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는 틀리고 지금은 맞다…‘선릉역 흉기 난동’의 전말

입력 2018.12.14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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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릉역' 인기 검색어…여성끼리 '현피' 했다?

어제 오전 '선릉역' 이란 단어가 갑자기 인터넷 인기 검색어 상위에 올랐습니다.
선릉역에서 일어난 사건이 막 알려질 무렵이었습니다. 사건은 자극적인 내용으로 빠르게 번져나갔습니다. '새벽에 강남 대로에서 20대 여성이 다른 여성을 흉기로 마구 찔러 경찰에 붙잡혔다', '흉기에 찔린 여성은 생명이 위독하다', '이들은 온라인 슈팅게임 배틀그라운드를 통해 알게 됐다', '게임 정모 후 현피'를 했다 등입니다.
'현피'는 온라인 게임을 하다 감정이 격해져 실제로 만나서 싸움을 한다는 뜻의 은어입니다.

'슈팅 게임을 즐기는 여성 두 명이 심야에 만나 현피를 했고, 한 명은 생명이 위독하다.' 상당히 자극적인 내용입니다. 이 같은 내용을 단정적으로 전한 언론사도 있었고, 뉘앙스만 풍기는 곳도 있었습니다. 뉴스를 접한 사람들이 위와 같은 내용으로 인식하게 한 곳이 꽤 있었습니다.

문제는 이같은 내용이 상당 부분 틀렸다는 데에 있습니다. 사실은 무엇이었을까요?

선릉역 5번 출구선릉역 5번 출구

'선릉역은 전투장(battle ground)이 아니다'

배틀그라운드는 인기가 많은 슈팅게임입니다. 캐릭터를 조종하며 총과 칼, 수류탄 등을 활용해 다른 캐릭터를 쓰러뜨리면 이기는 게임입니다. 두 게임은 모두 15세 이상만 할 수 있습니다. '현피'라는 말이 나온 이유는 이 두 게임이 사건과 연관되면서 시작됐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게임에서 감정이 격해져 벌어진 일은 아닙니다. 이 두 사람이 슈팅게임을 통해서 알게 된 사실은 맞지만, 게임 회원 정기모임을 한 것도 아니었고, 현실 결투를 하기 위해서 만난 것도 아니었습니다. 게임도 '배틀그라운드'가 아니라 '서든어택'이었습니다.

슈팅게임은 이 둘이 알게 된 역할만 했을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현피'는, 단지 게임이 가진 성격과 흉기 난동이 맞물려 '그랬을거야' 하는 추측에 불과했습니다.

'이들은 왜 그 시간에 선릉역에서 만났나?'

그렇다면 이들은 왜 그 시간에 선릉역에서 만났을까요.

경찰 관계자는 "이들은 3년 전부터 해당 게임을 통해 알게 된 사이다"며 "게임에서 알고 지내다가 '만나자 만나자'는 말이 나와 만나게 된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이들은 서로 알고 지내는 건 3년이지만, 실제로 만난 건 어제가 처음이었습니다. 3년 만에 처음 만난 이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CCTV 속 26분…무슨 일이 있었나?'

사건은 실제로 만나면서 발생했습니다. 원래 13일 새벽 2시쯤 선릉역에서 발생했어야 했던 만남은 '남자와 여자'의 만남이었습니다. 하지만, 실제론 '여자와 여자'의 만남이었습니다.

취재진은 사고가 발생한 곳을 비추는 CCTV를 확인해봤습니다. CCTV 시간을 기준으로 이들은 13일 새벽 1시 43분에 사건 장소에 도착합니다. 그리고 2시 9분까지 계속 같은 자세로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보입니다. 실제로 26분간 긴 이야기를 나누다 갑자기 폭행이 시작된 겁니다.

경찰 조사 결과 피의자 A 씨는, 3년 동안 피해자 B 씨에게 남자 행세를 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B 씨는 남자가 나올 줄 알았는데 여자가 나와 당황하고 화가 나 헤어지자고 했고, 그 이후 다툼이 발생했다는 겁니다.

