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리포트] 상파울루 도심 ‘마약 소굴’을 가다…2천여 명 마약 취해 ‘흐느적’

입력 2018.12.30 (07:06)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마약에 취한 거리 '크라콜란지아'

내비게이션 '웨이즈'의 도움을 받아 상파울루 도심을 운전할 때였다. '웨이즈'가 길을 안내한 곳은 영화에서 보던 '좀비' 같은 사람들이 서성거리는 지역이었다. 힘없는 눈빛에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한 휘청거리는 수천여 명의 사람들. 이른바 '크라콜란지아 (cracolândia)', '크랙 랜드' 우리말로 번역하면 '마약의 땅'이다.

그 순간 소름 끼칠 정도의 두려움과 함께 궁금증이 생겼다. 남미 최대의 도시 상파울루 도심, 그것도 상파울루의 자랑거리인 문화예술회관 '살라 상파울루' 바로 옆에 왜 저렇게 많은 마약 중독자들이 거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일까 하는 것이었다. 관광객이나 시민들이 이곳에 접근할 수 없어 '살라 상파울루'의 웅장한 건축 양식을 제대로 감상할 수 없고, 건축물의 아름다움이 중독자들 때문에 제대로 빛을 발하지 못하고 묻혀 있다는 안타까움이 느껴졌다.

마약 흡입하는 중독자들마약 흡입하는 중독자들

마약 소굴을 들어가 보니...

이 같은 궁금증을 풀기 위해 직접 마약 소굴 취재에 나섰다. 마약 중독자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있거나 서성이는 거리. 그 중독자들 사이를 취재팀은 한인 선교 단체의 도움을 받아 돌아다녔다. 눈에 비친 광경은 믿기 어려웠다. 지구 종말 뒤의 모습이 이러할까 하는 의심이 들 정도였다. 옷을 갈아입지 못한 이들에게서는 심한 악취가 풍겨왔고, 쏟아지는 빗속에서도 처마 밑에 웅크리거나 까만 비닐 천막 아래서 라디오 안테나를 잘라 만든 가느다란 파이프를 이용해 마약을 흡입하고 있었다. 간간이 중독자들 간에는 영역을 두고 치고받는 심한 싸움이 벌어지기도 했다. 아수라장이었다.

마약 ‘크라키’마약 ‘크라키’

'크라키' 마약..."뇌 파괴"

이들 대부분이 흡입하고 있는 마약은 '크라키', 흡입 뒤 10초 정도면 마약에 취하고 다른 마약보다 강한 환각을 일으킨다고 알려진 물질이다. 하지만, '크라키'의 화학작용은 뇌를 파괴해 다른 마약에 비해 치사율이 높다는 것이 상파울루시 보건당국의 설명이다. 마약을 끊더라도 지능을 회복할 수 없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크라키' 마약을 7년간 흡입하다 선교단체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한 남성과 인터뷰를 하던 도중 느낀 점은 말이 상당히 어눌하다는 것이었다. 마약을 이기고 벗어난 기쁨을 설명하고자 했지만, 취재팀이 들은 것은 중언부언 그 자체였다.

차 유리 닦아 주고 3백원 받으면 마약 구매

마약 중독자들이 마약을 얻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다. 이들은 '크라콜란지아'의 인근 대로에 나가 구걸을 하거나 횡단보도에 정차한 차량에 다가가 앞유리를 닦아주고 운전자들로부터 1, 2헤아이스 정도의 동전을 얻는다. 우리 돈 3백~6백 원 정도다. 이 정도 돈이면 '크라키' 하나를 구입할 수 있다. 마약 코카인이나 헤로인 등과 비교하면 너무도 싼 값으로 팔린다. 경찰과 시청이 브라질에서 가장 싸게 마약을 살 수 있는 곳이라고 말할 정도다. 지난해 10 헤아이스, 3천 원 정도 했던 마약이 1년 만에 10분의 1로 낮아져 '크라콜란지아'에 더욱 많은 중독자가 몰리고 있다.

