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태훈의 시사본부] 이찬호 예비역 병장 “K-9자주포 폭발, 진상규명·보상 없어”

입력 2018.10.25 (16:23) 수정 2018.10.26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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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 근황, 큰 관심과 응원 보내주신 국민들께 감사해
-전신화상 고통에 자살 생각도 했지만 움직일 수조차 없어 비참했던 기억
-10년을 키워온 배우의 꿈 피워 보지도 못하고 접어
-치료비, 전역 후 6개월까지만 지원...장병들이 사비로 충당하는 현실
-화상환자를 위한 기부 프로젝트와 사진전 기획하고 있어

■ 프로그램명 : 오태훈의 시사본부
■ 코너명 : 시사본부 이슈
■ 방송시간 : 10월 25일(목요일) 12:20~14:00 KBS 1라디오
■ 출연자 : 이찬호 예비역 병장



▷ 오태훈 : 지난해 8월 K-9 자주포 폭발사고로 전신화상을 입은 예비역 병장 기억하십니까? 어제 자신의 SNS에 이런 글을 올렸습니다. "흉터는 상처를 극복했다는 이야기다." 군생활은 늘 사고의 위험이 있고 훈련 중에 사고가 발생하고 나면 국가로부터 정당한 처우를 받기 위해서 피해자가 직접 뛰어다녀야 하는 기막힌 현실이 있죠. 오늘 시사본부에서 엄청난 고통과 억울함 딛고 다시금 사회로 나아가려는 예비역 병장 이찬호 씨를 전화로 만나보겠습니다. 안녕하십니까?

▶ 이찬호 : 네, 안녕하십니까? 이찬호입니다.

▷ 오태훈 : 어제 올리신 사진 어떤 사진들이었고 어떤 맘을 담아서 올렸는지 좀 소개해 주세요.

▶ 이찬호 : 뭘 의도하고 작정해서 올린 게 아니라 1년이 지난 사고인데 잊혀질 법도 한데 이렇게 많은 관심을 받을지 몰랐어요. 사실 누구나 상처쯤은 있고 그 상처가 잘 아물길 바라면서, 저도 사실 맘고생, 몸고생 너무 하면서 처음으로 올린 게시글이었거든요. 이렇게 뜨거운 반응일 줄 몰랐어요.

▷ 오태훈 : 지난해 철원 K-9 자주포 사고의 참상 모르시는 분들이 많이 계세요.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설명을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 이찬호 : 작년 2017년 8월 18일 날 포탄사격 훈련 도중에 세 번째 탄에서 기계결함으로 화포 내부에 연기와 불꽃들이 들어오게 됨으로써 바닥에 깔려 있는 남은 장약 3개를 급속 연소시키며 폭발한 사고가 났었어요. 그 장약 한 개가 약 40kg이 되고 탄을 40km를 날릴 수 있는 위력을 가지고 있었거든요. 그런 게 3개가 터지고 40톤짜리 화포는 산산조각이 났고 저는 그 불구덩이에서 그냥 기어 나왔어요. 총 7명 중 3명이 사망하는 참혹한 사고였죠.

▷ 오태훈 : 동료 3명이 사망을 했고 이찬호 병장 포함해서 네 분이 큰 상처를 입었는데, 이 병장의 경우에는 상당히 심한 화상을 입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동안 고통이라든가 절망감이 엄청났을 것 같은데요.

▶ 이찬호 : 사실 생존자 중에서는 제가 제일 많이 다쳤고 겨우 목숨만 건질 수 있었던 거였어요. 다른 분들은 빠른 회복으로 사회에 복귀한 상태고요. 저는 아직도 병원에 입원 중이면서 재활치료 받으면서 수술을 몇 차례 앞두고 있고요. 그리고 또 화상은 다들 알다시피 최고의 극한의 고통을 동반하고 치료과정 또한 길고 고되지 않습니까? 비용도 어마어마하게 많이 들고 그래서 저는 절망감을 진짜 곧 자살시도와, 그러니까 자살 생각으로밖에 채워지지 않았어요. 그게 너무 힘들었고. 그런데도 불구하고 저는 더 비참한 것은 움직일 수조차 없어서 그냥 멍하니 창문만 바라보면서 자살을 할 수조차 없었다는 거죠.

