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리포트] “운전사를 망치로 때려도 좋다”…고단한 日노동자

입력 2018.12.24 (07:01) 수정 2018.12.24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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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지역 버스 회사 사장이 운전사의 태도에 불만을 나타낸 승객에게 ‘운전사를 망치로 때려도 좋다’는 내용의 이메일을 보냈다. 메일 내용은 트위터로 공개됐다. 지자체 당국은 사장의 발언이 부적절했다며 주의조치를 내렸다. 권위주의 기업 문화의 특징은 물론, 친절으로 포장된 조직 문화의 이면을 보여주는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 운전사를 망치로? 아무리 '말'이라지만… ]

사장의 부적절한 대응으로 물의를 빚은 회사는 일본 혼슈 남서부 야마구치 현 '이와쿠니 버스'이다. 민관이 공동 투자한 제3섹터 형식의 법인이다. 발단은 지난 14일 승객이 회사 측에 넣은 민원이었다.

승객 주장에 따르면, IC(교통)카드에 현금을 충전하는 방법을 물었는데, 운전사의 대응 태도가 "붙임성이 없고 불친절해서 불쾌했다"는 것이다. 이와쿠니 버스는 일반인이 곧바로 사장에게 불만을 메일로 접수할 수 있게 돼 있다.

NHK에 따르면, 이와쿠니 버스의 우에다 사장은 "운전석 근처에 쇠망치가 있는데, 다음부터 그것을 사용해 때려도 좋다."는 내용의 답신을 보냈다. 비상 시 버스 유리창을 깨고 탈출할 수 있도록 배치된 망치를 운전사에게 사용해도 좋다는, 해괴한 답변이었다. 또 “(운전사가) 아기와 같아서, 그 장소에서 바로 꾸짖지 않으면 이해하지 못한다.”는 내용도 덧붙였다.


사장의 편지는 민원인에게도 황당하게 느껴졌던 것 같다. 민원인으로 추정되는 인물은 해당 내용을 트위터에 공개하고 시 당국에도 이러한 사실을 알렸다. 17일 시 당국은 부적절한 단어가 사용됐다며 사장에게 구두 주의 조치를 내렸다. 버스회사 사장은 “운전사의 대응이 미숙함을 바로잡기 위해 지나친 말을 사용했다”고 시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관련 내용은 NHK 야마구치 방송국 등 극히 일부 언론을 통해서만 보도됐다. 언뜻 보면, 실언이 부른 '해프닝' 쯤으로 여겨질 법도 하다. 그러나, 그 뿐일까?

[ 노동자를 바라보는 경영자의 경직된 시선 ]

일본의 버스 운전사는 일반적으로 차분하고 친절하다. 그러나 배차 간격과 정류장 통과 시각 등을 의식하면서 안전 운행을 하는 것은 기본이고, 승객의 승하차 과정까지 챙겨야 하는 입장에서 항상 만족스러운 고객 서비스를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승객 입장에서는 그런 모습에서 불쾌감을 크게 느꼈을 수도 있다. 항의 민원을 넣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이후가 문제이다.


통상 불만 민원에 대해서는 '불편을 드려 죄송하다. 당사자에게 엄중 주의를 줬으며, 재발 방지를 위해 교육을 강화하겠다' 류의 답신이 나오기 마련인데, 이번에는 조금 많이 특이했던 것 같다. 평소에 직원을 대하는 태도 또는 마음가짐이 그대로 드러난 셈이라고나 할까.

2012년 취임한 우에도 사장의 경영 능력은 나쁘지 않았던 것 같다. 2015년 이후 회사를 흑자로 전환시켰다. 규모가 제한된 내수 업종에서 눈에 띄는 경영 성과를 이뤘다는 것은 사원들의 희생도 그만큼 컸음을 알 수 있다. 사장의 민원 처리 태도로 미뤄 볼 때, 회사 노동자들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는지 상식적 수준에서 미뤄 짐작할 수 있다.

노동자를 소중히 여기지 않는 경영자가 고객을 진심으로 존중할 수 있는 비결이 있는지 궁금하다.

[ 친절 뒤에 가려진 '감정노동'의 고단함 ]

일본의 서비스업은 친절로 유명하다. 처음 방문한 사람은 으레 접객 노동자들의 친절함에 감동받는 통과의례를 거친다. 때때로 불편함과 미안함을 느끼면서 모국에서 겪은 불친절과 비교하기도 한다. 그러다 익숙해지면 과도한 친절을 당연히 여기게 된다.

일본 대중교통 종사자, 특히 시내버스 운전사의 친절함은 더욱 유명하다. 안정적 보수와 노동 여건이 뒷받침 덕분이라고만 하기에는, 그 이상의 '무엇'이 있다. 다른 나라 같으면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될' 일까지 '세밀하게' 친절하다.

