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 길 먼 ‘미투’ 법제화…생존자들이 말하는 ‘미투’ 응답법

입력 2018.12.28 (21:27) 수정 2018.12.28 (2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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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올 한해 여성인권 분야를 집중적으로 취재해 온 김채린 기자와 함께 미투 운동의 현주소를 짚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서지현 검사의 폭로 이후 미투 운동이 불거졌었죠.

올 한해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요?

[기자]

네, 무엇보다 성폭력 문제를 대하는 우리 사회의 태도가 조금씩 바뀌고 있는 게 감지됩니다.

올해 8월까지 검찰에 접수된 성범죄 건수를 보면 지난해 대비 최고 14% 늘어난 걸로 나오거든요.

성범죄가 올해 갑자기 많아진 건 아닐테니, 서지현 검사처럼 더이상 침묵하지 않겠다는 피해자들의 신고가 늘었다고 보는 게 맞을 것 같습니다.

피해자가 자책하고 수치스러워 할 문제가 아니라는 거죠.

[앵커]

이런 사회적 흐름에 맞춰서 여러 미투 관련 법안들이 국회에 제출됐는데 대략 몇 건이나 될까요?

[기자]

네, 저희가 자료를 종합해 20대 국회 발의 건을 다 더해봤더니 총 227건입니다.

[앵커]

227 건 가운데 실제로 국회를 통과한 법안은 몇 건이나 되나요?

[기자]

어제(27일) 본회의를 통과한 것까지 모두 11건입니다.

[앵커]

227 건에 11 건이면 많다고 할 수는 없을텐데 통과된 법안들이 어떤 법안들입니까?

[기자]

우선 위력에 의한 간음, 추행죄, 안희정 전 지사의 혐의이기도 한데요,

이 죄목의 최고 법정형이 올라갔고요,

이른바 '셀프 촬영물'을 동의없이 유포하는 행위를 처벌하는 법 조항도 이번에 처음 생겼습니다.

[앵커]

법안통과 비율이 약 5 % 정도 밖에 안된다는 얘기네요 ?

[기자]

그렇습니다.

동의하지 않는 성관계를 성폭행으로 처벌하자든가, 성폭력 피해자는 명예훼손 처벌 대상에서 제외하자는 형법 개정안 등은 통과되지 못했습니다.

직장 내 성희롱이나 스토킹 범죄 처벌을 강화하자는 법안들도 모두 계류 중입니다.

[앵커]

왜 이렇게 법안 처리가 늦어지는 걸까요?

[기자]

저도 그 이유가 궁금해서 국회 내부자인 보좌진들을 만나서 속사정을 한번 들어봤습니다.

[리포트]

KBS 기자를 만난 국회 보좌진들은 '미투' 법안 처리 부진이 예견된 결과라고 말했습니다.

처음부터 시류에 맞춰 낸 졸속 법안이 많았다는 겁니다.

[국회 보좌진 A/음성 대역 : "'미투'라는 이슈를 홍보용으로 쓰는 경우가 많아요. '진짜 이걸 통과시켜야겠다' 발의를 하는 게 아니라, 통과되지 않을 걸 알면서도 일단 보도 한 줄 나가게 하기 위해..."]

실제 올해 발의된 주요 '미투' 법안 67건 가운데 41%가 기존 법안과 내용이 판박이였습니다.

그나마 이렇게 발의된 '미투' 법안 3분의 1 가량은 올해 소관 상임위에서 논의조차 되지 않았습니다.

후순위로 밀려난 겁니다.

[국회 보좌진 B/음성 대역 : "성차별 해소를 메인(주) 의제로 내놓는 당이 없는데, 각 당의 어떤 간사가 법안을 상임위에 상정하고 통과시키려 하겠어요. 메인으로 미는 법안들을 먼저 상정시키죠."]

[국회 보좌진 C/음성 대역 : "'여성 문제'가 아닌 '사회 문제'인데, 그저 여가위의 일, 여성 의원의 일, 여가부의 일로만 치부하며 계속 미뤄두는 거예요."]