▷ 오태훈 : 자살을 하기에는 움직여야 하는데 움직일 수도 없는 상황이니까.

▶ 이찬호 : 네, 정말 아이러니하게도.

▷ 오태훈 : 그런 마음 갖고 있으면 안 됩니다. 물론 그렇기 때문에 어제 그런 사진도 올리셨지 않았나 싶은데, 사진을 제가 봤어요. 이런 말은 잘 안 씁니다만 남자니까 편하게 말씀드리면 참 인물이 훤칠하십니다.

▶ 이찬호 : 감사합니다.

▷ 오태훈 : 배우가 꿈이었다고요?

▶ 이찬호 : 네.

▷ 오태훈 : 그런데 배우가 꿈인 분이 화상을 입었다고 하면 그 심정이 어땠을까 참 답답하네요.

▶ 이찬호 : 저 그 당시에 네 발로 기어 나와서 제가 소대장님께 처음으로 한 말이 기억이 나는데요. 제 얼굴 괜찮냐고 했어요. "얼굴 괜찮습니까?" 물어봤는데 물론 괜찮다고 울먹이시면서 말씀은 해 주셨거든요. 보이는 팔다리는 전투복이 눌러붙고 피가 나고 훼손이 많이 된 상태여서 대충 짐작은 가능했어요. 내 얼굴이 너무 아프고 감각조차 없어서 보이질 않으니까 어떻게 된 줄 몰랐던 거고요. 그러다가 병원에서 치료를 받으면서, 거울을 처음에 잘 안 보여줬어요, 부모님들이. 거울을 봤는데 '아, 앞으로 인생조차 힘들겠구나' 생각을 했죠. 삶의 욕구가 전혀 없었어요. 제가 10년을 키워 온 꿈인데 피워보지도 못한 꽃이 된 거예요, 그냥. 그리고 인생이 여러 번이 아니잖아요. 한 번뿐인 인생이 이렇게 끝나는구나 하고 그걸 느꼈죠.

▷ 오태훈 : 이런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되겠습니다만 또 이런 일이 발생을 불가피하게 했다고 하더라도 국가가 나서서 치료라든가 보상금도 지급을 해야지 마땅한데, 이 과정에서 상처도 또 더 받을 수밖에는 없는 상황이 있었다면서요.

▶ 이찬호 : 네, 일단 저는 기절해 있어서 어떤 상황인지 몰랐는데 부모님한테 들어보니까 아들을 나라에 맡긴 입장에서 부모님은 국가에서 해결할 줄 알았는데 부모님과 형은 정보를 찾기 위해 발로 뛰고 조사를 하고 다녔어야만 했어요. 사고 직후에 바로 연락이 온 것도 아니고 사고 몇 시간 후에 위급하다고 연락도 오고. 대체 매뉴얼이 미비한 거죠. 저는 또 치료비 문제로 군대를 연기했지만 연기신청도 6개월밖에 안 됩니다. 그리고 나라에서는 이중배상금지법 때문에 보상금을 받을 수가 전혀 없고요. 또 K-9 자주포라는 한화 제조업체에서는 기계결함을 인정하지 않고 있으면서 저한테 아무런 보상금을 준 게 없어요. 저는 받은 게 없고.

▷ 오태훈 : 지금까지도?

▶ 이찬호 : 네.

▷ 오태훈 : 한 달에 600만 원 이상의, 수백만 원의 치료비가 드는데 이게 국가가 부담해 주지 않아서 전역을 미룰 수밖에는 없었다는 사실을 제가 들었거든요. 그러니까 전역 직전에 훈련하다가 다친 것 아니겠습니까?

▶ 이찬호 : 네, 그렇죠.

▷ 오태훈 : 그러면 여기서 발생한 이런 치료비 같은 것은 전역 후에도 꾸준히 지급을 해줘야지 당연한 일 아닐까요?

