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車, 한미FTA 타결에도 안심할 수 없는 이유는?

입력 2018.09.05 (18:48) 수정 2018.09.05 (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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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3일 밤 10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 결과문이 한국과 미국에서 동시에 공개됐다. 한미 통상교섭 대표단이 지난 3월 큰 틀에서 합의·발표한 내용이 이번 결과문에 구체적인 문안으로 담겼다. 최소한의 양보로 불확실성을 조기에 해소했다는 일부 긍정적인 평가도 나오고 있지만, 문제는 최근 국제 통상환경이 큰 변화를 겪고 있다는 점이다. 미·중 무역전쟁과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나프타) 개정, 미국 무역확장법 232조 자동차 조사가 동시다발로 우리의 발 빠른 대응을 요구하고 있다.


2018년 9월 3일 밤 10시 한국과 미국에서 동시 공개된 한미자유무역협정 개정 결과문2018년 9월 3일 밤 10시 한국과 미국에서 동시 공개된 한미자유무역협정 개정 결과문

한미FTA 개정 협상은 ‘자동차 협상’…뭘 주고 뭘 얻었나

한미FTA 개정 협상은 '자동차를 위한' 협상과 진배없었다. 어쨌든 그 결과 한국 안전기준을 따르지 않은 미국산 차량의 수출 허용량은 확대됐다. 한국 자동차 안전기준(KMVSS) 아닌 미국 기준(FMVSS)만 충족해도 수입을 허용하는 미국산 자동차 쿼터(할당량)가 연간 제작사별 2만 5천 대에서 5만 대로 늘어난 것이다. 또 미국산 자동차를 수리하기 위한 자동차 교체부품에 대해 미국 자동차 안전기준 충족 시 우리 안전기준을 충족한 것으로 간주하기로 했다.


반면 한국 화물자동차의 미국 수출은 사실상 어려워졌다. 현재 한국산 화물자동차에 부과되는 25% 관세는 원래 2021년 1월 1일 철폐될 예정이었다. 신제품도 하지만 이번 개정으로 그 기간이 2041년 1월 1일로 20년 더 연장됐다. 바꿔 말하면 관세 부과 기간이 20년 연장되면서 우리 화물자동차의 대미 수출은 사실상 불가능하게 됐다.
그렇다면 우리는 뭘 었었을까. 한국은 FTA 체결 이후 무관세로 미국에 자동차를 수출해 왔고, '자동차 무관세'를 계속 유지하는 것이 핵심 목표 중 하나였다. 정부는 미국을 향해 이번 FTA 개정 타결로 미국의 요구를 상당 부분 수용했으므로 자동차 무관세는 계속 유지돼야 한다는 입장, 바꿔 말하면 '우리에게 관세 폭탄 부과는 가당치 않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NAFTA· 232조 협공받는 한국車

기아자동차는 2016년 9월부터 멕시코 현지에서 자동차를 생산하고 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프라이드, K3뿐 아니라 현대자동차 액센트가 여기서 만들어진다. 지난해 약 22만대가 생산돼, 절반가량이 미국에 수출됐다. 미국 멕시코 캐나다가 가입된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나프타)에 따라 관세가 면제된다. 올해 예상되는 전체 판매대수는 31만대에 이르는데, 최근 큰 변수가 생겼다.



현지시간 8월 27일 미국과 멕시코는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나프타) 개정 협상을 타결했다. 개정 전에는 나프타 국가(미국 멕시코 캐나다)에서 생산한 부품을 62.5%만 써도 무관세 수출이 가능했는데, 개정이 확정되면 앞으로는 75% 이상 써야 한다. 또 시간당 16달러를 받는 노동자들이 만든 부품을 40% 이상 써야 한다는 단서도 달렸다. 이렇게 되면 부품비용이나 인건비가 상승한다. 완성차업체의 가격 경쟁력이 떨어지고, 멕시코에 자동차부품을 수출하는 국내 중소업체의 판로도 막힌다.

나프타 개정 협상에서 멕시코와 합의를 이끌어낸 트럼프 대통령은 캐나다와 협상이 벽에 부딪히자 '(나프타로부터) 캐나다 아웃'을 외치고 있다. 이 점 또한 우리에게 부담이다. 지난해 글로벌 자동차업체들이 캐나다에서 220만 대를 생산해 이 가운데 189만 대를 미국에 수출했다. 자의든 타의든 만약 캐나다가 나프타에서 빠지면 미국으로 수출되는 캐나다산 승용차는 2.5%, 화물자동차나 SUV는 25%의 관세가 부과된다. 자동차부품은 오대호 주변 미국 디트로이트와 캐나다 토론토를 중심으로 생산 벨트가 발달해 있는데, 상호 관세가 붙게 되면 글로벌 공급망이 혼란에 빠지며 우리에게도 영향이 미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현지시간 7월 19일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린 미국 무역확장법 232조 수입자동차 공청회현지시간 7월 19일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린 미국 무역확장법 232조 수입자동차 공청회

