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리포트] 日 대학생이 파출소 습격…경찰 또 피살

입력 2018.09.22 (10:58) 수정 2018.09.22 (2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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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파출소가 위험하다. 흉기 난동의 목표가 되면서 경찰관의 희생도 늘고 있다. 치안 체계에 구조적 한계가 있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경찰이 시민들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시민들이 경찰을 지켜줘야 할 판이다.

새벽의 비명…당직 경찰관 흉기에 피살

최근 일본 미야기 현 센다이 시의 ‘히기시(東)센다이’ 파출소가 무장 괴한의 습격을 받았다. 당직 경찰관 1명이 숨지고, 범인도 사살됐다.

사건이 벌어진 것은 19일 새벽 4시쯤. 검정 반소매 셔츠를 입고 흰색 마스크를 쓴 20대 남성이 “현금을 습득했다”며 들어왔다. 당직 경찰관 4명 가운데 기요노 순사장(33세,경장)과 순사부장(47세,경사) 등 2명은 집무실에 있었고, 다른 2명은 수면실에서 쉬고 있었다. 분실물 관련 업무는 1명이 할 수 있기 때문에 순사부장은 안쪽 집무실로 들어갔다.

피살된 경찰관 ‘기요노’ 경장피살된 경찰관 ‘기요노’ 경장

다투는 소리에 놀란 순사부장이 되돌아왔을 때, 기요노 순사장이 머리와 어깨, 옆구리, 허리, 팔 등을 흉기에 찔려 쓰러져 있었다. 범인은 길이 30cm가량의 흉기와 ‘모형총기류’를 든 채 순사부장에게 다가서려 했다. 순사부장은 권총 3발을 발사했고, 최소한 1발이 명중했다. 경찰과 범인은 병원으로 급히 옮겨졌지만 모두 숨졌다. 피습 당시, 경찰관은 방검복을 입고 있지 않았다.

파출소는 JR 히가시센다이 역에서 북서쪽으로 200m 가량 떨어진 곳에 있었다. 인근에 주택가와 중학교가 있었다. 범인이 총기를 탈취했다면 끔찍한 참사로 이어질 뻔 했다. 중학교 측은 학생들이 파출소 쪽을 우회해서 등하교하도록 조치한 뒤, 학생들을 끝까지 지켜봤다. 수업은 정상 진행됐지만, 하루 종일 긴장감이 이어졌다.

센다이 파출소 피습 현장센다이 파출소 피습 현장

파출소 인근 주민들은 경찰관들이 이웃사람들에게 정중하게 잘 대해줬다며 안타까워했다. 미야기 현 경찰본부 측은 “순직한 경찰관의 유족에게 깊은 애도의 뜻”을 표했다. 숨진 경찰관은 센다이 지역 고등학교 출신이었다. 옛 은사는 “학업과 동아리 활동에 열심히 참여했던 착한 학생”으로 기억했다.

‘현행범’ 인적사항‧얼굴 즉시 공개

경찰을 공격한 용의자는 파출소에서 800미터 가량 떨어진 곳에 거주하는 대학생으로 드러났다. 현행범과 유력 용의자 등의 신원을 즉시 공개하는 관행은 이번에도 그대로 적용됐다. 공영방송 NHK와 일본 신문들은 사건 초기부터 용의자의 신원과 얼굴, 인적사항을 모두 공개했다. 용의자의 이름은 아이자와 유타, 21세. ‘도호쿠 가쿠인 대학’ 문학부 역사학 전공으로 알려졌다.

파출소 습격 범인 ‘아이자와’파출소 습격 범인 ‘아이자와’

동료 학생들은 “수업에 성실하게 출석했다.” “시험 때는 동료들에게 수업의 요점을 가르쳐 주는 등 부드럽고 온화한 성격이었다.” “평소 혼자 다니고, 말소리가 작았다.” “점잖은 사람으로 생각했다.”며 놀라워했다.

주민들에 따르면, 아이자와는 부모 및 동생 4명과 살고 있었다. 인근 친척들은 “세뱃돈을 줄 때는 ‘감사합니다’라고 인사하는 등, 예의 바르고 얌전한 모습이었다.” “길고양이를 귀여워하는 등 온화하고 부드러운 모습이다.”며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치밀한 계획범죄’…‘취업 스트레스 탓’?

