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책방] 올해가 가기 전에 ‘페미니즘’ 한 권 어떠세요?

입력 2018.12.15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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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 단연 올해를 달군 키워드입니다. 옹호하든 비판하든 혹은 아직 의견을 정하지 못했든, 페미니즘을 둘러싼 다양한 의견이 폭발적으로 분출된 한 해였습니다.

관련 서적도 크게 증가했습니다. 한 대형 출판업체에 따르면 올해 페미니즘 관련 서적은 백 가지 종류가 넘게 출판돼 지난 3년 동안 최대치를 기록했습니다. 그런데 어떤 책을 읽어야 할지 모르겠다고요?

페미니즘 책의 홍수 속에 선뜻 한 권을 고르지 못하는 분들을 위해, 갓 출판된 12월의 따끈따끈한 신작을 골라봤습니다.


"여성의 일은 국가가 아닌 여성이 결정해야 하기 때문에, 낙태죄는 폐지돼야 한다"

프랑스에서는 40여 년 전 임신중단 합법화 법안이 통과됐습니다. 1975년 이른바 '베유 법'이 공표된 이후 낙태죄가 한시적으로 유보됐고 특정한 조건 하에서 임신중단이 허용됐습니다. 이후 1988년에는 임신중단약물인 미페프리스톤 시판이 허가됐고, 2001년에는 임신중단 법정 허용 주 수가 기존 10주에서 12주로 늘어났습니다.

「국가가 아닌 여성이 결정해야 합니다」는 '베유 법'을 의회에 제출한 시몬 베유(1909~1943)의 의회 연설과 대담을 엮은 책입니다. 1909년 프랑스 니스에서 태어난 시몬 베유는 1944년 홀로코스트를 겪으며 가족을 잃었습니다. 프랑스 보건부 장관으로 재직하던 1974년 11월 임신중단 허용법을 의회에 제출했습니다.

시몬 베유는 "낙태죄의 존폐에 대한 질문은 태아와 여성의 삶의 경중을 따지는 물음이 아니라 여성의 몸에서 일어나는 일을 결정하는 주체가 누구여야 하냐는 물음"이라고 역설합니다. "무엇보다 여성의 삶은 국가가 아닌 여성이 결정해야 하기 때문에, 낙태죄는 폐지돼야 한다"는 것입니다.

백 쪽 안팎으로 부담없이 읽을 수 있는 「국가가 아닌 여성이 결정해야 합니다」. 책의 무게는 가볍지만 우리 사회에 던지는 물음은 묵직합니다.


'징징거린다'란 낱말은 여성의 언어를 하찮게 만든다.

반면, '깊은 목소리'의 남성에게는 온갖 심오한 함의가 따라붙는다.

우리 드라마에 익숙한 장면이 있습니다. 집안에 어떤 갈등이 생기면 먼저 엄마(여성)가 울며불며 화를 냅니다. '징징대고' '넋두리를 하는' 모습입니다. 그녀는 이 갈등이 왜 불합리한가에 대해 열변을 토하죠. 그러면 아버지(남성)가 참다못해 '깊고 낮은 목소리로' 일갈합니다. "그만 좀 해!" 그러면 엄마는 입을 다물고 방으로 사라집니다.

'영국에서 가장 유명한 고전학자'라는 수식어가 붙는 메리 비어드는 이런 여성과 남성에 대한 편견이 고대 로마에서부터 시작돼 오늘날까지 이어졌다고 주장합니다. 예컨대, 고대 로마의 법정에서 자신의 입장을 성공적으로 변호한 마이시아라는 여성은 '안드로규노스(남녀추니, 양성성을 가진 존재)'라고 불렸다고 합니다. 공적 영역에서 논리적으로 발언하는 능력은 '여성'에게는 없다고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이 책에서 '넋두리를 늘어놓거나 징징대는' 여성의 목소리는 '사적 영역'에, '권위 있는' 남성의 목소리는 '공적 영역'에 어울린다는 이미지를 역사적 사례로 망라합니다. 또, '사적 영역'에 속한 여성의 공적 영역에서의 발언은 묵살되기 일쑤였다고 주장합니다. '공적 발언'이 곧 '권력'으로 이어진다고 했을 때 여성은 권력에서 배제되는 셈입니다.

