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도둑’ 누명 쓴 중학생이 36년 뒤 국회에서 노숙하는 이유

입력 2018.07.11 (07:00) 수정 2018.07.11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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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굣길에 갑자기 경찰이 불러 세운다. "너, 이 새끼 이리 와봐". 겁에 질려 다가가니 대뜸 파출소 안으로 이끈다. 경찰이 가방을 뒤지다 학교에서 받은 빵을 발견한다. "임마 이거 어디서 훔쳤어". 아이는 그렇게 '빵도둑'이 돼 형제복지원으로 끌려간다.

형제복지원 피해자 최승우 씨 형제복지원 피해자 최승우 씨

1982년 평범한 중학생 최승우 씨가 '부산 형제복지원'에 가게 된 경위다. 그는 형제복지원에서 약 4년을 살았다.

"14살 때 국가는 저를 부랑아로 만들어버렸어요. 학교 다니는 아이를. 들어가자마자 저는 어른한테 소대장이라는 사람한테 강간을 당했습니다. 예쁘장하게 생기고 어리다고 해서 이틀 동안 강간을 당하고, 신입 소대로 넘어가서 두드려 맞았습니다. 14살 이후의 삶은 나는 세상이 정말 멍했어요. 형제복지원에서 나와선 악마 같은 삶을 살았죠. 삶이 그냥 폭력적이었어요. 교도소도 많이 왔다 갔다 하고"(최승우)

형제복지원 농성장형제복지원 농성장

국회 입구 한 켠에 비닐로 만든 천막. 이곳에서 또 다른 피해자 한종선 씨와 지낸다. 사납기로 소문난 여의도 칼바람 속에 겨울을 났고, 아스팔트 열기가 와 닿는 도롯가에서 여름을 맞는다. 지난해 11월 시작한 농성은 240일을 넘었다. 지하철역 화장실에서 씻고, 농성장에서 먹는다.

"우리가 괜찮은 척하고 버티고 있어야지만 사람들이 아, 저 사람들 저렇게 인내심을 갖고 버티는데 우리가 뭐라도 도와줘야되겠다 하면서 입법발의가 됐든 아니면 청원이 됐든 동조를 해줄 거 아닙니까? 그런데 우리가 계속 아파하고 추워하고 이러면 불쌍함의 동정은 한계가 있다라는 거죠. 도와주는 데까지는 안 와요. 그냥 적선식으로 하는 건 있어도"(한종선)


형제복지원은 말 그대로 '죽음의 수용소'였다. 1987년까지 12년간 숨진 원생이 513명이다. 전두환 정권이 만든 '내무부 훈령 410호'는 수용소의 불법감금을 정당화했고, 경찰과 공무원들은 평범한 시민들을 붙잡아 형제복지원으로 밀어 넣었다. 국가의 비호 속에 형제복지원은 원생들을 착취하고 학대했다.

국가는 참상이 드러난 뒤에도 이들을 외면했다. 30년 넘게 국가 차원의 진상규명은 단 한 차례도 없었다.

국가인권위는 형제복지원 사건을 "대통령 명령에 따라 국가조직에 의한 강제구금이자 원시적이고 반문명적인 인권침해사건"으로 규정했다. 지난 1월에는 "피해자들이 고통의 나날을 보내고 있다는 점에서 현재의 인권 문제"라며 특별법 제정 권고문을 국회에 보냈다.

형제복지원 피해자 최승우 한종선 씨 형제복지원 피해자 최승우 한종선 씨

하지만 관련 법안은 19대에 이어 20대 국회에서도 계류 중이다. 국회가 해당 법안을 논의한 건 올해 2월 단 이틀. 이 회의에서 자유한국당은 법안에 대해 정확히 이해가 안됐다며 논의를 미뤘고, 당장 통과시켜야 되냐며 시급성을 외면했다. 드루킹 특검 등을 놓고 여야 대치가 이어지면서 이후엔 공식적인 논의조차 없었다.

"저희가 바라는 것은 국회의원들이 해야 할 역할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 거잖아요. 억울한 사람이 있으면 구제하고 사회가 돌아가는데 필요한 법들을 만드는 곳이잖아요. 근데 그 법을 만드는 국회의원들이 책임 방기하고 있는 모습들을 지금 몇 개월 째 계속 지켜보다보니까 너무 지치고 힘들고 화도 나고 그런 거죠"(한종선)

형제복지원 피해자 최승우 씨형제복지원 피해자 최승우 씨

농성장 옆에 붙여 놓은 형제복지원 관련 글과 사진은 비와 눈을 맞아 낡아간다. 하지만 아직도 이들은 농성장에 있다.

