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페미니즘, 동성애, 몰카…신임 여가부 장관은 무엇을 말했나

입력 2018.09.27 (17:40) 수정 2018.09.27 (17:48)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여성가족부를 폐지해주세요!"
"여성가족부 해체 요구합니다!"

요즘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서 심심찮게 볼 수 있는 글 제목입니다. 여가부 폐지 국민청원이 올해만 300건 넘게 올라왔는데, 이중 100명 넘게 서명한 청원은 27건, 3만 명 넘게 동의한 청원도 2건이나 됐습니다. 여성가족부처럼 편향적이고 '남성혐오'적인 부처에 아까운 혈세를 써서는 안 된다는 게 대부분 청원의 요지인데요. 성평등과 페미니즘이 주요 이슈로 떠오른 올해, 방향은 어찌됐든 여가부가 전에 없던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건 분명해 보입니다.


이렇게 '핫한' 여성가족부의 수장이 최근 바뀌었습니다. 재선의 국회의원이기도 한 진선미 신임 장관, 내정 소식이 알려졌을 때부터 큰 화제가 됐는데요. 호주제 폐지와 소라넷 폐쇄에 앞장섰다는 굵직한 이력은 유명하지만, 최근 현안에 대한 신임 장관의 구체적인 생각은 상대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지난주 있었던 여성가족부 장관 인사청문회에 다시 눈길을 돌리게 되는 이유입니다. 남북 정상이 함께 백두산 정상에 오른 그날, 청문회 소식은 자연히 묻히고 말았는데요. 인사청문회 당시 진선미 당시 후보자가 내놓은 답변들을 키워드 중심으로 살펴보면서, 신임 여성가족부 장관의 세세한 생각을 들여다보고자 합니다.

9월 20일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 참석한 진선미 (당시) 장관 후보자.9월 20일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 참석한 진선미 (당시) 장관 후보자.

① 페미니즘: "페미니스트는 인간주의자…남녀 같이가는 것"

"후보자께서는 페미니스트가 어떤 사람을 일컫는 말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글쎄요, 제 안에서는 인간주의자다라는 생각을 합니다."
"후보자께서도 페미니스트이십니까?"
"예, 저도 인간주의자라는 관점에서 보면 그렇습니다."
- 윤소하 위원과의 질의응답 중

최근 "페미니스트가 일종의 낙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상황"(윤소하 위원)에서도, 진선미 당시 후보자는 "본인은 페미니스트냐"라는 질문에 바로 긍정의 답변을 내놨습니다. 그러면서 "인간주의자"로서의 페미니스트를 강조했습니다. 페미니즘이 남성을 역차별하고 여성의 권익 향상만을 추구한다는 주장과 함께 '성대결' 구도를 부각시키는 일각의 움직임을 고려한 답변으로 보입니다.

진 후보자는 이어 "제 삶 속에서도 제가 차별을 받을 때 제 손을 붙잡아 준 사람이 여성만이 아니다. 오히려 일반 여성보다 훨씬 더 인권 감수성이 있는 그런 남성들의 손을 붙잡은 경험이 많다"라고 말했습니다. 페미니즘은 여성만의 전유물이 아니고, 남성을 배제하지 않으며, 다양한 성적 주체가 함께하는 문제라는 겁니다.

그러면서 "여성과 남성의 관계 자체가 전혀 분리되지 않는 것" "여성에게는 남성이 정말 중요하고, 남성에게는 정말 여성이 중요한 것. 그렇게 같이하고 있다라는 것을 실감하게 할 수 있는 방법들을 만들어내야 하지 않나 그런 생각"이라며 성대결 구도를 경계했습니다.

② 성소수자: "동성애 옹호 아니라 차별 안된다는 것"

"…홍대에서 열렸던 퀴어축제에도 참여하셨고, 동성애 처벌 관련된 군형법 폐지 개정안도 발의하셨습니다. 이런 것들을 보면 동성애에 대한 확고한 입장을 가지고 계시는데, 후보자께서 동성애자는 아니시지요?"
"위원님, 그 질문은 조금 위험한 발언이셔서… 질문 자체가 어떤 차별성을 담는 질문일 수 있습니다."
- 이종명 위원과의 질의응답 중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김순례 위원이 진선미 장관 후보자에게 질의를 하고 있다.국회 여성가족위원회 김순례 위원이 진선미 장관 후보자에게 질의를 하고 있다.

