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돋보기] ‘제2의 스포트 라이트’…교황 사퇴론으로 번지나?

입력 2018.08.27 (16:49) 수정 2018.08.27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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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계 성추문 파문이 전 지구촌을 뒤흔들고 있다. 가히 핵 폭탄급이다. 급기야 교계내 권위있는 대주교 입에선 성역 불가침으로 여겨져 왔던 교황 사임 요구까지 터져 나왔다. 바티칸 뿐만 아니라 이를 지켜보는 전 세계 가톨릭 교인들도 충격과 당혹함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이다.

"악재는 한방에 몰려온다"

나쁜 일은 봇물 터지듯 한번에 몰려오는 법. 가톨릭계 성추문도 예외는 아니다. 미 CNN에 따르면 최근 펜실베이니아주 가톨릭 교구 성직자들이 저지른 아동 성학대 실태가 보고서를 통해 속속 드러나면서 파문 확산의 정점을 찍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보고서에는 주내 6개 가톨릭 교구 성직자 3백 여명이 1940년대부터 최근까지 70년간 약 1,000명의 어린이를 성학대했다는 사실이 담겨 있다. CNN은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중대한 시련이 닥쳐왔다"고 평가할 정도였다.

앞서 지난 5월에는 사제의 아동 성학대 은폐 사건의 책임이 있는 칠레 주교단 31명이 사직서를 냈다. 같은 달 호주에선 필립 윌슨 애들레이드 교구 대주교가 1970년대 아동 성학대 사건을 은폐한 혐의로 징역 1년 형을 선고 받았다. 지난 달 말에는 미국 워싱턴 DC 대주교를 지냈던 시어도어 매캐릭 추기경이 아동 성학대 의혹에 휩싸여 사임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최측근으로 알려진 교황청 서열 3위 조지 펠 교황청 국무원장(추기경)은 아동 성학대 혐의로 호주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 악취가 진동하는 추문은 세계 전역에서 고구마 줄기처럼 캐도캐도 끝없이 이어지는 형국이다.


"은폐의 반복...제 2의 '스포트 라이트'"

가톨릭 교회 내의 성추문은 겉으로는 반성, 속으로는 은폐라는 어둠의 사슬 속에 그 몸집을 키워왔다. 특히 가톨릭의 영향력이 강한 보수적인 지역에선 성 추문이 사실이더라도 입에 담아선 안되는 불문율처럼 여겨져 왔다.

지난 2016년 아카데미 작품상과 각본상을 수상한 영화 '스포트라이트'에는 반복되는 가톨릭계 성추문을 뿌리 뽑을 수 없는 단면이 잘 묘사돼 있다.

2001년 미국의 3대 일간지 중 하나인 '보스턴 글로브'는 새로운 편집장이 부임하면서 가톨릭 교회내 아동 성추행 의혹과 관련된 제보를 받고 적극적인 취재에 나선다. 하지만 가톨릭 신자의 비율이 높은 보수적인 보스턴 지역의 특성상 기자들의 취재는 시작부터 암초에 부딪친다. 취재차 피해자를 찾아간 기자들은 그들의 가족들로부터 "지나간 일을 왜 파헤치려 하느냐?" "사제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부도덕한 사람들의 일방적인 주장"일 뿐이라는 힐난과 함께 문전박대를 당하기 일쑤다.

한켠에선 가톨릭계의 끊임없는 회유와 압력이 쏟아진다. 평소 가까운 취재원이자 친구였던 가톨릭계 인사들조차 취재 내용을 듣고는 아예 말문을 닫아 버린다. 우여곡절 끝에 보스턴 글로브 탐사보도팀 <스포트라이트>는 신성불가침으로만 여겨졌던 가톨릭 교회의 어두운 면을 세상에 공개하면서 신부 개개인의 문제를 넘어 교계 내부 전반의 불의와 부정직성을 세상에 낱낱이 알리게 된다.

2002년 보스턴 글로브의 기사로 가톨릭계 어두운 단면은 만천하에 그 모습을 드러냈고, 현재 성추문 공개 도미노의 도화선 역할을 하게 된다.


"성폭력 대처 실패는 치욕과 고통"이라고 반성했지만...

이번 성추문 과정에선 교황의 대처도 도마 위에 올랐다. 교황은 신자들에게 처음으로 서한을 보내 "죽음의 문화"를 근절하기 위해 힘을 합치자고 호소하며 이 같은 사건의 재발 방지를 약속했다. 39년만에 방문한 아일랜드에선 가톨릭 교회 내 성폭력에 교회가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것을 "치욕과 고통"이라고 자책하고 피해자들을 만나 위로했다. 교황청이 나서 진화에 가세했지만 프란치스코 교황의 책임론은 좀처럼 가시지 않고 있다. 그동안 비판적이었던 사제들은 교황을 향해 직격탄을 날렸다. 사퇴 요구 카드를 꺼내 든 것이다.

