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감반원 무서웠다”는 장관 vs “6급이 감히 어찌”

입력 2018.12.30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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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태우 승진 자리, 지시했다’는 유영민 과기부 장관
■ ‘김태우 무서워 자리 만들었다’면 과기부는 피해자? 채용비리 공모자?

“제가 시킨 일입니다.”

검찰청에는 많은 '수장'이 찾아옵니다. 기업 대표부터 총수, 장관, 대통령까지… 불법을 아랫사람 혼자 저질렀는가, 당신이 시켰는가. 이 질문이 몇 번이고 반복돼왔습니다. 하지만 지시한 사실을 인정한 수장을 본 기억은 거의 없는 것 같지요.

그런데 최근 '내가 시켰다'고 말한 사람이 있습니다.
유영민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부) 장관입니다. 그는 왜 입을 열었을까요.

과기부 5급 사무관 공모과기부 5급 사무관 공모

과기부의 수상한 ‘5급 사무관 공모’

유 장관은 김태우 수사관 비위 건을 감찰한 대검찰청 감찰본부의 조사를 받았습니다.

지난 7월 과기부는 개방직 5급 사무관 공모를 냈습니다. 정기 채용이 아닌 갑자기 나온 공모. 여기에 과기부를 감찰하는 청와대 특감반원이었던 김태우 수사관이 원서를 냈습니다. 김 수사관은 6급 공무원입니다. 과기부에 채용되면 승진을 할 수 있는 것이죠.

문제는 과정이었습니다. 공모가 나오기 전, 유 장관과 김 수사관은 집무실에서 수차례 만났습니다. 김 수사관이 과기부 직원 비위를 잡아내 이를 알리는 자리였다고 전해졌습니다.

하지만 감찰 결과, 이 만남에서 '사무관 자리'에 대한 이야기가 오갔습니다. 누가 먼저 말을 꺼냈는지, 유 장관과 김 수사관의 진술은 다릅니다.

유영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유영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장관, ‘특감반원이 두려웠다’?

유 장관은 김 수사관에게 '압박'을 느꼈다고 검찰에 진술했다고 합니다. 김 수사관이 유 장관 개인 '약점'이라도 쥔 게 아닐까, 궁금한 지점이었습니다.

대검찰청의 감찰 결과, 다른 약점은 없었다는군요. 유 장관이 두려웠던 건 단지 특감반원의 위력이었다는 설명입니다. 김 수사관이 당시 감찰한 과기부 직원은 2명. 먼저 장관의 최측근 직원 A씨 비위를 쫓았습니다. 그리고 A씨 비위를 덮으려고 한 과기부 3급 감사관도 적발했습니다.

김 수사관이 연이어 직원 비위를 들고 나타나고, 과기부가 들썩이니, 수장으로서는 압박을 받았을까요. 유 장관은 '김 수사관이 과기부에 오고 싶어하는 눈치를 보여, 인사담당자에게 김 수사관 지원을 받으라고 전달했다'는 취지의 진술을 했다고 합니다.

'김 수사관이 먼저 압박을 넣었다'는 주장을 하다보니, 지시 사실도 인정한 셈입니다.
이 과정에 대해, 과기부 인사 담당자들은 "김 수사관이 '나 같은 전문가를 채용하면 좋지 않겠냐'고 해 구체적인 협의를 진행했다"며 "처음에는 4급이 공석이라 채용 대상이었는데, 김 수사관이 '5, 6급 실무가가 필요할 것'이라고 유도해 사무관 자리를 신설하게 됐다"고 검찰에 진술했습니다.

김태우 수사관 변호인 석동현 변호사김태우 수사관 변호인 석동현 변호사

김 수사관 ‘6급이 어떻게 장관을’?

김 수사관 진술은 다릅니다. 6급 공무원이 정권 초기 실세 장관에게 어떻게 '내 자리를 만들라'고 할 수 있겠냐는 항변입니다. 오히려 유 장관이 "내부 비위가 문제인데 한 번 지원해보라고"라고 추천했다는 입장입니다.

과정에 대한 양측 주장은 다르지만, 이 채용은 '미수'가 됐습니다.
김 수사관은 내정까지 됐지만, 자리를 포기했습니다. 감찰 대상인 부처로 승진 이동하는 게 부적절하다는 판단이 뒤늦게 들었다는 겁니다.