지난 인사청문회에서 가장 자주 나온 질문은 '성소수자에 대한 후보자의 입장이 무엇이냐'는 것이었습니다. 특히 자유한국당 소속 여성가족위원회 위원들은 후보자가 동성 커플인 김조광수-김승환 씨 결혼식과 퀴어문화축제에 참석했던 점, 군형법 개정안을 발의하고 생활동반자법 발의를 검토했던 점을 들어 "동성애를 옹호하는 것 아니냐"고 수차례 추궁했습니다.

이에 대해 후보자는 "누군가를 차별하지 말자는 것이지, 그것을 옹호하거나 권하거나 이런 문제는 아니다"라고 답했습니다. "성소수자라는 것만으로 차별을 받으면 안 된다라는 인간적인, 인권적인 관점에서 함께하고 있었던 것" "누구나 인간은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라는 그런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는 것"이라며 추가적인 설명도 이어갔습니다.

그러면서 "이런 것(후보자가 동성애를 우대하는 것 아니냐)을 확인하고 있는 이 상황이 정말 문제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자꾸만 검열을 당하는 것 같고, 예전에 십자가를 밟고 가는 것처럼 '너는 그거 아니지?' '그거 아니지? 이렇게 얘기하는 것이…"라고 꼬집었습니다. 동성애 이슈를 지나치게 부각시키며 후보자의 입장을 반복해서 묻는 행위 자체가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일 수 있다는 문제의식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진 후보자는 동성애와 에이즈를 연관시키는 질문에 대해서도 "두 문제는 다른 문제"라고 선을 그은 뒤, "에이즈는 심각한 질병이어서 그 누구도 보호받아야 마땅하다. 다만 그것이 동성애에 대한 여러 차별적 제도나 태도, 발언들을 합법화시키는 것은 아니다"라고 분명한 입장을 밝혔습니다.

진선미 의원이 2013년 6월 퀴어문화축제에 참석해 가수 하리수 씨와 카메라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출처: 진선미 장관 트위터)진선미 의원이 2013년 6월 퀴어문화축제에 참석해 가수 하리수 씨와 카메라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출처: 진선미 장관 트위터)

성소수자 인권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를 설명하면서, 자신이 어린 시절 겪었던 차별과 성소수자 친구에 관한 기억을 길게 풀어놓은 대목도 눈에 띕니다.

진 후보자는 "시골에서 아버지를 잃은 것도 고통스러운데 중3, 고1 여학생에게 '애비없는 자식'이라는 차별 언사를 너무나 쉽게 하고, 또 제가 전라도라는 것, 또 가난하다는 것…"이라며 어린 시절 경험한 차별적인 상황을 회상했습니다. 그러면서 모태신앙을 가지고 "동성애는 죄악"이라는 교육을 받고 자랐지만, 나중에 자신이 성소수자임을 깨닫고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했다는 한 '친구'의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그는 "온갖 치료를 다 받고자 노력하고 스스로를 부인하고 그러나 10년이 지나도 바뀌지 않는 자신의 모습 속에서, 부모에게도 버림 받고 삶을 마무리하려고 했던 손에 그어진 자국을, 저는 그 손을 잊을 수 없다" "그 친구의 눈빛이 저의 눈빛 같았다"라고 털어놨습니다. 그러면서 본인이 성소수자 차별 해소를 위해 노력해온 것은 "힘들어하는 사람 손 붙잡아 주며 함께 살아보자, 딱 이 수준"이었다며, "제가 그렇게 명민하지도, 그렇게 용기 있지도, 그렇게 급진적이지도 않고, 그저 조금 더 인간적이고자 노력하는 사람" "성소수자에 대한 저의 역할이라는 것은 정말 큰 바다의 '요만큼'이라고 생각한다"라고 재차 본인이 '특별하지 않음'을 강조했습니다.

그럼에도 자유한국당 소속 위원들의 질의가 이어지자 "제가 6년 동안 의원 활동을 할 때마다 전화선을 빼놓아야 할 정도로 매우 공격적으로 (동성애 관련) 문제제기를 하시는데, 그 우려들에 대해서도 이해해보려고 노력하고 있다" "우려를 표하시는 분들도 대변해야 하는 역할이라는 것에 대해 충분히 자각하고 있다"라고 답했습니다.