이탈리아의 카를로 마리아 비가노 대주교는 현지시각 26일 프란치스코 교황이 이미 2013년부터 시어도어 매캐릭 전 미국 추기경의 성범죄를 알고도 은폐했다면서, 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선 교황이 물러나야한다는 주장을 담은 11쪽짜리 공개서한 폭탄을 터트린다.

비가노 대주교는 서한에서 베네딕토 16세 교황이 2013년 사임하기 이전에 매캐릭 추기경의 비행을 보고받고 미사 집전 금지 등의 처벌을 내린 적이 있다고 폭로했다. 그런데, 프란치스코 교황이 매캐릭을 처벌하는 대신 그를 복권시켜 미국 주교 선발권을 허용하기까지 했다는 것이다. 비가노 대주교는 매캐릭을 통해 주교가 된 사제들의 이름들을 꼽으면서, 그들에 대해서도 비판의 화살을 퍼부었다.

서한은 대주교 vs 교황의 대결구도를 넘어 보혁 갈등을 촉발하고 있다. 비가노 대주교에 대한 지지를 표명하는 보수파에 맞서 프란치스코 교황을 지지하는 사제들은 교황 흔들기라며 좌시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아일랜드 방문을 마치고 바티칸으로 돌아간 교황은 전용기 안에서 기자들과 만나 비가노 대주교 서한에 대한 입장을 묻는 질의에 '한마디도 안할 것"이라고 확인을 거부해 의혹을 증폭시켰다.

내부 폭로와 교황을 향한 비난이 터져 나오고 있지만 프란치스코 교황은 교회 성폭력 은폐 문화를 규탄한 최초의 교황으로 평가받고 있다. 교회 내 오래된 악습을 가톨릭을 대표해 시인한 만큼 일부에선 교황의 용기에 찬사를 보내기도 한다.

하지만 가족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수십년 전 자신들이 당했던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만천하에 알렸던 피해자들의 용기를 생각한다면 교회 내 뿌리깊은 악행을 제거하기 위한 특단의 결단이 교황에게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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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8-27 16:49:40
    • 수정2018-08-27 16:5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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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계 성추문 파문이 전 지구촌을 뒤흔들고 있다. 가히 핵 폭탄급이다. 급기야 교계내 권위있는 대주교 입에선 성역 불가침으로 여겨져 왔던 교황 사임 요구까지 터져 나왔다. 바티칸 뿐만 아니라 이를 지켜보는 전 세계 가톨릭 교인들도 충격과 당혹함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이다.

"악재는 한방에 몰려온다"

나쁜 일은 봇물 터지듯 한번에 몰려오는 법. 가톨릭계 성추문도 예외는 아니다. 미 CNN에 따르면 최근 펜실베이니아주 가톨릭 교구 성직자들이 저지른 아동 성학대 실태가 보고서를 통해 속속 드러나면서 파문 확산의 정점을 찍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보고서에는 주내 6개 가톨릭 교구 성직자 3백 여명이 1940년대부터 최근까지 70년간 약 1,000명의 어린이를 성학대했다는 사실이 담겨 있다. CNN은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중대한 시련이 닥쳐왔다"고 평가할 정도였다.

앞서 지난 5월에는 사제의 아동 성학대 은폐 사건의 책임이 있는 칠레 주교단 31명이 사직서를 냈다. 같은 달 호주에선 필립 윌슨 애들레이드 교구 대주교가 1970년대 아동 성학대 사건을 은폐한 혐의로 징역 1년 형을 선고 받았다. 지난 달 말에는 미국 워싱턴 DC 대주교를 지냈던 시어도어 매캐릭 추기경이 아동 성학대 의혹에 휩싸여 사임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최측근으로 알려진 교황청 서열 3위 조지 펠 교황청 국무원장(추기경)은 아동 성학대 혐의로 호주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 악취가 진동하는 추문은 세계 전역에서 고구마 줄기처럼 캐도캐도 끝없이 이어지는 형국이다.


"은폐의 반복...제 2의 '스포트 라이트'"

가톨릭 교회 내의 성추문은 겉으로는 반성, 속으로는 은폐라는 어둠의 사슬 속에 그 몸집을 키워왔다. 특히 가톨릭의 영향력이 강한 보수적인 지역에선 성 추문이 사실이더라도 입에 담아선 안되는 불문율처럼 여겨져 왔다.