매일 시신 발견...3천원이면 시신 훼손 처리

'크라콜란지아'는 브라질 최대 마약 범죄 조직 PCC가 장악하고 있다. '크라콜란지아'에서는 PCC가 지시하는 것이 곧 법으로 통한다. 아무도 대항할 수 없는 곳이다. 만약 이들에게 반항하게 되면 마약을 공급받을 수 없게 될 뿐 아니라 목숨까지도 위협받을 수 있다.

'크라콜란지아'에서는 매일 시신이 발견된다. 이에 대해 브라질 현지 선교단체 관계자는 영역을 둔 다툼이나 마약 조직에 반항해 목숨을 잃는 경우일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또는 마약에 중독돼 사망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쓰레기봉투에 버려지는 시신도 상당수 발견되는데 대부분은 심하게 훼손된 채 환경미화원 등에게 발견된다고 한다. 단돈 10헤아이스, 3천 원이면 시신 처리를 대행해주는 마약 중독자들까지 생겨난다고 한다.

‘크라콜란지아’ 서성이는 중독자들‘크라콜란지아’ 서성이는 중독자들

한국인 중독자도...6,7개국 2천여 명이 마약 소굴에

'크라콜란지아'에서 옷과 음식 등을 나눠주며 봉사를 하는 브라질 현지 선교단체 관계자는 취재팀에게 마약 중독자들 가운데는 '코레아노' 한국인도 1명이 있다고 전했다. 이름은 모른다고 말했다. 이 한국사람의 국적이 한국인지 아니면 브라질인지는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이곳에 머물고 있는 중독자들의 국적은 다양하다. 브라질뿐 아니라 볼리비아, 아르헨티나, 베네수엘라 등 남미 인접 국가와 심지어 멀리 아프리카 앙골라 등 6, 7개 나라 마약 중독자 2천여 명이 이곳에 와 있다고 선교 단체 관계자는 밝혔다. 값싸게 마약을 구할 수 있는 데다 자유롭게 마약을 흡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2017년 ‘크라콜란지아’ 소탕 작전2017년 ‘크라콜란지아’ 소탕 작전

왜 도심에 방치될까

'크라콜란지아'가 언제부터 생겨났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다. 다만, 상파울루시와 경찰관들의 말에 따르면 대략 20여 년 전으로 추정된다. 2017년 상파울루 조앙 도리아 전 시장은 도심 개발과 미관을 위해 대규모 경찰 병력을 동원해 소탕 작전을 펼쳤다. 물대포와 최루탄 등을 동원해 마약 중독자들을 '크라콜란지아' 거리 밖으로 내쫓았다.

하지만 문제는 풍선효과였다. 이들이 다른 지역으로 옮겨가자 지역 주민들의 큰 반발을 불렀다. 특히, 바로 인근에 있는 한인 상가 밀집지역인 봉헤치루에도 이들이 출몰했다. 직선거리로 짧게는 50에서 100미터 떨어져 있지만, 기찻길과 건물에 가로막혀 직접 넘어오는 일은 없었다. 그러나 대대적 해산 작전이 이들을 봉헤치루로 밀려가게 한 것이다. 지금은 봉헤치루 한인 타운의 한적한 공원 옆 길에도 비닐집을 짓고 잠을 자며 주변 상인들의 큰 걱정거리가 됐다. 이들은 '크라콜란지아'와 봉헤치루를 왕래하며 마약을 흡입한다. 경찰과 지방정부는 차라리 이들이 한곳에 모여 관리되는 것이 더 낫다고 판단하는 것 같다. 하루 2차례 살수차와 청소차를 동원해 이들이 머물던 '크라콜란지아' 거리를 물로 청소한다. 경찰은 물청소 도중에 옆 거리로 옮겨가는 마약 중독자들의 몸을 수색하며 총기나 대량의 마약 소지 여부를 살피기도 한다. 인권을 이유로 강제 수용도 쉽지 않은 실정이다. 대응하기 난감한 '크라콜란지아'의 현실이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특파원리포트] 상파울루 도심 ‘마약 소굴’을 가다…2천여 명 마약 취해 ‘흐느적’
    • 입력 2018-12-30 07:06:37
    특파원 리포트
마약에 취한 거리 '크라콜란지아'