미수에 그쳤기 때문에 검찰은 김 수사관에 대한 수사 의뢰를 하지 않고 징계만 내렸습니다. 만약 임용됐다면 김 수사관을 직권남용으로 수사 의뢰 할 수 있다는 설명입니다.

김태우 수사관 감찰 결과 발표를 위해 기자실 향하는 정병하 감찰본부장김태우 수사관 감찰 결과 발표를 위해 기자실 향하는 정병하 감찰본부장

장관님은 휴가 중

그렇다면 궁금해집니다. 특정인의 승진 자리를 만든 과기부에 대해선, 누가 누구를 징계를 해야 하는 걸까요?

이 사건을 조사한 대검 감찰본부는 검찰 직원 비위만 징계하기 때문에, 과기부까지 '칼'을 뻗을 수는 없습니다. 한 검찰 관계자는 "사기업이 회사의 이익을 위해 특정인을 채용하는 것도 문제지만, 공무원 자리를 특정인을 위해 만드는 건 법적으로도 큰 문제"라고 말합니다.

과기부는 이 사건이 불거지는 동안에도 '김 수사관이 내정된 사실이 없다', '장관과 김 수사관이 인사 문제를 이야기한 적이 없다', '김 수사관을 위한 채용 공고를 낸 적이 없다'는 입장을 내왔습니다. 감찰 결과가 사실이라면, 이 해명은 모두 거짓입니다.

결국, 과기부 스스로 칼을 드는 게 순서겠지요. '김 수사관이 압박해 자리를 만들었으니 우리는 강요의 피해자'라는 입장은 아니길 바랍니다.

대검 감찰본부가 감찰 결과를 발표한 27일, 과기부 관계자와 기자가 통화한 내용을 옮겨 둡니다.

- 기자 : 대검 감찰 결과를 보셨나요?
= 과기부 관계자 : 네, 받아서 봤습니다.
- 기자 : 장관님을 비롯해서 인사 담당자 분들이 책임을 지실 일은 없을까요?
= 과기부 관계자 : 아직 감찰 결과를 읽고 있습니다.
- 기자 : 장관님은 아무런 이야기가 없으신지요?
= 과기부 관계자 : 장관님이 휴가 중이시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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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감반원 무서웠다”는 장관 vs “6급이 감히 어찌”
    • 입력 2018-12-30 09:22:04
    취재K
■ ‘김태우 승진 자리, 지시했다’는 유영민 과기부 장관
■ ‘김태우 무서워 자리 만들었다’면 과기부는 피해자? 채용비리 공모자?

“제가 시킨 일입니다.”

검찰청에는 많은 '수장'이 찾아옵니다. 기업 대표부터 총수, 장관, 대통령까지… 불법을 아랫사람 혼자 저질렀는가, 당신이 시켰는가. 이 질문이 몇 번이고 반복돼왔습니다. 하지만 지시한 사실을 인정한 수장을 본 기억은 거의 없는 것 같지요.

그런데 최근 '내가 시켰다'고 말한 사람이 있습니다.
유영민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부) 장관입니다. 그는 왜 입을 열었을까요.

과기부 5급 사무관 공모
과기부의 수상한 ‘5급 사무관 공모’

유 장관은 김태우 수사관 비위 건을 감찰한 대검찰청 감찰본부의 조사를 받았습니다.

지난 7월 과기부는 개방직 5급 사무관 공모를 냈습니다. 정기 채용이 아닌 갑자기 나온 공모. 여기에 과기부를 감찰하는 청와대 특감반원이었던 김태우 수사관이 원서를 냈습니다. 김 수사관은 6급 공무원입니다. 과기부에 채용되면 승진을 할 수 있는 것이죠.

문제는 과정이었습니다. 공모가 나오기 전, 유 장관과 김 수사관은 집무실에서 수차례 만났습니다. 김 수사관이 과기부 직원 비위를 잡아내 이를 알리는 자리였다고 전해졌습니다.

하지만 감찰 결과, 이 만남에서 '사무관 자리'에 대한 이야기가 오갔습니다. 누가 먼저 말을 꺼냈는지, 유 장관과 김 수사관의 진술은 다릅니다.

유영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장관, ‘특감반원이 두려웠다’?

