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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 보호보다 가정 유지? …있으나 마나 ‘가정폭력처벌법’
입력 2018.10.29 (18:53) 수정 2018.10.30 (08:11) 취재K
가정폭력으로 인한 살인사건은 새로운 뉴스가 아닙니다. 1.4일마다 1건씩 가정폭력으로 인한 살인사건이 일어납니다.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범죄자와 피해자의 관계가 파악된 살인사건 914건 중 28.7%인 263건이 애인이나 동거친족에 의해 벌어집니다.

너무나 일상적으로 벌어져서, 더이상 뉴스로 제대로 다루어지지 않는, 가정폭력에 대해 국가책임을 묻는 여성단체의 반복되는 기자회견이 오늘(29일) 또 열렸습니다.

"비참했죠. 지옥 같았어요. 저게 나였을 수도 있었겠다…"

690개 여성단체가 개최한 오늘 기자회견에 가정폭력 피해당사자로 나선 여성 가운데 한명은 19살 이모 씨였습니다. 이 씨는 일주일 전 서울 강서구의 한 아파트에서 발생한 '전 부인 살인사건' 소식을 듣고 자신의 이야기라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나이도, 가해자와의 관계도 달랐지만, 가정폭력에 대한 경찰의 대응은 비슷했기 때문입니다.

이 씨의 아버지는 이 씨를 수 차례 폭행하고 흉기를 들이밀며 살해협박을 했습니다. 고심 끝에 경찰에 신고했지만 출동한 경찰은 폭행당해 멍든 이 씨의 몸을 보고도 가해자와 피해자를 한자리에 놓고 '만담하듯이' 농담을 주고받았다고 합니다.

"나는 사람이 아니냐"고 이 씨가 울부짖으며 하루만이라도 가해자와 떨어져 있게 해달라고 경찰에 애원했지만, 격리조치는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이 같은 경우는 가정폭력에 관한 한 전혀 극단적인 사례가 아닙니다.


지난해 경찰에 접수된 가정폭력 신고건수는 27만 9천여 건에 이릅니다. 2013년 16만 건에 비해 4년 만에 74% 급증했습니다. 하지만 실제 검거로 이어진 비율은 13.8%에 불과합니다. 검거된 가해자는 99% 불구속 상태에서 수사를 받습니다.

가해자를 피해자로부터 분리하기 위한 '임시조치'는 어떨까요. 경찰은 가해자에게 퇴거명령을 내리거나 100미터 이내 접근금지, 전화통화 금지 등의 조치를 취할 수 있습니다.

지난해 임시조치 대상자는 4265명에 그쳤습니다. 검거 인원 4만 5200여 명 가운데 9% 남짓한 수준입니다. 가해자가 구속된 경우는 0.8%에 불과합니다.

6차례 거주지를 옮기고 개명을 하고 법원의 접근금지명령을 받았지만 살해당한 뒤에야 25년의 가정폭력이 멈춘 '전 부인 살인사건' 피해자를 여성운동가들이 특수한 사례가 아니라고 말하는 배경입니다.

가정폭력처벌법, '피해자'가 아니라 '가정'을 보호?

이처럼 가정폭력은 신고해도 가해자 검거도, 격리조치도, 처벌도 안되는 이유는 형법이 아닌 '가정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이 적용되기 때문입니다.


1997년 제정된 가정폭력처벌법은 '가정의 회복'을 그 목적으로 합니다. 가해자에 대한 처벌이 목적이지 않기 때문에 가해자를 '행위자'라고 규정합니다.

반대로 가해자를 체포할 권한이 규정되어 있지 않아, 현행범이 아닌 한 경찰이 적극적으로 체포할 수 없습니다.

또, 검찰 수사를 통해 가정폭력 행위가 확인되더라도 가해자가 상담을 받겠다고 수용하면 사건은 기소되지 않습니다. 이른바 상담조건부 기소유예제도입니다.

그 결과, 가정폭력 사건의 기소율은 지난 한 해 25.9%에 그쳤습니다. 아예 불기소되는 경우가 37.2%로 가장 많고, 가해자를 처벌하지 않고 교정하는 '보호처분'이 35.5%로 뒤를 이었습니다.


이 같은 상황에 대해 가정폭력 피해자의 75%를 차지하는 여성들은 어떻게 생각할까요.

지난해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전국 가정폭력 보호시설과 상담소를 이용한 피해여성 278명에게 가정폭력 예방을 위해 필요한 제도를 물었습니다.

가해자에 대한 처벌 강화와 분리조치, 반의사불벌죄 조항을 고쳐야 한다는 대답이 압도적으로 높게 나타났습니다.

현재의 가정폭력 대응시스템이 실효성이 없다는 평가를 내린 셈입니다.

UN "피해자 안전을 최우선으로 법 개정해야" 권고

이 같은 요구는 국제사회가 한국정부와 국회에 요구하는 보편적인 인권수준이기도 합니다. 지난 2월 UN여성차별철폐위원회(CEDAW)는 가정폭력특례법을 개정하라고 권고했습니다.

