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로 광고판의 비밀…기무사 전횡 근절될까

입력 2018.08.07 (08:00) 수정 2018.08.07 (13:26)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경기도 고양시 덕은동 인근 자유로에 설치된 육군 홍보 광고 (출처 : 올해 4월 촬영 네이버 스트리트뷰)경기도 고양시 덕은동 인근 자유로에 설치된 육군 홍보 광고 (출처 : 올해 4월 촬영 네이버 스트리트뷰)

자유로를 달리다보면 터널 같은 콘크리트 구조물 앞뒤로 부착된 육군 홍보 간판을 볼 수 있다. 이 곳의 간판은 불과 3년 전만 해도 한 타이어업체의 광고였다. 상업 광고가 육군 홍보 내용으로 바뀐 배경에는 이제 역사속으로 사라지는 국군기무사령부가 자리 잡고 있다.

"20년 이상 광고간판 독점은 위법"…광고업자의 민원 제기

2014년 12월 옥외광고업자 박 모 씨는 국민권익위원회에 민원을 제기했다. "군사시설가림간판 운영권을 20년 이상 수의계약으로 특정업체에게 준 것은 위법하다"는 내용이었다. 박 씨의 민원대상에는 수도방위사령관, 육군 제1‧3 야전군사령관, 제2작전사령관, 제1‧5‧6군단장, 특수전사령관 등 육군의 주요 지휘관이 망라됐다.

육군 홍보 광고가 설치된 장소는 원래 상업광고가 걸려 있던 곳이었다. (출처 : 2010년 촬영 구글스트리트뷰. 권익위 자료)육군 홍보 광고가 설치된 장소는 원래 상업광고가 걸려 있던 곳이었다. (출처 : 2010년 촬영 구글스트리트뷰. 권익위 자료)

박 씨가 말하는 '군사시설가림간판'이 바로 위 사진 속 광고판이다. 박 씨로서는 유동 인구가 많은 자유로의 광고 운영권을 따내 사업을 하고 싶은데 계약 참여 기획 자체가 박탈됐다는 주장이었다. 박 씨가 언급한 '특정업체'는 바로 국군기무사령부의 퇴직자들이 참여한 'S기획'이었다.

기무사 퇴직자 운영 'S기획'…땅짚고 헤엄치며 매년 수십억 원 이익

간판이 설치된 콘크리트 구조물은 북한군의 침투를 막기 위한 대전차 장애물이다. 1988년 서울올림픽과 1990년 남북고위급회담 준비 과정에서 위장, 차단을 위해 광고판을 부착하기 시작했다. 말 그대로 '군사시설을 가리기 위한 간판'인 셈이다.

국방부는 1989년 <군사시설 위장 광고간판 설치 규정>을 제정하면서 간판 제작업체를 공익 단체로 제한하고 수의계약으로 선정하도록 규정했다. 최초로 간판을 기부채납한 업체에게 광고 영업 독점권을 인정한 것이다. 1996년 감사원은 수의계약 방식을 바꾸라고 권고했다. 이에 국방부가 새로 훈령을 제정하면서 경쟁계약을 도입했지만, 훈령 제정 이전에 간판을 기부한 업체에 대한 수의계약 권한은 인정했다.

그렇다면 'S기획'은 대체 얼마나 많은 곳의 가림간판을 독점적으로 확보했고, 얼마나 수입을 올렸을까. 당시 권익위가 파악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권익위는 'S기획'에 주어진 특혜가 연간 20억 원 정도라고 판단했다. 결국 "국유재산법과 국가계약법을 위반한 가림간판 수의계약 갱신 제도를 폐지하고, 군사시설에 상업 광고를 게제하는 것은 설치 목적과 취지에 부합하지 않으므로 공익 목적의 홍보용으로만 사용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권익위는 의결했다.

