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K] “이럴 거면 노동시간 단축 왜 한 거죠?”

입력 2018.11.08 (16:08) 수정 2018.11.08 (2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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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정은 지난 5일 탄력 근로 단위기간 확대에 합의했다. 오늘(8일)은 여·야가 탄력 근로 확대를 위한 법 개정을 올해 안에 마무리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탄력 근로는 무엇이고, 단위기간을 확대하는 건 어떤 의미일까?

탄력 근로가 뭐죠? 단위기간은 뭔가요?

탄력 근로란 근로기준법 51조가 규정한 '탄력적 근로 시간제'로 형편껏 노동시간을 늘리거나 줄여 평균을 주당 52시간에 맞추는 제도다. 아이스크림 수요가 많은 여름에 바쁘고, 겨울에 한가한 빙과업이나 기획 단계와 촬영·방송 단계에 업무량 차이가 많은 영화·방송업, 공기나 납품일을 맞춰야 해 업무량 조절이 필요한 건설·제조업에 적용하면 유리하다.

여기서 단위기간은 주당 평균을 맞출 때 기준이 되는 기간으로 현재 2주 이내 또는 3달 이내다. 2주 이내와 3달 이내의 차이는 전자가 취업규칙을 한 번만 변경하면 시행할 수 있고, 후자는 매번 근로자 대표와 서면 합의를 해야 하고, 유효기간이 있다는 점이다. 또, 전자는 주당 기본근로시간을 48시간까지 늘리고, 연장근로 12시간을 더해 60시간까지 일을 시킬 수 있다. 후자는 주당 기본근로시간을 52시간까지 늘리고, 연장근로 12시간을 더해 64시간까지 일을 시킬 수 있다.

탄력 근로하면 나쁜가요?

탄력 근로는 사용자에게 유리하고, 노동자에게 불리한 제도다. 먼저, 장시간 노동이 합법화된다. 현행법으로도 3달 단위 탄력 근로를 운용하면 주당 64시간씩 3달 연속으로 일을 시킬 수 있다. 탄력 근로를 연속으로 시행하는데 제한이 없기 때문이다. 첫 3달 가운데 한 달 반 동안 주당 기본근로 28시간에 연장근로 12시간까지 40시간 일을 시키고, 다음 한 달 반 동안 주당 기본근로 52시간에 연장근로 12시간까지 64시간 일을 시킨다. 다음 3달은 순서를 바꿔 첫 한 달 반 동안 주당 64시간 일을 시키고, 다음 한 달 반 동안 40시간 일을 시킨다. 이렇게 운용하면 주당 64시간씩 일하는 기간을 3달 연속 유지할 수 있다.


이런 탄력 근로 단위기간을 6달, 1년으로 늘리면 주당 64시간씩 일하는 기간도 6달, 1년으로 늘릴 수 있다. 근로기준법이 바뀌기 전 주당 노동시간 제한은 68시간이었다. 그때도 매주 법정 근로 40시간을 초과해서 일 시키지는 않았다. 일이 몰릴 때 사람을 더 쓰기보다 장시간 초과노동을 통해 해결했고, 이러다 보니 사고사, 과로사가 늘고, 일자리도 늘어나지 않는다는 판단에 노동시간을 줄여 일자리를 늘리기로 하지 않았나. 그런데 법 시행 4달 만에 주당 64시간씩 일 시킬 수 있는 탄력 근로 단위기간을 늘리자고 나선 것이다.

다음으로 탄력 근로를 도입하면, 그렇지 않을 때보다 임금이 낮아진다. 똑같이 주당 64시간 일했을 때를 비교해보면 알 수 있다.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법정 근로 40시간에 연장근로 24시간이 된다. 연장근로에는 50%의 가산수당을 지급하기 때문에 24시간 동안 연장근로를 했다면 36시간 치 임금을 받게 된다. 따라서 법정 근로 40시간에 연장근로를 환산해 36시간, 모두 76시간 치 임금을 받는다. 반면, 3달 단위 탄력 근로를 도입하면 주당 기본근로가 40시간에서 52시간으로 12시간 늘어나고, 연장근로가 그만큼 줄어들어 24시간에서 12시간이 된다. 그러면 기본근로 52시간에 연장근로 12시간에 대한 가산수당 6시간을 더해 18시간, 모두 70시간 치 임금만 받는다. 탄력 근로를 도입하지 않았을 때보다 6시간 치 임금을 덜 받는다.


