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리포트] “의사 월급이 왜 쿠바 정부로 가나”…브라질, 쿠바 돈줄 죄기?

입력 2018.11.16 (11:49) 수정 2018.11.16 (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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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에서 진료하던 쿠바 의사들이 브라질을 떠나기 시작했다. 11월 14일 1차로 의사 약 200명이 쿠바로 돌아갔다. 현재 브라질에서 의료 활동을 벌이고 있는 쿠바 의사는 만 천여 명, 보우소나루 브라질 대통령 당선인의 새 정부 출범 전인 올해 말까지 모두 쿠바로 귀국할 예정이다.

브라질 언론은 당장에 브라질 북동부 지역 일부 소도시의 '의료 공백'을 우려했다. 주민 2만 명 이하의 소도시에서 의료를 담당하는 의사의 80%가 쿠바 의사들이기 때문이다. 의사 부족의 어려움을 겪는 4천여 소도시에서 쿠바 의사들이 큰 역할을 해왔는데, 이들이 사라질경우 주민들은 '동네 의사' 선생님들이 사라진데 큰 불안을 느낄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우소나루 브라질 대통령 당선인은 쿠바 의사들의 인권을 언급하며 의사 철수 결정을 내린 쿠바 정부를 다시 한 번 강하게 비난했다. 브라질 대통령 선거 이후 다가오는 남미의 정치 지형 변화, 그 파장이 읽히는 대목이다.

쿠바 의사 진료 모습쿠바 의사 진료 모습

쿠바 의사들은 언제, 왜 브라질로 갔나?

쿠바 의사들의 브라질 의료 활동은 지난 2013년 시작됐다. 당시 좌파 노동자당의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 정부는 유럽 의료 선진국들의 보건 정책을 본 떠 '더 많은 의사들(Mais Medicos)'이라는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쿠바 의사들이 브라질로 와 빈민 지역과 외딴 곳에서 인디오와 소외 계층을 위한 의료 활동을 펼치기 시작했다.

쿠바 의사 월급은 얼마?

'더 많은 의사들' 프로그램을 시작할 당시 쿠바와 브라질 정부가 체결한 협약에 따라 월급은 의사들에게 직접 지급되지 않고, 쿠바 정부에 전달된다.

브라질 언론은 보건당국의 발표를 인용해 이들의 월급으로 쿠바 정부에 전달되는 돈은 의사한 명에 11,865 헤아이스, 우리 돈 355만여 원으로 쿠바 정부는 이 금액에서 3천 헤아이스, 90만 원을 의사들에게 지급하고 나머지 8천 헤아이스 가량을 가져가는 것으로 보도했다.

현재 브라질에서 의료 활동을 펼치고 있는 의사 수를 감안하면 10억 헤아이스, 우리 돈 3천 억원이 넘는 돈이 해마다 쿠바 정부로 들어갔다.

보우소나루 브라질 대통령 당선인보우소나루 브라질 대통령 당선인

"월급 70% 압수는 반인권적" …"경멸적·위협적"

보우소나루 브라질 새 대통령 당선인은 지난 2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쿠바 의사들은 월급의 일부만 받을 수밖에 없고, 자녀들과 같이 사는 것도 금지된다"며 "이런 방식으로 행동하는 국가와 외교 관계를 유지할 필요가 있느냐"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의사들의 온전한 월급 지급과 가족을 데리고 오는 자유를 조건으로 프로그램이 운영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쿠바 정부가 가족과 함께 거주하는 것을 금지하는 것은 의사들의 브라질 망명을 막기 위해서다.

쿠바 정부는 14일 보우소나르 브라질 대통령 당선인의 이런 발언에 대해 "경멸적이고 위협적"이라며 반발했다. 쿠바 정부는 관영 매체를 통해 이는 불행한 현실이라며 자국 의사들을 철수시키겠다고 발표했다.

쿠바 정부의 이런 조치에 대해 보우소나루 당선인은 즉각 반응했다. 보우소나루 당선인은 "가족들을 쿠바에 남겨두고 멀리 떨어진 브라질에서 일하고 있는 것은 인권에 반하는 것이다. 여의사도 많은데 어린 아이들을 남겨두고 브라질에 머물러 있는 것은 비인간적이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의사들의 월급을 다시 문제 삼았다. "의사 월급의 70%를 쿠바 정부가 압수하고 의사들은 나머지만을 받고 있다. 이는 노동 착취의 문제뿐 아니라 인권의 문제다" 라고 비판하고 "나는 노동자당과는 다른 민주주의자"라며 이전 노동자당 정부의 정책과는 다른 정책을 펼 것이라는 점을 다시 강조하기도 했다.

쿠바 돈줄 죄기?