2015년 7월 국민권익위원회 의결서2015년 7월 국민권익위원회 의결서

수십년 간 수의계약이 반복되는 동안 해당 부대가 매번 적극적으로 'S기획'의 뒤를 봐준 건 아니었다. 당시 권익위의 가림간판 민원 담당자는 김영수 조사관(현 국방권익연구소장)이었다. 가림간판 관리 부대의 담당 장교들을 만났던 김 소장은 "그동안 'S기획'을 봐주라고 압박했던 기무사 요원들이 꼴보기 싫었는데 민원이 접수됐다는 소식에 오히려 반가워했다"며 "담당 장교들이 오히려 제도 개선을 요구했다"고 말했다. 보통 2~3년의 계약 기간이 끝날 때 마다 경쟁계약을 고려했지만 외압 때문에 관행대로 할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었다.

김 소장은 당시 기무사령부에도 질의를 했다. 기무사는 "기무사 퇴작자들의 일이지 현직은 관여한 것이 없다"며 오히려 "외압을 행사하는 현직 기무요원 명단을 달라"고 했다고 한다. 하지만 김 소장은 끝내 명단을 주지 않았다. "외압을 행사했다는 현직 기무요원의 명단을 보면, 그 사람이 담당한 부대의 가림간판 담당자가 드러날 것이 뻔하고 보복을 받을 것이 당연했기 때문이었다"고 김소장은 말했다. 김 소장은 "조사 과정에서 'S기획'으로부터 협박을 받기도 했다"며 광고업계에 수소문해보니 'S기획'은 실체도 모호한 '페이퍼 컴퍼니'였다"고 말했다. 페이퍼 컴퍼니였던 'S기획'이 수의계약으로 얻은수익이 얼마인지, 그 금액이 어디로 흘러들어갔는지는 여전히 베일에 가려져 있다.

2009년 현역 소령 신분으로 방송에 출연해 군납비리를 폭로한 김영수 소장. 부패 신고 공로로 훈장을 받았지만 전역한 뒤 국민권익위 국방분야 조사관으로  활동했다. 권익위 결정으로 군사시설가림간판에는 공익 홍보만 가능해졌다.2009년 현역 소령 신분으로 방송에 출연해 군납비리를 폭로한 김영수 소장. 부패 신고 공로로 훈장을 받았지만 전역한 뒤 국민권익위 국방분야 조사관으로 활동했다. 권익위 결정으로 군사시설가림간판에는 공익 홍보만 가능해졌다.

송영무 국방부 장관은 지난 4일 남영신 신임 기무사령관 취임식에서 ▲ 정치 개입 차단 ▲ 민간인 사찰 금지 ▲ 특권의식 내려놓기 등 3가지 개혁 원칙을 제시했다. 기무사의 계엄 검토 문건과 세월호 유가족 사찰 의혹이 드러나면서 정치 개입과 민간인 사찰의 심각성은 크게 부각됐다. 하지만 기무사를 겪었던 현역 또는 예비역 군인들은 '가림간판 수의계약' 과정에서 볼 수 있듯 '현역-퇴직'간의 끈끈한 연결 고리를 기반으로 한 방산비리나 군납비리가 훨씬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지난 4일 신임 기무사령관 취임식. 송영무 국방장관(좌)과 남영신 신임 기무사령관(우)지난 4일 신임 기무사령관 취임식. 송영무 국방장관(좌)과 남영신 신임 기무사령관(우)

정치개입, 민간인 사찰…핵심은 방산비리

방위사업청에서 근무한 적이 있는 한 예비역 영관 장교는 "기무 요원이 사업 계획 단계부터 집요하게 내용을 알려달라고 요구하는데 거절했다가는 내 인사에 개입해서 보복할게 뻔해 알려줄 수 밖에 없었다. 문제는 이렇게 미리 빼내간 정보가 방산업체에 재취업한 기무부대 출신들에게 흘러들어가는 경우를 수없이 겪었다"고 털어놨다.
국방부의 한 현직 영관 장교는 "잘못된 제도를 건의를 했는데 알고 보니 그로 인한 특혜를 받는 업체에 기무부대 출신 퇴직자가 근무하고 있는 경우가 있다. 그럴 경우 조용히 있어야지 계속 문제 제기를 했다가는 '되치기'(보복)를 당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지적했다.
한 예비역 영관 장교는 "방산업체에 재취업한 기무부대 출신들을 전수조사해보면 어마어마할 것"이라며 "보안감사 명목으로 방산업체에 미치는 기무사의 영향력이 워낙 커서 기무사 퇴직자들을 채용할 수 밖에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

