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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이산가족 상봉
‘시간과의 애타는 싸움’…그동안의 이산가족 만남 살펴보니
입력 2018.08.20 (11:31) 취재K
제21차 남북 이산가족 상봉 공식 일정이 오늘(20일)부터 시작됐다.

전날(19일) 사전 집결을 위해 속초에 모인 우리 측 상봉단 89명과 동행 가족은 오늘 오전 속초를 떠나 금강산으로 향했다. 상봉단을 포함한 우리 측 방문단은 통일부와 대한적십자사, 현대아산 등 지원 인력을 포함해 560여 명으로 구성됐다.

2015년 10월 이후 2년 10개월 만에 이뤄지는 오늘 이산가족 상봉은 지난 4월27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8.15를 계기로 상봉행사를 하기로 합의함에 따라 열리게 됐다.


역대 이산가족 상봉 살펴보니

한국전쟁 이후 남북이 분단되면서 약 1,000만 명의 이산가족이 발생했다.

이후 남북 적십자사 간 이산가족 상봉에 대한 논의가 있었으나 실행되지 못했고 이산가족들은 서로의 생사를 모른 채 가슴에 한을 품고 살아야 했다. 그러던 중 지난 1985년 '남북 이산가족 고향방문단 및 예술공연단'으로 역사적인 첫 상봉이 이뤄졌다. 당시 남측 35명과 북측 30명이 가족을 만났다. 이러한 제1차 고향방문단 교환 이후 2차 방문단에 대한 협의가 진행됐으나 남북관계가 악화되면서 상봉 성사로까지 이어지지는 못했다.


남북 이산가족 상봉을 위해 꾸준한 접촉을 하던 남북은 1985년 이후 15년 만에 다시 한 번 이산가족행사에 합의, 이산가족들은 그리운 가족을 만날 기회를 잡는다.

2000년 6·15 남북정상회담에서 합의된 '6·15 남북공동선언'에서 이산가족 문제 등 인도적 문제를 조속히 해결하기로 합의하고, 이후 남북적십자회담이 개최되어 이산가족방문단 교환, 생사·주소 확인, 서신 교환 등 시범적 사업이 논의되었다. 그리고 2000년 8월 드디어 제1차 이산가족방문단 교환이 성사되었다. 이후 2005년 8월 15일에는 분단 후 처음으로 서울과 평양, 그리고 평양과 인천, 수원, 대전, 대구, 광주, 부산 등 남쪽 주요 도시를 서로 연결한 화상상봉이 이루어졌다. 당시 남쪽에서 상봉자 20명과 그 동반가족 57명이 북쪽 가족 50명을, 북쪽에서는 상봉자 20명이 남쪽 가족 79명을 각각 화상으로 상봉해, 모두 226명의 상봉이 성사됐다.


2007년 11월에 열린 제7차 화상상봉 행사에는 남과 북 39가족씩 모두 78가족, 500여 명이 참가해 남북을 광전용망으로 연결한 화상회의 시스템을 통해 만남을 가졌다.

이후 2010년 제18차 방문상봉 1차 행사 때는 북측의 상봉 신청자 97명과 남측 가족 436명 등 총 533명의 이산가족이 재회하였고, 제18차 방문상봉 2차 행사 때는 남측의 상봉 신청자 96명이 북측 가족 207명을 만났다.

해마다 열리던 상봉행사는 2010년 말 발생한 북한의 연평도 포격사건 이후 중단되었다가, 2014년 2월 제19차 상봉이 재개됐다. 그리고 2015년 8월 25일 남북 고위급 접촉 합의문에서 남북 이산가족 상봉 방침이 정해지면서 10월 20일부터 26일까지 상봉 행사가 진행됐다.

지금까지 열린 이산가족 상봉행사는 모두 20차례, 총 4,677가족 2만 3,519명이 상봉의 기쁨을 누렸다. 하지만 생존한 5만 8,000여 명의 이산가족 상봉 신청자 가운데 절반 이상이 80세 이상의 고령자이며 아직도 많은 이산가족이 상봉을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70여 년간 헤어졌던 이산가족들은 눈 감기 전 형제를 만날 수 있다면, 고향 땅을 밟아볼 수 있다면, 자식을 만날 수 있다면 저마다 한을 가슴에 품고 시간과의 애타는 싸움을 벌이고 있다.

전문가들은 지금처럼 이벤트식으로 만나선 고령의 이산가족들의 한을 풀기가 어렵다며 먼저 생사확인과 상봉 정례화가 이뤄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또 남북 이산가족 상봉이 주기적으로 이뤄지면 향후 남북관계는 물론 한반도의 항구적인 평화 구축을 위한 마중물 역할도 기대할 수 있다는 게 중론이다.
  • ‘시간과의 애타는 싸움’…그동안의 이산가족 만남 살펴보니
    • 입력 2018-08-20 11:31:22
    취재K
제21차 남북 이산가족 상봉 공식 일정이 오늘(20일)부터 시작됐다.