쿠바 정부는 비슷한 프로그램을 67개 국에서 운영하고 있지만 브라질의 '더 많은 의사들' 프로그램의 규모가 가장 크다. 연간 3천억 원이 넘는 돈은 쿠바 정부로서도 외면할 수 없는 재정 수입이다. AP 통신은 연간 수천 명의 쿠바 의사들이 해외로 파견되고 있고 수십억 달러를 벌어들이고 있다며 이는 쿠바의 중요한 외화 수입의 하나라고 보도했다.

극우 성향으로 표현되는 보우소나루 당선인은 브라질의 돈이 쿠바에 전달되는 것이 못마땅했을 것이다. 하원 의원시절부터 '더 많은 의사들' 프로그램을 비판해왔던 것도 그 이유다. 남미의 핑크 타이드, 온건 좌파 물결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도 쿠바였기에 브라질 룰라,지우마 전 정부의 정책을 정면으로 비판하며 쿠바 정부의 돈줄을 죄기 위한 것이라는 추측이 나온다.


남미 정치 지형 변화 파장은?

요즘 쿠바의 나라살림은 어렵다. 동맹국인 베네수엘라의 석유 지원을 비롯한 원조가 줄어들고 있다. 트럼프 미 대통령은 미국인의 쿠바 방문과 금융 거래 제한을 강화했다.

최근 보우소나루 당선인의 발언은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에 뜻을 같이 하고 있는 것으로 비쳐진다. 이는 보우소나루 당선인의 내년 새 정부 출범과 함께 예고된 남미 정치 지형 변화에 따른 파장이 이미 시작됐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새 정부에서 재무와 기획, 통상 등을 통합해 '슈퍼 경제 장관'을 맡게 될 당선인의 측근 파울루 게지스(시카고 학파, 경제학자)는 "브라질은 이데올로기적 보호주의 블록이 돼 버린 메르코수르의 포로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메르코수르는 1991년 아르헨티나와 브라질, 파라과이, 우루과이 등 4개국으로 출범한 관세동맹이다. 우파 마크리 아르헨티나 대통령도 메르코수르가 글로벌 환경에 맞게 달라져야 한다며 회원국의 개별 무역협상을 금지한 운영방식을 쇄신해야 한다는데 공감하고 있다.

