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언론 오도독] 박정희와 KBS

입력 2018.10.26 (07:00) 수정 2018.10.26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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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도독 : 작고 단단한 물건을 깨무는 소리.

2018년 10월 26일, 경상북도 구미에서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39주기 추모제가 열린다. 장세용 구미시장은 참석하지 않지만 이철우 경북도지사는 추모제에 참석하기로 했다. 더불어민주당 시장은 참석을 안 하고 자유한국당 지사는 참석해 올해는 반쪽 자리 행사로 전락한 듯 하지만 5,6년전만 해도 박정희 전 대통령의 추모제나 탄신제에는 당시 여권의 주요 인사들과 시민 수백여명이 참석해 성황을 이뤘다.

2012년 11월 14일, 박정희 전 대통령의 95주기 탄신제에서 당시 남유진 구미시장은 그를 “반인반신(반은 인간이고 반은 신)의 지도자”로 칭송했고, 심학봉 새누리당 의원은 구미 “금오산에는 전설이 있는데 그 전설에 따르면 두 명의 대통령이 난다”고 했다며, 그 “전설이 꼭 이루어지도록 여러분들이 지켜주셔야 한다”고 역설하기도 했다. 당시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였던 박근혜에 대한 지지를 당부하는 말이었다. 그랬다. 그때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추모와 칭송에는 새로운 권력이 될 집권당 후보에 대한 지지와 성원, 충성과 아부가 뒤섞여 있었다.

2012년 8월 17일, 공영방송사 KBS는 그러나 여당의 정치인들보다 빨리 누웠다. KBS는 8월 17일, 고 장준하 선생의 유골 두개골 부위에 망치로 맞은 것 같은 함몰 자국이 발견돼 타살 의혹이 일고 있다는 소식을 전하면서, 기자의 초고에 있던 “독재”와 “유신”이라는 용어를 뺀 채 방송했다. 당시 취재 기자가 작성한 초고에는 “박정희 독재정권시절 대표적 재야 인사로 반독재 투쟁에 앞장섰다 지난 1975년 숨진 채 발견됐던 고 장준하 선생”으로 돼 있었지만, 데스크를 거쳐 방송된 보도에는 “박정희 정권 시절 3선 개헌에 반대하며 민주화 운동을 벌이다...숨진채 발견된 고 장준하 선생”으로 바뀌어 있었다. “독재”와 “유신”이라는 단어만 들어내 버린 것이다.

2012.8.17 장준하 선생 관련 KBS 보도 영상2012.8.17 장준하 선생 관련 KBS 보도 영상

2012년 8월 31일, 언론이 독재를 독재라고 칭할 수도 없는 것이냐고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당시 KBS의 보도본부장 이화섭은 이렇게 독재를 빼고 방송을 한 것이 잘 된 데스킹이었다고 주장하면서 “독재처럼 객관적이지 않은 단어를 사용하는 것을 지양해야 한다”고 말했다. 새로운 권력의 향배에 관심을 보이며 바람처럼 빨리 눕기를 반복하던 이화섭 보도본부장은 KBS를 퇴직한 뒤 고려대학교에서 언론학을 가르치다, 촛불혁명이후 문재인 후보가 유력 대통령 후보로 부상하자 이번에는 문 캠프에 수차례 구애를 표명했지만 그의 과거 행적이 알려지면서 캠프 입성에는 실패했다.

2012년 8월 20일, 그러나 KBS와 달리 박근혜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의 선출 이후, 많은 해외 언론은 박정희 전 대통령을 독재자로, 박근혜 전 대통령을 독재자의 딸로 정의하는데 스스럼없었다. 로이터는 “살해된 독재자의 딸(slain dictator's daughter)”이 대통령 후보로 선출됐다고 전했고, 우파 매체로 평가받는 크리스천 사이언스 모니터도 “박근혜는 전 군부 독재자의 딸이다(Park is the daughter of former military dictator)”라고 적시했다. 블룸버그통신도 “박근혜의 아버지는 한국을 18년동안 독재자로 통치했다(whose father ruled South Korea as a dictator for 18 years)”라고 보도했으며, 미 보스턴글로브지도 “한국 독재자의 딸이 대통령 후보로 선출됐다(South Korean dictator's daughter wins nomination for president)”라고 관련 기사 제목을 달았다.