입법자들은 이렇게 탄력 근로가 노동자에게 불리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해 근로기준법 51조 4항에 "임금 수준이 낮아지지 아니하도록 임금보전방안을 강구하여야 한다"고 명시했다. 그런데 근로기준법과 시행령 어디에도 벌칙이나 과태료 규정이 없다. 고용노동부 근로기준정책과 소속 복수의 사무관과 감독관에게 확인했지만, 사용자가 51조 4항을 어길 경우 명령과 권고만 할 수 있을 뿐 법적으로 제재할 방법이 없다. 이런 상황에서 사용자가 임금 보전을 해줄 가능성은 낮다.

이럴 거면 노동시간 단축 왜 한 거죠?

올해 3월 근로기준법 개정으로 지난 7일부터 300인 이상 사업장을 시작으로 주당 최대노동시간을 52시간으로 제한하는 이른바 주 52시간제가 시행됐다. 그래서 흔히 주 68시간에서 주 52시간으로 노동시간이 단축됐다고 말한다. 엄밀히 말하면, 한 주를 7일로 못 박는 근로기준법 2조 1항 7호가 만들어지면서 주 68시간이냐, 주 52시간이냐 논란이 정리된 거다. 이상하지 않나? 대한민국 국적을 가진 사는 사람들이 태어날 때부터 한주는 7일이었다. 그런데 1953년에 만들어진 근로기준법에 이 내용이 없다는 이유로 업무상 한주가 5일이라며 휴일 이틀의 업무를 별도로 허용해 주 52시간 외에 16시간씩 일을 더 시켜왔다.

65년 동안 한주가 7일인데 7일이라고 부르지 못했던 국민들에게 문재인 정부가 선물을 줬다. 박근혜가 목소리 높여 주장했던 그 어렵다던 비정상의 정상화를 이뤄낸 거다. 더불어 사실상 무제한 노동이 가능했던 21개 특례업종을 5개로 대폭 줄이면서 실질적인 노동시간 단축의 길도 텄다. 그런데 시행 4달 만에 탄력 근로 단위기간 확대를 들고 나왔다. 현재 탄력 근로 단위기간 만으로도 3달 연속 64시간씩 일을 시킬 수 있다. 이걸 6달로 늘리고, 1년으로 늘리면 주당 64시간씩 6달, 1년 연속 일할 수 있다. 한 주를 5일로 속여 주 68시간씩 일을 시킬 때와 큰 차이가 없다.

일자리 나누기? 산업재해 줄이기? 어디로?

문재인 정부가 처음 노동시간 단축의 대의를 알릴 때 노동시간을 줄여 일자리를 나누겠다, 14만 개에서 18만 개 일자리를 새로 만들겠다, 이렇게 밝혔다. 근거는 단순히 전체 초과 노동시간을 법정 근로시간으로 나눈 값이었다. 기자들은 의아해 하면서도 받아 썼다. 그런데 이제 탄력 근로 단위기간을 6달, 1년으로 늘리면 일자리 나누기는 없던 일이 된다. 일이 많을 때 연장근로를 시키고, 일이 적을 때 일찍 집에 보내면 되는데 추가고용이 늘 리 없다. 그동안 근로시간 특례에 휴일을 포함한 주 68시간 장시간 노동으로 사고사, 과로사가 빈발했는데, 주 64시간씩 6달 연속 일하면 산업재해가 줄 가능성도 낮다. 노동시간 단축을 꺼냈을 때 정부가 주장했던 대의는 온데간데 없다. 이럴 거면 노동시간 단축 왜 했나? 노동계의 볼멘소리가 허튼소리만은 아닌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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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11-08 16:08:57
    • 수정2018-11-08 22:09:09
    취재K
여·야·정은 지난 5일 탄력 근로 단위기간 확대에 합의했다. 오늘(8일)은 여·야가 탄력 근로 확대를 위한 법 개정을 올해 안에 마무리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탄력 근로는 무엇이고, 단위기간을 확대하는 건 어떤 의미일까?