"지금 세상은 많이 변했죠. 국민들이 이렇게 다 변화를 시켜온 것들이죠. 그래서 세상이 바뀌지 않는데 세상이 그때부터 바뀌지 않음에서 서서히 변해왔는데 나라고 못 바뀔 이유가 없잖아요. 저도 바뀌어야 되죠. 국가는 나를 부랑인, 부랑아로 만들었지만 나는 새로운 인간으로서 거듭나서 떳떳하게 싸워야 되겠다. 떳떳하게 주장해야 되겠다 라는 남다른 생각이 여기에서 생겼죠" (최승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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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7-11 07:00:08
    • 수정2018-07-11 07:00:08
    취재K
하굣길에 갑자기 경찰이 불러 세운다. "너, 이 새끼 이리 와봐". 겁에 질려 다가가니 대뜸 파출소 안으로 이끈다. 경찰이 가방을 뒤지다 학교에서 받은 빵을 발견한다. "임마 이거 어디서 훔쳤어". 아이는 그렇게 '빵도둑'이 돼 형제복지원으로 끌려간다.

형제복지원 피해자 최승우 씨
1982년 평범한 중학생 최승우 씨가 '부산 형제복지원'에 가게 된 경위다. 그는 형제복지원에서 약 4년을 살았다.

"14살 때 국가는 저를 부랑아로 만들어버렸어요. 학교 다니는 아이를. 들어가자마자 저는 어른한테 소대장이라는 사람한테 강간을 당했습니다. 예쁘장하게 생기고 어리다고 해서 이틀 동안 강간을 당하고, 신입 소대로 넘어가서 두드려 맞았습니다. 14살 이후의 삶은 나는 세상이 정말 멍했어요. 형제복지원에서 나와선 악마 같은 삶을 살았죠. 삶이 그냥 폭력적이었어요. 교도소도 많이 왔다 갔다 하고"(최승우)

형제복지원 농성장
국회 입구 한 켠에 비닐로 만든 천막. 이곳에서 또 다른 피해자 한종선 씨와 지낸다. 사납기로 소문난 여의도 칼바람 속에 겨울을 났고, 아스팔트 열기가 와 닿는 도롯가에서 여름을 맞는다. 지난해 11월 시작한 농성은 240일을 넘었다. 지하철역 화장실에서 씻고, 농성장에서 먹는다.

"우리가 괜찮은 척하고 버티고 있어야지만 사람들이 아, 저 사람들 저렇게 인내심을 갖고 버티는데 우리가 뭐라도 도와줘야되겠다 하면서 입법발의가 됐든 아니면 청원이 됐든 동조를 해줄 거 아닙니까? 그런데 우리가 계속 아파하고 추워하고 이러면 불쌍함의 동정은 한계가 있다라는 거죠. 도와주는 데까지는 안 와요. 그냥 적선식으로 하는 건 있어도"(한종선)


형제복지원은 말 그대로 '죽음의 수용소'였다. 1987년까지 12년간 숨진 원생이 513명이다. 전두환 정권이 만든 '내무부 훈령 410호'는 수용소의 불법감금을 정당화했고, 경찰과 공무원들은 평범한 시민들을 붙잡아 형제복지원으로 밀어 넣었다. 국가의 비호 속에 형제복지원은 원생들을 착취하고 학대했다.

국가는 참상이 드러난 뒤에도 이들을 외면했다. 30년 넘게 국가 차원의 진상규명은 단 한 차례도 없었다.

국가인권위는 형제복지원 사건을 "대통령 명령에 따라 국가조직에 의한 강제구금이자 원시적이고 반문명적인 인권침해사건"으로 규정했다. 지난 1월에는 "피해자들이 고통의 나날을 보내고 있다는 점에서 현재의 인권 문제"라며 특별법 제정 권고문을 국회에 보냈다.

형제복지원 피해자 최승우 한종선 씨
하지만 관련 법안은 19대에 이어 20대 국회에서도 계류 중이다. 국회가 해당 법안을 논의한 건 올해 2월 단 이틀. 이 회의에서 자유한국당은 법안에 대해 정확히 이해가 안됐다며 논의를 미뤘고, 당장 통과시켜야 되냐며 시급성을 외면했다. 드루킹 특검 등을 놓고 여야 대치가 이어지면서 이후엔 공식적인 논의조차 없었다.

"저희가 바라는 것은 국회의원들이 해야 할 역할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 거잖아요. 억울한 사람이 있으면 구제하고 사회가 돌아가는데 필요한 법들을 만드는 곳이잖아요. 근데 그 법을 만드는 국회의원들이 책임 방기하고 있는 모습들을 지금 몇 개월 째 계속 지켜보다보니까 너무 지치고 힘들고 화도 나고 그런 거죠"(한종선)

형제복지원 피해자 최승우 씨
농성장 옆에 붙여 놓은 형제복지원 관련 글과 사진은 비와 눈을 맞아 낡아간다. 하지만 아직도 이들은 농성장에 있다.

"지금 세상은 많이 변했죠. 국민들이 이렇게 다 변화를 시켜온 것들이죠. 그래서 세상이 바뀌지 않는데 세상이 그때부터 바뀌지 않음에서 서서히 변해왔는데 나라고 못 바뀔 이유가 없잖아요. 저도 바뀌어야 되죠. 국가는 나를 부랑인, 부랑아로 만들었지만 나는 새로운 인간으로서 거듭나서 떳떳하게 싸워야 되겠다. 떳떳하게 주장해야 되겠다 라는 남다른 생각이 여기에서 생겼죠" (최승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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