엽기 잔혹 범죄자들에겐 몇가지 공통점이 있다. 주변 사람들이 통상 ‘조용했다’ ‘친절했다’ ‘성실했다’ 등으로 기억한다는 점이다. 범인은 대부분 자신의 일탈을 ‘그럴 듯하게’ 타인 탓으로 돌리는 재주가 비상하다. 이를테면 “사회가 나를 괴물로 키웠다” 등등. 경찰이 범행 동기를 밝히는데 어려움을 겪는 이유 중 하나이다.

센다이 파출소 피습 현장센다이 파출소 피습 현장

경찰 조사결과, 인터넷 사이트에 사건 관련 기록 등을 남긴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고, 가족도 특이점을 느끼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범인이 파출소의 취약시간을 노려 치밀하게 준비한 계획적 범행이라는 정황이 드러났다. 범인이 두르고 있던 허리가방에는 가위와 커터칼, 드라이버 등이 들어 있었다.

경찰이 범인의 자택을 압수수색한 결과, 공기총류가 발견됐다. 경찰은 범행 현장에 플라스틱 총알이 다수 발견된 점으로 미뤄, 범인이 공기총을 발사한 것으로 보고 있다.

한편, NHK는 범행 동기와 관련해 주목되는 뒷이야기를 전했다. 대학 관계들에 따르면, 범인이 주변 학생들에게 취업에 대한 불안을 이야기했다는 것이다. 취업 스트레스가 엽기 범죄의 원인이었을까?

구멍 뚫린 치안…발칵 뒤집힌 정부

경찰청은 전국의 경찰에 파출소 안전 대책 강화를 지시했다. 칼날을 막아주는 방검복을 항상 착용하고, 파출소에 경찰관을 여러 명 배치하며, 파출소 침입을 막는데 필요한 조치를 취하라고 지시했다.

센다이 파출소 피습 현장센다이 파출소 피습 현장

앞서, 지난 6월 26일 도야마 현 도야마 시 JR도야마 역 인근 파출소가 무장 괴한의 습격을 받고 경찰관 1명 등 2명이 숨졌다. 범인은 전직 자위대 자위관 시마즈(21세). 총기를 탈취해 난동을 벌이다 총상을 입고 체포됐다. 당시에도 경찰 당국은 주민들에게 사과한 뒤 재발 방지 대책 마련을 약속했다.

오코노기 국가공안 위원장은 “지난 6월 도야마 시 파출소 습격 사건 이후, 파출소 등 안전강화에 노력해왔는데, 매우 유감”이라면서 철저한 수사와 안전대책 강화를 다시 약속했다.

일본에서 경찰관이나 파출소가 피습되는 상황은 이미 만성적인 문제가 됐다. 센다이에서 경찰관이 피살된 19일 당일 밤, 가나가와 현 가와사키 시의 파출소에서도 아찔한 상황이 벌어졌다. 한 남성이 스스로 가나이 다스키(22세)라고 밝히면서 흉기를 들고 침입했다가 체포됐다. “경찰관을 위협해 총에 맞아 죽으려고 했다”는 황당한 범행동기를 밝혔다.

가와사키 파출소 피습 현장가와사키 파출소 피습 현장

1982년부터 최근까지 언론에 기록된 경찰 피습 사건 장소만 꼽아 보면, 아이치, 교토, 도쿄, 아오모리, 사이타마, 지바, 기후, 후쿠오카, 가나가와 등 일일이 헤아리기조차 어렵다. 경찰청 집계에 따르면, 전국의 파출소는 2017년 4월 기준으로 6천200여 곳, 주재소는 6천300여 곳이다. 상당수가 만성적인 인력난에 시달리고 있다.

파출소 환경을 방어적으로 바꾸는 방법이 거론되고 있다. 이를테면 장애물로 사용할 수 있는 접수대 또는 투명 격리판 등을 설치하는 방법, 의심스러운 행동을 감지하는 훈련, 그리고 범죄자가 싫어하도록 사무용 가구 배치를 바꾸는 방법 등이다. 그러나 파출소가 기본적으로 도움이 필요해 방문하는 사람들을 돕기 위한 곳이기 때문에, 민원인과 경찰관을 물리적으로 완전히 분리하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 작정하고 덤비는 흉악범을 미리 파악하고 제어한다는 것이 쉽지 않다.

