    취재K
■ '앤트맨과 와스프', 전편에 이어 양자역학의 기본 원리를 가져와 상상을 이끌어간다.

인류의 탄생과 함께 이야기가 있었다. 동굴에 모인 우리 선조들의 귀는 생존이나 번식과 관련된 이야기 앞에서 쫑긋해졌다. 사냥이나 전투, 짝짓기를 경험한 사람 주변에는 정보에 목마른 이들이 우물 찾듯 모여들었다. 사실을 경험하고 살아남아 이야기를 전한 자에게는 권력이 생겼다. 이야기는 그럴듯한 것, 실감 나는 것, 개연성 갖춘 것을 양분 삼아 진화해왔다.

20세기 들어 인류는 과학의 비약적 발전을 경험했다. 수십만 명의 생명을 한 번에 앗아갈 수 있는 기술도 눈으로 보았다. 상상력은 과학이라는 날개를 달았고 SF 서사가 발전했다. 영화는 SF를 구현하는 최적의 매체였다. 최근 개봉한 '어벤져스:인피니티 워'의 세계 매출은 현재까지 2조 3천억 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이야기꾼 마블스튜디오의 선봉장인 '아이언맨'도 현존 과학기술을 근거로 나아가고 있다. '아이언맨3'에서는 주인공 스타크의 생각만으로 아이언맨 수트가 날아와 장착되면서 기동성을 확보한다. 현실에서도 사람의 뇌파로 로봇을 작동하는 초기 기술이 가능한 단계다. 머리에 송신기를 쓴 조종자가 '오른쪽'을 생각하면 우측 방향과 관련된 뇌 속 뉴런이 활성화하고, 여기서 나온 신호를 변환해 내보내면 무선 로봇은 사람이 떠올린 방향으로 움직이는 방식이다.


■ '아이언맨3'의 위기상황에서 스타크의 연인 페퍼에게 수트가 날아가 입혀진 장면.

'아이언맨3'의 인상적인 장면(위 사진). 헬기를 탄 악당들이 저택을 무차별 공습해 연인 페퍼(기네스 펠트로)가 위험하다. '수트를 페퍼에게 입혀야 해.' 자신보다 애인이 먼저라는 스타크의 생각만으로 수트가 페퍼에게 날아가 입혀지며 목숨을 구한다. 현존 기술, 사실에서 출발한 상상이 감동을 낳는다.

'어벤져스:인피니티 워'에서 아이언맨은 나노테크놀로지를 활용한 신형 수트를 선보인다. 운동복이 아이언맨 수트로 변신한다(영화 초반에 등장하는 페퍼도 같은 운동복을 입고 있다. 스타크는 연인에게 수십억 원쯤 되는 옷을 한땀 한땀 짜 입혀준 셈이다). 현재 세계 곳곳의 연구실에서는 나노기술과 섬유공학을 결합시켜 강철보다 5~6배 강한 섬유 개발을 서두르고 있다.

'아이언맨'이 최신 테크놀로지를 먹고 자란다면 '앤트맨'의 상상은 양자역학에서 싹을 틔운다. 앤트맨은 개미처럼 작아지기도 하고 20m 크기의 거인이 되기도 한다. 극 중 행크 박사는 "원자 사이의 거리를 조정해" 이 기술을 개발했다. 이제 원자의 운동을 기술하는 학문, 양자역학에 대해 알아볼 차례다.


■ '앤트맨'은 몸을 구성하는 원자 사이의 거리를 조정해 신체 크기를 바꾼다는 설정이다.

세상 만물은 원자로 이뤄져 있다. 원자는 원자핵과 그 주변을 도는 전자로 구성된다. 달이 지구를,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도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 사이는 우주 공간처럼 비어있다. 그 거리가 얼마나 먼지 아는 게 출발이다(천체물리학에서도 이게 출발이다). 원자 속의 원자핵은 원자 반지름의 1천분의 1 ~ 10만분의 1 정도로 작다.