1999년 8월 23일, 이미 도널드 그레그(1970년대 미 CIA간부로 한국에 주재한 바 있는 친한파 미 정치인)는 미 시사주간지 TIME에 실린 기고문을 통해 박정희 전대통령의 유신 체제를 북한의 주체사상과 흡사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1974년 박정희 전 대통령이 초대한 골프 행사의 기억을 떠올리면서 당시 국방부 장관과 중앙정보부 간부들은 박 전 대통령 앞에서 “꿈쩍도 않고 명령을 기다리는 육사 1학년 생도들 같았다”고 묘사했다. 또 1972년 “유신체제는 독재로의 회귀”였으며 “많은 정치 지도자들이 임의로 구속되고 공포정치가 펼쳐졌다”고 회고했다. “반대하는 사람들은 진압하고 고문하는 것으로 악명높았던 한국의 유신 체제는 많은 측면에서 북한의 주체 사상을 연상케 했다”는 것이 그의 기고문 요지였다.

[도널드 그레그의 TIME 기고문 전문보기] http://content.time.com/time/world/article/0,8599,2054405,00.html

유신체제는 KBS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1973년 3월 3일, 대통령 박정희가 한국방송공사 창설에 즈음하여 KBS에 특별한 임무를 부여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유신이념의 구현이었다.

1973년 KBS 연감1973년 KBS 연감

KBS 연감에 따르면 당시 KBS “보도부(지금의 보도본부)는 KBS의 최선봉장이라는 사명감에 입각하여 전 보도요원이...국가시책의 신속한 홍보를 위하여 뉴우스로서의 전달력과 호소력 그리고 설득력을 총동원”했다. 또 “90여 회에 걸친 보도특집을 방영해서 유신에 대한 이해 증진과 올바른 국민의 여론 형성을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았으며, 커다른 성과를 거두었다고 자부”했다. 뉴스만 그렇게 유신체제를 홍보했던 것은 아니었다. 당시 ‘TV주간기본방송순서’를 보면 매일 뉴스와 뉴스 사이, 지금은 드라마를 하는 시간에 “새마을수첩”이라는 프로그램이 자리잡고 있었다. 주말에는 “배달의 기수”가 절찬리에 방영됐고, 일요일에는 “새마을잔치”가 재방송됐다. “조국의 방패" 가 “형사 콜롬보”에 이어 나왔고, 뉴스를 보고 나면 또 “새마을 잔치”가 방송됐다.

1974년 KBS TV주간기본방송순서1974년 KBS TV주간기본방송순서

가끔 대통령의 영애 박근혜가 TV에 혼자 나와 대담했고, 그를 맞이해 응대하는 일은 KBS 고위간부들에게는 전사적 행사에 가까웠다. 고개 숙여 인사하는 공영방송 KBS 사장과 화사하게 웃으며 손을 내미는 대통령의 딸 박근혜의 사진이 당시 유신체제의 모든 것을 말해준다.

1976년 KBS 연감. “대통령 영애 박근혜양은...가족이 본 박 대통령의 근황을 전하는 한편 여성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소신을 밝혔다.”1976년 KBS 연감. “대통령 영애 박근혜양은...가족이 본 박 대통령의 근황을 전하는 한편 여성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소신을 밝혔다.”

1977년 KBS연감. 위 좌측 사진. 대통령 영애 박근혜와 KBS사장이 인사하는 동안 KBS 간부들이 차려 자세로 서 있다.1977년 KBS연감. 위 좌측 사진. 대통령 영애 박근혜와 KBS사장이 인사하는 동안 KBS 간부들이 차려 자세로 서 있다.

1970년대, 유신헌법하에서 대통령은 국회의원 3분의 1과 모든 법관을 임명했다. 대통령은 긴급조치권과 국회 해산권을 가졌다. 대통령 임기는 6년이지만 연임이 가능했다. 또 대통령 선출도 간선제로 제한했으니 유신헌법은 박정희 종신대통령제였던 것이다. 성인 남성들도 길거리에서 경찰의 장발 단속에 걸리면 그 자리에서 가위로 머리카락이 잘려 나갔고, 역시 길거리에서 여성의 치마 길이를 경찰이 임의로 검사하며 ‘미풍양속’을 강제했다. 대학에는 경찰이 상주해 있었고, 서울대 교수가 고문으로 죽임을 당했던 시절이 1970년대 유신체제였다. 그리고 그런 유신체제를 한 해 90회 이상의 보도특집과, 국민 세뇌식 TV편성으로 선전했던 곳이 KBS였다.

2018년 10월 26일, 그래서 박정희 전 대통령 추모제에 참석하는 시민들이 아직도 느끼고 있는 향수는 KBS를 비롯한 한국언론의 수 십 년 선전선동에 의해 인위적으로 심어져 온 것, 즉 세뇌된 것이 아닐까라는 의심은 언제나 가능하다. 그리고 그렇게 따져본다면 지난 수 십 년의 독재, 권위주의 정권 시절 KBS는 국민에 대해서는 가해자였지만 한편으론 언론의 자유를 박탈당한 피해자였다는 추정도 자연스레 유추해낼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KBS가 꼭 기억해야 할 것은 KBS가 독재정권의 나팔수로 기능해 온 수 십 년 동안 KBS의 시청자들은 늘 피해자였을 따름이라는 사실이다. 그래 이제라도 KBS가 이를 속죄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사실을 사실대로 기록하고 말하는 것일 뿐이다.