국방부는 오늘(6일) 기무사령부를 대체하는 군사안보지원사령부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정치개입과 민간인 사찰은 철저히 금지되겠지만, 지금껏 어느 누구도 견제하지 못한 방산분야에서의 전횡은 과연 근절될 수 있을까.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자유로 광고판의 비밀…기무사 전횡 근절될까
    • 입력 2018-08-07 08:00:49
    • 수정2018-08-07 13:26:43
    취재K
경기도 고양시 덕은동 인근 자유로에 설치된 육군 홍보 광고 (출처 : 올해 4월 촬영 네이버 스트리트뷰)
자유로를 달리다보면 터널 같은 콘크리트 구조물 앞뒤로 부착된 육군 홍보 간판을 볼 수 있다. 이 곳의 간판은 불과 3년 전만 해도 한 타이어업체의 광고였다. 상업 광고가 육군 홍보 내용으로 바뀐 배경에는 이제 역사속으로 사라지는 국군기무사령부가 자리 잡고 있다.

"20년 이상 광고간판 독점은 위법"…광고업자의 민원 제기

2014년 12월 옥외광고업자 박 모 씨는 국민권익위원회에 민원을 제기했다. "군사시설가림간판 운영권을 20년 이상 수의계약으로 특정업체에게 준 것은 위법하다"는 내용이었다. 박 씨의 민원대상에는 수도방위사령관, 육군 제1‧3 야전군사령관, 제2작전사령관, 제1‧5‧6군단장, 특수전사령관 등 육군의 주요 지휘관이 망라됐다.

육군 홍보 광고가 설치된 장소는 원래 상업광고가 걸려 있던 곳이었다. (출처 : 2010년 촬영 구글스트리트뷰. 권익위 자료)
박 씨가 말하는 '군사시설가림간판'이 바로 위 사진 속 광고판이다. 박 씨로서는 유동 인구가 많은 자유로의 광고 운영권을 따내 사업을 하고 싶은데 계약 참여 기획 자체가 박탈됐다는 주장이었다. 박 씨가 언급한 '특정업체'는 바로 국군기무사령부의 퇴직자들이 참여한 'S기획'이었다.

기무사 퇴직자 운영 'S기획'…땅짚고 헤엄치며 매년 수십억 원 이익

간판이 설치된 콘크리트 구조물은 북한군의 침투를 막기 위한 대전차 장애물이다. 1988년 서울올림픽과 1990년 남북고위급회담 준비 과정에서 위장, 차단을 위해 광고판을 부착하기 시작했다. 말 그대로 '군사시설을 가리기 위한 간판'인 셈이다.

국방부는 1989년 <군사시설 위장 광고간판 설치 규정>을 제정하면서 간판 제작업체를 공익 단체로 제한하고 수의계약으로 선정하도록 규정했다. 최초로 간판을 기부채납한 업체에게 광고 영업 독점권을 인정한 것이다. 1996년 감사원은 수의계약 방식을 바꾸라고 권고했다. 이에 국방부가 새로 훈령을 제정하면서 경쟁계약을 도입했지만, 훈령 제정 이전에 간판을 기부한 업체에 대한 수의계약 권한은 인정했다.

그렇다면 'S기획'은 대체 얼마나 많은 곳의 가림간판을 독점적으로 확보했고, 얼마나 수입을 올렸을까. 당시 권익위가 파악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권익위는 'S기획'에 주어진 특혜가 연간 20억 원 정도라고 판단했다. 결국 "국유재산법과 국가계약법을 위반한 가림간판 수의계약 갱신 제도를 폐지하고, 군사시설에 상업 광고를 게제하는 것은 설치 목적과 취지에 부합하지 않으므로 공익 목적의 홍보용으로만 사용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권익위는 의결했다.

