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청 잡는 전속거래①] 현대차 2차 협력사는 왜 문을 닫았나

입력 2018.11.06 (17:31) 수정 2018.11.06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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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산업이 벼랑 끝에 몰렸다. 군산공장 폐쇄와 법인 분리 논란 등 '한국GM사태'에 현대자동차그룹의 실적 악화까지 겹쳐 부품 협력업체의 아우성이 커지고 있다.
협력업체들은 단순히 차가 안 팔려서 어려운 게 아니라, 거래구조 때문에 더 어렵다고 호소하고 있다. 협력업체들이 특정 완성차 업체와만 거래하는 '전속거래'다. 전속거래로 '을'이 된 협력업체들이 '갑'인 완성차 업체에서 각종 불공정 행위를 당해 어려움을 겪는다는 하소연이다.
전속거래로 어려움에 빠진 자동차 산업을 협력업체 사례와 구조적 문제로 나눠 짚어본다.



'미래텍'은 현대자동차 2차 협력사다. 아반떼 등의 자동차 카페트 발포 패드를 현대차에 20년 가까이 납품했다. 1차 협력사인 '동진이공', '두올산업'을 통해서였다. 현대차 납품으로 올린 연 매출만 45억~50억 원에 달했고, 직원도 40명이나 됐다.

미래텍 김임석 대표는 2015년 48억 원을 들여 공장을 새로 지을 정도로 사업에 열을 올렸지만, 새 공장을 지은 지 3년도 채우지 못하고 지난 7월 말 공장 문을 닫았다. 김 대표는 "우리는 갑질 피해의 백화점"이라며 1차 협력사에서 수도 없는 갑질을 당했다고 억울함을 토로했다.


◆약속 물량 안 지키고 기술 탈취
김 대표에 따르면 갑질은 새 공장을 지은 이후부터 시작됐다. 1차 협력사 가운데 하나인 두올산업은 새 공장을 지으면 아반떼 연간 16만대, 아이오닉 10만대, EQ900 2만7천대 분량의 일감을 준다고 약속했다. 모두 28만7천대 분량의 일감이었는데, 두올산업은 실제로는 절반에 불과한 15만여 대 분량의 일감만 줬다.

두올산업은 1차 업체가 2차 업체에 무상으로 제공해야 하는 금형도 신형이 아닌 구형을 줬다. 그것도 필요한 만큼 다 주지 않고, 일부는 미래텍이 알아서 조달하도록 했다.

두올산업은 미래텍이 자체 개발한 기술을 가로채기도 했다. 미래텍이 부품 1개당 생산원가를 500원씩 줄이는 방법을 개발하자, 납품 가격을 250원 낮췄다. 김 대표는 "심지어 우리 경쟁업체 사람을 공장에 데리고 와서 새 기술을 견학하도록 했다"며 "경쟁업체는 미래텍의 기술을 활용해 똑같이 원가를 줄였다. 명백한 기술탈취"라고 말했다.

납품 발주를 시도때도없이 하는 일도 다반사였다. 다음 날 납품해야 하는 일감을 전날 퇴근 시간이 다 돼서야 통보했다. 낮에는 일이 없어서 시간을 보내던 직원들은 퇴근하지 못하고 잔업을 해야 했고, 인건비는 그만큼 늘어났다.


◆운반비 후려치고 단가인하까지
부품을 운반하는 과정에서도 갑질이 있었다. 두올산업은 납품 가격에 반영하는 운반비를 계산할 때, 트럭 한 대에 부품을 꽉 채워서 가는 걸 가정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트럭이 절반쯤 빈 채로 운반하는 일이 많았다. 두올산업이 계산한 트럭 대수보다 더 많은 트럭이 필요할 수밖에 없었고, 운반비도 더 들어갔다.

'CR'로 불리는 단가인하는 갑질의 결정판이었다. 납품 계약은 최저가 입찰로 진행되는데, 실제 납품을 하게 되면 입찰 때 냈던 최저가보다 납품 가격을 더 깎았다. 여기에 '약정 CR'이라며 매년 납품 가격을 3~6%씩 무조건 깎았다. 김 대표는 "우리가 최근 받았던 납품 가격이 5~6년 전 금액보다 더 싸다"고 말했다.

이런 다양한 갑질은 동진이공도 비슷했다. 김 대표는 새 공장을 지을 때 쓴 돈을 회수하지도 못했고, 2016년과 지난해 10억 원씩 적자를 봤다. 지난 6월에는 7억~8억 원은 필요한 월 운영자금이 2400만 원 밖에 남지 않는 지경에 이르렀다.