③ '몰카'와 혜화역 시위: "나도 성추행 겪었다…여성들의 공포심 함께 느껴"

"여가부 장관이 만약 되시면, 혜화역 시위에 대해 어떤 스탠스를 취하고, 혹시 어떤 액션을 하실 게 있는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본인의 몸이 누군가에게 들여다보여지는 그런 성적 유희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어마어마한 공포심과 불안감이 오늘의 이 상황들을 만들어 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 청문회 통과가 되면 제가 그것(예정된 혜화역 시위에 대한 액션)에 대해서 조금 더 진지하게 고민해보려고 합니다."
- 신용현 위원과의 질의응답 중

진선미 의원이 2017년 10월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경찰청 국정감사에서 ‘물병 몰래카메라’를 소개하며 들어보이고 있다. (출처: 진선미 장관 트위터)진선미 의원이 2017년 10월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경찰청 국정감사에서 ‘물병 몰래카메라’를 소개하며 들어보이고 있다. (출처: 진선미 장관 트위터)

인사청문회에서는 홍대 누드모델 '불법촬영' 사건 수사를 계기로 시작된 혜화역 시위에 대한 질문도 빠지지 않았습니다. 진선미 후보자는 이런 움직임이 나타난 원인을 일상 공간에 도사린 성폭력 범죄에 대한 '여성들의 공포심'으로 보고, 이를 "정말 같이 느꼈다"라고 말했습니다.

특히 그는 "제가 건대에서 학교(성균관대)를 가는데 정말 빽빽한 지하철 안에서, 도저히 피할 수 없는 성추행에 노출돼서 오죽하면 가해자의 손을 붙잡고 갔던 기억도 있다. 정말 끔찍한 기억이 있다. 제가 그런 일을 겪었다"라며 자신이 대학시절 겪은 성추행 피해를 이야기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불법촬영물) 유통 구조에 대한 근원적인 접근, 처벌 이런 부분들에 대해서도 지금 의견들이 모아지고 있고 그 방법들을 찾아보고 있는 중"이라며 취임 이후 디지털성범죄에 대한 대응책을 모색하겠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④ 워마드: "차별과 범죄 옹호, 혐오는 분명한 문제"

"메갈리아라는 커뮤니티를 알고 계실 텐데 어떻게 보십니까? 극단적인 페미니즘이라는 비판이 많은데 후보자님도 그렇게 동감하시는지요?"
"메갈리아 커뮤니티는 꽤 오래전에 이미 폐쇄가 됐습니다. 말씀하신 것은 아마 그러면 워마드를 말씀하시는 것 같은데..."
"그것은 아니고요, 워마드랑 메갈리아를 제가 혼동해서 질문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미 폐쇄가 돼서 그 내용들에 대해 제가 파악하기가 어려운 상황이고요. 다만 최근에 워마드에 대한 부분들 중에 지나치게 혐오적인 부분이나 또 소수자들에 대한 비난이나 이런 부분들은 매우 심각하게 우려하고 있고 그 부분에 대해서 문제가 있다고 말씀드립니다."
- 송희경 위원과의 질의응답 중


청문회장에서는 온라인 커뮤니티 '메갈리아'와 '워마드'의 이름도 언급됐습니다. "메갈리아라는 커뮤니티를 어떻게 보냐"는 송희경 위원의 질문에 진 후보자는 "이미 폐쇄된 사이트로 제가 직접 들어가본 적은 분명히 없다"면서, "소라넷이라는 엄청난 문제를 제일 먼저 문제제기했던 곳이라는 게 저의 이 단체에 대한 입장"이라고만 밝혔습니다. 그럼에도 비슷한 질의가 계속 이어지자 후보자는 "모든 커뮤니티에서 차별이나 범죄 옹호, 지나친 혐오, 이런 부분들은 분명히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송 위원은 일부 커뮤니티에 올라온 진선미 의원에 대한 응원, 후원 글을 보여주면서 "극단적 페미니즘 사이트의 후원을 받았는데, 치우친 성향을 보이는 건 아닌가라는 우려가 있다"라고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이에 대해 후보자는 "소라넷 사태 등에 대한 문제 해결을 제가 해줬다고 생각하고, 여러 여성 커뮤니티들에서 단체로 많이들 후원을 해주셨다"면서도 이를 근거로 후보자가 치우쳐져 있고 급진적이라고 문제삼는 지적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다"고 밝혔습니다.

