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쓸모] 톰 크루즈 액션이 ‘진짜’에 가까운 이유

입력 2018.09.17 (16:25) 수정 2019.04.09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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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으로 한 걸음 더 들어가서 찾아보는 쓸모 있는 이야기, '영화의 쓸모'입니다.

■톰 크루즈 액션, 뭐가 다른가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에서 톰 크루즈가 보여준 액션 연기를 중심으로, 진짜에 가까운 액션이란 무엇일지 이야기나눠보겠습니다.

톰 크루즈는 위험한 액션 장면들을 대역 없이 소화한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개봉 전부터 촬영현장 영상을 언론에 공개하곤 합니다. 관객은 57살의 억만장자가 있는 힘을 다하는 걸 지켜봅니다.

이를 이야기하기 위해선 우선 톰 크루즈가 진정한 액션 장인으로 존경받는 배우들의 계보를 잇기 위해 애쓰고 있다는 점을 살펴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톰 크루즈가 성룡을 오마주(존경의 의미로 성룡의 장면들을 가져오는 것)한 것이 본격적으로는 '미션임파서블 3'부터입니다.

이번 '미션 임파서블:폴 아웃'에선 성룡의 장면들과 유사한 그림이 더 많아졌습니다. '홍번구'의 옥상 점프 장면에서 성룡이 그런 것처럼 톰도 발목에 심각한 부상을 입었죠.

■톰 크루즈가 본받는 성룡의 액션 철학 "정확하게 보여준다"
물론 따라하기만 한다고 계보를 잇는 건 아니고 다른 영화에도 비슷한 장면은 많습니다. 톰 크루즈가 본받는 성룡의 액션 철학은 '정확하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수많은 액션영화가 있지만 시늉이 아니라 본인이 진짜로 할 때 진정 정확할 수 있습니다. 카메라는 움직이지 않습니다. 원재료가 좋으니까 카메라나 편집으로 양념 칠 일이 없는 것입니다.

카메라 위치는 정직하게 두 인물 '옆'입니다. 확실한 3인칭 시점입니다.

대부분 할리우드 영화의 격투 장면은 흔들리는 카메라가 인물 '뒤'에 있습니다. 가격하는 지점을 주먹으로 가리고 머리로 가리고, 때린 걸로 치고 얼버무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관객은 뭔가 현란한 액션을 보긴 했는데 정확히 뭘 봤는지 잘 모르겠고 어수선하거나 어지럽다는 느낌을 받은 채로 극장을 나오게 됩니다.

정확하게 보여주는 성룡의 움직임은, 웃음을 만들고 나아가 영화적인 리듬을 만듭니다.

미션 임파서블 최근작들의 카메라를 보면 성룡의 성취를 모방하기만 하는 게 아니라 대역 없이 톰 크루즈가 직접 하는 액션을 정확히 보여주는 데 공을 들이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지요.

밝은 곳에서 격렬한 싸움이 벌어지는데 할리우드의 카메라가 CG 없이 인물의 뒤가 아닌 옆에 있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시늉만 하는 게 티가 나면 다시 찍어야 되고, 예산 통제가 어려워지기 때문입니다

성룡은 될 때까지 찍습니다. 톰 크루즈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가 제작비를 대는 제작자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기도 하겠죠.

이제는 톰 크루즈의 트레이드 마크가 된 수평 트래킹 달리기 장면들도 전형적인 3인칭 시점이고 주인공의 감정을 강조하고 싶은 장면에서 온전히 관객 입장에서 주인공을 보세요,라는 톰 크루즈의 신호이기도 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관객은 극중 벤지처럼 2차원 스크린을 보고 있지만 '나는 현실 속에서 진짜로 뛰고 있어', 이런 자의식이 드러나는 장면도 보입니다.

■액션 장인의 원조 버스터 키튼(1896~1966) : '몸'의 고유성을 스크린에 재현
특히 이런 장면을 측면에서 보여주는 것을 이야기하기 위해선 버스터 키튼으로 거슬러올라갈 필요가 있어보입니다. 유성영화가 등장하기 전 자신의 움직임만으로 웃음과 감동을 줄 수 있음을 증명한 위대한 배우죠.


