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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리포트] “달러는 침대 밑에 숨겨져 있다” IMF 아르헨티나의 이면
입력 2018.09.08 (08:02) 수정 2018.09.08 (17:10) 특파원 리포트
【기준금리 세계 최고 60%, 아르헨 은행에 예치하면?】

아르헨티나 중앙은행은 최근 기준금리를 45%에서 60%로 올렸다. 45%도 세계 최고 금리인데 금리를 올린 지 10여 일 만에 15% 포인트를 또 인상한 것이다. 올들어 다섯 번째 기준금리 인상이다. 페소화 가치가 급락하는 상황에서 이런 고육책까지 동원했지만, 큰 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그렇다면 외국인이 높은 금리로 이자를 받기 위해 아르헨티나의 은행에 돈을 예치하면 어떨까? 외국인도 아르헨티나 은행에 돈을 예치할 수는 있지만, 달러 대비 페소화의 환율 등락이 불안한 상황에서 달러를 페소화로 바꿔 예치하는 위험을 감수하기가 쉽지는 않을 거라고, 경제 전문가들은 말한다. 아르헨티나 국민 사이에도 자국 화폐에 대한 불신이 팽배하다는 것이다.


【IMF 위기,부동산은 요지부동...침대 밑에 달러?】

IMF 위기를 겪는 나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은 부동산 가치의 하락이다. 우리나라가 1997년 국제통화기금 IMF의 구제금융을 받을 당시 부동산 가격은 반토막이 난 곳도 있었다.

하지만, 아르헨티나의 부동산 가치는 떨어지지 않고 있다. 오히려 부동산 가격이 오르고 있다. 부동산 거래에 쓰이는 통화 때문이다. 아르헨티나의 부동산 거래는 오로지 달러로만 가능하다. 자국 화폐 페소화에 대한 불신이 커 안전하다고 믿는 달러로만 부동산을 거래하고 있는 것이다. 1990년대 초부터 달러로 부동산 거래가 시작돼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아르헨티나는 지난 6월 국제통화기금 IMF에 구제금융 500억 달러 (약 55조 원)를 요청했다. 달러가 부족해 외환위기를 겪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부동산 거래에 사용되는 달러 뭉치는 장롱 속에 꼭꼭 숨겨두고 있다. 현지 언론이 "구제 금융 500억 달러를 갚고도 남을 만큼의 달러가 침대 밑에 숨겨져 있다"고 보도할 정도다. 달러가 시장에 유통되지 않으면서 정부의 외환 곳간은 비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반면, 아르헨티나의 월세는 페소화로 지급된다. 페소화 가치가 올들어 50% 넘게 하락하고 물가상승률이 31%에 이르면서 월세는 급등하고 있다. 결국, 최근의 경제상황은 집 없는 서민들에게 큰 고통으로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아르헨티나 전체 인구의 빈곤층 비율은 35%로, 40년 전 2%였던 것과는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IMF는 악마, 구제금융은 자존심 파는 것"】

아르헨티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 중심가에서 구두를 닦아주는 사람들을 흔히 볼 수 있다. 50페소(약 천3백 원)로 구두에 광택을 충분하게 낼 수 있다. 최근 들어 경제가 어려움을 겪자 거리에 구두 닦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

이들은 아르헨티나 정부의 IMF 구제금융 신청을 어떻게 생각할까? 한마디로 답변은 "IMF는 악마입니다" 였다. IMF를 내정 간섭으로 여기고 있다. 구두 닦는 사람들까지도 IMF에 강한 반감을 보이는 것이다.

나라는 달러가 부족하고 페소 가치가 뚝뚝 떨어지는 상황에서 빌려온 외채 부담은 늘어나고 있지만 국민들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전 정권의 각종 보조금 정책으로 나라 곳간이 비어간데다 현 정부의 실정 등이 겹쳐 국가 부도 위기를 맞았는데도 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한 현 정부를 비난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크리스티나 전 대통령 시절 재임했던 고위공무원이 당시 정부 이권사업의 뇌물 수수로 줄줄이 체포된데 이어 크리스티나 전 대통령도 수사를 받고 있다. 하지만 상당수 국민이 당시를 그리워한다. 무상으로 각종 지원을 받던 지난 정권 시절과, 구조조정의 칼날이 곳곳에서 예고되는 지금의 상황이 대비되기 때문일 것이다.

