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종차별·편견 딛고 특별한 우정 쌓은 두 남자…영화 ‘그린 북’

입력 2018.12.30 (0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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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2년 미국. 이탈리아계 이민자 토니 발레롱가(비고 모텐슨)는 '떠버리'라는 별명답게 입담과 주먹만 믿고 살아간다. 그는 일하던 클럽이 문을 닫자 새 일자리를 찾고, 지인 소개로 천재 피아니스트 돈 셜리(마허샬라 알리)의 면접을 보게 된다.

토니는 뉴욕 카네기홀에 있는 사무실에 기이한 물건들에 둘러싸여 왕처럼 앉은 흑인 돈 셜리가 영 탐탁지 않다. 그래도 남부 콘서트 투어를 무사히 마치게 도와주면 거액의 보수를 주겠다는 그의 제안에 토니는 운전기사 겸 보디가드 역할을 받아들인다.

내년 1월 9일 개봉하는 영화 '그린 북'은 닮은 구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두 남자가 8주간 미국 남부 여정을 통해 서로 이해하고 우정을 쌓는 과정을 따라간다. 그 여정에는 인종차별과 편견이라는 주제도 함께한다.

그렇다고 무거운 영화는 아니다. 개성 강한 캐릭터와 웃음, 감동, 주제의식이 적절하게 균형을 이뤄 관객도 마음 편히 여행길에 동참한다.

'메리에겐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내겐 너무 가벼운 그녀' 등을 연출한 피터 패럴리 감독의 노련한 세공술 덕분이다.

친한 친구끼리라도 여행을 다니다 보면 종종 의견충돌이 생기기 마련. 하물며 자란 환경과 성격이 전혀 다른 두 남자가 같은 차로 8주간 함께 다닌다면 오죽할까. 더구나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이 강하게 남은 미국 남부가 무대다.

두 사람이 여행지에서 겪는 사건·사고는 대부분 흑인에 대한 편견에서 비롯된다. 백인 운전기사와 뒷자리에 편히 앉은 흑인 모습은 남부인들에게 익숙한 광경이 아니다. 시비를 거는 사람들이 자꾸만 생긴다.

돈 셜리는 무대 위에선 최고의 뮤지션이다. 그의 화려한 피아노 연주가 끝나면 부유한 백인들은 박수와 환호를 보낸다. 거기서 끝이다. 무대 아래로 내려오면 상황은 달라진다. 백인들은 돈 셜리를 철저히 무시한다.

그 때문에 돈 셜리는 백인 화장실을 쓰지 못해 공연 중간에 차로 20분이나 떨어진 숙소까지 다녀와야 하고, 백인들과 같은 공간에서 밥도 먹지 못한다.

극 중 '그린 북'은 남부를 여행하는 흑인에게 유색 인종들만 머무는 안전한 숙박시설을 알려주는 지침서를 말한다.

편견과 멸시에 대처하는 돈 셜리의 자세는 인내와 품위다. 폭력을 폭력으로 되받지 않는다. 일부러 용기를 내 남부 투어를 강행한 그는 흑인에 대한 높은 편견의 벽을 실감하고 갈등하지만,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는다.

토니도 사실은 인종 편견에 사로잡힌 인물이었다. 흑인 인부가 마신 컵을 아내 몰래 휴지통에 버렸을 정도다. 하지만 두 사람의 여행 전과 후는 모습이 다르다. 돈 셜리는 다혈질에다 직설적인 토니를 통해 자기 감정에 솔직해지는 법을 배웠고, 토니는 흑인을 인생 친구로 두게 된다.

두 사람의 변화를 보여주는 소소한 에피소드들이 흐뭇한 미소를 자아낸다. 일례가 차 안에서 켄터키 프라이드치킨을 먹는 장면이다.

한손은 운전대를 잡고, 한손으로 우걱우걱 치킨을 뜯어 먹던 토니는 돈 셜리에게 치킨 한 조각을 강제로 넘긴다. 평생 맨손으로, 더구나 패스트푸드를 먹어본 적이 없던 돈 셜리는 마지못해 치킨을 건네받고 한입 베어 문다. 그 뒤 치킨의 매력에 흠뻑 빠진 듯한 그의 표정이 재미있다.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 실존 인물인 토니 발레롱가의 아들이 아버지 이야기를 듣고 스크린에 옮겼다.

캐릭터를 온전하게 제 것으로 체화한 배우들의 명연기가 단연 돋보인다. 토니 역의 비고 모텐슨은 배역을 위해 13㎏ 정도 살을 찌웠다. 그가 맡은 '반지의 제왕' 속 아라곤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문라이트'에서 후안 역으로 지난해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을 받은 마허셜리 알리도 절제되고 진심 어린 연기로 마음을 울린다.