친절을 천성으로 타고난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접객 서비스의 친절은 기본적으로 교육·훈련과 집단적 문화 인식의 산물이다. 필연적으로 종사자들의 감정노동을 수반한다. 기대 이상의 친절 뒤에는 극한의 감정노동이 숨어 있기 마련이다. 평소 일터에서는 얌전하고 과묵하던 직장인들이 술집에서 극단적 성격 변화를 보이는 데는 나름 까닭이 있는 셈이다.

[ "모두가 운전사 탓?"… "승객 다칠라" 초긴장 ]

운수업 노동자들의 고단한 삶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주제의 간담회가 최근 도쿄도 지요다구에서 열렸다. 23일 도쿄신문이 관련 내용을 상세히 다뤘다.

운전사들의 가장 큰 관심사는 승객 안전이었다. 버스는 원칙적으로 승객이 좌석에 앉는 것을 확인한 뒤에야 움직인다. 급브레이크를 밟을 수 있으니 안전에 유의해 줄 것, 버스 문이 열린 뒤에 좌석에서 일어나 하차해 줄 것 등을 수시로 반복 방송한다. 그래도, 버스에서 넘어지는 승객이 끊이지 않는다.

버스가 출발하거나 멈출 때 좌석을 옮길 경우 많이들 넘어진다고 했다. 급커브에서 넘어지거나 통로에서 급히 뛰어나오다 넘어지기도 한다. 가장 많은 경우는 돌발 상황 때문에 급브레이크를 밟을 때이다. 베테랑 운전사는 큰 문제가 없는데, 운전이 미숙한 신입사원들 사이에서 급브레크가 많다.

불가피한 경우도 많다. 자전거가 사각지대에서 튀어나오거나 다른 차량이 갑자기 차선을 바꿔 끼어들 때 등이다. 버스 진로를 방해하면 범칙금이 6천 엔(약 6만 원)이지만 이를 잘 모르는 사람이 많다. 부연하면, 일본에서 자전거는 종횡무진 거침 없는 '탈 것'이다. 차도, 인도, 횡단보도, 중앙선 등을 가리지 않는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를 예상하고 버스 속도를 미리 줄이는 베테랑 운전사들이 많다는 사실이다.

도쿄신문의 결론은 다음과 같다. 운전사 친화적 결론이지만, 참고할 만 한 내용이다.

"버스운전사는 혼자서 차내 안전 확인을 담당하고, 만원일 때는 70명의 생명을 맡아 모든 방향으로 날카롭게 주의를 기울이며 핸들을 잡는다. 그런 모습이 '무뚝뚝'하다는 인상을 승객에게 줄 수도 있다. 그러나, 좌담회에 모인 운전사 9명은 모두 웃는 얼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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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파원리포트] “운전사를 망치로 때려도 좋다”…고단한 日노동자
    • 입력 2018-12-24 07:01:19
    • 수정2018-12-24 16:18:59
    특파원 리포트
일본의 지역 버스 회사 사장이 운전사의 태도에 불만을 나타낸 승객에게 ‘운전사를 망치로 때려도 좋다’는 내용의 이메일을 보냈다. 메일 내용은 트위터로 공개됐다. 지자체 당국은 사장의 발언이 부적절했다며 주의조치를 내렸다. 권위주의 기업 문화의 특징은 물론, 친절으로 포장된 조직 문화의 이면을 보여주는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 운전사를 망치로? 아무리 '말'이라지만… ]

사장의 부적절한 대응으로 물의를 빚은 회사는 일본 혼슈 남서부 야마구치 현 '이와쿠니 버스'이다. 민관이 공동 투자한 제3섹터 형식의 법인이다. 발단은 지난 14일 승객이 회사 측에 넣은 민원이었다.

승객 주장에 따르면, IC(교통)카드에 현금을 충전하는 방법을 물었는데, 운전사의 대응 태도가 "붙임성이 없고 불친절해서 불쾌했다"는 것이다. 이와쿠니 버스는 일반인이 곧바로 사장에게 불만을 메일로 접수할 수 있게 돼 있다.

NHK에 따르면, 이와쿠니 버스의 우에다 사장은 "운전석 근처에 쇠망치가 있는데, 다음부터 그것을 사용해 때려도 좋다."는 내용의 답신을 보냈다. 비상 시 버스 유리창을 깨고 탈출할 수 있도록 배치된 망치를 운전사에게 사용해도 좋다는, 해괴한 답변이었다. 또 “(운전사가) 아기와 같아서, 그 장소에서 바로 꾸짖지 않으면 이해하지 못한다.”는 내용도 덧붙였다.


사장의 편지는 민원인에게도 황당하게 느껴졌던 것 같다. 민원인으로 추정되는 인물은 해당 내용을 트위터에 공개하고 시 당국에도 이러한 사실을 알렸다. 17일 시 당국은 부적절한 단어가 사용됐다며 사장에게 구두 주의 조치를 내렸다. 버스회사 사장은 “운전사의 대응이 미숙함을 바로잡기 위해 지나친 말을 사용했다”고 시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관련 내용은 NHK 야마구치 방송국 등 극히 일부 언론을 통해서만 보도됐다. 언뜻 보면, 실언이 부른 '해프닝' 쯤으로 여겨질 법도 하다. 그러나, 그 뿐일까?