경찰 관계자는 "흉기 공격이 있기 전에 4~5분 정도 다툼이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흉기는 왜 거기서 나왔을까'

인터넷상에서 친해져 만나기로 했는데 A 씨는 왜 흉기를 가져갔을까요.
A 씨는 B 씨를 만나기 전, 혼자 생각했던 것이 크게 세 가지 있습니다. '남자로 행세했던 자신의 정체가 탄로 날 것이다', 'B 씨가 친구 C 씨와 같이 나올 것이다', 또 'B 씨가 자신보다 몸집이 더 클 것이다'는 것입니다.

경찰 조사에서도 A 씨는 B 씨가 친구와 같이 나올 것을 알고 있었고, 자신의 몸집이 왜소해 만약을 위해 흉기를 갖고 나왔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자신의 정체가 탄로 났을 때 다툼이 있을 수도 있어 만일을 대비해 흉기를 가져왔다는 겁니다.

경찰 관계자는 "A 씨가 혹시나 해서 흉기를 가져왔다가 다툼이 발생했고, 피해자가 욕을 심하게 해 우발적으로 흉기를 휘둘렀다고 진술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남은 의문점들'

지금까지 확인된 사실들은 이 정도 입니다. 하지만 아직 풀지 못한 문제들이 있습니다. A 씨는 왜 남자 행세를 했고, 3년간 그들은 어떤 관계였는지 등이 그렇습니다.

흉기를 가지고 간 이유도 완전히 납득하기는 힘듭니다. 저런 상황에서 흉기를 준비했다는 것도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경찰 조사에서 A 씨는 3년 전에 인터넷에서 남자냐는 질문을 받고 남자라고 답한 후 계속 남자행세를 했다고 했습니다. 궁금증이 풀리는 대답은 아닌 것 같지만, 그렇다고 섣부르게 추측할 순 없습니다.

경찰은 오늘(14일) A 씨에 대해 살인 미수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습니다. 경찰은 A 씨와 B 씨 등을 상대로 보다 정확한 사건 경위와 동기를 조사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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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때는 틀리고 지금은 맞다…‘선릉역 흉기 난동’의 전말
    • 입력 2018-12-14 20:26:24
    취재K
'선릉역' 인기 검색어…여성끼리 '현피' 했다?

어제 오전 '선릉역' 이란 단어가 갑자기 인터넷 인기 검색어 상위에 올랐습니다.
선릉역에서 일어난 사건이 막 알려질 무렵이었습니다. 사건은 자극적인 내용으로 빠르게 번져나갔습니다. '새벽에 강남 대로에서 20대 여성이 다른 여성을 흉기로 마구 찔러 경찰에 붙잡혔다', '흉기에 찔린 여성은 생명이 위독하다', '이들은 온라인 슈팅게임 배틀그라운드를 통해 알게 됐다', '게임 정모 후 현피'를 했다 등입니다.
'현피'는 온라인 게임을 하다 감정이 격해져 실제로 만나서 싸움을 한다는 뜻의 은어입니다.

'슈팅 게임을 즐기는 여성 두 명이 심야에 만나 현피를 했고, 한 명은 생명이 위독하다.' 상당히 자극적인 내용입니다. 이 같은 내용을 단정적으로 전한 언론사도 있었고, 뉘앙스만 풍기는 곳도 있었습니다. 뉴스를 접한 사람들이 위와 같은 내용으로 인식하게 한 곳이 꽤 있었습니다.

문제는 이같은 내용이 상당 부분 틀렸다는 데에 있습니다. 사실은 무엇이었을까요?

선릉역 5번 출구
'선릉역은 전투장(battle ground)이 아니다'

배틀그라운드는 인기가 많은 슈팅게임입니다. 캐릭터를 조종하며 총과 칼, 수류탄 등을 활용해 다른 캐릭터를 쓰러뜨리면 이기는 게임입니다. 두 게임은 모두 15세 이상만 할 수 있습니다. '현피'라는 말이 나온 이유는 이 두 게임이 사건과 연관되면서 시작됐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게임에서 감정이 격해져 벌어진 일은 아닙니다. 이 두 사람이 슈팅게임을 통해서 알게 된 사실은 맞지만, 게임 회원 정기모임을 한 것도 아니었고, 현실 결투를 하기 위해서 만난 것도 아니었습니다. 게임도 '배틀그라운드'가 아니라 '서든어택'이었습니다.

