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돋보기] 78세 여장부, 72세 트럼프 누를까?

입력 2019.01.04 (15:06) 수정 2019.01.04 (15:15)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신임 하원 의장으로 선출된 낸시 펠로시(78) 민주당 하원 의원. 신임 하원 의장으로 선출된 낸시 펠로시(78) 민주당 하원 의원.

미국 권력서열 3위의 女 정치인

그녀가 돌아왔다. 낸시 펠로시 민주당 의원이 미 의회 하원의장에 선출됐다. 2007년에 이은 재등판이다. 12년 전 '미 의회 역사상 최초의, 유일한 여성 의장' 기록을 그녀 자신이 새롭게 쓰게 됐다. 언론들은 "펠로시, 다시 역사를 쓰다", "펠로시가 다시 의사봉을 잡았다" 등 78세 노장 여성 정치인의 귀환을 앞다퉈 다뤘다.

펠로시는 화려한 정치 약력을 갖고 있다. 일단 17선 의원이다. 가정주부로 다섯 남매를 키우다가 47세에 정치에 발을 들였다. 1987년부터 내리 30년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에서 의원을 하고 있다. 2002년부터 16년간 하원 원내대표를 맡았고, 2007~2010년 하원의장을 지냈다. 하원의장 자리는 대통령, 부통령에 이어 미국 권력서열 3위다. 미국 정치권에서 가장 높은 자리에 오른 여성인 셈이다.

펠로시 의원이 미 의회 역사상 처음으로 여성 하원의장에 선출됐을 때. 당시 펠로시는 66세였다.펠로시 의원이 미 의회 역사상 처음으로 여성 하원의장에 선출됐을 때. 당시 펠로시는 66세였다.

뼛속까지 정치인

웬만한 남성 정치인도 버티기 쉽지 않은 미국 정치판에서 이런 약력을 쌓아온 펠로시의 힘은 어디에 있을까. 그녀의 강점은 단호함, 조직력, 협상력이라는 평가가 많다. 오바마 정부 시절, 민주당 내부 반발을 잠재우고 공화당을 설득해 '오바마 케어(오바마 행정부의 국민건강보험법안)'를 통과시킨 게 대표적인 사례다. 정치자금 모금력에 있어서도 그녀를 따라갈 자가 없다. 특유의 친화력과 인맥 덕분이다. 당 중간선거 자금 중 절반을 펠로시가 끌어오면서 '캘리포니아 골드'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2002년부터 지금까지 민주당에 5억 달러(약 5600억 원)을 모금해온 것으로 알려져있다.

그녀의 정치 기질에는 가정환경 영향이 컸다. 동부 볼티모어 이탈리아 이민 가정에서 '루스벨트 민주당원' 아버지와 다섯 오빠를 둔 막내딸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볼티모어 시장과 연방 하원의원을, 오빠도 볼티모어 시장을 지냈다. 아버지를 지켜보며 정치의 꿈을 키운 그녀는 다섯 남매 양육에 매달리다 뒤늦게 정치에 뛰어든 것이다.

지난달 11일 트럼프 대통령과 멕시코 국경장벽 예산 문제로 설전을 벌인 펠로시가 백악관에서 걸어나오고 있다. 당시 그녀가 걸친 붉은색 막스마라 코트와 아르마니 선글라스가 화제가 됐다.지난달 11일 트럼프 대통령과 멕시코 국경장벽 예산 문제로 설전을 벌인 펠로시가 백악관에서 걸어나오고 있다. 당시 그녀가 걸친 붉은색 막스마라 코트와 아르마니 선글라스가 화제가 됐다.

막스마라를 걸친 진보 좌파

펠로시는 민주당 내에서도 '골수 좌파'로 통한다. 조지 W 부시 행정부 시절 이라크 전쟁에 반대하고, 이라크 미군 철수를 강하게 요구했다. 감세 정책에 반대하며 공화당과 싸웠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이면서도 낙태와 동성 결혼도 적극 찬성하는 등 모든 정책에서 진보적 성향을 강하게 드러내 왔다.

남성 위주의 정치 무대에서 몇십 년을 생존해왔지만, '어머니의 모습' 또한 숨기지 않는다. 말끝마다 '오남매 엄마'를 입에 달고, 실제로도 매우 가정적이다. 2006년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중동 순방길 동행을 제안했을 때, 그녀에게는 하나의 기회일 수 있었지만, 막내딸의 출산을 지켜보기 위해 순방에 따라가지 않았다.