⑤ 화해·치유재단: "위안부 피해자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빠르게 처리"

"화해·치유재단이 계속 존속해야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니면 해산이라든지 어떤 절차를 밟아야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가장 중요한 것은 위안부 피해자들의 의견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분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빠르게 처리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 김정우 위원과의 질의응답 중

25일 미국 뉴욕에서 열린 한일 정상회담에서 아베 총리를 만난 문재인 대통령은, 화해·치유재단 문제를 "지혜롭게 매듭지을 필요가 있다"며 사실상 해산하겠다는 뜻을 밝혔는데요. 실제 이 재단 설립을 허가하고 사업 계획을 승인한 소관 부처는 여성가족부입니다. 이 때문에 화해·치유재단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외교부와 함께 여성가족부의 입장이 주목받는 상황이지요.

진 후보자가 청문회에서 내놓은 답변은 여태껏 여성가족부가 견지해 온 입장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위안부 피해자들의 의견을 가장 중요하게 고려해 재단을 신속히 해산하는 방안을 고민 중이라는 겁니다. 구체적인 해산 시점을 묻는 질문에 진 후보자는 연말 해산을 목표로 삼겠다는 이낙연 국무총리의 발언에 맞춰 노력을 하겠지만,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에게 희망고문이 될 수 있어 일정을 고정해 언급하진 않겠다고 밝혔습니다.

⑥ 탁현민: "이미 본인이 사의 표해…제가 답변할 문제 아냐"

"다시 한번 묻겠습니다. 어떻게 하실 거예요?"
"이미 본인이 사의를 표한 상황이고 오랜 기간이 지났기 때문에 제가 답변할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본인이 사임을 표하고 안 나오고 있잖아요. … 국민의 소리라는 것으로 인지하시고 답을 한번 줘 보시라 이 얘기입니다."
"조금 전에 답변 드렸습니다."
"어떻게요?"
"이미 사의를 표했고 이건 다른 인사권자의 권한의 범위라서 제가 답변할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 김순례 위원과의 질의 응답 중

탁현민 청와대 행정관의 과거 저서에 포함된 일부 내용은 여성을 성적 대상화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출처: KBS 보도 캡처)탁현민 청와대 행정관의 과거 저서에 포함된 일부 내용은 여성을 성적 대상화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출처: KBS 보도 캡처)

청문회에 오지도 않은 인물이 화제였습니다. 탁현민 청와대 행정관 얘기인데요. 앞서 탁 행정관의 저서에서 여성을 성적으로 대상화한 내용이 논란이 되자, 정현백 전 여성가족부 장관은 청와대에 탁 행정관이 사퇴해야한다는 의견을 전달했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야당 소속 여가위 위원들은 진 후보자가 의원 시절 여성 이슈에 적극적인 태도를 보인데 반해 "유독 탁현민 행정관에 대해서는 아무 얘기도 안했다"(신용현 위원)고 지적하면서, 장관이 되면 청와대에 탁 행정관의 경질을 건의할 의사가 있는지 끈질기게 질의했습니다.

이에 대해 후보자는 "어느 하나하나의 사건들이 가지는 의미보다는 … 사람들이 갈등을 일으키고 있는 근원적인 문제 해결을 하고자 한다"며 직접적인 답변을 피했습니다.

그러나 "우회적으로 말하지 말라" "단도직입적으로 묻겠다"는 야당 위원들의 질의가 쏟아지자, "그 부분들은 정리되고 있기 때문에 별도의 얘기를 통해 저의 여성들에 대한 의지를 확인하고 싶지 않다"고 부정적인 입장을 내비쳤고, 결국에는 "본인(탁현민 행정관)이 사퇴 의사를 표현한 상태이고 오랜 기간 지난 문제"라며 별도로 경질 의견을 표명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혔습니다.

진선미 신임 여성가족부 장관이 21일 문재인 대통령에게 임명장을 받고 있다.진선미 신임 여성가족부 장관이 21일 문재인 대통령에게 임명장을 받고 있다.