내비게이션 '웨이즈'의 도움을 받아 상파울루 도심을 운전할 때였다. '웨이즈'가 길을 안내한 곳은 영화에서 보던 '좀비' 같은 사람들이 서성거리는 지역이었다. 힘없는 눈빛에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한 휘청거리는 수천여 명의 사람들. 이른바 '크라콜란지아 (cracolândia)', '크랙 랜드' 우리말로 번역하면 '마약의 땅'이다.

그 순간 소름 끼칠 정도의 두려움과 함께 궁금증이 생겼다. 남미 최대의 도시 상파울루 도심, 그것도 상파울루의 자랑거리인 문화예술회관 '살라 상파울루' 바로 옆에 왜 저렇게 많은 마약 중독자들이 거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일까 하는 것이었다. 관광객이나 시민들이 이곳에 접근할 수 없어 '살라 상파울루'의 웅장한 건축 양식을 제대로 감상할 수 없고, 건축물의 아름다움이 중독자들 때문에 제대로 빛을 발하지 못하고 묻혀 있다는 안타까움이 느껴졌다.

마약 흡입하는 중독자들
마약 소굴을 들어가 보니...

이 같은 궁금증을 풀기 위해 직접 마약 소굴 취재에 나섰다. 마약 중독자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있거나 서성이는 거리. 그 중독자들 사이를 취재팀은 한인 선교 단체의 도움을 받아 돌아다녔다. 눈에 비친 광경은 믿기 어려웠다. 지구 종말 뒤의 모습이 이러할까 하는 의심이 들 정도였다. 옷을 갈아입지 못한 이들에게서는 심한 악취가 풍겨왔고, 쏟아지는 빗속에서도 처마 밑에 웅크리거나 까만 비닐 천막 아래서 라디오 안테나를 잘라 만든 가느다란 파이프를 이용해 마약을 흡입하고 있었다. 간간이 중독자들 간에는 영역을 두고 치고받는 심한 싸움이 벌어지기도 했다. 아수라장이었다.

마약 ‘크라키’
'크라키' 마약..."뇌 파괴"

이들 대부분이 흡입하고 있는 마약은 '크라키', 흡입 뒤 10초 정도면 마약에 취하고 다른 마약보다 강한 환각을 일으킨다고 알려진 물질이다. 하지만, '크라키'의 화학작용은 뇌를 파괴해 다른 마약에 비해 치사율이 높다는 것이 상파울루시 보건당국의 설명이다. 마약을 끊더라도 지능을 회복할 수 없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크라키' 마약을 7년간 흡입하다 선교단체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한 남성과 인터뷰를 하던 도중 느낀 점은 말이 상당히 어눌하다는 것이었다. 마약을 이기고 벗어난 기쁨을 설명하고자 했지만, 취재팀이 들은 것은 중언부언 그 자체였다.

차 유리 닦아 주고 3백원 받으면 마약 구매

마약 중독자들이 마약을 얻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다. 이들은 '크라콜란지아'의 인근 대로에 나가 구걸을 하거나 횡단보도에 정차한 차량에 다가가 앞유리를 닦아주고 운전자들로부터 1, 2헤아이스 정도의 동전을 얻는다. 우리 돈 3백~6백 원 정도다. 이 정도 돈이면 '크라키' 하나를 구입할 수 있다. 마약 코카인이나 헤로인 등과 비교하면 너무도 싼 값으로 팔린다. 경찰과 시청이 브라질에서 가장 싸게 마약을 살 수 있는 곳이라고 말할 정도다. 지난해 10 헤아이스, 3천 원 정도 했던 마약이 1년 만에 10분의 1로 낮아져 '크라콜란지아'에 더욱 많은 중독자가 몰리고 있다.

