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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6·25보다 비참”…여순사건 70년 만에 진압군 증언 첫 공개
입력 2018.10.19 (21:32) 수정 2018.10.19 (22:37) 뉴스 9
[앵커]
70 년전 여순사건 당시 국군이 민간인들을 잔혹하게 학살했다는 증언이 처음으로 공개됐습니다.
좌익 부역자들을 색출한다는 명목으로 자행된 당시 진압군,즉 국군들의 증언을 양창희 기자가 단독보도합니다.
[리포트]
여순사건 당시, 좌익에 협력했다는 이유만으로 민간인들의 생사는 엇갈렸습니다.
부역자 색출과 민간인 학살 등 진압에 나섰던 군인들이 남긴 증언록입니다.
한 하사관은 "남녀를 가리지 않고 부역 혐의 민간인을 무자비하게 죽였다"라고 고백합니다.
"실탄이 아까워 일본도로 목을 쳤고, 악질적인 동네는 불을 질렀다"라며 "엉터리 같은 전투를 했다"라고 말합니다.
다른 장교는 "반란군이 지나갈 때 밥 한 덩어리만 줘도 혐의를 받았으며, 간단한 고발로 종신형이 내려졌고 그 자리에서 총살했다"라고 털어놓습니다.
"애매한 사람을 많이 죽였고 여학생들, 꽃 같은 학생들이 다 죽었다"라며 "6.25전쟁에도 참여했지만, 그렇게 비참한 전투를 본 일이 없다"라고 당시를 회고합니다.
국방부 군사편찬위원회가 1960년대부터 80년대까지 진압군을 면담해 작성한 증언록이 처음 공개됐습니다.
[정인화/민주평화당 의원/여순사건 특별법안 발의 : "양민 학살의 방법이 매우 잔인하고 적나라해서 소름끼치는 장면이 많았다는 것입니다."]
국방부는 증언록을 토대로 여순사건을 서술한 '한국전쟁사' 등을 펴 냈지만, 민간인 학살의 참상은 누락됐습니다.
[주철희/여순사건 연구 역사학자 : "토벌군들이 저지른 민간인 학살에 대한 이야기가 없거든요. (증언록은) 당시 얼마나 군경에 의해서 민간인 학살이 자행됐는가를 증명하고 있는 거죠."]
민간인 학살을 부정해 온 국방부는 추가 조사를 통해 사실 관계 확인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KBS 뉴스 양창희입니다.
70 년전 여순사건 당시 국군이 민간인들을 잔혹하게 학살했다는 증언이 처음으로 공개됐습니다.
좌익 부역자들을 색출한다는 명목으로 자행된 당시 진압군,즉 국군들의 증언을 양창희 기자가 단독보도합니다.
[리포트]
여순사건 당시, 좌익에 협력했다는 이유만으로 민간인들의 생사는 엇갈렸습니다.
부역자 색출과 민간인 학살 등 진압에 나섰던 군인들이 남긴 증언록입니다.
한 하사관은 "남녀를 가리지 않고 부역 혐의 민간인을 무자비하게 죽였다"라고 고백합니다.
"실탄이 아까워 일본도로 목을 쳤고, 악질적인 동네는 불을 질렀다"라며 "엉터리 같은 전투를 했다"라고 말합니다.
다른 장교는 "반란군이 지나갈 때 밥 한 덩어리만 줘도 혐의를 받았으며, 간단한 고발로 종신형이 내려졌고 그 자리에서 총살했다"라고 털어놓습니다.
"애매한 사람을 많이 죽였고 여학생들, 꽃 같은 학생들이 다 죽었다"라며 "6.25전쟁에도 참여했지만, 그렇게 비참한 전투를 본 일이 없다"라고 당시를 회고합니다.
국방부 군사편찬위원회가 1960년대부터 80년대까지 진압군을 면담해 작성한 증언록이 처음 공개됐습니다.
[정인화/민주평화당 의원/여순사건 특별법안 발의 : "양민 학살의 방법이 매우 잔인하고 적나라해서 소름끼치는 장면이 많았다는 것입니다."]
국방부는 증언록을 토대로 여순사건을 서술한 '한국전쟁사' 등을 펴 냈지만, 민간인 학살의 참상은 누락됐습니다.
[주철희/여순사건 연구 역사학자 : "토벌군들이 저지른 민간인 학살에 대한 이야기가 없거든요. (증언록은) 당시 얼마나 군경에 의해서 민간인 학살이 자행됐는가를 증명하고 있는 거죠."]