▶ 이찬호 : 정말 당연한 일인데, 저희가 힘든 일을 부탁하는 것도 아니고 당연한 일을 부탁하는 건데도 이게 개선된 게 전역 후 6개월밖에 지원이 안 된다는 겁니다. 외부병원은 개인사비로 부담을 해서 치료를 받아야 되고요. 전역 후에는 또 보훈처로 넘어가면 보훈병원에서만 치료를 받아야 되고요. 이게 외부병원은 위탁승인이라는 그런 과정과 절차를 밟아야 허가가 떨어져야지 지원을 받을 수 있게 되는 거예요. 그런데도 많은 장병들은 개인사비로 치료를 받고 있죠.

▷ 오태훈 : 그러면 이찬호 병장은 전역일을 얼마나 미루신 거예요?

▶ 이찬호 : 저는 한 달 정도 미뤘습니다. 치료비를 생각한다면 제가 한 6개월 정도를 미룰 수 있었지만 저는 이런 부당한 일을 사회에 알려야 된다고 생각했고 더 이상 제2의 피해자가, 제2의 이찬호가 발생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치료비라는 리스크를 감수하고 저는 좀 일찍 전역을 했어요. 왜냐하면 군 소속일 때는 지휘관의 허가가 필요하고 군법에 위배가 될 수 있어서 방송에 나올 수조차 없어요. 이런 군대라는 폐쇄적인 구조여서 알릴 기회가 없었던 거죠.

▷ 오태훈 : 지난해 철원에서 있었던 K-9 자주포 사고의 당사자인 이찬호 씨와 함께 말씀을 나누고 있는데요. 지난해 이찬호 병장의 처지를 안타까워하는 분들이 청와대 청원을 올렸고 순식간에 20만 명을 넘겼습니다. 정당한 치료 그리고 국가유공자 지정을 국민들이 요구를 했고. 국가가 미루는 일을 시민들이 도와줬다는 점에서 참 고마운 마음도 있을 것 같고, 어떠셨어요?

▶ 이찬호 : 진짜 너무 감사드렸어요, 진짜. 다들 남 일 같지 않게 생각해 주시고 그게 저한테 느껴졌고 그리고 저뿐만 아니라 군대에서 이런 사건사고들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지만 항상 묻혀왔기에 국민청원을 통해 관심을 많이 가져주신 것 같아요. 사실 저 혼자서는 해결할 수 없는 일이었는데 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기억해 주신다는 게 정말 감사드리죠.

▷ 오태훈 : 국가가 나 몰라라 한 일을 국민들이 나서서 혼내준 거예요, 이게. 그렇게 생각이 드는데 우선 지금은 어떤 상황인지, 사진으로만 봐서 좀 구체적인 상황을 듣고 싶은데 화상치료라든가 생활의 경제적인 어려움 같은 것들은 없는지도 좀 알려주시죠.

▶ 이찬호 : 지금 현재 병원에 입원해서 재활치료 중이고요. 추후 수술을 차례 기다리고 있는 상태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화상환자들끼리 서로 이해하면서 살아가고 있는데 제가 과연 현실에 놓여지면 어떤 직업을 가지고 돈을 벌 수 있을지가 걱정이 많이 되죠. 저는 아직 25살밖에 안 됐고 결혼도 해야 되고 안정적인 직업도 가져야 되는데 막막하죠, 그런 걸 생각한다면.

▷ 오태훈 : 앞서서 치료비를 생각한다고 하면 전역을 많이 미뤄야 되겠지만 사회에 알리고 더 이상 나와 같은 사람이 발생하지 않았으면 한다는 마음에서 일찍 전역을 했다고 하셨는데, 앞으로 더 나아가서 화상환자를 위한 사회활동 펼칠 예정이라고 들었어요.