뜨거웠던 인사청문회가 끝나고 임명장을 받은 진선미 신임 장관. 그의 앞에 놓인 시간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진 장관이 출마할 것으로 예상되는 2020년 국회의원 선거일까지 이제 1년 반 정도밖에 남지 않았기 때문인데요. "소외된 사람들의 삶을 보살펴서 모든 구성원들이 '그래도 여가부 하나는 따뜻하게 내 편이 돼 줄 수 있구나'라는 믿음이 생겼으면 좋겠다"라는 그의 포부가 현실이 될 수 있을지, 많은 이들이 지켜보고 있습니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취재후] 페미니즘, 동성애, 몰카…신임 여가부 장관은 무엇을 말했나
    • 입력 2018-09-27 17:40:58
    • 수정2018-09-27 17:48:26
    취재후·사건후
"여성가족부를 폐지해주세요!"
"여성가족부 해체 요구합니다!"

요즘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서 심심찮게 볼 수 있는 글 제목입니다. 여가부 폐지 국민청원이 올해만 300건 넘게 올라왔는데, 이중 100명 넘게 서명한 청원은 27건, 3만 명 넘게 동의한 청원도 2건이나 됐습니다. 여성가족부처럼 편향적이고 '남성혐오'적인 부처에 아까운 혈세를 써서는 안 된다는 게 대부분 청원의 요지인데요. 성평등과 페미니즘이 주요 이슈로 떠오른 올해, 방향은 어찌됐든 여가부가 전에 없던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건 분명해 보입니다.


이렇게 '핫한' 여성가족부의 수장이 최근 바뀌었습니다. 재선의 국회의원이기도 한 진선미 신임 장관, 내정 소식이 알려졌을 때부터 큰 화제가 됐는데요. 호주제 폐지와 소라넷 폐쇄에 앞장섰다는 굵직한 이력은 유명하지만, 최근 현안에 대한 신임 장관의 구체적인 생각은 상대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지난주 있었던 여성가족부 장관 인사청문회에 다시 눈길을 돌리게 되는 이유입니다. 남북 정상이 함께 백두산 정상에 오른 그날, 청문회 소식은 자연히 묻히고 말았는데요. 인사청문회 당시 진선미 당시 후보자가 내놓은 답변들을 키워드 중심으로 살펴보면서, 신임 여성가족부 장관의 세세한 생각을 들여다보고자 합니다.

9월 20일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 참석한 진선미 (당시) 장관 후보자.
① 페미니즘: "페미니스트는 인간주의자…남녀 같이가는 것"

"후보자께서는 페미니스트가 어떤 사람을 일컫는 말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글쎄요, 제 안에서는 인간주의자다라는 생각을 합니다."
"후보자께서도 페미니스트이십니까?"
"예, 저도 인간주의자라는 관점에서 보면 그렇습니다."
- 윤소하 위원과의 질의응답 중

최근 "페미니스트가 일종의 낙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상황"(윤소하 위원)에서도, 진선미 당시 후보자는 "본인은 페미니스트냐"라는 질문에 바로 긍정의 답변을 내놨습니다. 그러면서 "인간주의자"로서의 페미니스트를 강조했습니다. 페미니즘이 남성을 역차별하고 여성의 권익 향상만을 추구한다는 주장과 함께 '성대결' 구도를 부각시키는 일각의 움직임을 고려한 답변으로 보입니다.

진 후보자는 이어 "제 삶 속에서도 제가 차별을 받을 때 제 손을 붙잡아 준 사람이 여성만이 아니다. 오히려 일반 여성보다 훨씬 더 인권 감수성이 있는 그런 남성들의 손을 붙잡은 경험이 많다"라고 말했습니다. 페미니즘은 여성만의 전유물이 아니고, 남성을 배제하지 않으며, 다양한 성적 주체가 함께하는 문제라는 겁니다.

그러면서 "여성과 남성의 관계 자체가 전혀 분리되지 않는 것" "여성에게는 남성이 정말 중요하고, 남성에게는 정말 여성이 중요한 것. 그렇게 같이하고 있다라는 것을 실감하게 할 수 있는 방법들을 만들어내야 하지 않나 그런 생각"이라며 성대결 구도를 경계했습니다.