탄력 근로가 뭐죠? 단위기간은 뭔가요?

탄력 근로란 근로기준법 51조가 규정한 '탄력적 근로 시간제'로 형편껏 노동시간을 늘리거나 줄여 평균을 주당 52시간에 맞추는 제도다. 아이스크림 수요가 많은 여름에 바쁘고, 겨울에 한가한 빙과업이나 기획 단계와 촬영·방송 단계에 업무량 차이가 많은 영화·방송업, 공기나 납품일을 맞춰야 해 업무량 조절이 필요한 건설·제조업에 적용하면 유리하다.

여기서 단위기간은 주당 평균을 맞출 때 기준이 되는 기간으로 현재 2주 이내 또는 3달 이내다. 2주 이내와 3달 이내의 차이는 전자가 취업규칙을 한 번만 변경하면 시행할 수 있고, 후자는 매번 근로자 대표와 서면 합의를 해야 하고, 유효기간이 있다는 점이다. 또, 전자는 주당 기본근로시간을 48시간까지 늘리고, 연장근로 12시간을 더해 60시간까지 일을 시킬 수 있다. 후자는 주당 기본근로시간을 52시간까지 늘리고, 연장근로 12시간을 더해 64시간까지 일을 시킬 수 있다.

탄력 근로하면 나쁜가요?

탄력 근로는 사용자에게 유리하고, 노동자에게 불리한 제도다. 먼저, 장시간 노동이 합법화된다. 현행법으로도 3달 단위 탄력 근로를 운용하면 주당 64시간씩 3달 연속으로 일을 시킬 수 있다. 탄력 근로를 연속으로 시행하는데 제한이 없기 때문이다. 첫 3달 가운데 한 달 반 동안 주당 기본근로 28시간에 연장근로 12시간까지 40시간 일을 시키고, 다음 한 달 반 동안 주당 기본근로 52시간에 연장근로 12시간까지 64시간 일을 시킨다. 다음 3달은 순서를 바꿔 첫 한 달 반 동안 주당 64시간 일을 시키고, 다음 한 달 반 동안 40시간 일을 시킨다. 이렇게 운용하면 주당 64시간씩 일하는 기간을 3달 연속 유지할 수 있다.


이런 탄력 근로 단위기간을 6달, 1년으로 늘리면 주당 64시간씩 일하는 기간도 6달, 1년으로 늘릴 수 있다. 근로기준법이 바뀌기 전 주당 노동시간 제한은 68시간이었다. 그때도 매주 법정 근로 40시간을 초과해서 일 시키지는 않았다. 일이 몰릴 때 사람을 더 쓰기보다 장시간 초과노동을 통해 해결했고, 이러다 보니 사고사, 과로사가 늘고, 일자리도 늘어나지 않는다는 판단에 노동시간을 줄여 일자리를 늘리기로 하지 않았나. 그런데 법 시행 4달 만에 주당 64시간씩 일 시킬 수 있는 탄력 근로 단위기간을 늘리자고 나선 것이다.

다음으로 탄력 근로를 도입하면, 그렇지 않을 때보다 임금이 낮아진다. 똑같이 주당 64시간 일했을 때를 비교해보면 알 수 있다.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법정 근로 40시간에 연장근로 24시간이 된다. 연장근로에는 50%의 가산수당을 지급하기 때문에 24시간 동안 연장근로를 했다면 36시간 치 임금을 받게 된다. 따라서 법정 근로 40시간에 연장근로를 환산해 36시간, 모두 76시간 치 임금을 받는다. 반면, 3달 단위 탄력 근로를 도입하면 주당 기본근로가 40시간에서 52시간으로 12시간 늘어나고, 연장근로가 그만큼 줄어들어 24시간에서 12시간이 된다. 그러면 기본근로 52시간에 연장근로 12시간에 대한 가산수당 6시간을 더해 18시간, 모두 70시간 치 임금만 받는다. 탄력 근로를 도입하지 않았을 때보다 6시간 치 임금을 덜 받는다.