◆보상금 요구하자 "거래 끊자"…공갈·협박으로 고소까지
벼랑 끝에 몰린 김 대표는 지난 6월 말 두올산업과 동진이공에 이 상태로는 납품을 할 수 없다고 선언하고, 그동안에 본 손해를 보상해달라는 공문을 보냈다. 공문을 보낸 다음 날 찾아온 두올산업과 동진이공은 손해를 보상해줄 테니 거래를 끊자고 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김 대표는 이 제안을 받아들였다. 두올산업에서 19억 원, 동진이공에서 17억 원을 받았다. 한 달 뒤인 7월 말까지는 납품을 하고 거래를 끊는 조건이었다. 다만, 동진이공에서는 올해 말까지는 납품을 해달라고 했고, 그렇게 하기로 합의했다.

한 달이 지나 거래를 끊은 두올산업은 갑자기 김 대표를 공갈·협박 혐의로 고소했다. 납품을 끊겠다고 협박해서 돈을 뜯어냈다는 주장이었다. 부당하게 뜯어간 돈이니 돌려달라는 민사소송과 함께 미래텍의 통장을 가압류했다. 2차 협력사가 적자를 견디지 못해 보상금을 달라고 하면, 일단 돈을 줘서 해결하고 소송을 거는 1차 협력사의 전형적인 방식이다.


◆"거래 끊어라" 1차사에 압력…현대차 '개입 의혹'
이때 동진이공은 연말까지 납품을 하라던 약속을 깨고 거래를 바로 끊겠다고 나섰다. 동진이공 관계자는 김 대표에게 현대차 구매본부에 연말까지는 미래텍과 거래를 하겠다고 얘기를 하러 갔는데 '쓸데없는 소리 하지마라'는 말을 들었다고 전했다. 현대차가 관여해서는 안 되는 1차 협력사와 2차 협력사의 거래에 개입한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라 현대차는 두올산업과 동진이공이 미래텍과 보상금을 합의하는 현장에도 찾아왔다. 김 대표는 "현대차 본사 직원이 공장 밖에서 계속 대기했다"며 "두올산업, 동진이공과 합의 내용을 상의하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현대차는 이에 대해 동진이공과 미래텍의 거래에 관여했다는 의혹은 전혀 사실이 아니며, 미래텍에 찾아간 것은 납품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현대차 공장과 다른 협력사들이 피해를 보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손해를 보상받고 사업을 계속하고 싶었던 김 대표는 자신의 뜻과는 다르게 사업을 접고 졸지에 공갈·협박 피의자까지 됐다. 김 대표는 왜 1차 협력사가 하자는 대로 순순히 따랐을까. 김 대표는 "2차 협력사는 최대 약자"라며 "우리는 1차에서 하라는 대로 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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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청 잡는 전속거래①] 현대차 2차 협력사는 왜 문을 닫았나
    • 입력 2018-11-06 17:31:46
    • 수정2018-11-06 17:36:33
    취재K
자동차 산업이 벼랑 끝에 몰렸다. 군산공장 폐쇄와 법인 분리 논란 등 '한국GM사태'에 현대자동차그룹의 실적 악화까지 겹쳐 부품 협력업체의 아우성이 커지고 있다.
협력업체들은 단순히 차가 안 팔려서 어려운 게 아니라, 거래구조 때문에 더 어렵다고 호소하고 있다. 협력업체들이 특정 완성차 업체와만 거래하는 '전속거래'다. 전속거래로 '을'이 된 협력업체들이 '갑'인 완성차 업체에서 각종 불공정 행위를 당해 어려움을 겪는다는 하소연이다.
전속거래로 어려움에 빠진 자동차 산업을 협력업체 사례와 구조적 문제로 나눠 짚어본다.



'미래텍'은 현대자동차 2차 협력사다. 아반떼 등의 자동차 카페트 발포 패드를 현대차에 20년 가까이 납품했다. 1차 협력사인 '동진이공', '두올산업'을 통해서였다. 현대차 납품으로 올린 연 매출만 45억~50억 원에 달했고, 직원도 40명이나 됐다.

미래텍 김임석 대표는 2015년 48억 원을 들여 공장을 새로 지을 정도로 사업에 열을 올렸지만, 새 공장을 지은 지 3년도 채우지 못하고 지난 7월 말 공장 문을 닫았다. 김 대표는 "우리는 갑질 피해의 백화점"이라며 1차 협력사에서 수도 없는 갑질을 당했다고 억울함을 토로했다.


◆약속 물량 안 지키고 기술 탈취
김 대표에 따르면 갑질은 새 공장을 지은 이후부터 시작됐다. 1차 협력사 가운데 하나인 두올산업은 새 공장을 지으면 아반떼 연간 16만대, 아이오닉 10만대, EQ900 2만7천대 분량의 일감을 준다고 약속했다. 모두 28만7천대 분량의 일감이었는데, 두올산업은 실제로는 절반에 불과한 15만여 대 분량의 일감만 줬다.

두올산업은 1차 업체가 2차 업체에 무상으로 제공해야 하는 금형도 신형이 아닌 구형을 줬다. 그것도 필요한 만큼 다 주지 않고, 일부는 미래텍이 알아서 조달하도록 했다.