여성성과 화려함을 드러내는 것도 좋아한다. 펠로시는 수천만 달러 자산가인 남편과 함께 대저택에 살고, 아르마니, 막스마라 같은 '명품'을 즐겨 입는다. 지난달 11일, 셧다운을 앞두고 트럼프 대통령과의 백악관 회동에서 '장벽 예산'을 두고 설전을 벌인 뒤 당당하게 오벌오피스를 걸어 나올 때, 그녀가 몸에 걸친 붉은색 막스마라 코트와 아르마니 선글라스는 매장에 문의전화가 쇄도했을 정도로 화제가 됐다. 그런가 하면 셧다운 기간 하와이의 1박 2000~3000달러짜리 최고급 리조트에서 휴가를 보내, 빈축을 사기도 했다. 그런 그녀를 향한 공화당의 비아냥은 '리무진 리버럴'. 부유한 진보주의자이다.

민주당 하원 원내대표로서 트럼프 대통령을 만난 낸시 펠로시. (게티이미지)민주당 하원 원내대표로서 트럼프 대통령을 만난 낸시 펠로시. (게티이미지)

다른 듯 닮은꼴 펠로시와 트럼프, 맞수 될까


펠로시의 하원의장 선출과 함께 언론들은 벌써부터 두 사람의 일전을 기대(?)하며 떠들썩하다. 멕시코 국경장벽 예산을 둘러싼 연방정부의 셧다운 문제 해결이 펠로시의 첫 시험대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미 두 사람은 앞서 언급한 것처럼 백악관에서의 설전으로 한 치 물러섬 없는 '강대강' 충돌을 보여줬다. 당시 영상으로 생생히 공개된 설전에서 펠로시의 '걸크러시' 같은 당당한 모습이 인기를 끌기도 했다.

