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들 맞다면, 여러 말 안 해도 알아”…설렌 마음 안고 北으로

입력 2018.08.20 (12:49) 수정 2018.08.20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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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들이면 여러 말 안 해도 알아...너도 술 좋아하느냐 물어야지"

60여 년 만에 북에 두고 온 아들을 만나는 이기순(91) 씨는 가족들에 대한 기억이 또렷했다. 1951년 1·4 후퇴 때 형과 단둘이 월남하기 전까지 일가친척이 황해도 연백에 모여 살았다. 그때 헤어진 두 살배기 아들은 어느새 일흔다섯 살 노인이 됐다. 수십 년 그리워한 피붙이를 만나면서도 얼굴을 알아보지 못할까 걱정해야 하는 게 대부분의 이산가족이 놓인 처지다. 이 씨도 "아들을 만나면 가장 먼저 어디서 살았는지 물어보겠다"며 간절함을 드러냈다. 연백의 고향 마을 이름을 댄다면, 여러 말 하지 않아도 진짜 친아들이 맞다는 것. '직접 만나기 전에는 모른다'면서도 이 씨는 처음 보는 손녀와 아들을 위해 옷가지와 화장품 등을 챙겼다. 술을 좋아해 요즘도 반주로 소주 한 병 반을 비운다는 이 씨는 친아들로 확인되면 "너도 술 좋아하느냐고 물어봐야지"라며 웃었다.

"한 달에도 두 번씩 깃발 바뀌어...곧 돌아갈 줄 알았다"

19일 오후 ‘여동생을 보면 기분이 어떻겠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김춘식(80)씨가 답하고 있다.19일 오후 ‘여동생을 보면 기분이 어떻겠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김춘식(80)씨가 답하고 있다.

이산가족 가운데 영영 다시 못 볼 줄 직감하고 이별한 경우는 많지 않다. 대부분 '그게 마지막이 될 줄 몰랐다'고 입을 모은다. 전쟁통이었지만 판세는 자주 바뀌었고 인민군은 점령과 후퇴를 반복했다. 황해도 옹진군에서 태어난 김춘식(80) 씨는 "한 달에도 두 번씩 인공기와 태극기가 번갈아 나부꼈다"고 회상했다.

김 씨는 이번 행사에서 여동생 2명을 만난다. 언젠가 다시 돌아올 거란 생각으로 피난길에 어린 여동생을 조부모님과 함께 고향에 남긴 게 화근이었다. "조그만 애들은 잡아가지 않으니까." 인민군이 마을을 점령할 때마다 몇 차례 피난을 갔던 김 씨는 마지막으로 집을 나올 때도 '한 달이면 물러가겠지'하는 생각을 했다.

2박 3일 동안 김 씨는 남동생 김춘영(64) 씨와 동행한다. 춘영 씨는 부모님이 월남한 뒤 인천에서 낳은 막내다. 동생 입장에선 처음 보는 누나를 만나는 셈이다. 동생 김 씨는 "부모님이 돌아가실 때까지 한 번도 누나들이나 고향 얘기를 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너무 마음이 아파서 차마 입을 못 뗀 게 아닌가 싶다"고 전했다. 형 춘식 씨는 여동생을 만나면 "'춘자야, 어머니 아버지 다 보내고 어떻게 살았어. 고생 많이 했지'하며 울 것 같다"고 했다.

"개성 공단 北 인부와 이름 같아...혹시 조카일까"

19일 오후 속초 한화리조트에 도착해 기자들 질문에 답하는 동생 김종삼(79), 형 김종태(81) 씨.19일 오후 속초 한화리조트에 도착해 기자들 질문에 답하는 동생 김종삼(79), 형 김종태(81) 씨.

김종태(81), 김종삼(79) 씨도 형제가 나란히 금강산으로 가는 경우다. 경기도 파주에서 살던 이들은 6·25 전쟁 때 큰형 김영태(당시 17살) 씨가 인민군으로 끌려가면서 생이별을 겪었다. 강제 징집 뒤에도 큰형은 중국으로 교육을 받으러 간다는 편지를 보내왔다. 김 씨는 형이 중국으로 갔기 때문에 전사하지 않았으리라 믿고 있다.

상봉 장소에 나오는 건 형수와 조카다. 북측이 보낸 명단에서 조카의 이름을 확인하고 동생 김종삼 씨는 눈을 의심했다. 7년 전쯤 개성공단에서 목수로 일할 때 함께 있었던 북한 인부 중 한 명과 이름이 같기 때문이다. 나이를 정확히 알진 못하지만, 서류에 적힌 동생의 나이와 비슷했다. 더구나 개성 공단에는 파주 인근 북쪽에서 오는 인부들이 많았다. 김 씨는 "당시 부족했던 양말과 콘크리트 못을 챙겨주곤 했었다"며, 이번 상봉에서 반드시 같은 사람이 맞는지 확인하겠다고 밝혔다.