▶ 이찬호 : 네. 저는 한 번도 편하게 치료를 받은 적이 없이 이런저런 일로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았어요. 하지만 많은 분들이 응원과 관심을 주셨기에 힘을 낼 수가 있었고요. 그렇게 저는 그냥 자연스럽게 받은 사랑을 베풀고자 기부와 복지에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요. 현재 몸이 좋지 않은 관계로 발로 뛸 수는 없어서 기부 프로젝트라든지 화상환자 분들의 사진전을 기획 중에 있어요. 그리고 또 건강을 찾으면 봉사활동을 할 계획에 있고요.

▷ 오태훈 : 이번 일을 겪으면서 참 많은 것을 느끼신 것 같아요. 나라, 국가에게, 아니면 또 많은 도움을 주신 시민들께 한 말씀 좀 해 주시죠.

▶ 이찬호 : 일단 너무 감사드립니다. 그렇지만 아직 해결된 게 하나도 없습니다. 진상규명도, 누구의 책임도, 누구의 처벌도, 어떠한 보상도. 아직도 자주포는 사용되고 있으며 해외로 수출되고 있습니다. 이 시대의 미래를 짊어질 꿈 많은 청춘들이 나라를 위해 아무런 대가 없이 의무를 다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희는 소모품이 아닙니다. 많은 걸 바라는 게 아니라 당연한 걸 바라는 겁니다. 선진국인 만큼 바뀌어야 된다고 생각을 하고 있고요. 그리고 국민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1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관심과 잊지 않고 응원해 주시는 시민 분들께 정말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씀 드리고 싶어요.

▷ 오태훈 : 저도 이찬호 병장 많이 응원하고요. 그리고 이후에 많이 건강 완쾌돼서 또 사진전 일정 같은 것들이 정해지면 저희 스튜디오에서 직접 뵙고 여러 가지 말씀 좀 나누겠습니다. 저희도 많이 알리겠고요.

▶ 이찬호 : 네, 감사합니다.

▷ 오태훈 : 오늘 말씀 고맙습니다.

▶ 이찬호 : 네, 감사합니다.

▷ 오태훈 : 철원 K-9 자주포 사고의 고통 딛고 화상환자들의 처우개선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예비역 병장 이찬호 씨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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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태훈의 시사본부] 이찬호 예비역 병장 “K-9자주포 폭발, 진상규명·보상 없어”
    • 입력 2018-10-25 16:23:32
    • 수정2018-10-26 11:36:21
    최영일의 시사본부
-SNS 근황, 큰 관심과 응원 보내주신 국민들께 감사해
-전신화상 고통에 자살 생각도 했지만 움직일 수조차 없어 비참했던 기억
-10년을 키워온 배우의 꿈 피워 보지도 못하고 접어
-치료비, 전역 후 6개월까지만 지원...장병들이 사비로 충당하는 현실
-화상환자를 위한 기부 프로젝트와 사진전 기획하고 있어

■ 프로그램명 : 오태훈의 시사본부
■ 코너명 : 시사본부 이슈
■ 방송시간 : 10월 25일(목요일) 12:20~14:00 KBS 1라디오
■ 출연자 : 이찬호 예비역 병장



▷ 오태훈 : 지난해 8월 K-9 자주포 폭발사고로 전신화상을 입은 예비역 병장 기억하십니까? 어제 자신의 SNS에 이런 글을 올렸습니다. "흉터는 상처를 극복했다는 이야기다." 군생활은 늘 사고의 위험이 있고 훈련 중에 사고가 발생하고 나면 국가로부터 정당한 처우를 받기 위해서 피해자가 직접 뛰어다녀야 하는 기막힌 현실이 있죠. 오늘 시사본부에서 엄청난 고통과 억울함 딛고 다시금 사회로 나아가려는 예비역 병장 이찬호 씨를 전화로 만나보겠습니다. 안녕하십니까?

▶ 이찬호 : 네, 안녕하십니까? 이찬호입니다.

▷ 오태훈 : 어제 올리신 사진 어떤 사진들이었고 어떤 맘을 담아서 올렸는지 좀 소개해 주세요.