어쨌든 그동안 트럼프 정부 정책에 맞서왔던 만큼 앞으로도 이민자 문제, 세금 인하 등 민감한 정책을 둘러싼 여야 간 대립이 더 치열해질 거란 전망이다. 이런 대립 프레임에 갇혀, 제대로 된 입법 성과를 내지 못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민주당 내에서도 펠로시를 '구악' '올드 세대'라고 비판하며 반대 여론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측 불가능한 트럼프 대통령과 맞서는 한편, 덩치가 커진 민주당을 내부단속해가며 진두지휘해야 하는 임무가 78세의 여장부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 앞에 놓여 있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글로벌 돋보기] 78세 여장부, 72세 트럼프 누를까?
    • 입력 2019-01-04 15:06:17
    • 수정2019-01-04 15:15:05
    글로벌 돋보기
신임 하원 의장으로 선출된 낸시 펠로시(78) 민주당 하원 의원. 미국 권력서열 3위의 女 정치인 그녀가 돌아왔다. 낸시 펠로시 민주당 의원이 미 의회 하원의장에 선출됐다. 2007년에 이은 재등판이다. 12년 전 '미 의회 역사상 최초의, 유일한 여성 의장' 기록을 그녀 자신이 새롭게 쓰게 됐다. 언론들은 "펠로시, 다시 역사를 쓰다", "펠로시가 다시 의사봉을 잡았다" 등 78세 노장 여성 정치인의 귀환을 앞다퉈 다뤘다. 펠로시는 화려한 정치 약력을 갖고 있다. 일단 17선 의원이다. 가정주부로 다섯 남매를 키우다가 47세에 정치에 발을 들였다. 1987년부터 내리 30년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에서 의원을 하고 있다. 2002년부터 16년간 하원 원내대표를 맡았고, 2007~2010년 하원의장을 지냈다. 하원의장 자리는 대통령, 부통령에 이어 미국 권력서열 3위다. 미국 정치권에서 가장 높은 자리에 오른 여성인 셈이다. 펠로시 의원이 미 의회 역사상 처음으로 여성 하원의장에 선출됐을 때. 당시 펠로시는 66세였다. 뼛속까지 정치인 웬만한 남성 정치인도 버티기 쉽지 않은 미국 정치판에서 이런 약력을 쌓아온 펠로시의 힘은 어디에 있을까. 그녀의 강점은 단호함, 조직력, 협상력이라는 평가가 많다. 오바마 정부 시절, 민주당 내부 반발을 잠재우고 공화당을 설득해 '오바마 케어(오바마 행정부의 국민건강보험법안)'를 통과시킨 게 대표적인 사례다. 정치자금 모금력에 있어서도 그녀를 따라갈 자가 없다. 특유의 친화력과 인맥 덕분이다. 당 중간선거 자금 중 절반을 펠로시가 끌어오면서 '캘리포니아 골드'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2002년부터 지금까지 민주당에 5억 달러(약 5600억 원)을 모금해온 것으로 알려져있다. 그녀의 정치 기질에는 가정환경 영향이 컸다. 동부 볼티모어 이탈리아 이민 가정에서 '루스벨트 민주당원' 아버지와 다섯 오빠를 둔 막내딸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볼티모어 시장과 연방 하원의원을, 오빠도 볼티모어 시장을 지냈다. 아버지를 지켜보며 정치의 꿈을 키운 그녀는 다섯 남매 양육에 매달리다 뒤늦게 정치에 뛰어든 것이다. 지난달 11일 트럼프 대통령과 멕시코 국경장벽 예산 문제로 설전을 벌인 펠로시가 백악관에서 걸어나오고 있다. 당시 그녀가 걸친 붉은색 막스마라 코트와 아르마니 선글라스가 화제가 됐다. 막스마라를 걸친 진보 좌파 펠로시는 민주당 내에서도 '골수 좌파'로 통한다. 조지 W 부시 행정부 시절 이라크 전쟁에 반대하고, 이라크 미군 철수를 강하게 요구했다. 감세 정책에 반대하며 공화당과 싸웠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이면서도 낙태와 동성 결혼도 적극 찬성하는 등 모든 정책에서 진보적 성향을 강하게 드러내 왔다. 남성 위주의 정치 무대에서 몇십 년을 생존해왔지만, '어머니의 모습' 또한 숨기지 않는다. 말끝마다 '오남매 엄마'를 입에 달고, 실제로도 매우 가정적이다. 2006년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중동 순방길 동행을 제안했을 때, 그녀에게는 하나의 기회일 수 있었지만, 막내딸의 출산을 지켜보기 위해 순방에 따라가지 않았다. 여성성과 화려함을 드러내는 것도 좋아한다. 펠로시는 수천만 달러 자산가인 남편과 함께 대저택에 살고, 아르마니, 막스마라 같은 '명품'을 즐겨 입는다. 지난달 11일, 셧다운을 앞두고 트럼프 대통령과의 백악관 회동에서 '장벽 예산'을 두고 설전을 벌인 뒤 당당하게 오벌오피스를 걸어 나올 때, 그녀가 몸에 걸친 붉은색 막스마라 코트와 아르마니 선글라스는 매장에 문의전화가 쇄도했을 정도로 화제가 됐다. 그런가 하면 셧다운 기간 하와이의 1박 2000~3000달러짜리 최고급 리조트에서 휴가를 보내, 빈축을 사기도 했다. 그런 그녀를 향한 공화당의 비아냥은 '리무진 리버럴'. 부유한 진보주의자이다. 민주당 하원 원내대표로서 트럼프 대통령을 만난 낸시 펠로시. (게티이미지) 다른 듯 닮은꼴 펠로시와 트럼프, 맞수 될까 펠로시의 하원의장 선출과 함께 언론들은 벌써부터 두 사람의 일전을 기대(?)하며 떠들썩하다. 멕시코 국경장벽 예산을 둘러싼 연방정부의 셧다운 문제 해결이 펠로시의 첫 시험대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미 두 사람은 앞서 언급한 것처럼 백악관에서의 설전으로 한 치 물러섬 없는 '강대강' 충돌을 보여줬다. 당시 영상으로 생생히 공개된 설전에서 펠로시의 '걸크러시' 같은 당당한 모습이 인기를 끌기도 했다. 어쨌든 그동안 트럼프 정부 정책에 맞서왔던 만큼 앞으로도 이민자 문제, 세금 인하 등 민감한 정책을 둘러싼 여야 간 대립이 더 치열해질 거란 전망이다. 이런 대립 프레임에 갇혀, 제대로 된 입법 성과를 내지 못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민주당 내에서도 펠로시를 '구악' '올드 세대'라고 비판하며 반대 여론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측 불가능한 트럼프 대통령과 맞서는 한편, 덩치가 커진 민주당을 내부단속해가며 진두지휘해야 하는 임무가 78세의 여장부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 앞에 놓여 있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