UN여성차별철폐위원회는 "사건 현장에서 가해자와 분리를 통한 피해자 보호가 가장 중요한데, 관련 법에 가해자를 체포할 수 있는 권한이 규정되어 있지 않다"고 지적하고 '범죄자 체포 우선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또, 가정폭력 범죄에 대한 합당한 법적 처벌이 보장되도록 상담조건부 기소유예제도를 폐지하고 화해나 중재를 통한 해결을 금지해야 한다고 명시했습니다.

근본적으로 가정폭력처벌법의 목적을 피해자 안전을 최우선으로 규정하고 그 적용범위를 동성커플이나 성적취향, 성별 정체성과 상관없는 모든 여성으로 확대하라고 요구했습니다.

그런데 국회에는 UN여성차별철폐위원회의 권고안이 나오기 전에 이미 같은 내용의 가정폭력처벌법 개정안이 현재 국회에 여럿 발의되어 있습니다.

고미경 한국 여성의 전화 상임대표는 오늘 기자회견에서 "국가는 왜 가정폭력을 이토록 방치합니까"라며 조속한 개정과 제도개선을 요구했습니다.


"숨어다니라는 말밖에 못했지만…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찬바람이 한층 거세진 오늘 기자회견장에는 '전 부인 살인사건' 유족의 지인들도 참석했습니다.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한 켠에 간이탁자를 펴고 가해자에 대한 엄정한 처벌을 촉구하는 서명을 받았습니다.

숨진 피해자의 친구는 "결혼생활 중 가정폭력, 이혼 후 살인협박으로 두려움과 공포 속에 생활하는 걸 지켜봤지만 해줄 수 있는 게 없었다. 다만 숨어다니라는 말밖에…"라고 안타까워했습니다.

그러면서 "시간만 되돌릴 수 있다면, 끔찍한 일이 발생하기 전 이런 탄원서를 넣을 걸 너무 후회스럽다"면서 "법의 무서움을 알려야 한다"며 서명 참여를 호소했습니다.

여성운동가들은 이번 사건은 유족들의 적극적인 노력으로 이례적으로 널리 알려졌다고 말합니다.

가정폭력, 이번에도 하나의 사건으로 넘긴다면 공포와 두려움이 일상이 된 많은 여성들의 고통스러운 현실은 계속될 수밖에 없습니다.
  • 피해자 보호보다 가정 유지? …있으나 마나 ‘가정폭력처벌법’
    • 입력 2018-10-29 18:53:42
    • 수정2018-10-30 08:11:44
    취재K
가정폭력으로 인한 살인사건은 새로운 뉴스가 아닙니다. 1.4일마다 1건씩 가정폭력으로 인한 살인사건이 일어납니다.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범죄자와 피해자의 관계가 파악된 살인사건 914건 중 28.7%인 263건이 애인이나 동거친족에 의해 벌어집니다.

너무나 일상적으로 벌어져서, 더이상 뉴스로 제대로 다루어지지 않는, 가정폭력에 대해 국가책임을 묻는 여성단체의 반복되는 기자회견이 오늘(29일) 또 열렸습니다.

"비참했죠. 지옥 같았어요. 저게 나였을 수도 있었겠다…"

690개 여성단체가 개최한 오늘 기자회견에 가정폭력 피해당사자로 나선 여성 가운데 한명은 19살 이모 씨였습니다. 이 씨는 일주일 전 서울 강서구의 한 아파트에서 발생한 '전 부인 살인사건' 소식을 듣고 자신의 이야기라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나이도, 가해자와의 관계도 달랐지만, 가정폭력에 대한 경찰의 대응은 비슷했기 때문입니다.

이 씨의 아버지는 이 씨를 수 차례 폭행하고 흉기를 들이밀며 살해협박을 했습니다. 고심 끝에 경찰에 신고했지만 출동한 경찰은 폭행당해 멍든 이 씨의 몸을 보고도 가해자와 피해자를 한자리에 놓고 '만담하듯이' 농담을 주고받았다고 합니다.

"나는 사람이 아니냐"고 이 씨가 울부짖으며 하루만이라도 가해자와 떨어져 있게 해달라고 경찰에 애원했지만, 격리조치는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이 같은 경우는 가정폭력에 관한 한 전혀 극단적인 사례가 아닙니다.


지난해 경찰에 접수된 가정폭력 신고건수는 27만 9천여 건에 이릅니다. 2013년 16만 건에 비해 4년 만에 74% 급증했습니다. 하지만 실제 검거로 이어진 비율은 13.8%에 불과합니다. 검거된 가해자는 99% 불구속 상태에서 수사를 받습니다.

가해자를 피해자로부터 분리하기 위한 '임시조치'는 어떨까요. 경찰은 가해자에게 퇴거명령을 내리거나 100미터 이내 접근금지, 전화통화 금지 등의 조치를 취할 수 있습니다.