▶ 이찬호 : 뭘 의도하고 작정해서 올린 게 아니라 1년이 지난 사고인데 잊혀질 법도 한데 이렇게 많은 관심을 받을지 몰랐어요. 사실 누구나 상처쯤은 있고 그 상처가 잘 아물길 바라면서, 저도 사실 맘고생, 몸고생 너무 하면서 처음으로 올린 게시글이었거든요. 이렇게 뜨거운 반응일 줄 몰랐어요.

▷ 오태훈 : 지난해 철원 K-9 자주포 사고의 참상 모르시는 분들이 많이 계세요.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설명을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 이찬호 : 작년 2017년 8월 18일 날 포탄사격 훈련 도중에 세 번째 탄에서 기계결함으로 화포 내부에 연기와 불꽃들이 들어오게 됨으로써 바닥에 깔려 있는 남은 장약 3개를 급속 연소시키며 폭발한 사고가 났었어요. 그 장약 한 개가 약 40kg이 되고 탄을 40km를 날릴 수 있는 위력을 가지고 있었거든요. 그런 게 3개가 터지고 40톤짜리 화포는 산산조각이 났고 저는 그 불구덩이에서 그냥 기어 나왔어요. 총 7명 중 3명이 사망하는 참혹한 사고였죠.

▷ 오태훈 : 동료 3명이 사망을 했고 이찬호 병장 포함해서 네 분이 큰 상처를 입었는데, 이 병장의 경우에는 상당히 심한 화상을 입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동안 고통이라든가 절망감이 엄청났을 것 같은데요.

▶ 이찬호 : 사실 생존자 중에서는 제가 제일 많이 다쳤고 겨우 목숨만 건질 수 있었던 거였어요. 다른 분들은 빠른 회복으로 사회에 복귀한 상태고요. 저는 아직도 병원에 입원 중이면서 재활치료 받으면서 수술을 몇 차례 앞두고 있고요. 그리고 또 화상은 다들 알다시피 최고의 극한의 고통을 동반하고 치료과정 또한 길고 고되지 않습니까? 비용도 어마어마하게 많이 들고 그래서 저는 절망감을 진짜 곧 자살시도와, 그러니까 자살 생각으로밖에 채워지지 않았어요. 그게 너무 힘들었고. 그런데도 불구하고 저는 더 비참한 것은 움직일 수조차 없어서 그냥 멍하니 창문만 바라보면서 자살을 할 수조차 없었다는 거죠.

▷ 오태훈 : 자살을 하기에는 움직여야 하는데 움직일 수도 없는 상황이니까.

▶ 이찬호 : 네, 정말 아이러니하게도.

▷ 오태훈 : 그런 마음 갖고 있으면 안 됩니다. 물론 그렇기 때문에 어제 그런 사진도 올리셨지 않았나 싶은데, 사진을 제가 봤어요. 이런 말은 잘 안 씁니다만 남자니까 편하게 말씀드리면 참 인물이 훤칠하십니다.

▶ 이찬호 : 감사합니다.

▷ 오태훈 : 배우가 꿈이었다고요?

▶ 이찬호 : 네.

▷ 오태훈 : 그런데 배우가 꿈인 분이 화상을 입었다고 하면 그 심정이 어땠을까 참 답답하네요.

▶ 이찬호 : 저 그 당시에 네 발로 기어 나와서 제가 소대장님께 처음으로 한 말이 기억이 나는데요. 제 얼굴 괜찮냐고 했어요. "얼굴 괜찮습니까?" 물어봤는데 물론 괜찮다고 울먹이시면서 말씀은 해 주셨거든요. 보이는 팔다리는 전투복이 눌러붙고 피가 나고 훼손이 많이 된 상태여서 대충 짐작은 가능했어요. 내 얼굴이 너무 아프고 감각조차 없어서 보이질 않으니까 어떻게 된 줄 몰랐던 거고요. 그러다가 병원에서 치료를 받으면서, 거울을 처음에 잘 안 보여줬어요, 부모님들이. 거울을 봤는데 '아, 앞으로 인생조차 힘들겠구나' 생각을 했죠. 삶의 욕구가 전혀 없었어요. 제가 10년을 키워 온 꿈인데 피워보지도 못한 꽃이 된 거예요, 그냥. 그리고 인생이 여러 번이 아니잖아요. 한 번뿐인 인생이 이렇게 끝나는구나 하고 그걸 느꼈죠.