"이제까지의 권력이 남성적 권력이었으므로, 권력의 구조를 새롭게 사유해야 한다"는 「여성, 전적으로 권력에 관한」. 역시 백 쪽 안팎으로 어렵지 않게 읽힙니다.


불손한 소녀들의 목소리로 가부장제를 넘어서다

페미니즘 입문서라고도 할 수 있는 「다른 목소리로(1982)」의 저자인 캐럴 길리건의 신작 「담대한 목소리」가 한국어로 번역됐습니다. 캐럴 길리건은 전작 「다른 목소리로」에서 "도덕성 발달에서 여아가 남아보다 뒤쳐진다"고 봤던 주류 도덕발달이론을 비판해 1996년 타임지가 선정한 '미국의 가장 영향력 있는 25인'에 뽑히기도 했습니다.

이번 신작에서 저자는 가부장제의 폭력성을 파헤칩니다. '가부장제'는 남성성을 여성성보다 우위에 놓고, 남성을 가장 남성다운 남성부터 가장 덜 남성다운 남성으로 나누어 서열화합니다. 또, 여성은 '착한 여성'과 '나쁜 여성'으로 나뉘어 침묵을 강요받습니다. 특히 아이들은 점차 '여성성'과 '남성성'을 받아들이면서 상처를 받게 됩니다.

행여 소녀들이 이런 폭력과 부당한 권위에 저항하면 '불손하고, 관습에 어긋난다'고 여겨지기 일쑤입니다. 하지만 이런 '불손한 목소리'가 결국 민주주의를 가부장제로부터 구해낼 것이라고 저자는 주장합니다.

도덕발달이론을 처음 접하는 독자에겐 쉽게 읽히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전작 「다른 목소리로」를 먼저 읽은 뒤 「담대한 목소리」 일독을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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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의도 책방] 올해가 가기 전에 ‘페미니즘’ 한 권 어떠세요?
    • 입력 2018-12-15 07:00:56
    여의도책방
'페미니즘'. 단연 올해를 달군 키워드입니다. 옹호하든 비판하든 혹은 아직 의견을 정하지 못했든, 페미니즘을 둘러싼 다양한 의견이 폭발적으로 분출된 한 해였습니다.

관련 서적도 크게 증가했습니다. 한 대형 출판업체에 따르면 올해 페미니즘 관련 서적은 백 가지 종류가 넘게 출판돼 지난 3년 동안 최대치를 기록했습니다. 그런데 어떤 책을 읽어야 할지 모르겠다고요?

페미니즘 책의 홍수 속에 선뜻 한 권을 고르지 못하는 분들을 위해, 갓 출판된 12월의 따끈따끈한 신작을 골라봤습니다.


"여성의 일은 국가가 아닌 여성이 결정해야 하기 때문에, 낙태죄는 폐지돼야 한다"

프랑스에서는 40여 년 전 임신중단 합법화 법안이 통과됐습니다. 1975년 이른바 '베유 법'이 공표된 이후 낙태죄가 한시적으로 유보됐고 특정한 조건 하에서 임신중단이 허용됐습니다. 이후 1988년에는 임신중단약물인 미페프리스톤 시판이 허가됐고, 2001년에는 임신중단 법정 허용 주 수가 기존 10주에서 12주로 늘어났습니다.

「국가가 아닌 여성이 결정해야 합니다」는 '베유 법'을 의회에 제출한 시몬 베유(1909~1943)의 의회 연설과 대담을 엮은 책입니다. 1909년 프랑스 니스에서 태어난 시몬 베유는 1944년 홀로코스트를 겪으며 가족을 잃었습니다. 프랑스 보건부 장관으로 재직하던 1974년 11월 임신중단 허용법을 의회에 제출했습니다.