② 성소수자: "동성애 옹호 아니라 차별 안된다는 것"

"…홍대에서 열렸던 퀴어축제에도 참여하셨고, 동성애 처벌 관련된 군형법 폐지 개정안도 발의하셨습니다. 이런 것들을 보면 동성애에 대한 확고한 입장을 가지고 계시는데, 후보자께서 동성애자는 아니시지요?"
"위원님, 그 질문은 조금 위험한 발언이셔서… 질문 자체가 어떤 차별성을 담는 질문일 수 있습니다."
- 이종명 위원과의 질의응답 중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김순례 위원이 진선미 장관 후보자에게 질의를 하고 있다.
지난 인사청문회에서 가장 자주 나온 질문은 '성소수자에 대한 후보자의 입장이 무엇이냐'는 것이었습니다. 특히 자유한국당 소속 여성가족위원회 위원들은 후보자가 동성 커플인 김조광수-김승환 씨 결혼식과 퀴어문화축제에 참석했던 점, 군형법 개정안을 발의하고 생활동반자법 발의를 검토했던 점을 들어 "동성애를 옹호하는 것 아니냐"고 수차례 추궁했습니다.

이에 대해 후보자는 "누군가를 차별하지 말자는 것이지, 그것을 옹호하거나 권하거나 이런 문제는 아니다"라고 답했습니다. "성소수자라는 것만으로 차별을 받으면 안 된다라는 인간적인, 인권적인 관점에서 함께하고 있었던 것" "누구나 인간은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라는 그런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는 것"이라며 추가적인 설명도 이어갔습니다.

그러면서 "이런 것(후보자가 동성애를 우대하는 것 아니냐)을 확인하고 있는 이 상황이 정말 문제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자꾸만 검열을 당하는 것 같고, 예전에 십자가를 밟고 가는 것처럼 '너는 그거 아니지?' '그거 아니지? 이렇게 얘기하는 것이…"라고 꼬집었습니다. 동성애 이슈를 지나치게 부각시키며 후보자의 입장을 반복해서 묻는 행위 자체가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일 수 있다는 문제의식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진 후보자는 동성애와 에이즈를 연관시키는 질문에 대해서도 "두 문제는 다른 문제"라고 선을 그은 뒤, "에이즈는 심각한 질병이어서 그 누구도 보호받아야 마땅하다. 다만 그것이 동성애에 대한 여러 차별적 제도나 태도, 발언들을 합법화시키는 것은 아니다"라고 분명한 입장을 밝혔습니다.

진선미 의원이 2013년 6월 퀴어문화축제에 참석해 가수 하리수 씨와 카메라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출처: 진선미 장관 트위터)
성소수자 인권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를 설명하면서, 자신이 어린 시절 겪었던 차별과 성소수자 친구에 관한 기억을 길게 풀어놓은 대목도 눈에 띕니다.

진 후보자는 "시골에서 아버지를 잃은 것도 고통스러운데 중3, 고1 여학생에게 '애비없는 자식'이라는 차별 언사를 너무나 쉽게 하고, 또 제가 전라도라는 것, 또 가난하다는 것…"이라며 어린 시절 경험한 차별적인 상황을 회상했습니다. 그러면서 모태신앙을 가지고 "동성애는 죄악"이라는 교육을 받고 자랐지만, 나중에 자신이 성소수자임을 깨닫고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했다는 한 '친구'의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그는 "온갖 치료를 다 받고자 노력하고 스스로를 부인하고 그러나 10년이 지나도 바뀌지 않는 자신의 모습 속에서, 부모에게도 버림 받고 삶을 마무리하려고 했던 손에 그어진 자국을, 저는 그 손을 잊을 수 없다" "그 친구의 눈빛이 저의 눈빛 같았다"라고 털어놨습니다. 그러면서 본인이 성소수자 차별 해소를 위해 노력해온 것은 "힘들어하는 사람 손 붙잡아 주며 함께 살아보자, 딱 이 수준"이었다며, "제가 그렇게 명민하지도, 그렇게 용기 있지도, 그렇게 급진적이지도 않고, 그저 조금 더 인간적이고자 노력하는 사람" "성소수자에 대한 저의 역할이라는 것은 정말 큰 바다의 '요만큼'이라고 생각한다"라고 재차 본인이 '특별하지 않음'을 강조했습니다.

그럼에도 자유한국당 소속 위원들의 질의가 이어지자 "제가 6년 동안 의원 활동을 할 때마다 전화선을 빼놓아야 할 정도로 매우 공격적으로 (동성애 관련) 문제제기를 하시는데, 그 우려들에 대해서도 이해해보려고 노력하고 있다" "우려를 표하시는 분들도 대변해야 하는 역할이라는 것에 대해 충분히 자각하고 있다"라고 답했습니다.