박정희 정권은 독재정권이었고, 박정희는 독재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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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10-26 07:00:21
    • 수정2018-10-26 16:4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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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도독 : 작고 단단한 물건을 깨무는 소리.

2018년 10월 26일, 경상북도 구미에서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39주기 추모제가 열린다. 장세용 구미시장은 참석하지 않지만 이철우 경북도지사는 추모제에 참석하기로 했다. 더불어민주당 시장은 참석을 안 하고 자유한국당 지사는 참석해 올해는 반쪽 자리 행사로 전락한 듯 하지만 5,6년전만 해도 박정희 전 대통령의 추모제나 탄신제에는 당시 여권의 주요 인사들과 시민 수백여명이 참석해 성황을 이뤘다.

2012년 11월 14일, 박정희 전 대통령의 95주기 탄신제에서 당시 남유진 구미시장은 그를 “반인반신(반은 인간이고 반은 신)의 지도자”로 칭송했고, 심학봉 새누리당 의원은 구미 “금오산에는 전설이 있는데 그 전설에 따르면 두 명의 대통령이 난다”고 했다며, 그 “전설이 꼭 이루어지도록 여러분들이 지켜주셔야 한다”고 역설하기도 했다. 당시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였던 박근혜에 대한 지지를 당부하는 말이었다. 그랬다. 그때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추모와 칭송에는 새로운 권력이 될 집권당 후보에 대한 지지와 성원, 충성과 아부가 뒤섞여 있었다.

2012년 8월 17일, 공영방송사 KBS는 그러나 여당의 정치인들보다 빨리 누웠다. KBS는 8월 17일, 고 장준하 선생의 유골 두개골 부위에 망치로 맞은 것 같은 함몰 자국이 발견돼 타살 의혹이 일고 있다는 소식을 전하면서, 기자의 초고에 있던 “독재”와 “유신”이라는 용어를 뺀 채 방송했다. 당시 취재 기자가 작성한 초고에는 “박정희 독재정권시절 대표적 재야 인사로 반독재 투쟁에 앞장섰다 지난 1975년 숨진 채 발견됐던 고 장준하 선생”으로 돼 있었지만, 데스크를 거쳐 방송된 보도에는 “박정희 정권 시절 3선 개헌에 반대하며 민주화 운동을 벌이다...숨진채 발견된 고 장준하 선생”으로 바뀌어 있었다. “독재”와 “유신”이라는 단어만 들어내 버린 것이다.

2012.8.17 장준하 선생 관련 KBS 보도 영상
2012년 8월 31일, 언론이 독재를 독재라고 칭할 수도 없는 것이냐고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당시 KBS의 보도본부장 이화섭은 이렇게 독재를 빼고 방송을 한 것이 잘 된 데스킹이었다고 주장하면서 “독재처럼 객관적이지 않은 단어를 사용하는 것을 지양해야 한다”고 말했다. 새로운 권력의 향배에 관심을 보이며 바람처럼 빨리 눕기를 반복하던 이화섭 보도본부장은 KBS를 퇴직한 뒤 고려대학교에서 언론학을 가르치다, 촛불혁명이후 문재인 후보가 유력 대통령 후보로 부상하자 이번에는 문 캠프에 수차례 구애를 표명했지만 그의 과거 행적이 알려지면서 캠프 입성에는 실패했다.

2012년 8월 20일, 그러나 KBS와 달리 박근혜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의 선출 이후, 많은 해외 언론은 박정희 전 대통령을 독재자로, 박근혜 전 대통령을 독재자의 딸로 정의하는데 스스럼없었다. 로이터는 “살해된 독재자의 딸(slain dictator's daughter)”이 대통령 후보로 선출됐다고 전했고, 우파 매체로 평가받는 크리스천 사이언스 모니터도 “박근혜는 전 군부 독재자의 딸이다(Park is the daughter of former military dictator)”라고 적시했다. 블룸버그통신도 “박근혜의 아버지는 한국을 18년동안 독재자로 통치했다(whose father ruled South Korea as a dictator for 18 years)”라고 보도했으며, 미 보스턴글로브지도 “한국 독재자의 딸이 대통령 후보로 선출됐다(South Korean dictator's daughter wins nomination for president)”라고 관련 기사 제목을 달았다.