▷ 오태훈 : 이런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되겠습니다만 또 이런 일이 발생을 불가피하게 했다고 하더라도 국가가 나서서 치료라든가 보상금도 지급을 해야지 마땅한데, 이 과정에서 상처도 또 더 받을 수밖에는 없는 상황이 있었다면서요.

▶ 이찬호 : 네, 일단 저는 기절해 있어서 어떤 상황인지 몰랐는데 부모님한테 들어보니까 아들을 나라에 맡긴 입장에서 부모님은 국가에서 해결할 줄 알았는데 부모님과 형은 정보를 찾기 위해 발로 뛰고 조사를 하고 다녔어야만 했어요. 사고 직후에 바로 연락이 온 것도 아니고 사고 몇 시간 후에 위급하다고 연락도 오고. 대체 매뉴얼이 미비한 거죠. 저는 또 치료비 문제로 군대를 연기했지만 연기신청도 6개월밖에 안 됩니다. 그리고 나라에서는 이중배상금지법 때문에 보상금을 받을 수가 전혀 없고요. 또 K-9 자주포라는 한화 제조업체에서는 기계결함을 인정하지 않고 있으면서 저한테 아무런 보상금을 준 게 없어요. 저는 받은 게 없고.

▷ 오태훈 : 지금까지도?

▶ 이찬호 : 네.

▷ 오태훈 : 한 달에 600만 원 이상의, 수백만 원의 치료비가 드는데 이게 국가가 부담해 주지 않아서 전역을 미룰 수밖에는 없었다는 사실을 제가 들었거든요. 그러니까 전역 직전에 훈련하다가 다친 것 아니겠습니까?

▶ 이찬호 : 네, 그렇죠.

▷ 오태훈 : 그러면 여기서 발생한 이런 치료비 같은 것은 전역 후에도 꾸준히 지급을 해줘야지 당연한 일 아닐까요?

▶ 이찬호 : 정말 당연한 일인데, 저희가 힘든 일을 부탁하는 것도 아니고 당연한 일을 부탁하는 건데도 이게 개선된 게 전역 후 6개월밖에 지원이 안 된다는 겁니다. 외부병원은 개인사비로 부담을 해서 치료를 받아야 되고요. 전역 후에는 또 보훈처로 넘어가면 보훈병원에서만 치료를 받아야 되고요. 이게 외부병원은 위탁승인이라는 그런 과정과 절차를 밟아야 허가가 떨어져야지 지원을 받을 수 있게 되는 거예요. 그런데도 많은 장병들은 개인사비로 치료를 받고 있죠.

▷ 오태훈 : 그러면 이찬호 병장은 전역일을 얼마나 미루신 거예요?

▶ 이찬호 : 저는 한 달 정도 미뤘습니다. 치료비를 생각한다면 제가 한 6개월 정도를 미룰 수 있었지만 저는 이런 부당한 일을 사회에 알려야 된다고 생각했고 더 이상 제2의 피해자가, 제2의 이찬호가 발생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치료비라는 리스크를 감수하고 저는 좀 일찍 전역을 했어요. 왜냐하면 군 소속일 때는 지휘관의 허가가 필요하고 군법에 위배가 될 수 있어서 방송에 나올 수조차 없어요. 이런 군대라는 폐쇄적인 구조여서 알릴 기회가 없었던 거죠.

▷ 오태훈 : 지난해 철원에서 있었던 K-9 자주포 사고의 당사자인 이찬호 씨와 함께 말씀을 나누고 있는데요. 지난해 이찬호 병장의 처지를 안타까워하는 분들이 청와대 청원을 올렸고 순식간에 20만 명을 넘겼습니다. 정당한 치료 그리고 국가유공자 지정을 국민들이 요구를 했고. 국가가 미루는 일을 시민들이 도와줬다는 점에서 참 고마운 마음도 있을 것 같고, 어떠셨어요?