[ 노동자를 바라보는 경영자의 경직된 시선 ]

일본의 버스 운전사는 일반적으로 차분하고 친절하다. 그러나 배차 간격과 정류장 통과 시각 등을 의식하면서 안전 운행을 하는 것은 기본이고, 승객의 승하차 과정까지 챙겨야 하는 입장에서 항상 만족스러운 고객 서비스를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승객 입장에서는 그런 모습에서 불쾌감을 크게 느꼈을 수도 있다. 항의 민원을 넣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이후가 문제이다.


통상 불만 민원에 대해서는 '불편을 드려 죄송하다. 당사자에게 엄중 주의를 줬으며, 재발 방지를 위해 교육을 강화하겠다' 류의 답신이 나오기 마련인데, 이번에는 조금 많이 특이했던 것 같다. 평소에 직원을 대하는 태도 또는 마음가짐이 그대로 드러난 셈이라고나 할까.

2012년 취임한 우에도 사장의 경영 능력은 나쁘지 않았던 것 같다. 2015년 이후 회사를 흑자로 전환시켰다. 규모가 제한된 내수 업종에서 눈에 띄는 경영 성과를 이뤘다는 것은 사원들의 희생도 그만큼 컸음을 알 수 있다. 사장의 민원 처리 태도로 미뤄 볼 때, 회사 노동자들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는지 상식적 수준에서 미뤄 짐작할 수 있다.

노동자를 소중히 여기지 않는 경영자가 고객을 진심으로 존중할 수 있는 비결이 있는지 궁금하다.

[ 친절 뒤에 가려진 '감정노동'의 고단함 ]

일본의 서비스업은 친절로 유명하다. 처음 방문한 사람은 으레 접객 노동자들의 친절함에 감동받는 통과의례를 거친다. 때때로 불편함과 미안함을 느끼면서 모국에서 겪은 불친절과 비교하기도 한다. 그러다 익숙해지면 과도한 친절을 당연히 여기게 된다.

일본 대중교통 종사자, 특히 시내버스 운전사의 친절함은 더욱 유명하다. 안정적 보수와 노동 여건이 뒷받침 덕분이라고만 하기에는, 그 이상의 '무엇'이 있다. 다른 나라 같으면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될' 일까지 '세밀하게' 친절하다.

친절을 천성으로 타고난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접객 서비스의 친절은 기본적으로 교육·훈련과 집단적 문화 인식의 산물이다. 필연적으로 종사자들의 감정노동을 수반한다. 기대 이상의 친절 뒤에는 극한의 감정노동이 숨어 있기 마련이다. 평소 일터에서는 얌전하고 과묵하던 직장인들이 술집에서 극단적 성격 변화를 보이는 데는 나름 까닭이 있는 셈이다.

[ "모두가 운전사 탓?"… "승객 다칠라" 초긴장 ]

운수업 노동자들의 고단한 삶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주제의 간담회가 최근 도쿄도 지요다구에서 열렸다. 23일 도쿄신문이 관련 내용을 상세히 다뤘다.

운전사들의 가장 큰 관심사는 승객 안전이었다. 버스는 원칙적으로 승객이 좌석에 앉는 것을 확인한 뒤에야 움직인다. 급브레이크를 밟을 수 있으니 안전에 유의해 줄 것, 버스 문이 열린 뒤에 좌석에서 일어나 하차해 줄 것 등을 수시로 반복 방송한다. 그래도, 버스에서 넘어지는 승객이 끊이지 않는다.

버스가 출발하거나 멈출 때 좌석을 옮길 경우 많이들 넘어진다고 했다. 급커브에서 넘어지거나 통로에서 급히 뛰어나오다 넘어지기도 한다. 가장 많은 경우는 돌발 상황 때문에 급브레이크를 밟을 때이다. 베테랑 운전사는 큰 문제가 없는데, 운전이 미숙한 신입사원들 사이에서 급브레크가 많다.

불가피한 경우도 많다. 자전거가 사각지대에서 튀어나오거나 다른 차량이 갑자기 차선을 바꿔 끼어들 때 등이다. 버스 진로를 방해하면 범칙금이 6천 엔(약 6만 원)이지만 이를 잘 모르는 사람이 많다. 부연하면, 일본에서 자전거는 종횡무진 거침 없는 '탈 것'이다. 차도, 인도, 횡단보도, 중앙선 등을 가리지 않는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를 예상하고 버스 속도를 미리 줄이는 베테랑 운전사들이 많다는 사실이다.

도쿄신문의 결론은 다음과 같다. 운전사 친화적 결론이지만, 참고할 만 한 내용이다.

"버스운전사는 혼자서 차내 안전 확인을 담당하고, 만원일 때는 70명의 생명을 맡아 모든 방향으로 날카롭게 주의를 기울이며 핸들을 잡는다. 그런 모습이 '무뚝뚝'하다는 인상을 승객에게 줄 수도 있다. 그러나, 좌담회에 모인 운전사 9명은 모두 웃는 얼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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