지난해 임시조치 대상자는 4265명에 그쳤습니다. 검거 인원 4만 5200여 명 가운데 9% 남짓한 수준입니다. 가해자가 구속된 경우는 0.8%에 불과합니다.

6차례 거주지를 옮기고 개명을 하고 법원의 접근금지명령을 받았지만 살해당한 뒤에야 25년의 가정폭력이 멈춘 '전 부인 살인사건' 피해자를 여성운동가들이 특수한 사례가 아니라고 말하는 배경입니다.

가정폭력처벌법, '피해자'가 아니라 '가정'을 보호?

이처럼 가정폭력은 신고해도 가해자 검거도, 격리조치도, 처벌도 안되는 이유는 형법이 아닌 '가정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이 적용되기 때문입니다.


1997년 제정된 가정폭력처벌법은 '가정의 회복'을 그 목적으로 합니다. 가해자에 대한 처벌이 목적이지 않기 때문에 가해자를 '행위자'라고 규정합니다.

반대로 가해자를 체포할 권한이 규정되어 있지 않아, 현행범이 아닌 한 경찰이 적극적으로 체포할 수 없습니다.

또, 검찰 수사를 통해 가정폭력 행위가 확인되더라도 가해자가 상담을 받겠다고 수용하면 사건은 기소되지 않습니다. 이른바 상담조건부 기소유예제도입니다.

그 결과, 가정폭력 사건의 기소율은 지난 한 해 25.9%에 그쳤습니다. 아예 불기소되는 경우가 37.2%로 가장 많고, 가해자를 처벌하지 않고 교정하는 '보호처분'이 35.5%로 뒤를 이었습니다.


이 같은 상황에 대해 가정폭력 피해자의 75%를 차지하는 여성들은 어떻게 생각할까요.

지난해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전국 가정폭력 보호시설과 상담소를 이용한 피해여성 278명에게 가정폭력 예방을 위해 필요한 제도를 물었습니다.

가해자에 대한 처벌 강화와 분리조치, 반의사불벌죄 조항을 고쳐야 한다는 대답이 압도적으로 높게 나타났습니다.

현재의 가정폭력 대응시스템이 실효성이 없다는 평가를 내린 셈입니다.

UN "피해자 안전을 최우선으로 법 개정해야" 권고

이 같은 요구는 국제사회가 한국정부와 국회에 요구하는 보편적인 인권수준이기도 합니다. 지난 2월 UN여성차별철폐위원회(CEDAW)는 가정폭력특례법을 개정하라고 권고했습니다.

UN여성차별철폐위원회는 "사건 현장에서 가해자와 분리를 통한 피해자 보호가 가장 중요한데, 관련 법에 가해자를 체포할 수 있는 권한이 규정되어 있지 않다"고 지적하고 '범죄자 체포 우선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또, 가정폭력 범죄에 대한 합당한 법적 처벌이 보장되도록 상담조건부 기소유예제도를 폐지하고 화해나 중재를 통한 해결을 금지해야 한다고 명시했습니다.

근본적으로 가정폭력처벌법의 목적을 피해자 안전을 최우선으로 규정하고 그 적용범위를 동성커플이나 성적취향, 성별 정체성과 상관없는 모든 여성으로 확대하라고 요구했습니다.

그런데 국회에는 UN여성차별철폐위원회의 권고안이 나오기 전에 이미 같은 내용의 가정폭력처벌법 개정안이 현재 국회에 여럿 발의되어 있습니다.

고미경 한국 여성의 전화 상임대표는 오늘 기자회견에서 "국가는 왜 가정폭력을 이토록 방치합니까"라며 조속한 개정과 제도개선을 요구했습니다.


"숨어다니라는 말밖에 못했지만…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찬바람이 한층 거세진 오늘 기자회견장에는 '전 부인 살인사건' 유족의 지인들도 참석했습니다.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한 켠에 간이탁자를 펴고 가해자에 대한 엄정한 처벌을 촉구하는 서명을 받았습니다.

숨진 피해자의 친구는 "결혼생활 중 가정폭력, 이혼 후 살인협박으로 두려움과 공포 속에 생활하는 걸 지켜봤지만 해줄 수 있는 게 없었다. 다만 숨어다니라는 말밖에…"라고 안타까워했습니다.

그러면서 "시간만 되돌릴 수 있다면, 끔찍한 일이 발생하기 전 이런 탄원서를 넣을 걸 너무 후회스럽다"면서 "법의 무서움을 알려야 한다"며 서명 참여를 호소했습니다.

여성운동가들은 이번 사건은 유족들의 적극적인 노력으로 이례적으로 널리 알려졌다고 말합니다.

가정폭력, 이번에도 하나의 사건으로 넘긴다면 공포와 두려움이 일상이 된 많은 여성들의 고통스러운 현실은 계속될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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