▶ 이찬호 : 진짜 너무 감사드렸어요, 진짜. 다들 남 일 같지 않게 생각해 주시고 그게 저한테 느껴졌고 그리고 저뿐만 아니라 군대에서 이런 사건사고들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지만 항상 묻혀왔기에 국민청원을 통해 관심을 많이 가져주신 것 같아요. 사실 저 혼자서는 해결할 수 없는 일이었는데 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기억해 주신다는 게 정말 감사드리죠.

▷ 오태훈 : 국가가 나 몰라라 한 일을 국민들이 나서서 혼내준 거예요, 이게. 그렇게 생각이 드는데 우선 지금은 어떤 상황인지, 사진으로만 봐서 좀 구체적인 상황을 듣고 싶은데 화상치료라든가 생활의 경제적인 어려움 같은 것들은 없는지도 좀 알려주시죠.

▶ 이찬호 : 지금 현재 병원에 입원해서 재활치료 중이고요. 추후 수술을 차례 기다리고 있는 상태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화상환자들끼리 서로 이해하면서 살아가고 있는데 제가 과연 현실에 놓여지면 어떤 직업을 가지고 돈을 벌 수 있을지가 걱정이 많이 되죠. 저는 아직 25살밖에 안 됐고 결혼도 해야 되고 안정적인 직업도 가져야 되는데 막막하죠, 그런 걸 생각한다면.

▷ 오태훈 : 앞서서 치료비를 생각한다고 하면 전역을 많이 미뤄야 되겠지만 사회에 알리고 더 이상 나와 같은 사람이 발생하지 않았으면 한다는 마음에서 일찍 전역을 했다고 하셨는데, 앞으로 더 나아가서 화상환자를 위한 사회활동 펼칠 예정이라고 들었어요.

▶ 이찬호 : 네. 저는 한 번도 편하게 치료를 받은 적이 없이 이런저런 일로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았어요. 하지만 많은 분들이 응원과 관심을 주셨기에 힘을 낼 수가 있었고요. 그렇게 저는 그냥 자연스럽게 받은 사랑을 베풀고자 기부와 복지에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요. 현재 몸이 좋지 않은 관계로 발로 뛸 수는 없어서 기부 프로젝트라든지 화상환자 분들의 사진전을 기획 중에 있어요. 그리고 또 건강을 찾으면 봉사활동을 할 계획에 있고요.

▷ 오태훈 : 이번 일을 겪으면서 참 많은 것을 느끼신 것 같아요. 나라, 국가에게, 아니면 또 많은 도움을 주신 시민들께 한 말씀 좀 해 주시죠.

▶ 이찬호 : 일단 너무 감사드립니다. 그렇지만 아직 해결된 게 하나도 없습니다. 진상규명도, 누구의 책임도, 누구의 처벌도, 어떠한 보상도. 아직도 자주포는 사용되고 있으며 해외로 수출되고 있습니다. 이 시대의 미래를 짊어질 꿈 많은 청춘들이 나라를 위해 아무런 대가 없이 의무를 다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희는 소모품이 아닙니다. 많은 걸 바라는 게 아니라 당연한 걸 바라는 겁니다. 선진국인 만큼 바뀌어야 된다고 생각을 하고 있고요. 그리고 국민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1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관심과 잊지 않고 응원해 주시는 시민 분들께 정말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씀 드리고 싶어요.

▷ 오태훈 : 저도 이찬호 병장 많이 응원하고요. 그리고 이후에 많이 건강 완쾌돼서 또 사진전 일정 같은 것들이 정해지면 저희 스튜디오에서 직접 뵙고 여러 가지 말씀 좀 나누겠습니다. 저희도 많이 알리겠고요.

▶ 이찬호 : 네, 감사합니다.

▷ 오태훈 : 오늘 말씀 고맙습니다.

▶ 이찬호 : 네, 감사합니다.

▷ 오태훈 : 철원 K-9 자주포 사고의 고통 딛고 화상환자들의 처우개선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예비역 병장 이찬호 씨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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