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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돋보기] ‘혼인’정의 바꾸는 시대착오적인 국민투표…결국 무산
입력 2018.10.09 (07:00) 글로벌 돋보기
"혼인=남녀결합" 루마니아 개헌 국민투표 무효

혼인의 정의를 바꾸는 루마니아 개헌 국민투표가 결국 무효처리됐다.

루마니아 선거관리위원회는 7일(현지시각) 치러진 개헌 찬반 국민투표에서 유효투표율이 20.4%로 집계돼 최소투표율 30%에 미달했다고 밝혔다. 6일과 7일 이틀간 찬반 국민투표가 시행됐지만, 최소투표율도 넘기지 못했고, 논란과 상처만 남기게 됐다.

이번 개헌 국민투표의 핵심은 부부 개념을 '배우자 사이 결합'에서 '남녀결합'으로 고치는 것이었다. 헌법상 결혼의 정의를 이성의 결합으로, 가족을 이성 부부에서 비롯된 혈연관계로 명시하자는 내용이다.


성 소수자단체 "개헌안 통과되면 동성 결혼 합법화 어려워져"

성 소수자의 권리를 보호하는 추세에서 이 같은 개헌이 추진된 것은 루마니아 사회의 뿌리 깊은 기독교 전통에서 나왔다. 국민 대다수가 신도인 루마니아 정교회는 개헌안을 지지했고, 신부들은 예배 후 신도들에게 투표 참여를 독려하기도 했다.

보수 정당과 비정부기구인 '가족 연대' 등도 강력한 지지의사를 밝혔다. 미하이 게오르기우 가족 연대 의장은 "한 남성과 여성의 결합이라는 결혼의 정의를 헌법적 차원에서 보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루마니아는 매우 보수적인 국가다. 2001년에서야 동성애자들을 형사처벌 대상에서 제외했을 정도다. 유럽연합에서 동성 결혼이나 시민 결합을 허용하지 않는 6개 국가 중의 하나다.

그래서 이번 국민투표가 통과할 경우 성 소수자에 대한 혐오가 더 심해질 것으로 예상했다. 성 소수자단체는 개헌안이 통과되면 동성 결혼 합법화는 극도로 어려워질 것이라며 반대 목소리를 높였다.


개헌 국민투표, 왜 실패했나?

5월 초만 해도 개헌과 관련한 여론조사에서 찬성 의견은 90%에 육박할 정도였다. 그런데도 투표율 저조로 개헌에 실패한 원인은 무엇일까?

일단 이번 개헌은 미국과 유럽 각국이 동성 결혼을 법적으로 인정하는 추세에 상반된 것이다. 성 소수자를 차별을 금지하자는 요구가 빗발치는 가운데, 투표로 혼인을 다시 정의하는 것 자체가 무리였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개헌 투표가 무효처리되자 동성결혼 지지 단체인 억셉트는 "이번 국민투표는 법의 변화가 아니라 루마니아 비전에 관한 것"이라며 "이제 우리는 루마니아 국민이 증오와 혐오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고 환영의사를 밝혔다.

혼인 정의 문제는 동성애 문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한부모 가정과 비혼 유자녀 가정, 조부모 가정 등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유럽의회 의원 47명도 이번 개헌안이 성 소수자뿐만 아니라 한부모 가정, 비혼 가정, 조손 가정 자녀는 사회적 보호 대상이 되지 못한다는 메시지를 줄 수 있는 점을 우려하는 서한을 던칠러 총리에게 발송한 바 있다.

또, 이번 국민투표는 애초 의도와는 다르게 집권 사회민주당에 대한 신임 투표로 여겨졌다. 사민당 정부는 반부패 정책 후퇴에 대한 비판을 잠재우고 지지율을 다지려는 의도로 이번 개헌을 추진했다. 반면 반대 진영은 의견 표명 자체를 거부했다. 그리고 이 전략은 투표 보이콧으로 이어지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루마니아 바베시 보여이 대학교의 정치학 교수 세르지우 미스코이우는 "많은 시민이 개헌안 추진을 사민당과 연관 지어 받아들였고 그래서 그것을 거부했다. 정부에 커다란 타격이다."라고 평가했다.