두올산업은 미래텍이 자체 개발한 기술을 가로채기도 했다. 미래텍이 부품 1개당 생산원가를 500원씩 줄이는 방법을 개발하자, 납품 가격을 250원 낮췄다. 김 대표는 "심지어 우리 경쟁업체 사람을 공장에 데리고 와서 새 기술을 견학하도록 했다"며 "경쟁업체는 미래텍의 기술을 활용해 똑같이 원가를 줄였다. 명백한 기술탈취"라고 말했다.

납품 발주를 시도때도없이 하는 일도 다반사였다. 다음 날 납품해야 하는 일감을 전날 퇴근 시간이 다 돼서야 통보했다. 낮에는 일이 없어서 시간을 보내던 직원들은 퇴근하지 못하고 잔업을 해야 했고, 인건비는 그만큼 늘어났다.


◆운반비 후려치고 단가인하까지
부품을 운반하는 과정에서도 갑질이 있었다. 두올산업은 납품 가격에 반영하는 운반비를 계산할 때, 트럭 한 대에 부품을 꽉 채워서 가는 걸 가정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트럭이 절반쯤 빈 채로 운반하는 일이 많았다. 두올산업이 계산한 트럭 대수보다 더 많은 트럭이 필요할 수밖에 없었고, 운반비도 더 들어갔다.

'CR'로 불리는 단가인하는 갑질의 결정판이었다. 납품 계약은 최저가 입찰로 진행되는데, 실제 납품을 하게 되면 입찰 때 냈던 최저가보다 납품 가격을 더 깎았다. 여기에 '약정 CR'이라며 매년 납품 가격을 3~6%씩 무조건 깎았다. 김 대표는 "우리가 최근 받았던 납품 가격이 5~6년 전 금액보다 더 싸다"고 말했다.

이런 다양한 갑질은 동진이공도 비슷했다. 김 대표는 새 공장을 지을 때 쓴 돈을 회수하지도 못했고, 2016년과 지난해 10억 원씩 적자를 봤다. 지난 6월에는 7억~8억 원은 필요한 월 운영자금이 2400만 원 밖에 남지 않는 지경에 이르렀다.


◆보상금 요구하자 "거래 끊자"…공갈·협박으로 고소까지
벼랑 끝에 몰린 김 대표는 지난 6월 말 두올산업과 동진이공에 이 상태로는 납품을 할 수 없다고 선언하고, 그동안에 본 손해를 보상해달라는 공문을 보냈다. 공문을 보낸 다음 날 찾아온 두올산업과 동진이공은 손해를 보상해줄 테니 거래를 끊자고 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김 대표는 이 제안을 받아들였다. 두올산업에서 19억 원, 동진이공에서 17억 원을 받았다. 한 달 뒤인 7월 말까지는 납품을 하고 거래를 끊는 조건이었다. 다만, 동진이공에서는 올해 말까지는 납품을 해달라고 했고, 그렇게 하기로 합의했다.

한 달이 지나 거래를 끊은 두올산업은 갑자기 김 대표를 공갈·협박 혐의로 고소했다. 납품을 끊겠다고 협박해서 돈을 뜯어냈다는 주장이었다. 부당하게 뜯어간 돈이니 돌려달라는 민사소송과 함께 미래텍의 통장을 가압류했다. 2차 협력사가 적자를 견디지 못해 보상금을 달라고 하면, 일단 돈을 줘서 해결하고 소송을 거는 1차 협력사의 전형적인 방식이다.


◆"거래 끊어라" 1차사에 압력…현대차 '개입 의혹'
이때 동진이공은 연말까지 납품을 하라던 약속을 깨고 거래를 바로 끊겠다고 나섰다. 동진이공 관계자는 김 대표에게 현대차 구매본부에 연말까지는 미래텍과 거래를 하겠다고 얘기를 하러 갔는데 '쓸데없는 소리 하지마라'는 말을 들었다고 전했다. 현대차가 관여해서는 안 되는 1차 협력사와 2차 협력사의 거래에 개입한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라 현대차는 두올산업과 동진이공이 미래텍과 보상금을 합의하는 현장에도 찾아왔다. 김 대표는 "현대차 본사 직원이 공장 밖에서 계속 대기했다"며 "두올산업, 동진이공과 합의 내용을 상의하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현대차는 이에 대해 동진이공과 미래텍의 거래에 관여했다는 의혹은 전혀 사실이 아니며, 미래텍에 찾아간 것은 납품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현대차 공장과 다른 협력사들이 피해를 보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손해를 보상받고 사업을 계속하고 싶었던 김 대표는 자신의 뜻과는 다르게 사업을 접고 졸지에 공갈·협박 피의자까지 됐다. 김 대표는 왜 1차 협력사가 하자는 대로 순순히 따랐을까. 김 대표는 "2차 협력사는 최대 약자"라며 "우리는 1차에서 하라는 대로 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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