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소년들...영상 속 흔적을 찾아서
입력 2018.10.19 (22:10)
수정 2018.10.19 (2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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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멘트]
여순사건 희생자들 가운데는
어린아이들도 많았습니다.
특히 소년들조차
정치범으로 내몰렸는데요,
당시
소년범으로 추정되는 이들이
담긴 영상이 국내 연구진에 의해
미국에서 처음으로 발굴됐습니다.
김해정 기자의 보돕니다.
[리포트]
한국전쟁 발발 직후 여름,
경기도 수원역입니다.
포로 수십 명이 고개를 숙이고 있고,
행여 도망갈까
무장한 경찰들이 에워싸고 있습니다.
햇살이 따가운지
머리를 천으로 덮은 포로들.
물을 마시기 위해
겨우 든 얼굴은 한결같이 앳됩니다.
이들은
여순사건과 제주 4.3 사건 등에 연루돼
인천소년형무소에 수감돼 있다가
탈옥해 붙잡힌 소년범으로 추정됩니다.
[인터뷰]양일화 / 당시 인천소년형무소 수감자
"(인천형무소) 경찰관들이 다 도망가버렸으니까 문이 열려 있었거든, 문이 열려 있으니까 밥이 있는 창고에 가서 도시락 싸고 수원으로 향한 것이 그 영상이거든."
20초 분량의 영상은
지난 여름 미국국립문서보관청에서
서울대 연구원에 의해 처음 발굴됐습니다.
영상물 메모에는
한국 정치범이라 기록돼 있고,
영상과 같은 구도의 사진 뒷면에는
1950년 7월 1일, 촬영 날짜가 선명합니다.
하지만 화면 속 소년들의
행적에 대한 기록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당시 증언 등을 토대로 이들이
대전형무소로 이감됐을 것으로
추정될 뿐입니다.
한 달 뒤 수천 명에 달하는
대전형무소 재소자는
대전시 산내동 골령골에서
이른바 보도연맹 산내 대학살 당시
학살당했습니다.
[인터뷰]전갑생 /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 연구원
"희생자들이 몇 명인지 진실 규명하는 데 있어서 굉장히 어려운 점이 그런 이감 기록이나 죄수자 명부가 없다는 게 제일 큰 이유라고 봅니다."
규모조차 제대로
파악되지 않은 여순사건 행방불명자,
그 가운데에는
아직 피지 못한 소년들까지
정치범이라는 이름으로 포함돼
역사 속으로 사라져 갔습니다.
KBS 뉴스 김해정입니다.
여순사건 희생자들 가운데는
어린아이들도 많았습니다.
특히 소년들조차
정치범으로 내몰렸는데요,
당시
소년범으로 추정되는 이들이
담긴 영상이 국내 연구진에 의해
미국에서 처음으로 발굴됐습니다.
김해정 기자의 보돕니다.
[리포트]
한국전쟁 발발 직후 여름,
경기도 수원역입니다.
포로 수십 명이 고개를 숙이고 있고,
행여 도망갈까
무장한 경찰들이 에워싸고 있습니다.
햇살이 따가운지
머리를 천으로 덮은 포로들.
물을 마시기 위해
겨우 든 얼굴은 한결같이 앳됩니다.
이들은
여순사건과 제주 4.3 사건 등에 연루돼
인천소년형무소에 수감돼 있다가
탈옥해 붙잡힌 소년범으로 추정됩니다.
[인터뷰]양일화 / 당시 인천소년형무소 수감자
"(인천형무소) 경찰관들이 다 도망가버렸으니까 문이 열려 있었거든, 문이 열려 있으니까 밥이 있는 창고에 가서 도시락 싸고 수원으로 향한 것이 그 영상이거든."
20초 분량의 영상은
지난 여름 미국국립문서보관청에서
서울대 연구원에 의해 처음 발굴됐습니다.
영상물 메모에는
한국 정치범이라 기록돼 있고,
영상과 같은 구도의 사진 뒷면에는
1950년 7월 1일, 촬영 날짜가 선명합니다.
하지만 화면 속 소년들의
행적에 대한 기록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당시 증언 등을 토대로 이들이
대전형무소로 이감됐을 것으로
추정될 뿐입니다.
한 달 뒤 수천 명에 달하는
대전형무소 재소자는
대전시 산내동 골령골에서
이른바 보도연맹 산내 대학살 당시
학살당했습니다.
[인터뷰]전갑생 /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 연구원
"희생자들이 몇 명인지 진실 규명하는 데 있어서 굉장히 어려운 점이 그런 이감 기록이나 죄수자 명부가 없다는 게 제일 큰 이유라고 봅니다."
규모조차 제대로
파악되지 않은 여순사건 행방불명자,
그 가운데에는
아직 피지 못한 소년들까지
정치범이라는 이름으로 포함돼
역사 속으로 사라져 갔습니다.
KBS 뉴스 김해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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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라진 소년들...영상 속 흔적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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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18-10-19 22:10:54
- 수정2018-10-19 23:39:59
[앵커멘트]
여순사건 희생자들 가운데는
어린아이들도 많았습니다.
특히 소년들조차
정치범으로 내몰렸는데요,
당시
소년범으로 추정되는 이들이
담긴 영상이 국내 연구진에 의해
미국에서 처음으로 발굴됐습니다.
김해정 기자의 보돕니다.
[리포트]
한국전쟁 발발 직후 여름,
경기도 수원역입니다.
포로 수십 명이 고개를 숙이고 있고,
행여 도망갈까
무장한 경찰들이 에워싸고 있습니다.
햇살이 따가운지
머리를 천으로 덮은 포로들.
물을 마시기 위해
겨우 든 얼굴은 한결같이 앳됩니다.
이들은
여순사건과 제주 4.3 사건 등에 연루돼
인천소년형무소에 수감돼 있다가
탈옥해 붙잡힌 소년범으로 추정됩니다.
[인터뷰]양일화 / 당시 인천소년형무소 수감자
"(인천형무소) 경찰관들이 다 도망가버렸으니까 문이 열려 있었거든, 문이 열려 있으니까 밥이 있는 창고에 가서 도시락 싸고 수원으로 향한 것이 그 영상이거든."
20초 분량의 영상은
지난 여름 미국국립문서보관청에서
서울대 연구원에 의해 처음 발굴됐습니다.
영상물 메모에는
한국 정치범이라 기록돼 있고,
영상과 같은 구도의 사진 뒷면에는
1950년 7월 1일, 촬영 날짜가 선명합니다.
하지만 화면 속 소년들의
행적에 대한 기록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당시 증언 등을 토대로 이들이
대전형무소로 이감됐을 것으로
추정될 뿐입니다.
한 달 뒤 수천 명에 달하는
대전형무소 재소자는
대전시 산내동 골령골에서
이른바 보도연맹 산내 대학살 당시
학살당했습니다.
[인터뷰]전갑생 /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 연구원
"희생자들이 몇 명인지 진실 규명하는 데 있어서 굉장히 어려운 점이 그런 이감 기록이나 죄수자 명부가 없다는 게 제일 큰 이유라고 봅니다."
규모조차 제대로
파악되지 않은 여순사건 행방불명자,
그 가운데에는
아직 피지 못한 소년들까지
정치범이라는 이름으로 포함돼
역사 속으로 사라져 갔습니다.
KBS 뉴스 김해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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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정 기자 beinghj@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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