스크린에 흐르는 OST(오리지널사운드트랙) 선율도 감상 포인트다. 뛰어난 기교를 갖춘 피아니스트였던 돈 셜리가 실제로 즐겨 연주한 곡을 OST로 사용했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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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종차별·편견 딛고 특별한 우정 쌓은 두 남자…영화 ‘그린 북’
    • 입력 2018-12-30 07:37:33
    연합뉴스
1962년 미국. 이탈리아계 이민자 토니 발레롱가(비고 모텐슨)는 '떠버리'라는 별명답게 입담과 주먹만 믿고 살아간다. 그는 일하던 클럽이 문을 닫자 새 일자리를 찾고, 지인 소개로 천재 피아니스트 돈 셜리(마허샬라 알리)의 면접을 보게 된다.

토니는 뉴욕 카네기홀에 있는 사무실에 기이한 물건들에 둘러싸여 왕처럼 앉은 흑인 돈 셜리가 영 탐탁지 않다. 그래도 남부 콘서트 투어를 무사히 마치게 도와주면 거액의 보수를 주겠다는 그의 제안에 토니는 운전기사 겸 보디가드 역할을 받아들인다.

내년 1월 9일 개봉하는 영화 '그린 북'은 닮은 구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두 남자가 8주간 미국 남부 여정을 통해 서로 이해하고 우정을 쌓는 과정을 따라간다. 그 여정에는 인종차별과 편견이라는 주제도 함께한다.

그렇다고 무거운 영화는 아니다. 개성 강한 캐릭터와 웃음, 감동, 주제의식이 적절하게 균형을 이뤄 관객도 마음 편히 여행길에 동참한다.

'메리에겐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내겐 너무 가벼운 그녀' 등을 연출한 피터 패럴리 감독의 노련한 세공술 덕분이다.

친한 친구끼리라도 여행을 다니다 보면 종종 의견충돌이 생기기 마련. 하물며 자란 환경과 성격이 전혀 다른 두 남자가 같은 차로 8주간 함께 다닌다면 오죽할까. 더구나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이 강하게 남은 미국 남부가 무대다.

두 사람이 여행지에서 겪는 사건·사고는 대부분 흑인에 대한 편견에서 비롯된다. 백인 운전기사와 뒷자리에 편히 앉은 흑인 모습은 남부인들에게 익숙한 광경이 아니다. 시비를 거는 사람들이 자꾸만 생긴다.

돈 셜리는 무대 위에선 최고의 뮤지션이다. 그의 화려한 피아노 연주가 끝나면 부유한 백인들은 박수와 환호를 보낸다. 거기서 끝이다. 무대 아래로 내려오면 상황은 달라진다. 백인들은 돈 셜리를 철저히 무시한다.

그 때문에 돈 셜리는 백인 화장실을 쓰지 못해 공연 중간에 차로 20분이나 떨어진 숙소까지 다녀와야 하고, 백인들과 같은 공간에서 밥도 먹지 못한다.

극 중 '그린 북'은 남부를 여행하는 흑인에게 유색 인종들만 머무는 안전한 숙박시설을 알려주는 지침서를 말한다.

편견과 멸시에 대처하는 돈 셜리의 자세는 인내와 품위다. 폭력을 폭력으로 되받지 않는다. 일부러 용기를 내 남부 투어를 강행한 그는 흑인에 대한 높은 편견의 벽을 실감하고 갈등하지만,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는다.

토니도 사실은 인종 편견에 사로잡힌 인물이었다. 흑인 인부가 마신 컵을 아내 몰래 휴지통에 버렸을 정도다. 하지만 두 사람의 여행 전과 후는 모습이 다르다. 돈 셜리는 다혈질에다 직설적인 토니를 통해 자기 감정에 솔직해지는 법을 배웠고, 토니는 흑인을 인생 친구로 두게 된다.

두 사람의 변화를 보여주는 소소한 에피소드들이 흐뭇한 미소를 자아낸다. 일례가 차 안에서 켄터키 프라이드치킨을 먹는 장면이다.

한손은 운전대를 잡고, 한손으로 우걱우걱 치킨을 뜯어 먹던 토니는 돈 셜리에게 치킨 한 조각을 강제로 넘긴다. 평생 맨손으로, 더구나 패스트푸드를 먹어본 적이 없던 돈 셜리는 마지못해 치킨을 건네받고 한입 베어 문다. 그 뒤 치킨의 매력에 흠뻑 빠진 듯한 그의 표정이 재미있다.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 실존 인물인 토니 발레롱가의 아들이 아버지 이야기를 듣고 스크린에 옮겼다.

캐릭터를 온전하게 제 것으로 체화한 배우들의 명연기가 단연 돋보인다. 토니 역의 비고 모텐슨은 배역을 위해 13㎏ 정도 살을 찌웠다. 그가 맡은 '반지의 제왕' 속 아라곤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문라이트'에서 후안 역으로 지난해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을 받은 마허셜리 알리도 절제되고 진심 어린 연기로 마음을 울린다.

스크린에 흐르는 OST(오리지널사운드트랙) 선율도 감상 포인트다. 뛰어난 기교를 갖춘 피아니스트였던 돈 셜리가 실제로 즐겨 연주한 곡을 OST로 사용했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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