③ '몰카'와 혜화역 시위: "나도 성추행 겪었다…여성들의 공포심 함께 느껴"

"여가부 장관이 만약 되시면, 혜화역 시위에 대해 어떤 스탠스를 취하고, 혹시 어떤 액션을 하실 게 있는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본인의 몸이 누군가에게 들여다보여지는 그런 성적 유희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어마어마한 공포심과 불안감이 오늘의 이 상황들을 만들어 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 청문회 통과가 되면 제가 그것(예정된 혜화역 시위에 대한 액션)에 대해서 조금 더 진지하게 고민해보려고 합니다."
- 신용현 위원과의 질의응답 중

진선미 의원이 2017년 10월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경찰청 국정감사에서 ‘물병 몰래카메라’를 소개하며 들어보이고 있다. (출처: 진선미 장관 트위터)
인사청문회에서는 홍대 누드모델 '불법촬영' 사건 수사를 계기로 시작된 혜화역 시위에 대한 질문도 빠지지 않았습니다. 진선미 후보자는 이런 움직임이 나타난 원인을 일상 공간에 도사린 성폭력 범죄에 대한 '여성들의 공포심'으로 보고, 이를 "정말 같이 느꼈다"라고 말했습니다.

특히 그는 "제가 건대에서 학교(성균관대)를 가는데 정말 빽빽한 지하철 안에서, 도저히 피할 수 없는 성추행에 노출돼서 오죽하면 가해자의 손을 붙잡고 갔던 기억도 있다. 정말 끔찍한 기억이 있다. 제가 그런 일을 겪었다"라며 자신이 대학시절 겪은 성추행 피해를 이야기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불법촬영물) 유통 구조에 대한 근원적인 접근, 처벌 이런 부분들에 대해서도 지금 의견들이 모아지고 있고 그 방법들을 찾아보고 있는 중"이라며 취임 이후 디지털성범죄에 대한 대응책을 모색하겠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④ 워마드: "차별과 범죄 옹호, 혐오는 분명한 문제"

"메갈리아라는 커뮤니티를 알고 계실 텐데 어떻게 보십니까? 극단적인 페미니즘이라는 비판이 많은데 후보자님도 그렇게 동감하시는지요?"
"메갈리아 커뮤니티는 꽤 오래전에 이미 폐쇄가 됐습니다. 말씀하신 것은 아마 그러면 워마드를 말씀하시는 것 같은데..."
"그것은 아니고요, 워마드랑 메갈리아를 제가 혼동해서 질문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미 폐쇄가 돼서 그 내용들에 대해 제가 파악하기가 어려운 상황이고요. 다만 최근에 워마드에 대한 부분들 중에 지나치게 혐오적인 부분이나 또 소수자들에 대한 비난이나 이런 부분들은 매우 심각하게 우려하고 있고 그 부분에 대해서 문제가 있다고 말씀드립니다."
- 송희경 위원과의 질의응답 중


청문회장에서는 온라인 커뮤니티 '메갈리아'와 '워마드'의 이름도 언급됐습니다. "메갈리아라는 커뮤니티를 어떻게 보냐"는 송희경 위원의 질문에 진 후보자는 "이미 폐쇄된 사이트로 제가 직접 들어가본 적은 분명히 없다"면서, "소라넷이라는 엄청난 문제를 제일 먼저 문제제기했던 곳이라는 게 저의 이 단체에 대한 입장"이라고만 밝혔습니다. 그럼에도 비슷한 질의가 계속 이어지자 후보자는 "모든 커뮤니티에서 차별이나 범죄 옹호, 지나친 혐오, 이런 부분들은 분명히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송 위원은 일부 커뮤니티에 올라온 진선미 의원에 대한 응원, 후원 글을 보여주면서 "극단적 페미니즘 사이트의 후원을 받았는데, 치우친 성향을 보이는 건 아닌가라는 우려가 있다"라고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이에 대해 후보자는 "소라넷 사태 등에 대한 문제 해결을 제가 해줬다고 생각하고, 여러 여성 커뮤니티들에서 단체로 많이들 후원을 해주셨다"면서도 이를 근거로 후보자가 치우쳐져 있고 급진적이라고 문제삼는 지적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다"고 밝혔습니다.