지난 2016년 아카데미 작품상과 각본상을 수상한 영화 '스포트라이트'에는 반복되는 가톨릭계 성추문을 뿌리 뽑을 수 없는 단면이 잘 묘사돼 있다.

2001년 미국의 3대 일간지 중 하나인 '보스턴 글로브'는 새로운 편집장이 부임하면서 가톨릭 교회내 아동 성추행 의혹과 관련된 제보를 받고 적극적인 취재에 나선다. 하지만 가톨릭 신자의 비율이 높은 보수적인 보스턴 지역의 특성상 기자들의 취재는 시작부터 암초에 부딪친다. 취재차 피해자를 찾아간 기자들은 그들의 가족들로부터 "지나간 일을 왜 파헤치려 하느냐?" "사제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부도덕한 사람들의 일방적인 주장"일 뿐이라는 힐난과 함께 문전박대를 당하기 일쑤다.

한켠에선 가톨릭계의 끊임없는 회유와 압력이 쏟아진다. 평소 가까운 취재원이자 친구였던 가톨릭계 인사들조차 취재 내용을 듣고는 아예 말문을 닫아 버린다. 우여곡절 끝에 보스턴 글로브 탐사보도팀 <스포트라이트>는 신성불가침으로만 여겨졌던 가톨릭 교회의 어두운 면을 세상에 공개하면서 신부 개개인의 문제를 넘어 교계 내부 전반의 불의와 부정직성을 세상에 낱낱이 알리게 된다.

2002년 보스턴 글로브의 기사로 가톨릭계 어두운 단면은 만천하에 그 모습을 드러냈고, 현재 성추문 공개 도미노의 도화선 역할을 하게 된다.


"성폭력 대처 실패는 치욕과 고통"이라고 반성했지만...

이번 성추문 과정에선 교황의 대처도 도마 위에 올랐다. 교황은 신자들에게 처음으로 서한을 보내 "죽음의 문화"를 근절하기 위해 힘을 합치자고 호소하며 이 같은 사건의 재발 방지를 약속했다. 39년만에 방문한 아일랜드에선 가톨릭 교회 내 성폭력에 교회가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것을 "치욕과 고통"이라고 자책하고 피해자들을 만나 위로했다. 교황청이 나서 진화에 가세했지만 프란치스코 교황의 책임론은 좀처럼 가시지 않고 있다. 그동안 비판적이었던 사제들은 교황을 향해 직격탄을 날렸다. 사퇴 요구 카드를 꺼내 든 것이다.

이탈리아의 카를로 마리아 비가노 대주교는 현지시각 26일 프란치스코 교황이 이미 2013년부터 시어도어 매캐릭 전 미국 추기경의 성범죄를 알고도 은폐했다면서, 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선 교황이 물러나야한다는 주장을 담은 11쪽짜리 공개서한 폭탄을 터트린다.

비가노 대주교는 서한에서 베네딕토 16세 교황이 2013년 사임하기 이전에 매캐릭 추기경의 비행을 보고받고 미사 집전 금지 등의 처벌을 내린 적이 있다고 폭로했다. 그런데, 프란치스코 교황이 매캐릭을 처벌하는 대신 그를 복권시켜 미국 주교 선발권을 허용하기까지 했다는 것이다. 비가노 대주교는 매캐릭을 통해 주교가 된 사제들의 이름들을 꼽으면서, 그들에 대해서도 비판의 화살을 퍼부었다.

서한은 대주교 vs 교황의 대결구도를 넘어 보혁 갈등을 촉발하고 있다. 비가노 대주교에 대한 지지를 표명하는 보수파에 맞서 프란치스코 교황을 지지하는 사제들은 교황 흔들기라며 좌시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아일랜드 방문을 마치고 바티칸으로 돌아간 교황은 전용기 안에서 기자들과 만나 비가노 대주교 서한에 대한 입장을 묻는 질의에 '한마디도 안할 것"이라고 확인을 거부해 의혹을 증폭시켰다.

내부 폭로와 교황을 향한 비난이 터져 나오고 있지만 프란치스코 교황은 교회 성폭력 은폐 문화를 규탄한 최초의 교황으로 평가받고 있다. 교회 내 오래된 악습을 가톨릭을 대표해 시인한 만큼 일부에선 교황의 용기에 찬사를 보내기도 한다.

하지만 가족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수십년 전 자신들이 당했던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만천하에 알렸던 피해자들의 용기를 생각한다면 교회 내 뿌리깊은 악행을 제거하기 위한 특단의 결단이 교황에게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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