1999년 8월 23일, 이미 도널드 그레그(1970년대 미 CIA간부로 한국에 주재한 바 있는 친한파 미 정치인)는 미 시사주간지 TIME에 실린 기고문을 통해 박정희 전대통령의 유신 체제를 북한의 주체사상과 흡사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1974년 박정희 전 대통령이 초대한 골프 행사의 기억을 떠올리면서 당시 국방부 장관과 중앙정보부 간부들은 박 전 대통령 앞에서 “꿈쩍도 않고 명령을 기다리는 육사 1학년 생도들 같았다”고 묘사했다. 또 1972년 “유신체제는 독재로의 회귀”였으며 “많은 정치 지도자들이 임의로 구속되고 공포정치가 펼쳐졌다”고 회고했다. “반대하는 사람들은 진압하고 고문하는 것으로 악명높았던 한국의 유신 체제는 많은 측면에서 북한의 주체 사상을 연상케 했다”는 것이 그의 기고문 요지였다.

[도널드 그레그의 TIME 기고문 전문보기] http://content.time.com/time/world/article/0,8599,2054405,00.html

유신체제는 KBS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1973년 3월 3일, 대통령 박정희가 한국방송공사 창설에 즈음하여 KBS에 특별한 임무를 부여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유신이념의 구현이었다.

1973년 KBS 연감
KBS 연감에 따르면 당시 KBS “보도부(지금의 보도본부)는 KBS의 최선봉장이라는 사명감에 입각하여 전 보도요원이...국가시책의 신속한 홍보를 위하여 뉴우스로서의 전달력과 호소력 그리고 설득력을 총동원”했다. 또 “90여 회에 걸친 보도특집을 방영해서 유신에 대한 이해 증진과 올바른 국민의 여론 형성을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았으며, 커다른 성과를 거두었다고 자부”했다. 뉴스만 그렇게 유신체제를 홍보했던 것은 아니었다. 당시 ‘TV주간기본방송순서’를 보면 매일 뉴스와 뉴스 사이, 지금은 드라마를 하는 시간에 “새마을수첩”이라는 프로그램이 자리잡고 있었다. 주말에는 “배달의 기수”가 절찬리에 방영됐고, 일요일에는 “새마을잔치”가 재방송됐다. “조국의 방패" 가 “형사 콜롬보”에 이어 나왔고, 뉴스를 보고 나면 또 “새마을 잔치”가 방송됐다.

1974년 KBS TV주간기본방송순서
가끔 대통령의 영애 박근혜가 TV에 혼자 나와 대담했고, 그를 맞이해 응대하는 일은 KBS 고위간부들에게는 전사적 행사에 가까웠다. 고개 숙여 인사하는 공영방송 KBS 사장과 화사하게 웃으며 손을 내미는 대통령의 딸 박근혜의 사진이 당시 유신체제의 모든 것을 말해준다.

1976년 KBS 연감. “대통령 영애 박근혜양은...가족이 본 박 대통령의 근황을 전하는 한편 여성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소신을 밝혔다.”
1977년 KBS연감. 위 좌측 사진. 대통령 영애 박근혜와 KBS사장이 인사하는 동안 KBS 간부들이 차려 자세로 서 있다.
1970년대, 유신헌법하에서 대통령은 국회의원 3분의 1과 모든 법관을 임명했다. 대통령은 긴급조치권과 국회 해산권을 가졌다. 대통령 임기는 6년이지만 연임이 가능했다. 또 대통령 선출도 간선제로 제한했으니 유신헌법은 박정희 종신대통령제였던 것이다. 성인 남성들도 길거리에서 경찰의 장발 단속에 걸리면 그 자리에서 가위로 머리카락이 잘려 나갔고, 역시 길거리에서 여성의 치마 길이를 경찰이 임의로 검사하며 ‘미풍양속’을 강제했다. 대학에는 경찰이 상주해 있었고, 서울대 교수가 고문으로 죽임을 당했던 시절이 1970년대 유신체제였다. 그리고 그런 유신체제를 한 해 90회 이상의 보도특집과, 국민 세뇌식 TV편성으로 선전했던 곳이 KBS였다.

2018년 10월 26일, 그래서 박정희 전 대통령 추모제에 참석하는 시민들이 아직도 느끼고 있는 향수는 KBS를 비롯한 한국언론의 수 십 년 선전선동에 의해 인위적으로 심어져 온 것, 즉 세뇌된 것이 아닐까라는 의심은 언제나 가능하다. 그리고 그렇게 따져본다면 지난 수 십 년의 독재, 권위주의 정권 시절 KBS는 국민에 대해서는 가해자였지만 한편으론 언론의 자유를 박탈당한 피해자였다는 추정도 자연스레 유추해낼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KBS가 꼭 기억해야 할 것은 KBS가 독재정권의 나팔수로 기능해 온 수 십 년 동안 KBS의 시청자들은 늘 피해자였을 따름이라는 사실이다. 그래 이제라도 KBS가 이를 속죄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사실을 사실대로 기록하고 말하는 것일 뿐이다.

박정희 정권은 독재정권이었고, 박정희는 독재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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