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본문 영역

상세페이지

'제주 4·3'은 어떻게 이념 굴레를 벗었나?
입력 2018.10.19 (21:56) 수정 2018.10.19 (23:40) 뉴스9(광주)
[앵커멘트]
여순사건의 발단이 된 게
제주 4·3인데요.
제주 4·3은
'좌익 폭동'나 '반란'이란 오명을 벗고
화해와 상생의 길을 걸은 지 오래입니다.
제주 4·3 사례를 통해
여순사건의 과제를 짚어봅니다.
유승용 기자입니다.





[리포트]
제주 4·3 운동의 본격적인 시작은
1987년 민주화 이후입니다.

1960년 이후 멈춰버린
진상규명 요구가 봇물 터졌고,

한 일간지가 10년 동안
450여 차례 연재로 진상을 파헤치는 등
지역 언론 보도도 계속됐습니다.

민간연구소가 30년 전부터 시작한
광범위한 증언 채록과
마을별 피해 실태 조사는
정부 진상조사의 기반이 됐습니다.

[인터뷰]허영선/제주4·3연구소장
4·3을 체험한 분들의 입을 열게 한 증언
채록이 있습니다. 천 명 증언을 했고요.
이전에도 상당히 많은 채록을 했습니다.
1차 체험자들이 돌아가시기 전에
상당히 많은 증언 채록을 한 것은
대단한 성과라고 볼 수가 있어요.

1988년
군경 유족 중심으로 만들어졌던 유족회는
애초 '반공'을 내걸었지만
민간 희생자 유족들의 적극적인 참여 속에
차츰 '반공'의 틀을 벗기 시작했습니다.

유족회와 시민단체가
합동 위령제를 열기 시작한 게
1994년부터입니다.

두 달 전 제주에서 열린
'4·3 희생자유족회'와
퇴직경찰 단체인 '경우회'의 합동 참배,

합동 위령 행사와 별도로
이른바 '피해자'와 '가해자'가 함께
화합 행사를 한 게 벌써 6년째입니다.

3년 전부터는
학교에서 4·3 교육이 의무화됐고,
희생자 유족들이 직접
명예교사로도 참여하고 있습니다.

제주 4·3은 이념의 굴레가
더는 통하지 않는 겁니다.

[인터뷰]양조훈/제주 4·3 평화재단 이사장
정부 조사에서 (빨갱이) 누명을 많은걸
벗겼고요. 또 심지어는 가해자하고
피해자가 지금 화해하는 단계까지 왔는데 이런 부단한 노력 그 다음에 지역의 결집
이런 것이 상당히 중요하다
이렇게 보는 거죠.

70년의 세월에도 여전히
'반란'으로 인식되는 여순사건,
합의된 진상규명을 이뤄내는 게
진실과 화해의 길로 가는 첫걸음입니다.
KBS뉴스 유승용입니다.
  • '제주 4·3'은 어떻게 이념 굴레를 벗었나?
    • 입력 2018-10-19 21:56:43
    • 수정2018-10-19 23:40:34
    뉴스9(광주)
[앵커멘트]
여순사건의 발단이 된 게
제주 4·3인데요.
제주 4·3은
'좌익 폭동'나 '반란'이란 오명을 벗고
화해와 상생의 길을 걸은 지 오래입니다.
제주 4·3 사례를 통해
여순사건의 과제를 짚어봅니다.
유승용 기자입니다.





[리포트]
제주 4·3 운동의 본격적인 시작은
1987년 민주화 이후입니다.

1960년 이후 멈춰버린
진상규명 요구가 봇물 터졌고,

한 일간지가 10년 동안
450여 차례 연재로 진상을 파헤치는 등
지역 언론 보도도 계속됐습니다.

민간연구소가 30년 전부터 시작한
광범위한 증언 채록과
마을별 피해 실태 조사는
정부 진상조사의 기반이 됐습니다.

[인터뷰]허영선/제주4·3연구소장
4·3을 체험한 분들의 입을 열게 한 증언
채록이 있습니다. 천 명 증언을 했고요.
이전에도 상당히 많은 채록을 했습니다.
1차 체험자들이 돌아가시기 전에
상당히 많은 증언 채록을 한 것은
대단한 성과라고 볼 수가 있어요.

1988년
군경 유족 중심으로 만들어졌던 유족회는
애초 '반공'을 내걸었지만
민간 희생자 유족들의 적극적인 참여 속에
차츰 '반공'의 틀을 벗기 시작했습니다.

유족회와 시민단체가
합동 위령제를 열기 시작한 게
1994년부터입니다.

두 달 전 제주에서 열린
'4·3 희생자유족회'와
퇴직경찰 단체인 '경우회'의 합동 참배,

합동 위령 행사와 별도로
이른바 '피해자'와 '가해자'가 함께
화합 행사를 한 게 벌써 6년째입니다.

3년 전부터는
학교에서 4·3 교육이 의무화됐고,
희생자 유족들이 직접
명예교사로도 참여하고 있습니다.

제주 4·3은 이념의 굴레가
더는 통하지 않는 겁니다.

[인터뷰]양조훈/제주 4·3 평화재단 이사장
정부 조사에서 (빨갱이) 누명을 많은걸
벗겼고요. 또 심지어는 가해자하고
피해자가 지금 화해하는 단계까지 왔는데 이런 부단한 노력 그 다음에 지역의 결집
이런 것이 상당히 중요하다
이렇게 보는 거죠.

70년의 세월에도 여전히
'반란'으로 인식되는 여순사건,
합의된 진상규명을 이뤄내는 게
진실과 화해의 길로 가는 첫걸음입니다.
KBS뉴스 유승용입니다.
kbs가 손수 골랐습니다. 네이버에서도 보세요.
기자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