전날(19일) 사전 집결을 위해 속초에 모인 우리 측 상봉단 89명과 동행 가족은 오늘 오전 속초를 떠나 금강산으로 향했다. 상봉단을 포함한 우리 측 방문단은 통일부와 대한적십자사, 현대아산 등 지원 인력을 포함해 560여 명으로 구성됐다.

2015년 10월 이후 2년 10개월 만에 이뤄지는 오늘 이산가족 상봉은 지난 4월27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8.15를 계기로 상봉행사를 하기로 합의함에 따라 열리게 됐다.


역대 이산가족 상봉 살펴보니

한국전쟁 이후 남북이 분단되면서 약 1,000만 명의 이산가족이 발생했다.

이후 남북 적십자사 간 이산가족 상봉에 대한 논의가 있었으나 실행되지 못했고 이산가족들은 서로의 생사를 모른 채 가슴에 한을 품고 살아야 했다. 그러던 중 지난 1985년 '남북 이산가족 고향방문단 및 예술공연단'으로 역사적인 첫 상봉이 이뤄졌다. 당시 남측 35명과 북측 30명이 가족을 만났다. 이러한 제1차 고향방문단 교환 이후 2차 방문단에 대한 협의가 진행됐으나 남북관계가 악화되면서 상봉 성사로까지 이어지지는 못했다.


남북 이산가족 상봉을 위해 꾸준한 접촉을 하던 남북은 1985년 이후 15년 만에 다시 한 번 이산가족행사에 합의, 이산가족들은 그리운 가족을 만날 기회를 잡는다.

2000년 6·15 남북정상회담에서 합의된 '6·15 남북공동선언'에서 이산가족 문제 등 인도적 문제를 조속히 해결하기로 합의하고, 이후 남북적십자회담이 개최되어 이산가족방문단 교환, 생사·주소 확인, 서신 교환 등 시범적 사업이 논의되었다. 그리고 2000년 8월 드디어 제1차 이산가족방문단 교환이 성사되었다. 이후 2005년 8월 15일에는 분단 후 처음으로 서울과 평양, 그리고 평양과 인천, 수원, 대전, 대구, 광주, 부산 등 남쪽 주요 도시를 서로 연결한 화상상봉이 이루어졌다. 당시 남쪽에서 상봉자 20명과 그 동반가족 57명이 북쪽 가족 50명을, 북쪽에서는 상봉자 20명이 남쪽 가족 79명을 각각 화상으로 상봉해, 모두 226명의 상봉이 성사됐다.


2007년 11월에 열린 제7차 화상상봉 행사에는 남과 북 39가족씩 모두 78가족, 500여 명이 참가해 남북을 광전용망으로 연결한 화상회의 시스템을 통해 만남을 가졌다.

이후 2010년 제18차 방문상봉 1차 행사 때는 북측의 상봉 신청자 97명과 남측 가족 436명 등 총 533명의 이산가족이 재회하였고, 제18차 방문상봉 2차 행사 때는 남측의 상봉 신청자 96명이 북측 가족 207명을 만났다.

해마다 열리던 상봉행사는 2010년 말 발생한 북한의 연평도 포격사건 이후 중단되었다가, 2014년 2월 제19차 상봉이 재개됐다. 그리고 2015년 8월 25일 남북 고위급 접촉 합의문에서 남북 이산가족 상봉 방침이 정해지면서 10월 20일부터 26일까지 상봉 행사가 진행됐다.

지금까지 열린 이산가족 상봉행사는 모두 20차례, 총 4,677가족 2만 3,519명이 상봉의 기쁨을 누렸다. 하지만 생존한 5만 8,000여 명의 이산가족 상봉 신청자 가운데 절반 이상이 80세 이상의 고령자이며 아직도 많은 이산가족이 상봉을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70여 년간 헤어졌던 이산가족들은 눈 감기 전 형제를 만날 수 있다면, 고향 땅을 밟아볼 수 있다면, 자식을 만날 수 있다면 저마다 한을 가슴에 품고 시간과의 애타는 싸움을 벌이고 있다.

전문가들은 지금처럼 이벤트식으로 만나선 고령의 이산가족들의 한을 풀기가 어렵다며 먼저 생사확인과 상봉 정례화가 이뤄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또 남북 이산가족 상봉이 주기적으로 이뤄지면 향후 남북관계는 물론 한반도의 항구적인 평화 구축을 위한 마중물 역할도 기대할 수 있다는 게 중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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