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 9년만 밝혀진 내막…쌍용차 강경진압 누가 지시했나

입력 2018.08.28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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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월 8일, 쌍용자동차의 대주주였던 상하이자동차는 쌍용자동차의 하이브리드 엔진기술과 핵심연구원을 중국 본사로 이전한 후 구조조정을 핑계로 쌍용자동차의 법정관리를 신청하고 경영권을 포기한다. 상하이자동차가 중국에 합작공장을 건설한 후 국내 투자는 하지 않고 있다며 상하이자동차의 먹튀 가능성을 끊임없이 주장했던 쌍용자동차 노조는 사측의 구조조정을 거부하고 2009년 5월 22일 평택 공장을 점거하고 농성을 시작한다.

2009년 8월 6일, 약 76일간 지속했던 쌍용자동차 노조의 점거는 경찰의 공권력이 투입되면서 해제된다. 백 명 이상의 부상자가 발생했고, 64명이 구속됐으며, 2,646명이 해고됐다. 당시 규정에 없는 헬기 최루액 투하, 테이저건 사용, 테러진압 장비 스펀지탄 발사, 경찰이 일방적으로 사측 편에 섰다는 점 때문에 논란이 되었다.

오늘 경찰 진상조사위는 9년 만에 내막을 밝혔다. 유남영 진상조사위원회 위원장은 '당시 경찰청장이었던 강희락 전 경찰청장과 당시 경기지방경찰청장이었던 조현오 전 경기지방경찰청장 간 의견 대립이 있었으며, 최종 승인은 청와대에 의해 내려졌다. 또, 사측의 협조하에 경찰은 진압작전을 준비했다.'며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경찰의 진압명령의 책임자였던 조현오 당시 경기지방경찰청장은 이듬해 경찰청장에 취임한다.

지난 7월, 대한문 앞에는 쌍용자동차 30번째 희생자의 분향소가 차려졌다. 아직 복직하지 못한 쌍용자동차 해고자는 100여 명, 이들은 아직 복직을 위한 싸움을 계속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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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8-28 19:5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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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월 8일, 쌍용자동차의 대주주였던 상하이자동차는 쌍용자동차의 하이브리드 엔진기술과 핵심연구원을 중국 본사로 이전한 후 구조조정을 핑계로 쌍용자동차의 법정관리를 신청하고 경영권을 포기한다. 상하이자동차가 중국에 합작공장을 건설한 후 국내 투자는 하지 않고 있다며 상하이자동차의 먹튀 가능성을 끊임없이 주장했던 쌍용자동차 노조는 사측의 구조조정을 거부하고 2009년 5월 22일 평택 공장을 점거하고 농성을 시작한다.

2009년 8월 6일, 약 76일간 지속했던 쌍용자동차 노조의 점거는 경찰의 공권력이 투입되면서 해제된다. 백 명 이상의 부상자가 발생했고, 64명이 구속됐으며, 2,646명이 해고됐다. 당시 규정에 없는 헬기 최루액 투하, 테이저건 사용, 테러진압 장비 스펀지탄 발사, 경찰이 일방적으로 사측 편에 섰다는 점 때문에 논란이 되었다.

오늘 경찰 진상조사위는 9년 만에 내막을 밝혔다. 유남영 진상조사위원회 위원장은 '당시 경찰청장이었던 강희락 전 경찰청장과 당시 경기지방경찰청장이었던 조현오 전 경기지방경찰청장 간 의견 대립이 있었으며, 최종 승인은 청와대에 의해 내려졌다. 또, 사측의 협조하에 경찰은 진압작전을 준비했다.'며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경찰의 진압명령의 책임자였던 조현오 당시 경기지방경찰청장은 이듬해 경찰청장에 취임한다.

지난 7월, 대한문 앞에는 쌍용자동차 30번째 희생자의 분향소가 차려졌다. 아직 복직하지 못한 쌍용자동차 해고자는 100여 명, 이들은 아직 복직을 위한 싸움을 계속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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