어렵게 상임위를 통과해 법사위까지 간 '미투' 법안은 13건.

이중 11건이 본회의로 넘어갔는데 대부분 비쟁점 법안이었습니다.

미투 1호 법안으로 불리는 여성폭력방지기본법 등 쟁점 법안은 법사위에서 크게 수정됐습니다.

국회 보좌진들은 50대 이상 남성이 72%에 달하는 법사위 구성이 문제라고 말합니다.

[국회 보좌진 C/음성 대역 : "성인지 감수성이 낮은 구성원들에 의해 법안들이 주로 평가 받다보니, 그냥 미뤄버리고 사장시키는 거예요. 국회 시스템상 계류의 늪에 빠져서 다신 못 올라오거든요."]

국회는 앞으로도 '미투'에 침묵할 것인가.

이 질문엔 우려와 기대가 엇갈렸습니다.

["성차별 이슈에 대한 국민들의 갈등이 높기 때문에, 아마 국회는 이 문제를 무시하는 게 안전한 길이라고 보지 않을까."]

["성평등은 이미 시대정신으로 가고 있다고 생각해요. 지금은 외면하고 있지만 결국 국회도 응답하리라고 생각합니다."]

[앵커]

국회가 시대정신을 외면하고 있다는 얘긴데요. 국회나 우리사회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요?

[기자]

'미투'하면 가해자 징계를 먼저 떠올리는데요.

피해자들에겐 그 외에도 꾸준한 사회적 치유가 중요하단 걸 취재 과정에서 많이 느꼈습니다.

한 피해자는 자신을 바다에서 사고로 모든 걸 잃었는데 그 사고 해역으로 매일 출근하는 사람 같다고 말했는데요.

그만큼 피해자가 혼자 견뎌야하는 시간이 길고 힘들다는 말일 겁니다.

"'미투'의 본질은 공격적 폭로가 아니라 공감과 연대의 운동"이다, 서지현 검사가 오늘 저희의 인터뷰 요청에 이메일로 보내준 구절인데요,

'미투'에 응답하는 방법을 잘 말해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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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갈 길 먼 ‘미투’ 법제화…생존자들이 말하는 ‘미투’ 응답법
    • 입력 2018-12-28 21:33:17
    • 수정2018-12-28 22: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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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올 한해 여성인권 분야를 집중적으로 취재해 온 김채린 기자와 함께 미투 운동의 현주소를 짚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서지현 검사의 폭로 이후 미투 운동이 불거졌었죠.

올 한해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요?

[기자]

네, 무엇보다 성폭력 문제를 대하는 우리 사회의 태도가 조금씩 바뀌고 있는 게 감지됩니다.

올해 8월까지 검찰에 접수된 성범죄 건수를 보면 지난해 대비 최고 14% 늘어난 걸로 나오거든요.

성범죄가 올해 갑자기 많아진 건 아닐테니, 서지현 검사처럼 더이상 침묵하지 않겠다는 피해자들의 신고가 늘었다고 보는 게 맞을 것 같습니다.

피해자가 자책하고 수치스러워 할 문제가 아니라는 거죠.

[앵커]

이런 사회적 흐름에 맞춰서 여러 미투 관련 법안들이 국회에 제출됐는데 대략 몇 건이나 될까요?

[기자]

네, 저희가 자료를 종합해 20대 국회 발의 건을 다 더해봤더니 총 227건입니다.

[앵커]

227 건 가운데 실제로 국회를 통과한 법안은 몇 건이나 되나요?

[기자]

어제(27일) 본회의를 통과한 것까지 모두 11건입니다.

[앵커]

227 건에 11 건이면 많다고 할 수는 없을텐데 통과된 법안들이 어떤 법안들입니까?

[기자]

우선 위력에 의한 간음, 추행죄, 안희정 전 지사의 혐의이기도 한데요,

이 죄목의 최고 법정형이 올라갔고요,

이른바 '셀프 촬영물'을 동의없이 유포하는 행위를 처벌하는 법 조항도 이번에 처음 생겼습니다.

[앵커]

법안통과 비율이 약 5 % 정도 밖에 안된다는 얘기네요 ?