슈팅게임은 이 둘이 알게 된 역할만 했을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현피'는, 단지 게임이 가진 성격과 흉기 난동이 맞물려 '그랬을거야' 하는 추측에 불과했습니다.

'이들은 왜 그 시간에 선릉역에서 만났나?'

그렇다면 이들은 왜 그 시간에 선릉역에서 만났을까요.

경찰 관계자는 "이들은 3년 전부터 해당 게임을 통해 알게 된 사이다"며 "게임에서 알고 지내다가 '만나자 만나자'는 말이 나와 만나게 된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이들은 서로 알고 지내는 건 3년이지만, 실제로 만난 건 어제가 처음이었습니다. 3년 만에 처음 만난 이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CCTV 속 26분…무슨 일이 있었나?'

사건은 실제로 만나면서 발생했습니다. 원래 13일 새벽 2시쯤 선릉역에서 발생했어야 했던 만남은 '남자와 여자'의 만남이었습니다. 하지만, 실제론 '여자와 여자'의 만남이었습니다.

취재진은 사고가 발생한 곳을 비추는 CCTV를 확인해봤습니다. CCTV 시간을 기준으로 이들은 13일 새벽 1시 43분에 사건 장소에 도착합니다. 그리고 2시 9분까지 계속 같은 자세로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보입니다. 실제로 26분간 긴 이야기를 나누다 갑자기 폭행이 시작된 겁니다.

경찰 조사 결과 피의자 A 씨는, 3년 동안 피해자 B 씨에게 남자 행세를 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B 씨는 남자가 나올 줄 알았는데 여자가 나와 당황하고 화가 나 헤어지자고 했고, 그 이후 다툼이 발생했다는 겁니다.

경찰 관계자는 "흉기 공격이 있기 전에 4~5분 정도 다툼이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흉기는 왜 거기서 나왔을까'

인터넷상에서 친해져 만나기로 했는데 A 씨는 왜 흉기를 가져갔을까요.
A 씨는 B 씨를 만나기 전, 혼자 생각했던 것이 크게 세 가지 있습니다. '남자로 행세했던 자신의 정체가 탄로 날 것이다', 'B 씨가 친구 C 씨와 같이 나올 것이다', 또 'B 씨가 자신보다 몸집이 더 클 것이다'는 것입니다.

경찰 조사에서도 A 씨는 B 씨가 친구와 같이 나올 것을 알고 있었고, 자신의 몸집이 왜소해 만약을 위해 흉기를 갖고 나왔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자신의 정체가 탄로 났을 때 다툼이 있을 수도 있어 만일을 대비해 흉기를 가져왔다는 겁니다.

경찰 관계자는 "A 씨가 혹시나 해서 흉기를 가져왔다가 다툼이 발생했고, 피해자가 욕을 심하게 해 우발적으로 흉기를 휘둘렀다고 진술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남은 의문점들'

지금까지 확인된 사실들은 이 정도 입니다. 하지만 아직 풀지 못한 문제들이 있습니다. A 씨는 왜 남자 행세를 했고, 3년간 그들은 어떤 관계였는지 등이 그렇습니다.

흉기를 가지고 간 이유도 완전히 납득하기는 힘듭니다. 저런 상황에서 흉기를 준비했다는 것도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경찰 조사에서 A 씨는 3년 전에 인터넷에서 남자냐는 질문을 받고 남자라고 답한 후 계속 남자행세를 했다고 했습니다. 궁금증이 풀리는 대답은 아닌 것 같지만, 그렇다고 섣부르게 추측할 순 없습니다.

경찰은 오늘(14일) A 씨에 대해 살인 미수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습니다. 경찰은 A 씨와 B 씨 등을 상대로 보다 정확한 사건 경위와 동기를 조사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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