안정된 치안은 단순한 물리력의 산물이 아니다. 치안을 유지하는 기관의 권위, 그리고 그 권위를 존중하는 사회적 합의와 전통이 필수적이다. 치안 유지의 최전선인 파출소가 일상적 공격의 대상이 됐다는 것은 그 권위가 심각한 수준으로 위협받고 있다는 징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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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파원리포트] 日 대학생이 파출소 습격…경찰 또 피살
    • 입력 2018-09-22 10:58:59
    • 수정2018-09-22 23:04:07
    특파원 리포트
일본의 파출소가 위험하다. 흉기 난동의 목표가 되면서 경찰관의 희생도 늘고 있다. 치안 체계에 구조적 한계가 있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경찰이 시민들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시민들이 경찰을 지켜줘야 할 판이다.

새벽의 비명…당직 경찰관 흉기에 피살

최근 일본 미야기 현 센다이 시의 ‘히기시(東)센다이’ 파출소가 무장 괴한의 습격을 받았다. 당직 경찰관 1명이 숨지고, 범인도 사살됐다.

사건이 벌어진 것은 19일 새벽 4시쯤. 검정 반소매 셔츠를 입고 흰색 마스크를 쓴 20대 남성이 “현금을 습득했다”며 들어왔다. 당직 경찰관 4명 가운데 기요노 순사장(33세,경장)과 순사부장(47세,경사) 등 2명은 집무실에 있었고, 다른 2명은 수면실에서 쉬고 있었다. 분실물 관련 업무는 1명이 할 수 있기 때문에 순사부장은 안쪽 집무실로 들어갔다.

피살된 경찰관 ‘기요노’ 경장
다투는 소리에 놀란 순사부장이 되돌아왔을 때, 기요노 순사장이 머리와 어깨, 옆구리, 허리, 팔 등을 흉기에 찔려 쓰러져 있었다. 범인은 길이 30cm가량의 흉기와 ‘모형총기류’를 든 채 순사부장에게 다가서려 했다. 순사부장은 권총 3발을 발사했고, 최소한 1발이 명중했다. 경찰과 범인은 병원으로 급히 옮겨졌지만 모두 숨졌다. 피습 당시, 경찰관은 방검복을 입고 있지 않았다.

파출소는 JR 히가시센다이 역에서 북서쪽으로 200m 가량 떨어진 곳에 있었다. 인근에 주택가와 중학교가 있었다. 범인이 총기를 탈취했다면 끔찍한 참사로 이어질 뻔 했다. 중학교 측은 학생들이 파출소 쪽을 우회해서 등하교하도록 조치한 뒤, 학생들을 끝까지 지켜봤다. 수업은 정상 진행됐지만, 하루 종일 긴장감이 이어졌다.

센다이 파출소 피습 현장
파출소 인근 주민들은 경찰관들이 이웃사람들에게 정중하게 잘 대해줬다며 안타까워했다. 미야기 현 경찰본부 측은 “순직한 경찰관의 유족에게 깊은 애도의 뜻”을 표했다. 숨진 경찰관은 센다이 지역 고등학교 출신이었다. 옛 은사는 “학업과 동아리 활동에 열심히 참여했던 착한 학생”으로 기억했다.

‘현행범’ 인적사항‧얼굴 즉시 공개

경찰을 공격한 용의자는 파출소에서 800미터 가량 떨어진 곳에 거주하는 대학생으로 드러났다. 현행범과 유력 용의자 등의 신원을 즉시 공개하는 관행은 이번에도 그대로 적용됐다. 공영방송 NHK와 일본 신문들은 사건 초기부터 용의자의 신원과 얼굴, 인적사항을 모두 공개했다. 용의자의 이름은 아이자와 유타, 21세. ‘도호쿠 가쿠인 대학’ 문학부 역사학 전공으로 알려졌다.

파출소 습격 범인 ‘아이자와’
동료 학생들은 “수업에 성실하게 출석했다.” “시험 때는 동료들에게 수업의 요점을 가르쳐 주는 등 부드럽고 온화한 성격이었다.” “평소 혼자 다니고, 말소리가 작았다.” “점잖은 사람으로 생각했다.”며 놀라워했다.

주민들에 따르면, 아이자와는 부모 및 동생 4명과 살고 있었다. 인근 친척들은 “세뱃돈을 줄 때는 ‘감사합니다’라고 인사하는 등, 예의 바르고 얌전한 모습이었다.” “길고양이를 귀여워하는 등 온화하고 부드러운 모습이다.”며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치밀한 계획범죄’…‘취업 스트레스 탓’?