무역확장법 232조는 더 큰 '발등의 불'이다. 우리나라 한 해 자동차 수출량의 1/3인 84만 대가 미국시장으로 수출된다. 트럼프 행정부는 '안보를 위협할 수 있는 수입품은 대통령이 직접 관세를 부과한다'는 내용의 232조를 근거로, 조만간 수입차에 대한 적용 대상 발표를 눈앞에 두고 있다. 최대 25%까지 관세를 부과할 수 있는데, 만약 현실화한다면 그동안 가격 경쟁력을 앞세웠던 한국산 자동차로선 치명적이다. 국내 수많은 1,2,3차 부품 협력업체의 운명은 물론 자동차 산업 생태계가 뿌리째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 제일주의·무역전쟁 파고를 넘어라

트럼프 행정부는 캐나다와 나프타 개정 협상 마감시한(8월 31일)이 지나자 이미 확정한 미국-멕시코 합의안을 의회에 통보했다. 경제적 이익을 주지 않으면 아무리 국경을 맞대고 있는 동맹국이라도 가차 없다는 태도를 다시 한 번 드러냈다.
취임 이후 트럼프 대통령은 기다렸다는 듯이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과 파리기후협약에서 잇따라 탈퇴했다. 지금은 자유무역의 큰 틀이자 기본 규범을 유지하고 있는 세계무역기구(WTO)에 대해서도 "태도를 바꾸지 않으면 탈퇴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두 차례의 세계 대전과 냉전 시대를 거치며 다자주의와 무역질서를 주도해 온 미국이다. 그런 미국이 이렇게 달라졌고, 자국 내부에서조차 비판이 거세지만 트럼프의 태도는 여전히 거침이 없다.
이제 미국이 중국산 수입품 2천억 달러 규모에 대한 3차 고율 관세 부과가 초읽기에 들어갔다. 조기 수습을 위한 '골든 타임'은 이미 지났다. 미국 제일주의와 무역전쟁의 파고에 맞서 우리도 냉엄한 국제 정세를 직시하며 중장기전 대비 모드로 차분히 전환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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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車, 한미FTA 타결에도 안심할 수 없는 이유는?
    • 입력 2018-09-05 18:48:37
    • 수정2018-09-05 18:57:18
    취재K
9월 3일 밤 10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 결과문이 한국과 미국에서 동시에 공개됐다. 한미 통상교섭 대표단이 지난 3월 큰 틀에서 합의·발표한 내용이 이번 결과문에 구체적인 문안으로 담겼다. 최소한의 양보로 불확실성을 조기에 해소했다는 일부 긍정적인 평가도 나오고 있지만, 문제는 최근 국제 통상환경이 큰 변화를 겪고 있다는 점이다. 미·중 무역전쟁과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나프타) 개정, 미국 무역확장법 232조 자동차 조사가 동시다발로 우리의 발 빠른 대응을 요구하고 있다. 2018년 9월 3일 밤 10시 한국과 미국에서 동시 공개된 한미자유무역협정 개정 결과문 한미FTA 개정 협상은 ‘자동차 협상’…뭘 주고 뭘 얻었나 한미FTA 개정 협상은 '자동차를 위한' 협상과 진배없었다. 어쨌든 그 결과 한국 안전기준을 따르지 않은 미국산 차량의 수출 허용량은 확대됐다. 한국 자동차 안전기준(KMVSS) 아닌 미국 기준(FMVSS)만 충족해도 수입을 허용하는 미국산 자동차 쿼터(할당량)가 연간 제작사별 2만 5천 대에서 5만 대로 늘어난 것이다. 또 미국산 자동차를 수리하기 위한 자동차 교체부품에 대해 미국 자동차 안전기준 충족 시 우리 안전기준을 충족한 것으로 간주하기로 했다. 반면 한국 화물자동차의 미국 수출은 사실상 어려워졌다. 현재 한국산 화물자동차에 부과되는 25% 관세는 원래 2021년 1월 1일 철폐될 예정이었다. 신제품도 하지만 이번 개정으로 그 기간이 2041년 1월 1일로 20년 더 연장됐다. 바꿔 말하면 관세 부과 기간이 20년 연장되면서 우리 화물자동차의 대미 수출은 사실상 불가능하게 됐다. 그렇다면 우리는 뭘 었었을까. 한국은 FTA 체결 이후 무관세로 미국에 자동차를 수출해 왔고, '자동차 무관세'를 계속 유지하는 것이 핵심 목표 중 하나였다. 