보우소나루 당선인은 또 첫 외교 일정으로 칠레와 미국,이스라엘 등을 방문하겠다는 뜻을 밝혀온데다 후보 시절부터 남미 우파 정상들과 연대하는 '자유주의 동맹'을 결성하겠다고 의지를 드러내기도 했다. 남미의 핑크 타이드, 온건 좌파 물결의 퇴조와 함께 전개될 우파 벨트의 움직임이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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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11-16 11:49:51
    • 수정2018-11-16 11:56:42
    특파원 리포트
브라질에서 진료하던 쿠바 의사들이 브라질을 떠나기 시작했다. 11월 14일 1차로 의사 약 200명이 쿠바로 돌아갔다. 현재 브라질에서 의료 활동을 벌이고 있는 쿠바 의사는 만 천여 명, 보우소나루 브라질 대통령 당선인의 새 정부 출범 전인 올해 말까지 모두 쿠바로 귀국할 예정이다. 브라질 언론은 당장에 브라질 북동부 지역 일부 소도시의 '의료 공백'을 우려했다. 주민 2만 명 이하의 소도시에서 의료를 담당하는 의사의 80%가 쿠바 의사들이기 때문이다. 의사 부족의 어려움을 겪는 4천여 소도시에서 쿠바 의사들이 큰 역할을 해왔는데, 이들이 사라질경우 주민들은 '동네 의사' 선생님들이 사라진데 큰 불안을 느낄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우소나루 브라질 대통령 당선인은 쿠바 의사들의 인권을 언급하며 의사 철수 결정을 내린 쿠바 정부를 다시 한 번 강하게 비난했다. 브라질 대통령 선거 이후 다가오는 남미의 정치 지형 변화, 그 파장이 읽히는 대목이다. 쿠바 의사 진료 모습 쿠바 의사들은 언제, 왜 브라질로 갔나? 쿠바 의사들의 브라질 의료 활동은 지난 2013년 시작됐다. 당시 좌파 노동자당의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 정부는 유럽 의료 선진국들의 보건 정책을 본 떠 '더 많은 의사들(Mais Medicos)'이라는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쿠바 의사들이 브라질로 와 빈민 지역과 외딴 곳에서 인디오와 소외 계층을 위한 의료 활동을 펼치기 시작했다. 쿠바 의사 월급은 얼마? '더 많은 의사들' 프로그램을 시작할 당시 쿠바와 브라질 정부가 체결한 협약에 따라 월급은 의사들에게 직접 지급되지 않고, 쿠바 정부에 전달된다. 브라질 언론은 보건당국의 발표를 인용해 이들의 월급으로 쿠바 정부에 전달되는 돈은 의사한 명에 11,865 헤아이스, 우리 돈 355만여 원으로 쿠바 정부는 이 금액에서 3천 헤아이스, 90만 원을 의사들에게 지급하고 나머지 8천 헤아이스 가량을 가져가는 것으로 보도했다. 현재 브라질에서 의료 활동을 펼치고 있는 의사 수를 감안하면 10억 헤아이스, 우리 돈 3천 억원이 넘는 돈이 해마다 쿠바 정부로 들어갔다. 보우소나루 브라질 대통령 당선인 "월급 70% 압수는 반인권적" …"경멸적·위협적" 보우소나루 브라질 새 대통령 당선인은 지난 2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쿠바 의사들은 월급의 일부만 받을 수밖에 없고, 자녀들과 같이 사는 것도 금지된다"며 "이런 방식으로 행동하는 국가와 외교 관계를 유지할 필요가 있느냐"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의사들의 온전한 월급 지급과 가족을 데리고 오는 자유를 조건으로 프로그램이 운영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쿠바 정부가 가족과 함께 거주하는 것을 금지하는 것은 의사들의 브라질 망명을 막기 위해서다. 쿠바 정부는 14일 보우소나르 브라질 대통령 당선인의 이런 발언에 대해 "경멸적이고 위협적"이라며 반발했다. 쿠바 정부는 관영 매체를 통해 이는 불행한 현실이라며 자국 의사들을 철수시키겠다고 발표했다. 쿠바 정부의 이런 조치에 대해 보우소나루 당선인은 즉각 반응했다. 보우소나루 당선인은 "가족들을 쿠바에 남겨두고 멀리 떨어진 브라질에서 일하고 있는 것은 인권에 반하는 것이다. 여의사도 많은데 어린 아이들을 남겨두고 브라질에 머물러 있는 것은 비인간적이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의사들의 월급을 다시 문제 삼았다. "의사 월급의 70%를 쿠바 정부가 압수하고 의사들은 나머지만을 받고 있다. 이는 노동 착취의 문제뿐 아니라 인권의 문제다" 라고 비판하고 "나는 노동자당과는 다른 민주주의자"라며 이전 노동자당 정부의 정책과는 다른 정책을 펼 것이라는 점을 다시 강조하기도 했다. 쿠바 돈줄 죄기? 쿠바 정부는 비슷한 프로그램을 67개 국에서 운영하고 있지만 브라질의 '더 많은 의사들' 프로그램의 규모가 가장 크다. 연간 3천억 원이 넘는 돈은 쿠바 정부로서도 외면할 수 없는 재정 수입이다. AP 통신은 연간 수천 명의 쿠바 의사들이 해외로 파견되고 있고 수십억 달러를 벌어들이고 있다며 이는 쿠바의 중요한 외화 수입의 하나라고 보도했다. 극우 성향으로 표현되는 보우소나루 당선인은 브라질의 돈이 쿠바에 전달되는 것이 못마땅했을 것이다. 하원 의원시절부터 '더 많은 의사들' 프로그램을 비판해왔던 것도 그 이유다. 남미의 핑크 타이드, 온건 좌파 물결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도 쿠바였기에 브라질 룰라,지우마 전 정부의 정책을 정면으로 비판하며 쿠바 정부의 돈줄을 죄기 위한 것이라는 추측이 나온다. 남미 정치 지형 변화 파장은? 요즘 쿠바의 나라살림은 어렵다. 동맹국인 베네수엘라의 석유 지원을 비롯한 원조가 줄어들고 있다. 트럼프 미 대통령은 미국인의 쿠바 방문과 금융 거래 제한을 강화했다. 최근 보우소나루 당선인의 발언은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에 뜻을 같이 하고 있는 것으로 비쳐진다. 이는 보우소나루 당선인의 내년 새 정부 출범과 함께 예고된 남미 정치 지형 변화에 따른 파장이 이미 시작됐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새 정부에서 재무와 기획, 통상 등을 통합해 '슈퍼 경제 장관'을 맡게 될 당선인의 측근 파울루 게지스(시카고 학파, 경제학자)는 "브라질은 이데올로기적 보호주의 블록이 돼 버린 메르코수르의 포로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메르코수르는 1991년 아르헨티나와 브라질, 파라과이, 우루과이 등 4개국으로 출범한 관세동맹이다. 우파 마크리 아르헨티나 대통령도 메르코수르가 글로벌 환경에 맞게 달라져야 한다며 회원국의 개별 무역협상을 금지한 운영방식을 쇄신해야 한다는데 공감하고 있다. 보우소나루 당선인은 또 첫 외교 일정으로 칠레와 미국,이스라엘 등을 방문하겠다는 뜻을 밝혀온데다 후보 시절부터 남미 우파 정상들과 연대하는 '자유주의 동맹'을 결성하겠다고 의지를 드러내기도 했다. 남미의 핑크 타이드, 온건 좌파 물결의 퇴조와 함께 전개될 우파 벨트의 움직임이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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