엽기 잔혹 범죄자들에겐 몇가지 공통점이 있다. 주변 사람들이 통상 ‘조용했다’ ‘친절했다’ ‘성실했다’ 등으로 기억한다는 점이다. 범인은 대부분 자신의 일탈을 ‘그럴 듯하게’ 타인 탓으로 돌리는 재주가 비상하다. 이를테면 “사회가 나를 괴물로 키웠다” 등등. 경찰이 범행 동기를 밝히는데 어려움을 겪는 이유 중 하나이다.

센다이 파출소 피습 현장
경찰 조사결과, 인터넷 사이트에 사건 관련 기록 등을 남긴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고, 가족도 특이점을 느끼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범인이 파출소의 취약시간을 노려 치밀하게 준비한 계획적 범행이라는 정황이 드러났다. 범인이 두르고 있던 허리가방에는 가위와 커터칼, 드라이버 등이 들어 있었다.

경찰이 범인의 자택을 압수수색한 결과, 공기총류가 발견됐다. 경찰은 범행 현장에 플라스틱 총알이 다수 발견된 점으로 미뤄, 범인이 공기총을 발사한 것으로 보고 있다.

한편, NHK는 범행 동기와 관련해 주목되는 뒷이야기를 전했다. 대학 관계들에 따르면, 범인이 주변 학생들에게 취업에 대한 불안을 이야기했다는 것이다. 취업 스트레스가 엽기 범죄의 원인이었을까?

구멍 뚫린 치안…발칵 뒤집힌 정부

경찰청은 전국의 경찰에 파출소 안전 대책 강화를 지시했다. 칼날을 막아주는 방검복을 항상 착용하고, 파출소에 경찰관을 여러 명 배치하며, 파출소 침입을 막는데 필요한 조치를 취하라고 지시했다.

센다이 파출소 피습 현장
앞서, 지난 6월 26일 도야마 현 도야마 시 JR도야마 역 인근 파출소가 무장 괴한의 습격을 받고 경찰관 1명 등 2명이 숨졌다. 범인은 전직 자위대 자위관 시마즈(21세). 총기를 탈취해 난동을 벌이다 총상을 입고 체포됐다. 당시에도 경찰 당국은 주민들에게 사과한 뒤 재발 방지 대책 마련을 약속했다.

오코노기 국가공안 위원장은 “지난 6월 도야마 시 파출소 습격 사건 이후, 파출소 등 안전강화에 노력해왔는데, 매우 유감”이라면서 철저한 수사와 안전대책 강화를 다시 약속했다.

일본에서 경찰관이나 파출소가 피습되는 상황은 이미 만성적인 문제가 됐다. 센다이에서 경찰관이 피살된 19일 당일 밤, 가나가와 현 가와사키 시의 파출소에서도 아찔한 상황이 벌어졌다. 한 남성이 스스로 가나이 다스키(22세)라고 밝히면서 흉기를 들고 침입했다가 체포됐다. “경찰관을 위협해 총에 맞아 죽으려고 했다”는 황당한 범행동기를 밝혔다.

가와사키 파출소 피습 현장
1982년부터 최근까지 언론에 기록된 경찰 피습 사건 장소만 꼽아 보면, 아이치, 교토, 도쿄, 아오모리, 사이타마, 지바, 기후, 후쿠오카, 가나가와 등 일일이 헤아리기조차 어렵다. 경찰청 집계에 따르면, 전국의 파출소는 2017년 4월 기준으로 6천200여 곳, 주재소는 6천300여 곳이다. 상당수가 만성적인 인력난에 시달리고 있다.

파출소 환경을 방어적으로 바꾸는 방법이 거론되고 있다. 이를테면 장애물로 사용할 수 있는 접수대 또는 투명 격리판 등을 설치하는 방법, 의심스러운 행동을 감지하는 훈련, 그리고 범죄자가 싫어하도록 사무용 가구 배치를 바꾸는 방법 등이다. 그러나 파출소가 기본적으로 도움이 필요해 방문하는 사람들을 돕기 위한 곳이기 때문에, 민원인과 경찰관을 물리적으로 완전히 분리하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 작정하고 덤비는 흉악범을 미리 파악하고 제어한다는 것이 쉽지 않다.

안정된 치안은 단순한 물리력의 산물이 아니다. 치안을 유지하는 기관의 권위, 그리고 그 권위를 존중하는 사회적 합의와 전통이 필수적이다. 치안 유지의 최전선인 파출소가 일상적 공격의 대상이 됐다는 것은 그 권위가 심각한 수준으로 위협받고 있다는 징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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