민간인 학살을 부정해 온 국방부는 추가 조사를 통해 사실 관계 확인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KBS 뉴스 양창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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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 년전 여순사건 당시 국군이 민간인들을 잔혹하게 학살했다는 증언이 처음으로 공개됐습니다.
좌익 부역자들을 색출한다는 명목으로 자행된 당시 진압군,즉 국군들의 증언을 양창희 기자가 단독보도합니다.
[리포트]
여순사건 당시, 좌익에 협력했다는 이유만으로 민간인들의 생사는 엇갈렸습니다.
부역자 색출과 민간인 학살 등 진압에 나섰던 군인들이 남긴 증언록입니다.
한 하사관은 "남녀를 가리지 않고 부역 혐의 민간인을 무자비하게 죽였다"라고 고백합니다.
"실탄이 아까워 일본도로 목을 쳤고, 악질적인 동네는 불을 질렀다"라며 "엉터리 같은 전투를 했다"라고 말합니다.
다른 장교는 "반란군이 지나갈 때 밥 한 덩어리만 줘도 혐의를 받았으며, 간단한 고발로 종신형이 내려졌고 그 자리에서 총살했다"라고 털어놓습니다.
"애매한 사람을 많이 죽였고 여학생들, 꽃 같은 학생들이 다 죽었다"라며 "6.25전쟁에도 참여했지만, 그렇게 비참한 전투를 본 일이 없다"라고 당시를 회고합니다.
국방부 군사편찬위원회가 1960년대부터 80년대까지 진압군을 면담해 작성한 증언록이 처음 공개됐습니다.
[정인화/민주평화당 의원/여순사건 특별법안 발의 : "양민 학살의 방법이 매우 잔인하고 적나라해서 소름끼치는 장면이 많았다는 것입니다."]
국방부는 증언록을 토대로 여순사건을 서술한 '한국전쟁사' 등을 펴 냈지만, 민간인 학살의 참상은 누락됐습니다.
[주철희/여순사건 연구 역사학자 : "토벌군들이 저지른 민간인 학살에 대한 이야기가 없거든요. (증언록은) 당시 얼마나 군경에 의해서 민간인 학살이 자행됐는가를 증명하고 있는 거죠."]
민간인 학살을 부정해 온 국방부는 추가 조사를 통해 사실 관계 확인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KBS 뉴스 양창희입니다.
70 년전 여순사건 당시 국군이 민간인들을 잔혹하게 학살했다는 증언이 처음으로 공개됐습니다.
좌익 부역자들을 색출한다는 명목으로 자행된 당시 진압군,즉 국군들의 증언을 양창희 기자가 단독보도합니다.
[리포트]
여순사건 당시, 좌익에 협력했다는 이유만으로 민간인들의 생사는 엇갈렸습니다.
부역자 색출과 민간인 학살 등 진압에 나섰던 군인들이 남긴 증언록입니다.
한 하사관은 "남녀를 가리지 않고 부역 혐의 민간인을 무자비하게 죽였다"라고 고백합니다.
"실탄이 아까워 일본도로 목을 쳤고, 악질적인 동네는 불을 질렀다"라며 "엉터리 같은 전투를 했다"라고 말합니다.
다른 장교는 "반란군이 지나갈 때 밥 한 덩어리만 줘도 혐의를 받았으며, 간단한 고발로 종신형이 내려졌고 그 자리에서 총살했다"라고 털어놓습니다.
"애매한 사람을 많이 죽였고 여학생들, 꽃 같은 학생들이 다 죽었다"라며 "6.25전쟁에도 참여했지만, 그렇게 비참한 전투를 본 일이 없다"라고 당시를 회고합니다.
국방부 군사편찬위원회가 1960년대부터 80년대까지 진압군을 면담해 작성한 증언록이 처음 공개됐습니다.
[정인화/민주평화당 의원/여순사건 특별법안 발의 : "양민 학살의 방법이 매우 잔인하고 적나라해서 소름끼치는 장면이 많았다는 것입니다."]
국방부는 증언록을 토대로 여순사건을 서술한 '한국전쟁사' 등을 펴 냈지만, 민간인 학살의 참상은 누락됐습니다.
[주철희/여순사건 연구 역사학자 : "토벌군들이 저지른 민간인 학살에 대한 이야기가 없거든요. (증언록은) 당시 얼마나 군경에 의해서 민간인 학살이 자행됐는가를 증명하고 있는 거죠."]
민간인 학살을 부정해 온 국방부는 추가 조사를 통해 사실 관계 확인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KBS 뉴스 양창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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