찰리 채플린, 해럴드 로이드와 함께 후대 영화에 커다란 영향을 줬습니다. CG는커녕 어떤 특수효과도 없이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움직임은 CG로 도시 전체를 박살내는 이런 영화보다 훨씬 감동적입니다. 진짜이기 때문입니다.

1920~30년대 주로 활동한 이 배우들과 르네 마그리트, 마르셀 뒤샹 등의 작품이 나온 시기가 겹치는 건 우연이 아닙니다. 파이프를 그려놓고 이건 파이프가 아니다, 파이프를 재현한 것이다,라는 등의 문제제기를 함으로써, 산업화가 속도를 내고 공장에서 찍어내는 똑같은 상품이 쏟아져나오는 걸 본 예술가들, 특히 시각예술 분야에서 기계로 모든 걸 복제하는 시대에 진짜란 뭘까 고민하는 경향에서 나온 결과물들입니다.

예술의 가치는 고유성에서 높아진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버스터 키튼은 복제 예술의 총아인 영화의 스크린 속에 자신의 몸으로 만들어낸 단 한번의 움직임, 그 고유성을 담아내기 위해 노력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新 CG복제시대, 영화는 무엇으로 말할까
지금은 CG로 표현하지 못하는 게 없습니다. 죽은 사람이 살아나기도 합니다. 이런 디지털 복제시대에 불완전하기만 한 인간의 몸이, 어떤 감동을 줄 수 있을까를 영화인들은 고민할 수밖에 없겠죠. 그래서 버튼 하나만 누르면 적들을 다 쓸어버릴 수 있는 기술을 갖고도 대작 영화에 육탄전 장면이 꼭 들어가는 이유도 '몸이 주는 감동'은 무엇도 대체하기 어렵다는 데서 찾을 수 있겠습니다.

톰 크루즈가 이런 이론을 연구하는 예술가도 아니고 CG를 안 쓰는 것도 아닙니다만, 자신의 연기가 얼마나 '진짜'에 가까워질 수 있을까 끊임없이 고민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요즘 나오는 수많은 할리우드 액션 영화들과는 달리 훨씬 고전적인 방식으로 재미있는 영화를 만들어낸다는 점만큼은 분명해보입니다.