"수소 원자핵이 농구공만하다면 전자는 대략 10km 밖에서 움직이고 있다고 보면 된다. 전자는 크기가 거의 없을 만큼 작아서, 서울시만한 공간 안에 농구공 말고는 아무것도 없이 텅 비어 있다는 말이다. 우리의 몸도 원자로 되어 있다. 따라서 우리 몸은 사실상 텅 비어 있다." (「김상욱의 양자공부」中)

이런 원자들의 '사이'를 조정하면 된다는 게 '앤트맨'의 발상이다. 김상욱 경희대 물리학과 교수는 "물리학적으로 불가능하지만, 원자가 비어있다는 원리를 아는 사람의 상상"이라고 설명했다. 물론 "(움직이는) 전자는 '파동'을 가지며 파동의 정해진 크기는 바뀔 수 없어 현실에선 불가능하다"고 덧붙였다. 고전 물리학자는 질량보존의 법칙을, 생물학자는 신진대사를 들어 불가능하다고 말하겠지만, 중요한 건 상상의 출발이 사실이었다는 점이다.

궁금증은 남는다. 원자가 그렇게 비어있는 거라면 원자로 이뤄진 사람을 주먹으로 쳐도 뚫고 들어가게? 원자핵과 전자 사이에는 전자기력이 작용해 단단한 구조를 이룬다. 위에 설명한 전자의 파동이 '원자의 안정성'을 만들어 만물은 형체를 유지하는 것이다. 여기에 4일 개봉한 속편 '앤트맨과 와스프'의 발상이 있다.


■ '앤트맨과 와스프'에 등장하는 새로운 악역 '고스트'.

'앤트맨과 와스프'에는 악역 '고스트'가 등장한다. 주먹으로 쳐도 허공인 것처럼 소용이 없다. 어릴 적 물리학자 아버지의 실험 도중 사고로 신체에 "원자의 불안정화가 일어났다"는 설정이다. 물론 이렇게 되면 생명은커녕 형체를 유지한다는 것조차 불가능한 일이지만, 전자의 파동과 전자기력의 작용에 대해 아는 사람의 상상이다.

영화에는 '양자 얽힘' 개념도 나온다. 전편에서 원자보다 더 작아져 이 세상에서 사라진 줄 알았던 행크 박사의 부인이 주인공에게 신호를 보낸다. 앤트맨은 그녀에게 빙의된 것처럼 행동한다(웃자고 만든 이 영화의 객석에서 가장 큰 폭소가 터지는 대목은 죽자고 양자역학을 공부한 결과다). 김상욱 교수는 "(물론 말도 안되지만) 양자들의 관계에 얽힘이 일어나면 먼 거리에서도 정보를 즉각 전달할 수 있다는 원리에서 착안한 것"이라고 풀이했다. 양자 컴퓨터의 원리이기도 하다. 사실(양자 얽힘)이 감동(폭소)을 만든다.

무슨 말인지 이해 못 해도 괜찮다. 3차원 세상을 살아가는 인간의 머리로는 그릴 수 없는 영역을, 천재 물리학자들이 직관으로 가설을 세워 수학으로 증명해나가는 과정이 양자역학이다. 앤트맨은 이번 영화 곳곳에서 카드 마술을 펼쳐 보이며 '보이는 것이 실재가 아님'을 역설한다. 극 초반 그가 읽는 책 제목은 「잘못은 인간에게 있다」이다. 인식에 한계가 있는 인간에게 문제가 있을 뿐이라는 점을 인정하고 넘어가면 된다.

물리학자는 원자 사이의 관계를 연구해 진리에 다가선다. 화가는 셀 수 없이 많으면서도 미세한 차이를 가진 입자들 사이에 혼을 불어넣어 우주를 그렸다(김환기). 음악가는 건반악기의 띄엄띄엄한 음과 음 사이에서 파동하는 현악기에 집중하며 우주를 노래했다(윤이상). 현재 지구에서 가장 비싼 이야기꾼도 자신만의 방식으로 우주(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arvel Cinematic Universe)를 구현하고 있다.

■ 참고도서

김상욱, 김상욱의 양자공부, 사이언스북스
데이비드 브룩스, 소셜 애니멀, 흐름출판
스티븐 호킹, 그림으로 보는 시간의 역사, 까치
카를로 로벨리, 보이는 세상은 실재가 아니다, 쌤앤파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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