시몬 베유는 "낙태죄의 존폐에 대한 질문은 태아와 여성의 삶의 경중을 따지는 물음이 아니라 여성의 몸에서 일어나는 일을 결정하는 주체가 누구여야 하냐는 물음"이라고 역설합니다. "무엇보다 여성의 삶은 국가가 아닌 여성이 결정해야 하기 때문에, 낙태죄는 폐지돼야 한다"는 것입니다.

백 쪽 안팎으로 부담없이 읽을 수 있는 「국가가 아닌 여성이 결정해야 합니다」. 책의 무게는 가볍지만 우리 사회에 던지는 물음은 묵직합니다.


'징징거린다'란 낱말은 여성의 언어를 하찮게 만든다.

반면, '깊은 목소리'의 남성에게는 온갖 심오한 함의가 따라붙는다.

우리 드라마에 익숙한 장면이 있습니다. 집안에 어떤 갈등이 생기면 먼저 엄마(여성)가 울며불며 화를 냅니다. '징징대고' '넋두리를 하는' 모습입니다. 그녀는 이 갈등이 왜 불합리한가에 대해 열변을 토하죠. 그러면 아버지(남성)가 참다못해 '깊고 낮은 목소리로' 일갈합니다. "그만 좀 해!" 그러면 엄마는 입을 다물고 방으로 사라집니다.

'영국에서 가장 유명한 고전학자'라는 수식어가 붙는 메리 비어드는 이런 여성과 남성에 대한 편견이 고대 로마에서부터 시작돼 오늘날까지 이어졌다고 주장합니다. 예컨대, 고대 로마의 법정에서 자신의 입장을 성공적으로 변호한 마이시아라는 여성은 '안드로규노스(남녀추니, 양성성을 가진 존재)'라고 불렸다고 합니다. 공적 영역에서 논리적으로 발언하는 능력은 '여성'에게는 없다고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이 책에서 '넋두리를 늘어놓거나 징징대는' 여성의 목소리는 '사적 영역'에, '권위 있는' 남성의 목소리는 '공적 영역'에 어울린다는 이미지를 역사적 사례로 망라합니다. 또, '사적 영역'에 속한 여성의 공적 영역에서의 발언은 묵살되기 일쑤였다고 주장합니다. '공적 발언'이 곧 '권력'으로 이어진다고 했을 때 여성은 권력에서 배제되는 셈입니다.

"이제까지의 권력이 남성적 권력이었으므로, 권력의 구조를 새롭게 사유해야 한다"는 「여성, 전적으로 권력에 관한」. 역시 백 쪽 안팎으로 어렵지 않게 읽힙니다.


불손한 소녀들의 목소리로 가부장제를 넘어서다

페미니즘 입문서라고도 할 수 있는 「다른 목소리로(1982)」의 저자인 캐럴 길리건의 신작 「담대한 목소리」가 한국어로 번역됐습니다. 캐럴 길리건은 전작 「다른 목소리로」에서 "도덕성 발달에서 여아가 남아보다 뒤쳐진다"고 봤던 주류 도덕발달이론을 비판해 1996년 타임지가 선정한 '미국의 가장 영향력 있는 25인'에 뽑히기도 했습니다.

이번 신작에서 저자는 가부장제의 폭력성을 파헤칩니다. '가부장제'는 남성성을 여성성보다 우위에 놓고, 남성을 가장 남성다운 남성부터 가장 덜 남성다운 남성으로 나누어 서열화합니다. 또, 여성은 '착한 여성'과 '나쁜 여성'으로 나뉘어 침묵을 강요받습니다. 특히 아이들은 점차 '여성성'과 '남성성'을 받아들이면서 상처를 받게 됩니다.

행여 소녀들이 이런 폭력과 부당한 권위에 저항하면 '불손하고, 관습에 어긋난다'고 여겨지기 일쑤입니다. 하지만 이런 '불손한 목소리'가 결국 민주주의를 가부장제로부터 구해낼 것이라고 저자는 주장합니다.

도덕발달이론을 처음 접하는 독자에겐 쉽게 읽히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전작 「다른 목소리로」를 먼저 읽은 뒤 「담대한 목소리」 일독을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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