정부는 미국을 향해 이번 FTA 개정 타결로 미국의 요구를 상당 부분 수용했으므로 자동차 무관세는 계속 유지돼야 한다는 입장, 바꿔 말하면 '우리에게 관세 폭탄 부과는 가당치 않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NAFTA· 232조 협공받는 한국車 기아자동차는 2016년 9월부터 멕시코 현지에서 자동차를 생산하고 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프라이드, K3뿐 아니라 현대자동차 액센트가 여기서 만들어진다. 지난해 약 22만대가 생산돼, 절반가량이 미국에 수출됐다. 미국 멕시코 캐나다가 가입된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나프타)에 따라 관세가 면제된다. 올해 예상되는 전체 판매대수는 31만대에 이르는데, 최근 큰 변수가 생겼다. 현지시간 8월 27일 미국과 멕시코는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나프타) 개정 협상을 타결했다. 개정 전에는 나프타 국가(미국 멕시코 캐나다)에서 생산한 부품을 62.5%만 써도 무관세 수출이 가능했는데, 개정이 확정되면 앞으로는 75% 이상 써야 한다. 또 시간당 16달러를 받는 노동자들이 만든 부품을 40% 이상 써야 한다는 단서도 달렸다. 이렇게 되면 부품비용이나 인건비가 상승한다. 완성차업체의 가격 경쟁력이 떨어지고, 멕시코에 자동차부품을 수출하는 국내 중소업체의 판로도 막힌다. 나프타 개정 협상에서 멕시코와 합의를 이끌어낸 트럼프 대통령은 캐나다와 협상이 벽에 부딪히자 '(나프타로부터) 캐나다 아웃'을 외치고 있다. 이 점 또한 우리에게 부담이다. 지난해 글로벌 자동차업체들이 캐나다에서 220만 대를 생산해 이 가운데 189만 대를 미국에 수출했다. 자의든 타의든 만약 캐나다가 나프타에서 빠지면 미국으로 수출되는 캐나다산 승용차는 2.5%, 화물자동차나 SUV는 25%의 관세가 부과된다. 자동차부품은 오대호 주변 미국 디트로이트와 캐나다 토론토를 중심으로 생산 벨트가 발달해 있는데, 상호 관세가 붙게 되면 글로벌 공급망이 혼란에 빠지며 우리에게도 영향이 미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현지시간 7월 19일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린 미국 무역확장법 232조 수입자동차 공청회 무역확장법 232조는 더 큰 '발등의 불'이다. 우리나라 한 해 자동차 수출량의 1/3인 84만 대가 미국시장으로 수출된다. 트럼프 행정부는 '안보를 위협할 수 있는 수입품은 대통령이 직접 관세를 부과한다'는 내용의 232조를 근거로, 조만간 수입차에 대한 적용 대상 발표를 눈앞에 두고 있다. 최대 25%까지 관세를 부과할 수 있는데, 만약 현실화한다면 그동안 가격 경쟁력을 앞세웠던 한국산 자동차로선 치명적이다. 국내 수많은 1,2,3차 부품 협력업체의 운명은 물론 자동차 산업 생태계가 뿌리째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 제일주의·무역전쟁 파고를 넘어라 트럼프 행정부는 캐나다와 나프타 개정 협상 마감시한(8월 31일)이 지나자 이미 확정한 미국-멕시코 합의안을 의회에 통보했다. 경제적 이익을 주지 않으면 아무리 국경을 맞대고 있는 동맹국이라도 가차 없다는 태도를 다시 한 번 드러냈다. 취임 이후 트럼프 대통령은 기다렸다는 듯이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과 파리기후협약에서 잇따라 탈퇴했다. 지금은 자유무역의 큰 틀이자 기본 규범을 유지하고 있는 세계무역기구(WTO)에 대해서도 "태도를 바꾸지 않으면 탈퇴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두 차례의 세계 대전과 냉전 시대를 거치며 다자주의와 무역질서를 주도해 온 미국이다. 그런 미국이 이렇게 달라졌고, 자국 내부에서조차 비판이 거세지만 트럼프의 태도는 여전히 거침이 없다. 이제 미국이 중국산 수입품 2천억 달러 규모에 대한 3차 고율 관세 부과가 초읽기에 들어갔다. 조기 수습을 위한 '골든 타임'은 이미 지났다. 미국 제일주의와 무역전쟁의 파고에 맞서 우리도 냉엄한 국제 정세를 직시하며 중장기전 대비 모드로 차분히 전환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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