매일 시신 발견...3천원이면 시신 훼손 처리

'크라콜란지아'는 브라질 최대 마약 범죄 조직 PCC가 장악하고 있다. '크라콜란지아'에서는 PCC가 지시하는 것이 곧 법으로 통한다. 아무도 대항할 수 없는 곳이다. 만약 이들에게 반항하게 되면 마약을 공급받을 수 없게 될 뿐 아니라 목숨까지도 위협받을 수 있다.

'크라콜란지아'에서는 매일 시신이 발견된다. 이에 대해 브라질 현지 선교단체 관계자는 영역을 둔 다툼이나 마약 조직에 반항해 목숨을 잃는 경우일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또는 마약에 중독돼 사망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쓰레기봉투에 버려지는 시신도 상당수 발견되는데 대부분은 심하게 훼손된 채 환경미화원 등에게 발견된다고 한다. 단돈 10헤아이스, 3천 원이면 시신 처리를 대행해주는 마약 중독자들까지 생겨난다고 한다.

‘크라콜란지아’ 서성이는 중독자들
한국인 중독자도...6,7개국 2천여 명이 마약 소굴에

'크라콜란지아'에서 옷과 음식 등을 나눠주며 봉사를 하는 브라질 현지 선교단체 관계자는 취재팀에게 마약 중독자들 가운데는 '코레아노' 한국인도 1명이 있다고 전했다. 이름은 모른다고 말했다. 이 한국사람의 국적이 한국인지 아니면 브라질인지는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이곳에 머물고 있는 중독자들의 국적은 다양하다. 브라질뿐 아니라 볼리비아, 아르헨티나, 베네수엘라 등 남미 인접 국가와 심지어 멀리 아프리카 앙골라 등 6, 7개 나라 마약 중독자 2천여 명이 이곳에 와 있다고 선교 단체 관계자는 밝혔다. 값싸게 마약을 구할 수 있는 데다 자유롭게 마약을 흡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2017년 ‘크라콜란지아’ 소탕 작전
왜 도심에 방치될까

'크라콜란지아'가 언제부터 생겨났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다. 다만, 상파울루시와 경찰관들의 말에 따르면 대략 20여 년 전으로 추정된다. 2017년 상파울루 조앙 도리아 전 시장은 도심 개발과 미관을 위해 대규모 경찰 병력을 동원해 소탕 작전을 펼쳤다. 물대포와 최루탄 등을 동원해 마약 중독자들을 '크라콜란지아' 거리 밖으로 내쫓았다.

하지만 문제는 풍선효과였다. 이들이 다른 지역으로 옮겨가자 지역 주민들의 큰 반발을 불렀다. 특히, 바로 인근에 있는 한인 상가 밀집지역인 봉헤치루에도 이들이 출몰했다. 직선거리로 짧게는 50에서 100미터 떨어져 있지만, 기찻길과 건물에 가로막혀 직접 넘어오는 일은 없었다. 그러나 대대적 해산 작전이 이들을 봉헤치루로 밀려가게 한 것이다. 지금은 봉헤치루 한인 타운의 한적한 공원 옆 길에도 비닐집을 짓고 잠을 자며 주변 상인들의 큰 걱정거리가 됐다. 이들은 '크라콜란지아'와 봉헤치루를 왕래하며 마약을 흡입한다. 경찰과 지방정부는 차라리 이들이 한곳에 모여 관리되는 것이 더 낫다고 판단하는 것 같다. 하루 2차례 살수차와 청소차를 동원해 이들이 머물던 '크라콜란지아' 거리를 물로 청소한다. 경찰은 물청소 도중에 옆 거리로 옮겨가는 마약 중독자들의 몸을 수색하며 총기나 대량의 마약 소지 여부를 살피기도 한다. 인권을 이유로 강제 수용도 쉽지 않은 실정이다. 대응하기 난감한 '크라콜란지아'의 현실이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