지지율을 높이려는 의도로 출발한 개헌이지만 결국 루마니아 국민들의 정서를 제대로 읽지 못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오히려 투표 자체가 집권당을 불신임하는 결과로 나타나 독으로 작용한 셈이다.
  • [글로벌 돋보기] ‘혼인’정의 바꾸는 시대착오적인 국민투표…결국 무산
    • 입력 2018-10-09 07:0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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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인=남녀결합" 루마니아 개헌 국민투표 무효

혼인의 정의를 바꾸는 루마니아 개헌 국민투표가 결국 무효처리됐다.

루마니아 선거관리위원회는 7일(현지시각) 치러진 개헌 찬반 국민투표에서 유효투표율이 20.4%로 집계돼 최소투표율 30%에 미달했다고 밝혔다. 6일과 7일 이틀간 찬반 국민투표가 시행됐지만, 최소투표율도 넘기지 못했고, 논란과 상처만 남기게 됐다.

이번 개헌 국민투표의 핵심은 부부 개념을 '배우자 사이 결합'에서 '남녀결합'으로 고치는 것이었다. 헌법상 결혼의 정의를 이성의 결합으로, 가족을 이성 부부에서 비롯된 혈연관계로 명시하자는 내용이다.


성 소수자단체 "개헌안 통과되면 동성 결혼 합법화 어려워져"

성 소수자의 권리를 보호하는 추세에서 이 같은 개헌이 추진된 것은 루마니아 사회의 뿌리 깊은 기독교 전통에서 나왔다. 국민 대다수가 신도인 루마니아 정교회는 개헌안을 지지했고, 신부들은 예배 후 신도들에게 투표 참여를 독려하기도 했다.

보수 정당과 비정부기구인 '가족 연대' 등도 강력한 지지의사를 밝혔다. 미하이 게오르기우 가족 연대 의장은 "한 남성과 여성의 결합이라는 결혼의 정의를 헌법적 차원에서 보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루마니아는 매우 보수적인 국가다. 2001년에서야 동성애자들을 형사처벌 대상에서 제외했을 정도다. 유럽연합에서 동성 결혼이나 시민 결합을 허용하지 않는 6개 국가 중의 하나다.

그래서 이번 국민투표가 통과할 경우 성 소수자에 대한 혐오가 더 심해질 것으로 예상했다. 성 소수자단체는 개헌안이 통과되면 동성 결혼 합법화는 극도로 어려워질 것이라며 반대 목소리를 높였다.


개헌 국민투표, 왜 실패했나?

5월 초만 해도 개헌과 관련한 여론조사에서 찬성 의견은 90%에 육박할 정도였다. 그런데도 투표율 저조로 개헌에 실패한 원인은 무엇일까?

일단 이번 개헌은 미국과 유럽 각국이 동성 결혼을 법적으로 인정하는 추세에 상반된 것이다. 성 소수자를 차별을 금지하자는 요구가 빗발치는 가운데, 투표로 혼인을 다시 정의하는 것 자체가 무리였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개헌 투표가 무효처리되자 동성결혼 지지 단체인 억셉트는 "이번 국민투표는 법의 변화가 아니라 루마니아 비전에 관한 것"이라며 "이제 우리는 루마니아 국민이 증오와 혐오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고 환영의사를 밝혔다.

혼인 정의 문제는 동성애 문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한부모 가정과 비혼 유자녀 가정, 조부모 가정 등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유럽의회 의원 47명도 이번 개헌안이 성 소수자뿐만 아니라 한부모 가정, 비혼 가정, 조손 가정 자녀는 사회적 보호 대상이 되지 못한다는 메시지를 줄 수 있는 점을 우려하는 서한을 던칠러 총리에게 발송한 바 있다.

또, 이번 국민투표는 애초 의도와는 다르게 집권 사회민주당에 대한 신임 투표로 여겨졌다. 사민당 정부는 반부패 정책 후퇴에 대한 비판을 잠재우고 지지율을 다지려는 의도로 이번 개헌을 추진했다. 반면 반대 진영은 의견 표명 자체를 거부했다. 그리고 이 전략은 투표 보이콧으로 이어지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루마니아 바베시 보여이 대학교의 정치학 교수 세르지우 미스코이우는 "많은 시민이 개헌안 추진을 사민당과 연관 지어 받아들였고 그래서 그것을 거부했다. 정부에 커다란 타격이다."라고 평가했다.

지지율을 높이려는 의도로 출발한 개헌이지만 결국 루마니아 국민들의 정서를 제대로 읽지 못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오히려 투표 자체가 집권당을 불신임하는 결과로 나타나 독으로 작용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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