재정을 충당하기 위해 최근 2년간 전기요금을 10배 넘게 인상하는 등 각종 공공요금을 올린 것도 국민들에게는 큰 고통이 되고 있다. 이 때문에 온 국민이 합심해 경제 위기를 극복해야 할 아르헨티나에는 전 정권과 현 정권을 각각 지지하는 극심한 민심의 분열이 일어나고 있다.


【연일 거리 시위, 교수도 수업 중단】

아르헨티나의 경제위기 상황을 취재한 엿새 동안 동안 거리 시위는 사흘간이나 이어졌다. 재정적자를 줄이려는 정부에 맞서 공무원과 근로자, 교수, 교사, 학생 등이 연일 시위에 동참했다. 최근 아르헨티나 정부가 교육재정을 축소하고 대학교수의 월급을 15% 인상하기로 하자, 인상률이 물가상승률 30%대에 못 미쳐 생활하기 힘들다며 13만여 명의 교수와 학생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겨울방학아 끝나고 새 학기가 시작돼야 하지만 수업은 한 달 넘게 파행을 겪고 있다. 아르헨티나 정부는 이어 IMF 구제금융을 조기에 지원받기 위해 19개 정부 부처를 절반 이하로 줄이고 곡물에 수출세를 부과하겠다는 재정 긴축안을 발표했다. 마크리 대통령의 이런 대국민 담화가 있은지 4시간 만에 공무원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정부 부처 축소 발표에 대량 해고를 예고하는 것이라며 대통령궁까지 기습 시위행진을 벌였다.

아르헨티나는 내년에 만기가 도래하는 약 27조 원 규모의 외채를 상환해야 하는 상황에서 페소 가치 하락으로 부담은 가중되고 있다. 강화된 긴축정책은 국민의 반발에 직면해 있고 정부가 설득력을 잃고 정책을 이행하지 못한다면 페소 가치는 더 떨어질 것이라는 경고도 나오고 있다.

강한 반발과 정부에 대한 비난 속에 IMF는 "자금 지원 방안을 강화하려고 긴밀히 협의하고 있다"면서도 "아르헨티나 당국의 강력한 헌신과 결단이 현재의 어려움을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 [특파원리포트] “달러는 침대 밑에 숨겨져 있다” IMF 아르헨티나의 이면
    • 입력 2018-09-08 08:02:13
    • 수정2018-09-08 17:10:40
    특파원 리포트
【기준금리 세계 최고 60%, 아르헨 은행에 예치하면?】

아르헨티나 중앙은행은 최근 기준금리를 45%에서 60%로 올렸다. 45%도 세계 최고 금리인데 금리를 올린 지 10여 일 만에 15% 포인트를 또 인상한 것이다. 올들어 다섯 번째 기준금리 인상이다. 페소화 가치가 급락하는 상황에서 이런 고육책까지 동원했지만, 큰 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그렇다면 외국인이 높은 금리로 이자를 받기 위해 아르헨티나의 은행에 돈을 예치하면 어떨까? 외국인도 아르헨티나 은행에 돈을 예치할 수는 있지만, 달러 대비 페소화의 환율 등락이 불안한 상황에서 달러를 페소화로 바꿔 예치하는 위험을 감수하기가 쉽지는 않을 거라고, 경제 전문가들은 말한다. 아르헨티나 국민 사이에도 자국 화폐에 대한 불신이 팽배하다는 것이다.


【IMF 위기,부동산은 요지부동...침대 밑에 달러?】

IMF 위기를 겪는 나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은 부동산 가치의 하락이다. 우리나라가 1997년 국제통화기금 IMF의 구제금융을 받을 당시 부동산 가격은 반토막이 난 곳도 있었다.