[기자]

그렇습니다.

동의하지 않는 성관계를 성폭행으로 처벌하자든가, 성폭력 피해자는 명예훼손 처벌 대상에서 제외하자는 형법 개정안 등은 통과되지 못했습니다.

직장 내 성희롱이나 스토킹 범죄 처벌을 강화하자는 법안들도 모두 계류 중입니다.

[앵커]

왜 이렇게 법안 처리가 늦어지는 걸까요?

[기자]

저도 그 이유가 궁금해서 국회 내부자인 보좌진들을 만나서 속사정을 한번 들어봤습니다.

[리포트]

KBS 기자를 만난 국회 보좌진들은 '미투' 법안 처리 부진이 예견된 결과라고 말했습니다.

처음부터 시류에 맞춰 낸 졸속 법안이 많았다는 겁니다.

[국회 보좌진 A/음성 대역 : "'미투'라는 이슈를 홍보용으로 쓰는 경우가 많아요. '진짜 이걸 통과시켜야겠다' 발의를 하는 게 아니라, 통과되지 않을 걸 알면서도 일단 보도 한 줄 나가게 하기 위해..."]

실제 올해 발의된 주요 '미투' 법안 67건 가운데 41%가 기존 법안과 내용이 판박이였습니다.

그나마 이렇게 발의된 '미투' 법안 3분의 1 가량은 올해 소관 상임위에서 논의조차 되지 않았습니다.

후순위로 밀려난 겁니다.

[국회 보좌진 B/음성 대역 : "성차별 해소를 메인(주) 의제로 내놓는 당이 없는데, 각 당의 어떤 간사가 법안을 상임위에 상정하고 통과시키려 하겠어요. 메인으로 미는 법안들을 먼저 상정시키죠."]

[국회 보좌진 C/음성 대역 : "'여성 문제'가 아닌 '사회 문제'인데, 그저 여가위의 일, 여성 의원의 일, 여가부의 일로만 치부하며 계속 미뤄두는 거예요."]

어렵게 상임위를 통과해 법사위까지 간 '미투' 법안은 13건.

이중 11건이 본회의로 넘어갔는데 대부분 비쟁점 법안이었습니다.

미투 1호 법안으로 불리는 여성폭력방지기본법 등 쟁점 법안은 법사위에서 크게 수정됐습니다.

국회 보좌진들은 50대 이상 남성이 72%에 달하는 법사위 구성이 문제라고 말합니다.

[국회 보좌진 C/음성 대역 : "성인지 감수성이 낮은 구성원들에 의해 법안들이 주로 평가 받다보니, 그냥 미뤄버리고 사장시키는 거예요. 국회 시스템상 계류의 늪에 빠져서 다신 못 올라오거든요."]

국회는 앞으로도 '미투'에 침묵할 것인가.

이 질문엔 우려와 기대가 엇갈렸습니다.

["성차별 이슈에 대한 국민들의 갈등이 높기 때문에, 아마 국회는 이 문제를 무시하는 게 안전한 길이라고 보지 않을까."]

["성평등은 이미 시대정신으로 가고 있다고 생각해요. 지금은 외면하고 있지만 결국 국회도 응답하리라고 생각합니다."]

[앵커]

국회가 시대정신을 외면하고 있다는 얘긴데요. 국회나 우리사회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요?

[기자]

'미투'하면 가해자 징계를 먼저 떠올리는데요.

피해자들에겐 그 외에도 꾸준한 사회적 치유가 중요하단 걸 취재 과정에서 많이 느꼈습니다.

한 피해자는 자신을 바다에서 사고로 모든 걸 잃었는데 그 사고 해역으로 매일 출근하는 사람 같다고 말했는데요.

그만큼 피해자가 혼자 견뎌야하는 시간이 길고 힘들다는 말일 겁니다.

"'미투'의 본질은 공격적 폭로가 아니라 공감과 연대의 운동"이다, 서지현 검사가 오늘 저희의 인터뷰 요청에 이메일로 보내준 구절인데요,

'미투'에 응답하는 방법을 잘 말해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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