⑤ 화해·치유재단: "위안부 피해자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빠르게 처리"

"화해·치유재단이 계속 존속해야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니면 해산이라든지 어떤 절차를 밟아야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가장 중요한 것은 위안부 피해자들의 의견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분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빠르게 처리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 김정우 위원과의 질의응답 중

25일 미국 뉴욕에서 열린 한일 정상회담에서 아베 총리를 만난 문재인 대통령은, 화해·치유재단 문제를 "지혜롭게 매듭지을 필요가 있다"며 사실상 해산하겠다는 뜻을 밝혔는데요. 실제 이 재단 설립을 허가하고 사업 계획을 승인한 소관 부처는 여성가족부입니다. 이 때문에 화해·치유재단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외교부와 함께 여성가족부의 입장이 주목받는 상황이지요.

진 후보자가 청문회에서 내놓은 답변은 여태껏 여성가족부가 견지해 온 입장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위안부 피해자들의 의견을 가장 중요하게 고려해 재단을 신속히 해산하는 방안을 고민 중이라는 겁니다. 구체적인 해산 시점을 묻는 질문에 진 후보자는 연말 해산을 목표로 삼겠다는 이낙연 국무총리의 발언에 맞춰 노력을 하겠지만,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에게 희망고문이 될 수 있어 일정을 고정해 언급하진 않겠다고 밝혔습니다.

⑥ 탁현민: "이미 본인이 사의 표해…제가 답변할 문제 아냐"

"다시 한번 묻겠습니다. 어떻게 하실 거예요?"
"이미 본인이 사의를 표한 상황이고 오랜 기간이 지났기 때문에 제가 답변할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본인이 사임을 표하고 안 나오고 있잖아요. … 국민의 소리라는 것으로 인지하시고 답을 한번 줘 보시라 이 얘기입니다."
"조금 전에 답변 드렸습니다."
"어떻게요?"
"이미 사의를 표했고 이건 다른 인사권자의 권한의 범위라서 제가 답변할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 김순례 위원과의 질의 응답 중

탁현민 청와대 행정관의 과거 저서에 포함된 일부 내용은 여성을 성적 대상화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출처: KBS 보도 캡처)
청문회에 오지도 않은 인물이 화제였습니다. 탁현민 청와대 행정관 얘기인데요. 앞서 탁 행정관의 저서에서 여성을 성적으로 대상화한 내용이 논란이 되자, 정현백 전 여성가족부 장관은 청와대에 탁 행정관이 사퇴해야한다는 의견을 전달했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야당 소속 여가위 위원들은 진 후보자가 의원 시절 여성 이슈에 적극적인 태도를 보인데 반해 "유독 탁현민 행정관에 대해서는 아무 얘기도 안했다"(신용현 위원)고 지적하면서, 장관이 되면 청와대에 탁 행정관의 경질을 건의할 의사가 있는지 끈질기게 질의했습니다.

이에 대해 후보자는 "어느 하나하나의 사건들이 가지는 의미보다는 … 사람들이 갈등을 일으키고 있는 근원적인 문제 해결을 하고자 한다"며 직접적인 답변을 피했습니다.

그러나 "우회적으로 말하지 말라" "단도직입적으로 묻겠다"는 야당 위원들의 질의가 쏟아지자, "그 부분들은 정리되고 있기 때문에 별도의 얘기를 통해 저의 여성들에 대한 의지를 확인하고 싶지 않다"고 부정적인 입장을 내비쳤고, 결국에는 "본인(탁현민 행정관)이 사퇴 의사를 표현한 상태이고 오랜 기간 지난 문제"라며 별도로 경질 의견을 표명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혔습니다.

진선미 신임 여성가족부 장관이 21일 문재인 대통령에게 임명장을 받고 있다.
뜨거웠던 인사청문회가 끝나고 임명장을 받은 진선미 신임 장관. 그의 앞에 놓인 시간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진 장관이 출마할 것으로 예상되는 2020년 국회의원 선거일까지 이제 1년 반 정도밖에 남지 않았기 때문인데요. "소외된 사람들의 삶을 보살펴서 모든 구성원들이 '그래도 여가부 하나는 따뜻하게 내 편이 돼 줄 수 있구나'라는 믿음이 생겼으면 좋겠다"라는 그의 포부가 현실이 될 수 있을지, 많은 이들이 지켜보고 있습니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