유 장관은 김 수사관에게 '압박'을 느꼈다고 검찰에 진술했다고 합니다. 김 수사관이 유 장관 개인 '약점'이라도 쥔 게 아닐까, 궁금한 지점이었습니다.

대검찰청의 감찰 결과, 다른 약점은 없었다는군요. 유 장관이 두려웠던 건 단지 특감반원의 위력이었다는 설명입니다. 김 수사관이 당시 감찰한 과기부 직원은 2명. 먼저 장관의 최측근 직원 A씨 비위를 쫓았습니다. 그리고 A씨 비위를 덮으려고 한 과기부 3급 감사관도 적발했습니다.

김 수사관이 연이어 직원 비위를 들고 나타나고, 과기부가 들썩이니, 수장으로서는 압박을 받았을까요. 유 장관은 '김 수사관이 과기부에 오고 싶어하는 눈치를 보여, 인사담당자에게 김 수사관 지원을 받으라고 전달했다'는 취지의 진술을 했다고 합니다.

'김 수사관이 먼저 압박을 넣었다'는 주장을 하다보니, 지시 사실도 인정한 셈입니다.
이 과정에 대해, 과기부 인사 담당자들은 "김 수사관이 '나 같은 전문가를 채용하면 좋지 않겠냐'고 해 구체적인 협의를 진행했다"며 "처음에는 4급이 공석이라 채용 대상이었는데, 김 수사관이 '5, 6급 실무가가 필요할 것'이라고 유도해 사무관 자리를 신설하게 됐다"고 검찰에 진술했습니다.

김태우 수사관 변호인 석동현 변호사
김 수사관 ‘6급이 어떻게 장관을’?

김 수사관 진술은 다릅니다. 6급 공무원이 정권 초기 실세 장관에게 어떻게 '내 자리를 만들라'고 할 수 있겠냐는 항변입니다. 오히려 유 장관이 "내부 비위가 문제인데 한 번 지원해보라고"라고 추천했다는 입장입니다.

과정에 대한 양측 주장은 다르지만, 이 채용은 '미수'가 됐습니다.
김 수사관은 내정까지 됐지만, 자리를 포기했습니다. 감찰 대상인 부처로 승진 이동하는 게 부적절하다는 판단이 뒤늦게 들었다는 겁니다.

미수에 그쳤기 때문에 검찰은 김 수사관에 대한 수사 의뢰를 하지 않고 징계만 내렸습니다. 만약 임용됐다면 김 수사관을 직권남용으로 수사 의뢰 할 수 있다는 설명입니다.

김태우 수사관 감찰 결과 발표를 위해 기자실 향하는 정병하 감찰본부장
장관님은 휴가 중

그렇다면 궁금해집니다. 특정인의 승진 자리를 만든 과기부에 대해선, 누가 누구를 징계를 해야 하는 걸까요?

이 사건을 조사한 대검 감찰본부는 검찰 직원 비위만 징계하기 때문에, 과기부까지 '칼'을 뻗을 수는 없습니다. 한 검찰 관계자는 "사기업이 회사의 이익을 위해 특정인을 채용하는 것도 문제지만, 공무원 자리를 특정인을 위해 만드는 건 법적으로도 큰 문제"라고 말합니다.

과기부는 이 사건이 불거지는 동안에도 '김 수사관이 내정된 사실이 없다', '장관과 김 수사관이 인사 문제를 이야기한 적이 없다', '김 수사관을 위한 채용 공고를 낸 적이 없다'는 입장을 내왔습니다. 감찰 결과가 사실이라면, 이 해명은 모두 거짓입니다.

결국, 과기부 스스로 칼을 드는 게 순서겠지요. '김 수사관이 압박해 자리를 만들었으니 우리는 강요의 피해자'라는 입장은 아니길 바랍니다.

대검 감찰본부가 감찰 결과를 발표한 27일, 과기부 관계자와 기자가 통화한 내용을 옮겨 둡니다.

- 기자 : 대검 감찰 결과를 보셨나요?
= 과기부 관계자 : 네, 받아서 봤습니다.
- 기자 : 장관님을 비롯해서 인사 담당자 분들이 책임을 지실 일은 없을까요?
= 과기부 관계자 : 아직 감찰 결과를 읽고 있습니다.
- 기자 : 장관님은 아무런 이야기가 없으신지요?
= 과기부 관계자 : 장관님이 휴가 중이시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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