영화의 쓸모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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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정2019-04-09 17:18:00
    문화
영화 속으로 한 걸음 더 들어가서 찾아보는 쓸모 있는 이야기, '영화의 쓸모'입니다. ■톰 크루즈 액션, 뭐가 다른가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에서 톰 크루즈가 보여준 액션 연기를 중심으로, 진짜에 가까운 액션이란 무엇일지 이야기나눠보겠습니다. 톰 크루즈는 위험한 액션 장면들을 대역 없이 소화한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개봉 전부터 촬영현장 영상을 언론에 공개하곤 합니다. 관객은 57살의 억만장자가 있는 힘을 다하는 걸 지켜봅니다. 이를 이야기하기 위해선 우선 톰 크루즈가 진정한 액션 장인으로 존경받는 배우들의 계보를 잇기 위해 애쓰고 있다는 점을 살펴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톰 크루즈가 성룡을 오마주(존경의 의미로 성룡의 장면들을 가져오는 것)한 것이 본격적으로는 '미션임파서블 3'부터입니다. 이번 '미션 임파서블:폴 아웃'에선 성룡의 장면들과 유사한 그림이 더 많아졌습니다. '홍번구'의 옥상 점프 장면에서 성룡이 그런 것처럼 톰도 발목에 심각한 부상을 입었죠. ■톰 크루즈가 본받는 성룡의 액션 철학 "정확하게 보여준다" 물론 따라하기만 한다고 계보를 잇는 건 아니고 다른 영화에도 비슷한 장면은 많습니다. 톰 크루즈가 본받는 성룡의 액션 철학은 '정확하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수많은 액션영화가 있지만 시늉이 아니라 본인이 진짜로 할 때 진정 정확할 수 있습니다. 카메라는 움직이지 않습니다. 원재료가 좋으니까 카메라나 편집으로 양념 칠 일이 없는 것입니다. 카메라 위치는 정직하게 두 인물 '옆'입니다. 확실한 3인칭 시점입니다. 대부분 할리우드 영화의 격투 장면은 흔들리는 카메라가 인물 '뒤'에 있습니다. 가격하는 지점을 주먹으로 가리고 머리로 가리고, 때린 걸로 치고 얼버무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관객은 뭔가 현란한 액션을 보긴 했는데 정확히 뭘 봤는지 잘 모르겠고 어수선하거나 어지럽다는 느낌을 받은 채로 극장을 나오게 됩니다. 정확하게 보여주는 성룡의 움직임은, 웃음을 만들고 나아가 영화적인 리듬을 만듭니다. 미션 임파서블 최근작들의 카메라를 보면 성룡의 성취를 모방하기만 하는 게 아니라 대역 없이 톰 크루즈가 직접 하는 액션을 정확히 보여주는 데 공을 들이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지요. 밝은 곳에서 격렬한 싸움이 벌어지는데 할리우드의 카메라가 CG 없이 인물의 뒤가 아닌 옆에 있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시늉만 하는 게 티가 나면 다시 찍어야 되고, 예산 통제가 어려워지기 때문입니다 성룡은 될 때까지 찍습니다. 톰 크루즈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가 제작비를 대는 제작자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기도 하겠죠. 이제는 톰 크루즈의 트레이드 마크가 된 수평 트래킹 달리기 장면들도 전형적인 3인칭 시점이고 주인공의 감정을 강조하고 싶은 장면에서 온전히 관객 입장에서 주인공을 보세요,라는 톰 크루즈의 신호이기도 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관객은 극중 벤지처럼 2차원 스크린을 보고 있지만 '나는 현실 속에서 진짜로 뛰고 있어', 이런 자의식이 드러나는 장면도 보입니다. ■액션 장인의 원조 버스터 키튼(1896~1966) : '몸'의 고유성을 스크린에 재현 특히 이런 장면을 측면에서 보여주는 것을 이야기하기 위해선 버스터 키튼으로 거슬러올라갈 필요가 있어보입니다. 유성영화가 등장하기 전 자신의 움직임만으로 웃음과 감동을 줄 수 있음을 증명한 위대한 배우죠. 찰리 채플린, 해럴드 로이드와 함께 후대 영화에 커다란 영향을 줬습니다. CG는커녕 어떤 특수효과도 없이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움직임은 CG로 도시 전체를 박살내는 이런 영화보다 훨씬 감동적입니다. 진짜이기 때문입니다. 1920~30년대 주로 활동한 이 배우들과 르네 마그리트, 마르셀 뒤샹 등의 작품이 나온 시기가 겹치는 건 우연이 아닙니다. 파이프를 그려놓고 이건 파이프가 아니다, 파이프를 재현한 것이다,라는 등의 문제제기를 함으로써, 산업화가 속도를 내고 공장에서 찍어내는 똑같은 상품이 쏟아져나오는 걸 본 예술가들, 특히 시각예술 분야에서 기계로 모든 걸 복제하는 시대에 진짜란 뭘까 고민하는 경향에서 나온 결과물들입니다. 예술의 가치는 고유성에서 높아진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버스터 키튼은 복제 예술의 총아인 영화의 스크린 속에 자신의 몸으로 만들어낸 단 한번의 움직임, 그 고유성을 담아내기 위해 노력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新 CG복제시대, 영화는 무엇으로 말할까 지금은 CG로 표현하지 못하는 게 없습니다. 죽은 사람이 살아나기도 합니다. 이런 디지털 복제시대에 불완전하기만 한 인간의 몸이, 어떤 감동을 줄 수 있을까를 영화인들은 고민할 수밖에 없겠죠. 그래서 버튼 하나만 누르면 적들을 다 쓸어버릴 수 있는 기술을 갖고도 대작 영화에 육탄전 장면이 꼭 들어가는 이유도 '몸이 주는 감동'은 무엇도 대체하기 어렵다는 데서 찾을 수 있겠습니다. 톰 크루즈가 이런 이론을 연구하는 예술가도 아니고 CG를 안 쓰는 것도 아닙니다만, 자신의 연기가 얼마나 '진짜'에 가까워질 수 있을까 끊임없이 고민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요즘 나오는 수많은 할리우드 액션 영화들과는 달리 훨씬 고전적인 방식으로 재미있는 영화를 만들어낸다는 점만큼은 분명해보입니다. 영화의 쓸모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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