입법자들은 이렇게 탄력 근로가 노동자에게 불리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해 근로기준법 51조 4항에 "임금 수준이 낮아지지 아니하도록 임금보전방안을 강구하여야 한다"고 명시했다. 그런데 근로기준법과 시행령 어디에도 벌칙이나 과태료 규정이 없다. 고용노동부 근로기준정책과 소속 복수의 사무관과 감독관에게 확인했지만, 사용자가 51조 4항을 어길 경우 명령과 권고만 할 수 있을 뿐 법적으로 제재할 방법이 없다. 이런 상황에서 사용자가 임금 보전을 해줄 가능성은 낮다.

이럴 거면 노동시간 단축 왜 한 거죠?

올해 3월 근로기준법 개정으로 지난 7일부터 300인 이상 사업장을 시작으로 주당 최대노동시간을 52시간으로 제한하는 이른바 주 52시간제가 시행됐다. 그래서 흔히 주 68시간에서 주 52시간으로 노동시간이 단축됐다고 말한다. 엄밀히 말하면, 한 주를 7일로 못 박는 근로기준법 2조 1항 7호가 만들어지면서 주 68시간이냐, 주 52시간이냐 논란이 정리된 거다. 이상하지 않나? 대한민국 국적을 가진 사는 사람들이 태어날 때부터 한주는 7일이었다. 그런데 1953년에 만들어진 근로기준법에 이 내용이 없다는 이유로 업무상 한주가 5일이라며 휴일 이틀의 업무를 별도로 허용해 주 52시간 외에 16시간씩 일을 더 시켜왔다.

65년 동안 한주가 7일인데 7일이라고 부르지 못했던 국민들에게 문재인 정부가 선물을 줬다. 박근혜가 목소리 높여 주장했던 그 어렵다던 비정상의 정상화를 이뤄낸 거다. 더불어 사실상 무제한 노동이 가능했던 21개 특례업종을 5개로 대폭 줄이면서 실질적인 노동시간 단축의 길도 텄다. 그런데 시행 4달 만에 탄력 근로 단위기간 확대를 들고 나왔다. 현재 탄력 근로 단위기간 만으로도 3달 연속 64시간씩 일을 시킬 수 있다. 이걸 6달로 늘리고, 1년으로 늘리면 주당 64시간씩 6달, 1년 연속 일할 수 있다. 한 주를 5일로 속여 주 68시간씩 일을 시킬 때와 큰 차이가 없다.

일자리 나누기? 산업재해 줄이기? 어디로?

문재인 정부가 처음 노동시간 단축의 대의를 알릴 때 노동시간을 줄여 일자리를 나누겠다, 14만 개에서 18만 개 일자리를 새로 만들겠다, 이렇게 밝혔다. 근거는 단순히 전체 초과 노동시간을 법정 근로시간으로 나눈 값이었다. 기자들은 의아해 하면서도 받아 썼다. 그런데 이제 탄력 근로 단위기간을 6달, 1년으로 늘리면 일자리 나누기는 없던 일이 된다. 일이 많을 때 연장근로를 시키고, 일이 적을 때 일찍 집에 보내면 되는데 추가고용이 늘 리 없다. 그동안 근로시간 특례에 휴일을 포함한 주 68시간 장시간 노동으로 사고사, 과로사가 빈발했는데, 주 64시간씩 6달 연속 일하면 산업재해가 줄 가능성도 낮다. 노동시간 단축을 꺼냈을 때 정부가 주장했던 대의는 온데간데 없다. 이럴 거면 노동시간 단축 왜 했나? 노동계의 볼멘소리가 허튼소리만은 아닌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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