하지만, 아르헨티나의 부동산 가치는 떨어지지 않고 있다. 오히려 부동산 가격이 오르고 있다. 부동산 거래에 쓰이는 통화 때문이다. 아르헨티나의 부동산 거래는 오로지 달러로만 가능하다. 자국 화폐 페소화에 대한 불신이 커 안전하다고 믿는 달러로만 부동산을 거래하고 있는 것이다. 1990년대 초부터 달러로 부동산 거래가 시작돼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아르헨티나는 지난 6월 국제통화기금 IMF에 구제금융 500억 달러 (약 55조 원)를 요청했다. 달러가 부족해 외환위기를 겪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부동산 거래에 사용되는 달러 뭉치는 장롱 속에 꼭꼭 숨겨두고 있다. 현지 언론이 "구제 금융 500억 달러를 갚고도 남을 만큼의 달러가 침대 밑에 숨겨져 있다"고 보도할 정도다. 달러가 시장에 유통되지 않으면서 정부의 외환 곳간은 비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반면, 아르헨티나의 월세는 페소화로 지급된다. 페소화 가치가 올들어 50% 넘게 하락하고 물가상승률이 31%에 이르면서 월세는 급등하고 있다. 결국, 최근의 경제상황은 집 없는 서민들에게 큰 고통으로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아르헨티나 전체 인구의 빈곤층 비율은 35%로, 40년 전 2%였던 것과는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IMF는 악마, 구제금융은 자존심 파는 것"】

아르헨티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 중심가에서 구두를 닦아주는 사람들을 흔히 볼 수 있다. 50페소(약 천3백 원)로 구두에 광택을 충분하게 낼 수 있다. 최근 들어 경제가 어려움을 겪자 거리에 구두 닦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

이들은 아르헨티나 정부의 IMF 구제금융 신청을 어떻게 생각할까? 한마디로 답변은 "IMF는 악마입니다" 였다. IMF를 내정 간섭으로 여기고 있다. 구두 닦는 사람들까지도 IMF에 강한 반감을 보이는 것이다.

나라는 달러가 부족하고 페소 가치가 뚝뚝 떨어지는 상황에서 빌려온 외채 부담은 늘어나고 있지만 국민들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전 정권의 각종 보조금 정책으로 나라 곳간이 비어간데다 현 정부의 실정 등이 겹쳐 국가 부도 위기를 맞았는데도 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한 현 정부를 비난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크리스티나 전 대통령 시절 재임했던 고위공무원이 당시 정부 이권사업의 뇌물 수수로 줄줄이 체포된데 이어 크리스티나 전 대통령도 수사를 받고 있다. 하지만 상당수 국민이 당시를 그리워한다. 무상으로 각종 지원을 받던 지난 정권 시절과, 구조조정의 칼날이 곳곳에서 예고되는 지금의 상황이 대비되기 때문일 것이다.

재정을 충당하기 위해 최근 2년간 전기요금을 10배 넘게 인상하는 등 각종 공공요금을 올린 것도 국민들에게는 큰 고통이 되고 있다. 이 때문에 온 국민이 합심해 경제 위기를 극복해야 할 아르헨티나에는 전 정권과 현 정권을 각각 지지하는 극심한 민심의 분열이 일어나고 있다.


【연일 거리 시위, 교수도 수업 중단】

아르헨티나의 경제위기 상황을 취재한 엿새 동안 동안 거리 시위는 사흘간이나 이어졌다. 재정적자를 줄이려는 정부에 맞서 공무원과 근로자, 교수, 교사, 학생 등이 연일 시위에 동참했다. 최근 아르헨티나 정부가 교육재정을 축소하고 대학교수의 월급을 15% 인상하기로 하자, 인상률이 물가상승률 30%대에 못 미쳐 생활하기 힘들다며 13만여 명의 교수와 학생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겨울방학아 끝나고 새 학기가 시작돼야 하지만 수업은 한 달 넘게 파행을 겪고 있다. 아르헨티나 정부는 이어 IMF 구제금융을 조기에 지원받기 위해 19개 정부 부처를 절반 이하로 줄이고 곡물에 수출세를 부과하겠다는 재정 긴축안을 발표했다. 마크리 대통령의 이런 대국민 담화가 있은지 4시간 만에 공무원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정부 부처 축소 발표에 대량 해고를 예고하는 것이라며 대통령궁까지 기습 시위행진을 벌였다.

아르헨티나는 내년에 만기가 도래하는 약 27조 원 규모의 외채를 상환해야 하는 상황에서 페소 가치 하락으로 부담은 가중되고 있다. 강화된 긴축정책은 국민의 반발에 직면해 있고 정부가 설득력을 잃고 정책을 이행하지 못한다면 페소 가치는 더 떨어질 것이라는 경고도 나오고 있다.

강한 반발과 정부에 대한 비난 속에 IMF는 "자금 지원 방안을 강화하려고 긴밀히 협의하고 있다"면서도 "아르헨티나 당국의 강력한 헌신과 결단이 현재의 어려움을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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