상봉단은 오늘(20일) 오후 금강산에서 헤어진 가족을 만난다. 첫 상봉은 오후 3시쯤 금강산 호텔에서 2시간 동안 진행되고, 오후 7시부터는 가족들이 함께 저녁을 먹을 수 있는 환영 만찬이 열린다. 방문단은 2박 3일 동안 모두 6차례, 11시간에 걸쳐 헤어졌던 가족과 만난 뒤 22일 강원도 속초로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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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8-20 12:4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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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치
"내 아들이면 여러 말 안 해도 알아...너도 술 좋아하느냐 물어야지"

60여 년 만에 북에 두고 온 아들을 만나는 이기순(91) 씨는 가족들에 대한 기억이 또렷했다. 1951년 1·4 후퇴 때 형과 단둘이 월남하기 전까지 일가친척이 황해도 연백에 모여 살았다. 그때 헤어진 두 살배기 아들은 어느새 일흔다섯 살 노인이 됐다. 수십 년 그리워한 피붙이를 만나면서도 얼굴을 알아보지 못할까 걱정해야 하는 게 대부분의 이산가족이 놓인 처지다. 이 씨도 "아들을 만나면 가장 먼저 어디서 살았는지 물어보겠다"며 간절함을 드러냈다. 연백의 고향 마을 이름을 댄다면, 여러 말 하지 않아도 진짜 친아들이 맞다는 것. '직접 만나기 전에는 모른다'면서도 이 씨는 처음 보는 손녀와 아들을 위해 옷가지와 화장품 등을 챙겼다. 술을 좋아해 요즘도 반주로 소주 한 병 반을 비운다는 이 씨는 친아들로 확인되면 "너도 술 좋아하느냐고 물어봐야지"라며 웃었다.

"한 달에도 두 번씩 깃발 바뀌어...곧 돌아갈 줄 알았다"

19일 오후 ‘여동생을 보면 기분이 어떻겠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김춘식(80)씨가 답하고 있다.
이산가족 가운데 영영 다시 못 볼 줄 직감하고 이별한 경우는 많지 않다. 대부분 '그게 마지막이 될 줄 몰랐다'고 입을 모은다. 전쟁통이었지만 판세는 자주 바뀌었고 인민군은 점령과 후퇴를 반복했다. 황해도 옹진군에서 태어난 김춘식(80) 씨는 "한 달에도 두 번씩 인공기와 태극기가 번갈아 나부꼈다"고 회상했다.

김 씨는 이번 행사에서 여동생 2명을 만난다. 언젠가 다시 돌아올 거란 생각으로 피난길에 어린 여동생을 조부모님과 함께 고향에 남긴 게 화근이었다. "조그만 애들은 잡아가지 않으니까." 인민군이 마을을 점령할 때마다 몇 차례 피난을 갔던 김 씨는 마지막으로 집을 나올 때도 '한 달이면 물러가겠지'하는 생각을 했다.

2박 3일 동안 김 씨는 남동생 김춘영(64) 씨와 동행한다. 춘영 씨는 부모님이 월남한 뒤 인천에서 낳은 막내다. 동생 입장에선 처음 보는 누나를 만나는 셈이다. 동생 김 씨는 "부모님이 돌아가실 때까지 한 번도 누나들이나 고향 얘기를 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너무 마음이 아파서 차마 입을 못 뗀 게 아닌가 싶다"고 전했다. 형 춘식 씨는 여동생을 만나면 "'춘자야, 어머니 아버지 다 보내고 어떻게 살았어. 고생 많이 했지'하며 울 것 같다"고 했다.

"개성 공단 北 인부와 이름 같아...혹시 조카일까"

19일 오후 속초 한화리조트에 도착해 기자들 질문에 답하는 동생 김종삼(79), 형 김종태(81) 씨.
김종태(81), 김종삼(79) 씨도 형제가 나란히 금강산으로 가는 경우다. 경기도 파주에서 살던 이들은 6·25 전쟁 때 큰형 김영태(당시 17살) 씨가 인민군으로 끌려가면서 생이별을 겪었다. 강제 징집 뒤에도 큰형은 중국으로 교육을 받으러 간다는 편지를 보내왔다. 김 씨는 형이 중국으로 갔기 때문에 전사하지 않았으리라 믿고 있다.

상봉 장소에 나오는 건 형수와 조카다. 북측이 보낸 명단에서 조카의 이름을 확인하고 동생 김종삼 씨는 눈을 의심했다. 7년 전쯤 개성공단에서 목수로 일할 때 함께 있었던 북한 인부 중 한 명과 이름이 같기 때문이다. 나이를 정확히 알진 못하지만, 서류에 적힌 동생의 나이와 비슷했다. 더구나 개성 공단에는 파주 인근 북쪽에서 오는 인부들이 많았다. 김 씨는 "당시 부족했던 양말과 콘크리트 못을 챙겨주곤 했었다"며, 이번 상봉에서 반드시 같은 사람이 맞는지 확인하겠다고 밝혔다.

상봉단은 오늘(20일) 오후 금강산에서 헤어진 가족을 만난다. 첫 상봉은 오후 3시쯤 금강산 호텔에서 2시간 동안 진행되고, 오후 7시부터는 가족들이 함께 저녁을 먹을 수 있는 환영 만찬이 열린다. 방문단은 2박 3일 동안 모두 6차례, 11시간에 걸쳐 헤어졌던 가족과 만난 뒤 22일 강원도 속초로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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