2015년 7월 국민권익위원회 의결서
수십년 간 수의계약이 반복되는 동안 해당 부대가 매번 적극적으로 'S기획'의 뒤를 봐준 건 아니었다. 당시 권익위의 가림간판 민원 담당자는 김영수 조사관(현 국방권익연구소장)이었다. 가림간판 관리 부대의 담당 장교들을 만났던 김 소장은 "그동안 'S기획'을 봐주라고 압박했던 기무사 요원들이 꼴보기 싫었는데 민원이 접수됐다는 소식에 오히려 반가워했다"며 "담당 장교들이 오히려 제도 개선을 요구했다"고 말했다. 보통 2~3년의 계약 기간이 끝날 때 마다 경쟁계약을 고려했지만 외압 때문에 관행대로 할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었다.

김 소장은 당시 기무사령부에도 질의를 했다. 기무사는 "기무사 퇴작자들의 일이지 현직은 관여한 것이 없다"며 오히려 "외압을 행사하는 현직 기무요원 명단을 달라"고 했다고 한다. 하지만 김 소장은 끝내 명단을 주지 않았다. "외압을 행사했다는 현직 기무요원의 명단을 보면, 그 사람이 담당한 부대의 가림간판 담당자가 드러날 것이 뻔하고 보복을 받을 것이 당연했기 때문이었다"고 김소장은 말했다. 김 소장은 "조사 과정에서 'S기획'으로부터 협박을 받기도 했다"며 광고업계에 수소문해보니 'S기획'은 실체도 모호한 '페이퍼 컴퍼니'였다"고 말했다. 페이퍼 컴퍼니였던 'S기획'이 수의계약으로 얻은수익이 얼마인지, 그 금액이 어디로 흘러들어갔는지는 여전히 베일에 가려져 있다.

2009년 현역 소령 신분으로 방송에 출연해 군납비리를 폭로한 김영수 소장. 부패 신고 공로로 훈장을 받았지만 전역한 뒤 국민권익위 국방분야 조사관으로  활동했다. 권익위 결정으로 군사시설가림간판에는 공익 홍보만 가능해졌다.
송영무 국방부 장관은 지난 4일 남영신 신임 기무사령관 취임식에서 ▲ 정치 개입 차단 ▲ 민간인 사찰 금지 ▲ 특권의식 내려놓기 등 3가지 개혁 원칙을 제시했다. 기무사의 계엄 검토 문건과 세월호 유가족 사찰 의혹이 드러나면서 정치 개입과 민간인 사찰의 심각성은 크게 부각됐다. 하지만 기무사를 겪었던 현역 또는 예비역 군인들은 '가림간판 수의계약' 과정에서 볼 수 있듯 '현역-퇴직'간의 끈끈한 연결 고리를 기반으로 한 방산비리나 군납비리가 훨씬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지난 4일 신임 기무사령관 취임식. 송영무 국방장관(좌)과 남영신 신임 기무사령관(우)
정치개입, 민간인 사찰…핵심은 방산비리

방위사업청에서 근무한 적이 있는 한 예비역 영관 장교는 "기무 요원이 사업 계획 단계부터 집요하게 내용을 알려달라고 요구하는데 거절했다가는 내 인사에 개입해서 보복할게 뻔해 알려줄 수 밖에 없었다. 문제는 이렇게 미리 빼내간 정보가 방산업체에 재취업한 기무부대 출신들에게 흘러들어가는 경우를 수없이 겪었다"고 털어놨다.
국방부의 한 현직 영관 장교는 "잘못된 제도를 건의를 했는데 알고 보니 그로 인한 특혜를 받는 업체에 기무부대 출신 퇴직자가 근무하고 있는 경우가 있다. 그럴 경우 조용히 있어야지 계속 문제 제기를 했다가는 '되치기'(보복)를 당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지적했다.
한 예비역 영관 장교는 "방산업체에 재취업한 기무부대 출신들을 전수조사해보면 어마어마할 것"이라며 "보안감사 명목으로 방산업체에 미치는 기무사의 영향력이 워낙 커서 기무사 퇴직자들을 채용할 수 밖에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

국방부는 오늘(6일) 기무사령부를 대체하는 군사안보지원사령부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정치개입과 민간인 사찰은 철저히 금지되겠지만, 지금껏 어느 누구도 견제하지 못한 방산분야에서의 전횡은 과연 근절될 수 있을까.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